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걷기에 나섰다..

선조시대 서산대사와 동시대 선승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진묵대사가 출가한 절..봉서사로 간다.. 

 

 

완주군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말을 듣고 갔는데..

안내된 봉서마을은 내비에도 나오지 않고 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단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에 갔다가 도계마을에 주차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두억마을 경로당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결론 내비에 두억마을을 찍고 가시라..

 

 

간중제(용진저수지)까지는 포장길에 땡볕인데 이젠 해도 기운이 떨어져 걸어갈만하다.. 

 

 

간중제길로 접어 들면 그늘도 잇어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다목적 체험장 수변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한참 쉬며 요기하기 좋다...

 

 

잠시 걷다보면 똥의 꿈이라는 웃기는 건물이 나온다..

안내도에는 똥박물관이라고 나오던데..

 

 

똥의 꿈은 거름이 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인가?

 

 

봉이 사는 봉서사라는 말에 맞게 비각을 쌍봉으로 장식했다..

 

 

포장길이지만 가다가 계곡에 내려가 숨을 돌리고 가니 땀을 식히며 갈만하다..

 

 

 

삼존불과 남골묘가 인상적이다..

 

 

 

조선 중기 진묵대사가 처음 출가한 이절에 그의 부도탑이 있다..

곡차를 좋아했다던 그에게 누군가 곡차를 공양하고 갔다..

 

 

그런데..봉이 산다는 이곳에 왠 용이 이렇게 많은지...

 

 

대웅전의 현판은 일붕선사의 글씨다..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아담한 대웅전...

 

 

범종각 기둥엔 진묵대사의 시가 써있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삼고 구름을 병풍삼고 바다를 술통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어허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겠구나!

 

곡차를 좋아했던 그의 무애행이 눈에 보이는듯.. 

 

 

아담한 진묵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무슨 이유에선지 서산대사의 시비가 서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와 동시대인인 진묵대사는 상당히 대조적인 사람이다..

 

서산은 아명은 운학..21살에 지리산에서 출가하여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하였고(1520-1604),

진묵은 아명은 일옥..이곳 봉서사에서 7살에 사미승으로 출가하여 봉서사에서 입적하였다(1562~1633)..

 

서산은 조실부모하고 남의 집 양자를 갔다가 과거 실패후 승려가 되었고

진묵은 승려가 된 후에도 어머니를 모셨고, 돌아가신 후에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는 명당에 묘소를 썼는데, 지금도 그자리에 성모암이 있어 묘소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산은 명종때 부활한 승과에 장원을 하엿고

진묵은 이른바 재야의 승려로 일생을 마쳤다..

 

산은 정여립사건(기축옥사)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선조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진묵은 자신이 살던 완주군 일대가 정여립 사건의 현장이어서 그당시의 글줄 읽는다는 선비만 1000여명이 처형된 무자비한 옥사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하엿다..

 

서산은 임진왜란시 의주로 피난한 선조의 요청으로 승의병을 일으켜 총지휘자가 되었다..

진묵은 임진왜란 내내 승병에 가담하지 않고 은거하여 수도하였다..전주지역을 방어한 임진왜란 전기에는 전주지역에서 그대로 지낼수 있었겠으나 정유재란으로 호남이 짓밟힐 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서산의 제자들로 현 불교의 법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진묵의 일화는 전북 일대에서는 도인의 경지로 승화되어 초의, 강증산의 언급으로 지금도 살아숨쉰다..

 

 

 

그의 영정이 기골이 장대하니 마치 경허선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두사람 다 비슷한 무애행으로 회자되기에..

 

 

내려오다 계곡에 발을 씻는다..

 

 

내려오는 길에 봉서농원 옆 길로 밀양 박씨네 제실 옆 길로 이어진 산길을 20여분 올라  

올라 갈 때 지나친 밀양 박씨 정경부인묘를 찾아갔다..

남편은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두문동에 들어가 불타 죽은 72현의 하나인 규정공 박침..

 

천하의 명당이라는데..

덕산 남연군 묘와는 다른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주산이 문필봉이고 좌 청용 우백호가 뚜렷한 명당이다..

이름하여 비봉포란(飛鳳抱卵)형 명당..주산인 봉황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는 형국에다가 봉이 사는 절까정 있으니..

그러니 고려적부터 지금까지 이터를 자손들이 유지하고 살지않겠는가..

 

이곳 명당은 충성과 의리의 정신으로 이어진 흥부의 묘자리 같은데..

덕산의 남연군 묘는 발복을 원해 절을 불지르고 이장을 감행한 것이 꼭 놀부의 묘자리 같아 대비된다..

 

 

내려올 때는 임도를 따라 내려온다..

내려와서 보니 명당터밟기 코스다.. 

 

 

잘난 후손들의 비석이 즐비하다..

 

 

 

 

제실의 현판은 정상문이다..

祥瑞(상서)로움을 드러내는 문..

 

 

 

 

다시 간중제를 지나 간다..

 

물빛이 고즈녁한 이곳 길은 포장길린 것이 아쉽다..

그러나 어쪄랴..세상 변화에 따를뿐..

 

 

아침에 헤멜 때 본 하우스 속 조롱박이 가득...

 

 

간중초등학교를 지키는 이순신장군..

한 넘이라도 자신을 닮은 후손이 나와 일본 애들 버릇을 고쳐주기를 기도하신다..

 

 

명절 앞두고 대추도 분주하다..

얼릉 자라 제상에 올라야지..

 

 

 

차를 타고 봉동읍  시장 3대 할머니 국수집에 가서 국수 중짜리 4000원에 뚝닥..배터진다..반찬은 김치 한가지..

 

 

 

 

 

 

<오늘 걷기> 두억마을 경로당-간중제 - 다목적체험장 - 봉서농원 - 봉서사 - 봉서농원 - 정경부인묘소 - 박씨제각 - 원점회귀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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