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가양동 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의 현판
위 현판을 쓴 사람은 곡운 김수증(金壽增)이다..
곡운은 3학사 김상헌의 손자로 김수항의 형이다..
그들 형제는 우암의 제자로서 우암과 같은 노론으로 정치적 부침을 같이한 사람이다.
동생과 스승이 유배가자, 강원도 화천에 은거하면서 조세걸로 하여금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한다.
조세걸은 평양출신 문인화가로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성리학 개조 주자의 삶을 흠모하여 은둔 속에서 멋을 추구하여 주자의 무이구곡도를 모방하여 화천의 경치를 곡운구곡도에 담게하였다.
그림을 그릴 당시 조세걸과 계곡의 경치를 직접 보고 어땋게 그릴지 상의하여 그리게 했다.
우리나라 진경산수화의 단초를 여는 계기가 된다.
김수항의 아들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등 6형제는 백악산(북악산) 아래 살면서 후학들인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사천 이병연 등을 지도하고 백악사단을 형성하여 풍류를 즐기면서 진경시와 진경산수화를 개화시키고 이른바 영,정조의 진경문화시대를 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청에 멸망한 명을 계승한 것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라는 "소중화주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우리 산하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깨웠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할 것이다.
김창집은 숙종시 영의정을 지내면서 겸재 정선에게 도화서 벼슬자리를 마련해주어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제공하고 후원했다.
한데, 그의 5대손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 되면서 유명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시대를 열었으니 과연 노론의 핵심들이다..
우암의 정자의 현판은 자신의 추종세력이 쓸 밖에..
남간정사의 글씨에서 조선의 인맥과 역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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