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드의 마지막 코스는 골굴사..

숙소인 보문단지로 부터 추령터널을 지나 골굴사로 이르는 사이에 넓은 호수 덕동호를 지난다..

 

 

덕동호로 수몰되기전에 그곳에 고선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은 원효가 수행한 적이 있으며 그를 기리는 서당화상탑비가 발견된 곳이다..

삼국유사 "서복불언"이라는 설화는 원효가 고선사에 있을 때의 일어난 일이라고 밝히고 잇다..

 

골굴사에 도착했다..골굴(骨窟)이라는 말이 바위굴을 의미한다..

원효가 말년에 머물렀다는 혈사(穴寺)도 구멍뚫은 절이라니 비슷한 느낌 아닌가?

하지만 실제 방문하여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를 보면 여기가 혈사로구나하는 생각이 딱 든다..

 

 

그러나 지금은 소림사 분위기가 난다..

중국의 소림사도 달마의 선불교보다는 무술이 더 알려졌듯이 이곳도 원효의 일심, 화쟁 사상보다 선무도가 더 유명해진 곳이다..

 

 

 

달을 품은 산..함월산의 골굴사..

 

 

일주문 옆에 선 사천왕의 초콜렛 복근..여자들은 사천왕을 좋아 하겠다..ㅎ

 

 

 

 

 

대적광전에 이르는 길에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주지 적운 스님..설씨라니 설총의 후예인지도..

이곳에서 선무도, 승마, 국궁등을 수련한단다..승병의 전통을 이어가는 곳인가 보다..

 

 

 

 

포대화상 옆에 개보살이 있다..

이름이 동아라 동아보살이리고 소개되었네..웬만한 사람보다 성실히 수행하였단다..

 

 

아래 강쥐도 동아보살 후예인지 의젓하고 순하다..

 

 

 

 

 

마침 무술공연이 있어서 잠시 관람한다..선무도 동작만 시연한다..

 

 

 

 

 

관음굴과 마애불을 참관한다..

바위들은 사암이라 쉽게 부스러져 굴 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다..

 

 

 

 

원효는 한반도를 벗어난 일이 없다.

그러나 중국의 신간 서적들을 두루 섭렵하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대의 거의 모든 경전에 주석을 달고 명쾌한 해석을 내린 그의 사상은 중국의 선종과 일본 화엄종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가마쿠라(鎌倉) 시대 일본 화엄종을 중흥시킨 묘에(明惠, 1173~1231)는 원효를 흠모했다. 그는 고잔지(高山寺)를 창건하고 원효의 저술을 강의했다. 또한 화승인 조닌(成忍)에게 청하여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 일명 『화엄연기』[華嚴緣起])을 만들었다. 일본의 국보인 이 화집은 원효와 의상의 생애를 담아낸 역작이다. 한편 원효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인도에까지 전해져 범어로 번역된다.

 

실제 설총의 아들인 설중업(薛仲業)도 779년 신라사절단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는 당시 일본 최고 문호인 오미노 미후네(淡海三船·722~785)로 부터 할아버지인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 대한 찬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한다.(<삼국사기> 제46권, <신라서당화상비>, <속일본기> 권36).

 

 

그런 인연이었을게다..

지금도 이곳에선 외국인 템플스테이가 왕성하게 진행된다..

이곳에 도착했을 떼 검은 피부의 아가씨가 케리어 가방을 들고 종무소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고, 자원봉사자도 외국인이 보인다..

 

인연은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그것이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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