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문화답사 팀에 끼어 안동 하회마을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며칠전 부터 주말 대설주의보가 예고되어 마음이 심란하였는데, 정말 당일 아침부터 눈발이 심상치 않앗다.
그런데 차가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로 들어가니 전혀 낯선 나라에 온 것처럼 날씨가 밝아지고 공연한 걱정을 한 꼴이 되었다.


(고려 문하주서 야은 길재선생지묘)

첫날은 구미 오태동에 있는 야은 길재 선생의 묘소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길재선생은 정몽주의 성리학풍을 이어 후세에 전해 김숙자→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으로 이어지고, 그뒤 이언적,이황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출발점이 되는 분이다.
그는 고려의 충신으로 남기를 원하였고 조선에서 벼슬살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자식의 출사는 막지 않았으니, 강경파는 아닌 것 같다.

 

유명한 그의 시..


오백년(五百年)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하회마을의 대표적 인물인 류운룡, 류성룡 형제는 퇴계 이황의 제자이다.

그 중 형인 류운룡이 인동현에 현감으로 부임하자, 그 학맥인 뿌리인 길재선생을 기려 “지주중류”비를 세웠다.
그 비문에서 길재를 백이,숙제에 비견하였는데, 그 비문은 동생 류성룡이 형의 뜻을 받들어 썼다 한다.

(비문 앞쪽 "자주중류"라 쓰여 있다)

 

지주중류(砥柱中流)의 의미는 이렇다.
지주(砥柱)는 황허강 중류에 있는 산 이름이다.
《수경주(水經注)》에 따르면,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산언덕이 물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산의 좌우를 파냈다. 이렇게 해서 강물은 산의 양쪽으로 갈려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물 속에 기둥처럼 솟아 있었으므로 지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수하에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라는 3명의 용사가 있었다. 이들은 경공의 충복이었으나 조정의 기강에 해를 끼칠 정도로 오만무례하게 행동하였다. 그래서 재상인 안영은 이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2개의 복숭아를 놓고 3명 가운데 공을 더 많이 세운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 하였다.

이때 고야자는 예전에 경공을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괴물 같은 자라가 나타나 수레를 끄는 말을 물고 지주산이 있는 중류로 도망친(以入砥柱之中流) 일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쫓아가 괴물을 죽이고 말을 되찾아 왔노라고 공을 내세웠다.

 이 고사는 《안자춘추》에 실려 있으며,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2개의 복숭아로 3명의 용사를 죽이다)라는 고사성어의 전거(典據)가 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지주는 황허강의 격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지주산처럼 난세나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잃지 않는 의연한 인물 또는 그러한 행동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라고 하는데, 이 고사성어에서 따온 명칭이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비 후면, 류성룡이 지은 비문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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