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일주문)

 

논산 답사를 마치고 부여로 향햇다..

능산리.. 미인의 젖가슴 같은 고분을 스치고 로터리의 성왕도 돌아서

곧바로 부여 외산면에 위치한 무량사에 다다랐다..

일주문에 만수산 무량사라 써잇다..

만수(萬壽)라면 긴 수명이라는 뜻이고, 무량(無量)도 한량 없는 수명을 뜻하니 모두 극락을 뜻한다..

당연히 이절에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 있다..

 

누가 말한다..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리.."에 나오는 그 만수산입니까?

당연히 아니다..

 

(극락전)

 

극락전 앞 탑을 보수할 때 작은 관세음 불상 등 3개가 나왓다..

그 것을 도둑맞앗다가 다시 찾았다 한다..

 

(되찾은 불상)

 

좌측 2분이 관음보살상이고 우측은 지장보살상이라한다..

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신 속에서 출토되어 절금고에 보관되었는데, 도둑이 들어와 훔쳐갓다가

몇년전에 우년히 도둑을 잡고 되찾았단다.. 

 

(김시습 영정)

 

이 절에 김시습 영정이 보물로 잘 모셔져 잇다..

자화상이라는 설이 있단다..

 

생전에 김시습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썼다고 전해진다..
'모습은 지극이 못생겼고 말 또한 분별이 없으니, 마땅히 구렁 속으로 너를 버릴지어다.'

그러니 그 자화상일 수 있겟다..

 

왜 김시습 영정이 여기에 있을까?

 

김시습이 생육신으로 떠돌다가  말년에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삭발하고 가사 장삼입은 영정은 없나요?"

그는 일시 설잠이란 법명으로 승려가 되었다가 다시 환속하는 등

고승으로 인정 받기 어렵다고 한다..

 

김시습이 5살 때 신동으로 소문이 나자, 당시 허조(許稠)라는 정승이 어린 김시습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그의 집을 찾았다. 김시습을 만난 허조는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네가 글을 아주 잘 짓는다 하던데, 이 늙은이를 위해 '늙을 노(老)'자를 넣어 시 한 구절만 지어 줄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김시습은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즉석에서 이렇게 시를 지었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마음만은 늙지 않았도다[老木開花心不老].'

그후 대궐에 불려가 재주가 입증되자, 세종은 가상히 여겨 비단 50필을 상으로 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김시습이 그 많은 비단을 어떻게 가져가는지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분부했다. 이에 어린 시습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각 필의 끝을 서로 묶은 다움 그 한쪽 끝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나갔다고 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신동이 났다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궁남지)

 

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된 궁남지..

드라마 서동요의 주인공..선화공주의 잠벗..

善化公主主隱 / 他密只嫁良置古 / 薯童房乙 / 夜矣卯乙抱遺去如

 

 

궁남지 주변 10만평에 연을 가득 심었다..

여름에 피는 연꽃은 거의 시들고 나를 기다리는 열정적인 연꽃 몇 송이  휘늘어진 능수버들과 함께 나를 반겨준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예전에는 탑에 새겨진 글씨 때문에 대당평제탑으로 알려졌으나, 그뒤 발굴조사결과 명문이 발견돼 본래 이름을 되찾은 탑..

 

절이 불 탈 때 그을린 자국이 탑신에 그대로 남아잇다..

마치 소정방이란 불한당에 능욕을 당한 치욕을 견디고 의연하게  백제의 미를 전하는 그 모습은 "궁형의 굴욕을 참고 사기 집필의 위업을 달성하여 영원히 빛나는 사마천"의 기상을 닮앗다고 할까? 

 

넓은 터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외롭게 보이는데, 안개가 은은할 때 보면 가장 아릅답단다.. 

이 각도가 이 탑의 얼짱각도라고 백제문양으로 표시되어 있다..

 

(백제의 문양)

 

『삼국사기』백제본기 시조 온조왕조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나온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그대로 백제 예술에 대한 총평이라 할만하다..


 

          (백화암)     

                  

해거름에 유람선을 타고 부여의 상징과 같은  백마강과 낙화암을 마주하였다..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 함락 당시 여기서 죽었을까?

백제 멸망후 의자왕과 함께 당으로 끌려간 사람만 1만 8000명 이었다고 한다..

 

(고란사 종소리)

 

고란사에 올라 3년 젊어 진다는 샘물을 마시고 돌아서니 마침 고란사에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

그 노래 가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고란사 낙조)

 

고란사 종소리와 함께 해가 넘어간다..  

해 기울고 저녁 노을을 보는 것이 다반사안데, 이곳에서 보는 느낌이 남다른 것은 왜일까?

 


유람선에는 "가무금지"라고 써있다..

하지만 유람선 확성기는 홀로 목청을 돋워 배호의 "꿈꾸는 백마강"과 허민의 "백마강"을 불러댄다..

 

문득 고개를 드니 서산에 해는 기울고

망국의 고지에 선 나그네의 마음엔 긴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강물의 훌쩍이는 소리만 배전에 아련하다..




어스름 강변을 걸어 구드래 식당에 앉았다..

누군가 술병을 꺼내 따르는데, 먹을 만하다..

주흥에 젖어 그동안 보고들은 인간사 희노애락을 모두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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