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에 봉암사 간다는 정보을 입수하고..앞뒤 재지 않고 신청했다..

연휴시작이라 서울행 고속도로도 지체되어 근 2시간 40분에 걸려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강남고속터미널에 당도..다시 9호선이냐 3호선이냐냐 헤깔리다가 3호선을 타고 9시 10분전에 집결장소 도착..그러나 다른 일행 기다리느라 서울에서 밤 9시 40분 경에야 버스 출발..

새벽 1시경에 문경부근 숙소에서 도착..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봉암사로 출발한다..

6시 30분까지 봉암사에 도착해야 아침공양이 가능하다기에..

 

 

그런데 새벽 5시 30분인데도 벌써 3km 직전에서 교통을 차단..셔틀버스로 가야한다..

날씨도 쌀쌀하여 셔틀버스 기다리기보다 걷기로 한다..거시기 땀나도록..

 

 

입구에 도착하여 둥근 희양산의 모습을 보자..마음이 조바심친다..

 

 

마음은 급하고..몸은 늦고..

이 지점에서 요 사진 찍으려고 내려서다 잔 자갈에 미끄러져 그대로 개천으로 2바퀴 굴럿다..

정신이 아찔..아이고 오늘 다 베리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양쪽 무릎만 까지고 사진기도 손 발 뼈도 다 무사하다...

그 와중에 정신집중하여 요 사진을 찍었다.. 몸바쳐서 찍은 이사진..어떠신가요?

동행분들이 봉암사 부처님이 법력으로 나를 받아준것이니 감사드리라 권한다..  

 

 

작년에 요기서 희양산을 바라보며 언젠가 봉암사를 방문하리라 맘 먹었는데 이리 일찍 이루어지다니..

꿈은 이루어진다... 상상한대로 된다는 법칙..나도 고수가 되어가나 보다..ㅎ

 

 

천년고찰답게 이 숲길에 천년의 솔향이 풍긴다.. 

 

 

 

봉암사는 현재 조게종에서 특별선원으로 지정..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초파일에만 일반에 개방한단다

(누구는 동짓날에도 개방한다는데 미확인)..

 

 

 

봉암사의 남훈루에 한동안 희양산을 바라본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희양산..여기서는 둥근 모습은 아니다..

 

여기에 봉암사가 들어선 내력..

지증대사 도헌은 국내에서 수도하였으나 중국 북종선 계통의 법맥을 이은 스승을 계승한 스님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심충(沈忠)’이란 거사가 “국사(國師)가 선(禪)의 정혜(定慧)가 넉넉하고 천지(天地)의 이치(理致)를 거울처럼 환히 들여다 본다”는 소문을 듣고 희양산의 배에 해당하는 봉암용곡(鳳巖龍谷)에 있는 자기 소유의 땅을 기부하면서 선사(禪寺)를 세우기를 청하자, 국사가 와서 보니 봉암(鳳巖)이 ‘갑옷을 입은 기사(騎士)가 앞으로 내달리는 듯한 형상' 을 하고 있는지라 그 자리에서 놀라 감탄하면서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고 말하고  봉암사를 창거하게 되었다.

 

 

절에 도착하자 우선 공양간에 가서 줄을 섰다..

다행히 아침공양을 넉넉히 맛잇게 먹엇다.. 

 

 

 

이절에는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하나로 유명한 지증국사 적조탑비와 지증대사 부도탑이 있다..

 

 

 

부도탑의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조사전의 저 글씨..

운간목마시풍..

 

井底泥牛吼月(정저니우후월)

雲間木馬嘶風(운간목마시풍)

把斷乾坤世界(파단건곤세계)

誰分南北西東(수분남북서동)

 

우물 밑에서 진흙 소가 달을 향해 울고

구름 사이 목마의 울음 바람에 섞이네

이 하늘 이 땅을 움켜잡고

누가 서쪽이라 동쪽이라 가름하는가.

 

  

이 구역이 태고선원이다..

 

1947년 성철, 청당 등이 봉암결사를 하여 전통방식대로 선수행하였다..

6.25로 중단되었으나 그 정신은 불교정화운동의 모테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현재 특별선원이 되었으리라..

 

 

 

 

 

대웅전에 들러 감사의 3배를 드린다..

 

 

 

대웅전 꽃살문이 아름답다..

 

 

백철쭉의 개화 공양으로 대웅전이 청정하다..

 

 

잠시후 절뒤 편 오솔길로 오른다..

 

 

 

길은 더욱 그윽해지더니..

 

 

 

마애불이 나타난다..

 

 

고려말기에 조성된 마애보살좌상..

주변의 바위와 어울려 참으로 신비감이 느껴진다..

 

 

 

오른 손에 연꽃을 든 모습..

불교는 꽃과 미소로 대표된다..

이 보살상을 보고 화난 표정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보살이 화날 일이 있으리오..

바라보는 사람이 화난게지..

 

 

 

옆의 돌문을 지나면..

 

 

 

 

백운세상이 전개된다..

 

 

최치원의 글씨라는 설이 있는 백운대(白雲臺) 글씨

 

 

돌아내려가는 길도 정겹다..

 

 

 

 

다시 온 봉암사...화강암의 기가 센 이 곳이야 말로 정진 수행의 전당답다..

 

참 멋진 산이다..내 마음의 산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근처 부도탑을 순례한다..

 

 

이 부도탑은 함허 득통선사의 부도탑이다..

 

함허 득통..

조선 정종 때 사람으로 무학대사의 제자..

그는 성균관에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21세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느낀바가 있어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했다..

나옹- 무학의 법통을 이었고, 금강경 오가해 설의를 집필하였는데..이 부도탑으로 보아 그의 만년 주석처는 봉암사인 것 같다.

 

그의 한마디..

 

梅花片白 足知天下春 梧桐一葉 可知天下秋

매화 흰 꽃잎만으로도 천하의 봄을 충분히 아는 것이요

떨어지는 오동잎 하나로 세상의 가을을 알 수있네

 

 

또 한마디..

春色 無高下 花枝 自長短

봄볕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지만, 꽃가지는 저절로 길고 짧다.

 

 

 

 

천년고찰답게 다양한 양식의 부도탑들이 시대별로 여기 저기 산재한다.. 

 

 

 

이 부도탑은 조게종 종정과 봉암사 조실을 지낸 서암선사를 기리는 것..

봉암사의 조실을 역임한뒤 1993년 종정에 취임한 서암선사는 서의현 총무원장 3선연임을 둘러싼 조계종내 분쟁 당시 140일 만에 물러나고 탈종까지 감행..그러나 그뒤 다시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었다..

 

그러한 그의 이력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한마디에 우려나는 자유를 좋아한다..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며 "누가 물으면 노장(老長) 그렇게 살다 갔다 해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당시 오도송을 읊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난 그런거 없어" 했다던가..

 

 

다시 산속을 간다..

 

 

정진대사 원오탑...

지증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 후삼국전쟁으로 페허화 되자, 정진대사가 고려 태조 당시 중창하였단다..

그는 중국으로 유햑하여 남종선의 법맥을 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고려태조, 헤종, 광종을 선문으로 이끌었다..

 

 

 

원오탑에서 내려오면 정진대사 원오비를 만난다..

고려 광종때 세운 비석이다..

 

 

 

내려오는 길..꽃을 보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은 봉암사 부처님의 덕분이다..

 

 

우리 일행이 셔틀버스를 타고 나온 오전 9시경..본격적인 참배객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저멀리 희양산..속에 봉의 알 같은 봉암사를 품고 있기에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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