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고도 크라쿠프 인근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지하 300미터.. 80개이상의 갱도..700년간 750만톤의 소금을 생산한 광산은 이제 박물관, 결혼식장 역할을 하고 있다..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단체 관람객이 바글 바글 줄을 선다..
378개의 나무게단을 내려간다..
소금벽..만져서 맛을 보란다..뭐 맛을 보지 않더라도 알지..
지동설로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상..
어린 망아지를 내려다 키워서 일을 시켰는데, 눈은 거의 먼 정도가 되었다던가..
카시미에슈왕..
크라쿠프는 1596년 바르샤바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558년간 폴란드의 왕도였다..우리의 경주 쯤되는 도시..
더 계단을 내려가면 성 킹가성당이 나온다..
킹가 공주는 헝가리에서 크라쿠프의 폴란드왕에게 시집오면서 그의 원력으로 소금광산이 개발되었고..
그리하여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단다..
제1성당을 지나 더 내려가면..
지하 100미터에 이렇게 큰 성당이 있다..
광부 3사람이 90년에 걸쳐 소금바위에 새긴 조각이 즐비하다..
'광부 '요셉 마르코브스키'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처음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10살 아래 동생인 '토마스 마르코브스키'가 작업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솜씨는 더 좋았다고 한다.
비교해보라..형의 작품은 주제단과 킹가공주상..동생은 벽면을 따라 조각된 에수님의 일생이니..
1920년 형이 죽고, 1927년 동생이 죽은 뒤 '안톤 비로테크'가 1935년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각은 전문 조각가가 제작하였단다..
킹가공주 상
소금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 조각
샹들리에도 소금조각이다..
요한 바오로 2세 ..
크라쿠프의 주교였으며 소금광산을 몇차례 방문하였다..
교황이 된 후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을 지지하여 폴란드의 자유화 나아가 동유렵의 자유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남미의 해방신학에 대하여는 단호히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가 1984.5. 서울을 방문하였을 당시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신문로 거리를 걷던 나는 방탄유리차에 타고 선채로 이동하던 그와 마주쳤다..
나는 비신자이고 당황하여 그에게 예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는 온화한 미소를 나에게 보냈다..
그 때의 인상은 참 온화하여 지금도 생생하다...
지하 매점..
지하 식당에선 결혼식 피로연이 벌어지고 있다..
소금광산에는 성당이 3개가 있다..
이 곳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이 낮은 곳에 임하신 요한 바오로 2세와 작별을 고하고 높은 곳을 향해 간다..
지상으로 나오는 길이 계단으로 걸어야 되나 걱정했으나
허름하지만 고속 엘리베이터로 순식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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