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걷기..이번엔 충남구간 천안 두정역에서 직산, 성환을 거처 안성천(평택시 경계)까지 20km를 걷는다..

 

 

천안의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천안도호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다..

천안 태조산도 태조는 왕건을 지칭한다.. 

 

 

 

 

 

천안의 상징하면 호두과자, 삼거리, 능수버들..

이길을 걷다보니 유난히 교회 십자가와 기차가 눈에 많이 띈다..

 

 

 

이길 초입은 능수버들길을 간다..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을 어떻게 구별할까?

감국과 산국의 구별, 개미취와 쑥부쟁이 구별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이론상은 이렇다..

능수버들은 잔가지가 황녹색을, 수양버들은 적갈색을 띠고 있고.

잎의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으로 돼 있으면 능수버들이고, 거의 밋밋하면 수양버들...

잎의 모양을 보면 능수버들은 피침형(披針形·끝이 뾰족한 모양) , 수양버들은 선형피침형(끝이 둥근 모양)이다..

실전에서 이정도 관찰력을 가지려면 내공이 필요하겠지..

 

버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숫나무, 암나무가 있단다..

암나무는 흰 솜털이 날려서 가로수로는 숫나무만 심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옛사람들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건네는 것은 그 왕성한 생명력처럼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꺽어

천가지 다 꺽어도 가시는 님 못잡았네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인가

안개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있네

 

- 임제,패강곡 -  

 

백범 김구선생은 버드나무의 생명력처럼 독립의 의지를 키웠다..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변함이 없고

버드나무는  백번 부러져도 새 가지가 난다..

 

 

아스팔트길을 덜 걸을려고 틈만 보이면 논두렁 밭두렁 길을 간다..

 

 

 

 

이길은 성환천을 따라가는 길이 많다 

 

 

 

참 정갈한 주인이다..연탄재도 포장해놨네..어디 배달이라도 할 것 같다..

 

 

이길은 다리 이름과 교회이름이 표지판이다..

 

 

 

 

직산교를 지난다..

직산의 역사..

1) 백제의 도읍이 한성이냐..직산이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현재 서울 풍남동에 몽촌토성,풍남토성이 발굴되면서 한성 위례성이 통설이 되는 것 같다..

 

2) 정유재란 때 왜군이 북상하다가 직산에서 명군과 붙어서 대패하면서 국면전환의 분기점이 된 곳..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현재 소사평은 다음에 걸을 평택시 대동법기념비 부근으로 나온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는 소사평이 직산, 평택, 안성 경계에 걸쳐 표시되고 있다..

기록에는 직산 북방 소사평 홍경원(현 봉선 홍경사 갈기비 위치) 부근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나온다..

(2017. 11.10 추가..

직산 소사평의 위치에 관하여..

당시 명군은 월성산(성환읍사무소 건너편)에 본진을 두고 잇었고,

현재 성환 읍사무소, 성환역 일대가 소사평 들판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 청일전쟁 때 청군이 포진한 곳도 역시 월성산 일대인데, 일본에 대패하고 패주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6591

 

3) 일제시대 호남선 분기점을 정할 때

직산, 조치원, 대전이 경쟁했다.. 건설비용이 적게 먹히는 대전을 분기점으로 잡으면서 시골이던 대전이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요즘 호남선 ktx  분기점을 두고 벌어진 2차 쟁탈전에서는 충북 오송이 승리했다..

3차 쟁탈전은 서대전역 일부 경유 문제로 붙었으나 대전이 깨깽하고 종쳤다..

 

4) 1.4후퇴..

영화 국제시장 첫장면 흥남철수가 회자되는 요즘 그 당시 1.4후퇴때 유엔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당시 조치원에 살던 부친은 6.25때 피난을 못간 설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리어커에 피난 봇짐을 싣고 상주로 피난을 갔다..

나는 태어나기 전이니 형 3분을 데리고 추운 겨울 청원- 미원-보은을 거쳐 상주로 내려갔다 ..

