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용성면 용전리 반룡사에 간다..

요석공주가 설총을 잉태하고 원효가 수행한다는 초개사에 가까운 이곳에 와서 설총을 낳고 키웠단다..

이곳 경산은 원래 진한시절 압독국이 있었으며 신라가 최초로 병합한 땅으로 그뒤 신라의 압량주가 되었는데..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이 압량주 총관으로 부임하여 군사를 양성하여 백제정복 전쟁때 주력군이 되었단다..

무열왕은 그 당시 아들을 격려하려고 건천- 청도 운문을 거쳐 반룡사 뒤편 고개를 넘어 압량주를 방문하였으며..

딸 요석공주가 반룡사에 거주할 때도 같은 고개를 넘어 왔는데..그 고개를 왕이 넘은 고개라 하여 "왕재"라 부른다..

 

 

성주괴공..이루어지고 머물다가 무너지고 비어지고...반룡사의 역사도 마찬가지..

한때는 영화롭던 절도 퇴락하려 폐사지가 되엇다가 최근에 불사가 진행중이다..

절 입구가 성벽같다..

 

 

요 강쥐가 입구에서 깡깡 짖길래 "절개는 짖는 법이 아니여" 했더니 그뒤 부터는 얌전해진다..

듣기로, 이 강쥐는 간난새끼 때 봉지에 담겨져 버려졌는데, 주지스님이 데려다가 치료를 하여 건강하게 살고 잇단다..

누각에 주지스님 품안에 안겨서 떠나질 않는다..

 

 

대웅전 현판 글씨가 날아갈듯하게 아름답다..

 

 

이길이 왕재로 연결되는 길이다..조금 가면 산길로 연결된단다..

하지만, 우리는 일정상 절을 내려가 아래 마을 육동보건진료소 앞길로 임도따라 왕재까지만 갈다올 생각이다..

 

 

풍경과 시가 저절로 시화(詩畵)가 된다..

 

 

절을 한바퀴 돌고 누각에 주지스님에게 인사를 했더니 점심공양들고 오란다..

요사채에 가서 점심을 부페식으로 잘 먹고, 누각에 앉아 스님과 덕담을 나누는데..

내가 물었다..

"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것이 오도하기 전인가요? 후인가요?"

스님 왈

"1000년전 일 그렇게 따져봐야 뭐해요..그렇게 따지니 머리가 허여지지요..그저 원효와 요석공주의 인연 자체가 중요한 거지요"

그렇게 한방 맞았다..

그런데..나만 맞은게 아니다..내 동행에게는 "간섭하지마시오"하고 설법을 한다..

ㅎㅎ 그 스님 용하시네..

이곳이 용이 3개가 겹치는 곳이다..용성면 용전리 반룡사..그러니 용하시겠지..ㅎ

 

그런데, 주지스님은 내가 원효대사 역사탐방을 한다고 했더니 아까의 대답이 좀 안됐는지 경산지역과 반룡사 역사 서적을 한권 참고하라고 주신다.

 

밥도 주고, 책도 주고, 덕담도 주고..고맙습니다. 혜해스님..

이절에서는 해마다 10월 중순 원효, 요석공주, 설총을 기리는 다례제와 창작극 요석 야유다를 공연한단다..

공연할 때 오라고 하신다..

 

 

이 동네 육동 미나리가 유명한 모양이다..

육동보건진료소 건너편에 왕재 등산로 표시가 있다..3.6km

 

 

이른 추석이라그런지 한낮은 30도나 올라가는 땡볕이다..

습기는 적어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이길 맹랑하다..

걷기 열풍에 편승하여 길은 만들었는데..길표시는 제로다..

안내도도 문드러져 보이지 않고..

하여간 나중에 보니 지동저수지 뚝을 따라 저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반대로 가버렸다.. 

 

 

이길로 가다보니 산길은 점점 좁아지더니 능선길이 나오는데 표지는 없고..오후 일정도 있고 하여 철수..

 

 

 

 

요거이 다녀온 사람 지도다..반룡사에서 정상을 거쳐 왕재까지는 등산로이고 왕재부터 육동보건진료소까지는 임도..

아까 저수지를 오른쪽에 끼고 뚝길로 올라갔어야 정코스로 가는 것이다..

 

 

나중에 지도를 검색해보니 그냥 능선과 만나는데서 좌측으로 갔으면 임도를 만났을 터인데..

누구를 탓하랴..

성의없는 길 개설자들이여..가끔 다니며 관리 좀 하시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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