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건릉>
삼남길..화성- 수원 -의왕으로 이어지는 구간 ..삼남길 디자인으로는 4구간 서호천길, 5구간 증복들길, 6구간 화성효행길이다..
오늘 화성 세마교 - 수원 지지대비 까지 이 구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조 효행길이라 부르고 싶다..
화성시 안영동 세마교에서 출발하여 황구지천을 따라간다..
황구지천?? 큰 곶이 있는 내(강)이라는 뜻..
느러곶이내 - 놀곶이내 - 항곶포 - 황구지천으로 변한 우리 말의 변천사..
강에 저 시커먼스..왜가리, 해오라기, 오리도 아닌 저 것..
가마우지인가??
모심은 논은 그 자체로 현대적 추상화..
효행로라 이름 붙은 이곳은 용주사로 가는 길이다..
사뎅이??
오뎅 형님인가??
수원 지역에서 돼지뼈 넣고 끊이 감자탕을 사뎅이라고 부르는갑다..
옹주사..용의 구슬..여의주를 이르는 말인데..
평비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일주문도 없고, 바로 사천왕문으로 들어가는데..
사천왕 중 광목천왕이 오른 손엔 용을,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계시다..
"용주는 바로 이 손안에 있소이다!!"
왜 그러냐고??
막존지해..잔머리를 내려 놓아라..
이 절에는 홍살문이 있다..
보통 절에는 없는 문이나 이곳은 조선 왕실의 원찰이라 유교식 홍살문이 서있다..
조지훈의 승무 시비가 서있다..
지훈이 이곳에서 승무를 보고 느낀 감회를 시로 썼단다..
보천루 뒤편에는 홍제(弘濟)루라는 현판이 있다..
홍제..널리 구제한다..는 의미..
정조는 홍재(弘齋)라는 호를 썼다..그의 문집이 홍재전서이다..
`그는 "군자 도량이 넓고 마음이 굳세야 한다"는 논어 태백편의 귀절에서 따왔다..
왕세손 시절에 이 호를 쓴 것은 관대하게 포용하겠다는 제스추어가 담겨잇다..
실제 왕이 되어 일부 인사만 숙청하엿고 노론 자체는 정치 파트너로 대우하였다...
그의 철학은 왕과 스승으로서 노론이라도 신하를 가르치고 교화하여 포용하겠다는 것인데, 그의 정치는 그의 철학대로 행하여 졌다..
죽농 안순환의 난죽 그림이 있다..
삼문에 걸리 현판의 용주사 글씨도 그의 글씨이고..
그는 조선말 왕실 대령숙수엿다.,.그러다가 일제 시절 명월관을 개업하여 한정식 요리의 모델을 창시한다..
사업가로 돈을 번뒤 해강 김규진과 함께 명찰을 돌아다니면서 글과 그림의 편액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난죽 그림은 그럴듯하나, 글씨는 절품은 아닌 둣하다..
부모은중경탑이 잇다..
깊고 깊은 부모님 크신 은혜 사랑하고 보살피심 어느 땐들 끊일까
단 것이란 다 뱉으니 잡구실 게 무엇이며 쓴 것만 삼키어도 밝은 얼굴 잃지 않네.
부모님의 사랑 깊은 정 끝이 없고 은혜는 더욱 깊고 슬픔 또한 더 하셔라.
대웅전 뒤로 호성전이 잇다..
사도세자 부부, 정조 부부의 위패가 잇다..
삼천세 만에 핀 우담바라 꽃이여..긴 봄이 무궁이 이어지기를..
십방 7등각이 무엇인가 했더니..
칠성각을 말한다..
범종에 새겨진 시귀는 전강선사의 오도송이란다..
그는 경허 - 만공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제밤 누각에 달빛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밖은 갈대꽃 피는 가을이라..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거니
流水過槁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 오는구나..
그의 부도탑이다
효행박물관에 들렀다..거기서 보물급 들을 만났다..
정조가 직접 쓴 봉불기복게..
문체반정을 일으킬 정도의 도학군주로 성리학의 대가인 그가 비운에 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니..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인간적이다..
"이 사찰은 현륭원(顯隆園 : 융릉)의 재궁(齋宮으로 건립하였습니다.소자(小子 : 정조)는 8만 4천의 보안법문(普眼法門)의 경의(經義)를 베껴 썼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삼가 게어(偈語)를 지음으로써 삼업(三業)의 공양을 드리며 은혜에 보답하는 복전(福田)을 짓습니다. 또한 부모님에게는 길러주신 은혜가 있으니 공경으로써 공양하면 이것이 바로 보은의 길입니다.”
또 정조의 충신 채재공이 쓴 용주사 상량문도 보인다..
중국 월나라(소주)의 비단에 쓴 글이다..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애뚯함이 느껴지는 절이다..
이어 이웃한 부자의 묘소 융건릉으로 향했다..이동은 버스로..
도착하여 입구- 건릉 - 뒷 산책길 - 융릉으로 3KM 정도를 걸었다..
참 좋은 숲길이다..
거기서 행진하는 개미떼들을 만났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흉내라도 내는 것일까??
조선 왕조사에 비참하게 부모를 잃은 어린 왕자들 있다..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은 성종의 페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
같은 처지로 어미니의 죽음을 목격한 장희빈의 아들 경종,
아버지가 뒤주에서 죽는 것을 목격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그중 경종은 시름 시름하다 죽었고..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으며,
정조는 만고의 성군이 되었다..
비슷한 역경을 맞았으면서 누구는 폭군이 되고, 누구는 성군이 되는가?
어떤 이는 그 차이를 사랑으로 돌린다..
연산군은 아무도 사랑을 주지 않았단다..아버지 성종은 엄하기만 했고, 할머니 인수대비도 엄하기만 했다..
정조의 경우는 어려서 사랑을 듬뿍받았다..아버지도 정조만큼은 큼찍히 사랑했고, 어머니도 사랑했고, 할아버지 영조도 사랑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모질지 못한 법이다..
요즈음 길도 인풀레이션이다..
아니 변호사 숫자 늘듯이 늘어난다고 해야 더 적합한 표현아닐까? ㅎ
서호 부근 항미정에 도착..
이쁜 서씨 눈썹 같은 정자..
서시는 찡그려도 이뻤는데..이를 흉내내는 꼴불견들을 빈축이라고 했단다..
정조때 화성 축성시에 만든 축만제의 제방이 이 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방의 소나무들이 귀티가 난다..
허참,,그 논 참 반듯하다 했더니..서울 농대 땅이었네..ㅎ
백로 똥으로 하얗게 죽어가는 서호 백로주를 바리보며 지지대비를 향해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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