법원서예전에 출품된 노태악 대법관의 글씨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한 점 겨울 마음인가 송이송이 둥글다
그윽하고 담백한 성품은 차도녀같네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제대로 보니 해탈한 선녀같구나

 

추사 김정희가 지은 수선화라는 한시다..

추사는 금수저출신이라 24세 젊은 나이에 사신일행으로 청나라 수도 연경에 가서 처음 수선화를 보고 매력에 빠졌다..

한양에 와서도 고급 도자기에 수선화를 심어 놓고 애지중지 사랑하였는데..

50대 중반 제주도에 귀양와서 대정현에 유배살이 할 때보니 

그 귀한 수선화가 들판에 지천이라 푸대접받고 소먹이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수선화를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안타깝게 바라본다..

 

왕년에 제주에 가서 추사 유배길를 걸으며 수선화와 수인사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https://servan.tistory.com/6349933

 

 

 

 

마라도에서 돌아와 모슬포 항에서 전복이 들어있는 9000원 짜리 해물 라면을 먹고..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의 제주 추사관으로 간다..

 

 

 

 

9년의 유배생활을 증언해주는 세한도,..

 

 

그리고 그가 자신의 처지처럼 동병상련을 느꼈던 수선화와 함께 흉상으로 서있다..

 

한 점 겨울꽃이 떨기마다 둥글게 피었으니

그윽하고 담담한 품격에 둘레는 차갑고 빼어났네

매화는 고상하기 하지만 뜨락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맑은 물에서 참 모양, 바로 해탈한 신선일세

 

위와 같이 추사가 찬탄하던 수선화인데 제주에서는 푸대접을 받으니 어찌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느끼지 않았겠는가?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정월 그믐께부터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러는 산과 들, 밭둑 사이가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수선화)이 귀한 줄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버리기도 합니다.

또 보리밭에 많이 나는 까닭에 마을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호미로 캐어버리고는 하는데, 캐내도 다시 나기 때문에 마치 원수 보듯 합니다”

 

 

 

추사관 바로 뒤에 대정성 안 2번째 유배처였던 강도순의 집이다..

 

 

 분통만한 방안을 들여다 보니 초의선사와 차를 마시고있네..

초의선사도 몇하례 제주로 건너와 추사의 말벗을 하기도 하였다..

초의의 추천으로 소치 허련도 제주에 와서 추사에게 서화를 배웠다..

 

 

 

 

좌측 안거리는 주인 강도순이 살고, 우측 밖거리는 추사의 수성초당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곳이고..정면으로 보이는 곳(모거리= 별채)이 추사 거소이다..

이집 주인 강도순과 그의 형제들이 추사의 제자가 되었고, 그런 인연이 바탕이 되어 증손자 강문석은 일제시대 한남의숙을 설립하여 민중계몽운동을 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집안이 되었다..

 

 

추사가 기거하던 모거리(별채)의 툇마루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본다..

손에 추사선생의 기가 들어가서 서예 솜씨가 늘었으면..ㅎㅎ

 

 

안채에 걸린 "우학산인서실" 추사의 글씨가 걸려있다..

 

 

담장 옆에 수선화가 올해도 피었다..

그자태 그대로 추사가 보듯이 바라본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에서 한차례 기뻐하니,

선연 따라 이른 곳 끝내는 인색한 게 아니로세,

호미 끝에 버려진 심상한 이 물건을,

창 밝고 궤 조촐한 그 사이에서 공양하네

 

 

 

그러나, 추사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 외로운 시절 벼루 10개의 구멍을 내고 붓 1000자루를 닳게 만들었단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수선화에게 / 정호승)

 

 

추사 적거지 옆길에 매화가 피었다..

겨울날 모진 추위를 겪지 않았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향을 풍길 수 잇으리오.. 

 

 

인고의 세월은 문자향,서권기의 상징이 되어 천추를 빛낸다..