하지만, 중공군은 직산 부근에서 격퇴되었다..

결론은 조치원사람은 피난갈 필요가 없었는데 고생하셨다는 말씀.. 

 

 

 

 

 

수헐리(시름세)에 도착했다..

수헐원이라는 역원터를 찾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다..

 

 

수헐원(愁歇院)..고려시대 공립 여관이랄까..

말그대로 시름을 쉬는 곳이라는 뜻인데..이두식으로는 실음소(悉音所)로  표기하였다 하니 우리말로는 시름새로 부른 것 같다..

 

 

부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같이 마시자..

이리 노래하며 살던 시절도 있었지..

 

 

 

 

 

 

요기서 오전 걷기를 끝내고..차로 이동.. 멸치 잔치국수로 점심을 하고..

 

 

 

다시 걸어 성환역에 도착한다..

성환하면 배꼽참외나 개구리참외가 유명했었는데...

요즘은 노랗고 단 오복이나 금메달에 밀려 보이지 않네..

 

 

성환역은 구한말 청일전쟁 때 청군과 일군이 맞붙은 현장이다..

결과 명치유신으로 개혁한 일본군이 양무개혁했다고 폼잡던 청나라군을 박살내고 동양의 역사를 일본 주도로 바꾸었다.

깡패 두놈이 식당 안에서 난장판 치며 싸우는데 수수방관하고 수리비는 커녕 쪽박찬 신세가 된 조선의 꼬락서니..

시대흐름을 못탄 자의 운명..

 

 

 

 

 

 

 

철새들도 떠날 때가 되었다..두고온 툰드라의 찬공기가 그립겠지..

 

오래전 내 그리움에게

가만히 안부를 묻는다

 

 

어디쯤 와있는 걸까

가던 길 뒤돌아본다
저 멀리 두고 온 기억들이

 나의 가슴에 말을 걸어온다

그토록 아파 하고도

마음이 서성이는 건
슬픔도 지나고 나면 봄볕

꽃망울 같은 추억이 되기에

서글퍼도 그대가 있어

눈부신 시간을 살았지

 

 

뚝방 썬탠의 계절이다..

어릴 적 뚝방 불태우며 놀던 추억이 꽃망울처럼 터진다..

 

 

 

 

 

 

 

 

심보 고약타..

대감과 마님 쌀이 아니고 머슴과 마님을 붙인단 말인고..

 

 

 

알파와 오메가인 이교회

"하느님의 전을 성별하여 드립니다.."

 

한국말인데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여 인터넷에 물엇다..그랫더니

열왕기상 9:1-9 
솔로몬이 계획했던 대로 야훼의 전과 왕궁과 그 밖의 다른 모든 건물을 완공한 다음이었다.

야훼께서 기브온에서 나타나셨던 것처럼 솔로몬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나에게 한 간절한 기도를 모두 들었다. 네가 세운 이 전을 성별하여 영원히 나의 것으로 삼으리니 장차 내 눈과 내 마음을 영원히 두리라."

 

성경귀절로 유추하면 "하느님의 성전을 지어 세속과 구별되는 성스러운 것으로 (하느님께) 바칩니다."라는 뜻이 아닐까?

 

 

사자개는 온순하게 바라본다..

성격도 외모의 특징을 닮나보다..

 

 

안성천에 도착했다,..

이곳 오리는 노닥 거리는 폼새가 철새가 아니고 텃새인것 같다..

 

 

 

평택과 천안의 경계인 안성천교를 지난다..

천안쪽엔 횃불낭자가 서있다..그녀는 유관순이겠쥐..

 

 

 

여기서 오늘 삼남길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귀가길에 국보인 봉선 홍경사 갈기비를 관람한다..

뒤풀이로 불소주에 닭가슴살로 벳살을 두둑히 하며 마무리한다..

 

 

 

<오늘 걷기> 천안 두정역 - 직산교 - 수헐리 - 성환역 - 안궁리 - 안성천교 약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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