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 철확)

논산, 부여 문화답사에 나섰다..

논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황산벌..계백장군..견훤..

백제의 5천 결사가 장렬히 산화한 그 지역에서 몇백년후 후백제의 신검군이 다시 왕건에 항복하여 고려는 통일을 완수한다..

어째서 통일 전쟁의 최후 승부는 2번이나 황산벌에서 이루어졋는가?

그 지역이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역이라는 말이겠지..

지금도 논산 연무대에는 논산훈련소가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러한가 보다..

황산벌 전투의 결과 계백은 분사하여 인근에 묻혔다..

견훤은 자신을 배신한 맏아들 신검을 패퇴시킨후 왕건이 신검을 살려주자, 분통이 터지고  등창이 악화되어 개태사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의 묘도 인근에 잇다..

2사람의 묘는 지나쳤다..그리고 개태사로 향했다.

 

개태사는 통일을 완수한 왕건이 불보살의 가피에 감사드리고 전몰자를 위령하는 차원에서 건립한 국찰이었다 한다.

그 부지가 10만평 정도 되었다하는데..임진왜란 때 불탔다고 한다..

지금의 개태사는 원래 유적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1930년대에 개인이 지었단다.

그러나, 그 절에는 개설 당시부터 있었다는 쇠솥(철확)이 보관되어잇다.

이 쇠솥은 1000명의 승려가 먹을 음식을 조리했다고 하는데..

해설자 말로는 밥은 설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고, 국은 끓이는 것이 가능했을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고 신물로서 보관하던 것 아닐까 추측하였다..

쇠솥은 거푸집을 짜서 쇠를 부어 한번에 만들어 내는데 최근에도 이정도 크기의 쇠솥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쇠솥은 일제시대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 때 쌍계사의 꽃살무늬 창살문과 함께 기차에 실려 서울 나들이도 하였으나 귀가길에 방치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절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이 솥의 가장자리가 깨진 것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 통에 일제가 쇠붙이 공출을 강제하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쇠솥 가장자리를 떼어내어 바쳤기 떄문이란다..

 

 

 

(개태사 뒤 천호산)

 

개태사는 천호산 아래에 자리잡고 잇다..

천호산은 황산벌이 위치하여 황산이라 불렸단다..

황산의 내력도 원래 산이 연이져 잇다는 있다는 "느러뫼"가 "누르뫼"로 변이하여 누렇다는 뜻의 황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면 이름은 연산(連山)인 것을 보면 그럴듯하다..

하여간 그런 황산인데, 왕건이 "하늘의 보호를 받아 대업을 이루었다"하여  천호산(天護山)이라 개칭하였고, 절이름은 "태평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개태사라 정하였다 한다.. 

 

 

(쌍계사)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에 있는 쌍계사에 갔다..

지리산에만 쌍계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이 절도 양쪽으로 계곡이 있다..

이절은 고려 광종 때 은진미륵을 건립한 혜명이 세운 절이라 한다..

혜명은 은진미륵을 세울 때 거대한 상체를 들어올리는 방법을 궁리하는라 고민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모래를 쌓아 상체를  안치하였다고 하는 그 사람이다..

물론 현재 절은 조선 때 중건한 것이다..

이절에 대웅전 꽃무늬 창살이 유명하다..

일찍이 철확과 함께 서울 구경도 다녀온 전력도 잇고..

 


(분합꽃창살)

 

모란, 연꽃, 국화 등으로 조각하고 채색..그러나 안에서 보면 그냥 창호지 바른 문처럼 보인다.

 


(내소사 대웅전 창살-국화문양,채색없음)

 

그러나, 무엇보다 대웅전 추녀 끝에 매달렸음에도 푸른 연못 속에 노니는듯한  물고기 풍경이 한가롭고 여여하다..

(논산시 채운면 소재 미내다리)

 

논산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묻는단다..

"생전에 은진 미륵, 개태사 철확, 강경 미내다리 보앗느냐?"

그래서 여러 차례 본 은진미륵은 사양하고 미내다리를 보러갓다..

 

영조 7년에 세워진 민간이 세운 홍예교..

지금은 물길도 바뀌고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참 아름다운 돌다리다..

민간사람이 돌다리를 세웟다는 것은 이 곳의 경제력이 상당하였음을 의미한다..

인근 강경은 조선 말에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말 전국 3대 시장으로 이미 명성을 떨쳤단다.. 

그뒤에도 우체국은 충남에서 제1호로, 민간은행의 지점은 전국최초로 개설되었다는 경제력..

연무대에 논산훈련소가 생긴 1950-60년대에는 면회객이 쓰고가는 돈이넘쳐나  "돈산"이라고 불렸다나 어쩌나.. 

 


 

(다리 아치위의 용머리..전설에 다르면 구렁이..혹은 디워..)






(전설은 눈이 좋은 사람만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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