 

긴 하루 어느 덧 가고 황혼이 물들면
집 찾아 돌아가는 작은 새들 보며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추사유배길 1코스는 11코스와 중복되는 것 같아 3코스 사색의 길을 따라간다..

 

 

 

 

 

그런데, 그 분홍빛 표지를 놓쳤다..

표지는 제주 올레가 모범이다..유배길 표지는 불성실하다..

하지만, 약간의 팁이 있다면, 표지가 보이지 않을땐 직진이 80%정도 맞다..산방산 교차로에선 좌회전해야한다..

표지가 않보여 대충 단산과 대정향교 방향으로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드디어 표지중 하나인 방사탑과 만나 대정향교로 향한다.. 

 

 

 

단산(바굼지 오름)..멀리서 보면 총각머리같은 산..

 

 

걸으며 생각한다..

걷기는 방향이 최우선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길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slow and steady..

야곰 야곰 걷다보면 목적지는 다가온다..

멀리 갈수록 천천히 가라..

공부도 그렇다..

인생도 그렇다..

 

 

저 분홍 표지가 어찌나 귀한지..보물찾기하는 기분이다..

 

 

대정향교가 보인다..

유채가 노란 세상 봄을 알린다..

봄 노랑 병아리..세상의 시작같은 느낌..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추사가 써준 의문당..

공부하는 자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의문이 클수록 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해소 못한 의문을 풀어 줄 스승을 만나 질문하고 답을 들으면서 숙성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일방 통행식 강의으로 거장을 탄생시키기 어렵고 어렵다..

 

 

모슬포항에 해방후의 대정향교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산방산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다..둥글고 원만한 자태..

요 사진 풍경이 제일 맘에 든다..

 

 

 

 

 

산방산을 앞두고 갈림길에서 표지도 없는데 좌회전해서 갔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찍은 사진..

세한도 속의 소나무를 만났다..

 

멀리 우측으로 송악산..바다 건너 형제섬이 보이는 올레 10코스 구간이 보인다..

 

 

 

산방산 직전 사거리에서 표지가 애매하여 직진하다가 생각하니 지도상으로는 산 좌측으로 돌아야 하는 것으로 나와서 다시 되돌아 가서 사거리에서 좌측길로 올라간다..

 

 

요 멋진 유채밭에 관광버스가 수시로 멈춰 사진찍느라 바쁘다..

이곳 맞은편에 산방산 기슭으로 올라가는 유배길이 이어진다...

 

 

 

 

산방산의 뒤태는 반전이다..

매화가 피었다..매화향이 풍길만한 기상이 있다..

 

 

 

감귤과 동백꽃도 넉넉히 품엇다..

마치 둥그런 앞모습이 포대화상의 미소같은 모습이라면..뒷모습은 그의 자루 처럼 선물이 넉넉히 들어 있는 격이다..

 

 

 

산방산은 둥글고 원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수행자 같은 서슬도 있다는 것을 뒷태가 보여준다,..

마치 문경 봉암사 진산 희양산의 모습이 보여주는 변주와 같다고 할까?

 

 

시간상 산방산 기을 벗어나면서 걷기를 종료한다..

여기서 안덕계곡 가는 길은 다음 기회에 가야겟다..

근처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모슬포로 귀환한다..

 

 

 

모슬포에서 짐을 가지고 제주시내로 이동한다..

숙소에서 다시 만난 산방산..루오가 와서 그린듯하다..

 

 

 

 

 

 

 

<오늘 걷기> 대정읍 추사관 - 적거지 - 방사탑 - 대정향교 - 산방산  약 8km

<참고 걷기> 아래 지도와 같이 지질 트레일 코스 13km도 있고, 산방산 둘레길도 있었다...

 

 

 

저녁 식당에서 만난 매화시..

다시 그것도 제주에서 금년 첫매화를 보고나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내용참조 http://blog.daum.net/servan/6349351

 

 

 

 

자녁을 먹고 산보하는 길에 제주도가 외국어로 머라고 해쌋는다..

뭐라는겨?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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