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짧아 순위에서 밀리던 길..
온종일 비가 내린다고 예보된 토요일.. 이곳을 찾았다..
계룡시 두마면 면사무소 뒤에 사계고택이 있다..
고택을 둘러싼 뒷산 둘레길이 사계 솔바람길이다..
사계?
비발디의 사계가 아니고..
사계 김장생..조선 중엽 숙종시절 정국을 좌지우지한 우암 송시열의 스승..
그런데 산으로 올라서니 비속에 함초롬이 나있는 솔숲길이 허리낭창한 미녀처럼 늘씬하다..
촉촉한 흙길은 매끈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피부같다..
오르막인데도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올라간다..
그의 학맥을 보면 그가 한국 성리학의 링커..박지성 같은 포지션이다..
학맥에 윤선거는 윤증의 아버지인데, 송시열과는 동창생격이고..
윤증은 아버지의 동창인 송시열의 제자가 된다..
하지만, 엄청 가까울 것 같은 사이가 원수와 같은 사이가 되어 노론, 소론으로 갈린다..
사계 선생이 산 시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는 난세..
그는 그 난세를 예학으로 질서를 잡고 정신을 수습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무너져가는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과 군사적 개혁이 필수 적인 시대적인 요청이었다..
유성룡이 전시에 제시하였던 개혁방안들이 유성룡의 퇴장과 함께 다시 환원되고..
오직 사계가 주장한 예학만이 시대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던 예학의 시대는 그의 바램과는 달리 쓸데없는 예론 당쟁으로 지새며 정권싸움만 치성해지는 시대로 흘러간다..
쉼터바위..
사계 선생이 그의 제자들과 산책하다가 쉬었다는 바위..
사계는 55세(선조 35년) 이곳에 집을 짓고 살다가 벼슬살이 하면서 여기 저기 다니다가 66세되던 광해군 시절 계축옥사에 연루되자 이곳으로 낙향하여 제자를 가르치며 산다..
83세 때 우암 송시열이 찾아와 제자로 가르친다..그러나 84세에 생을 마치니 송시열이 사계의 지도를 받은 것은 반년 남짓..그뒤에는 사계의 아들 신독재 김집의 지도를 받는다..
가르침이란 소중하다..마침 홈통을 따라 담쟁이가 올라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3km 남짓 짧은 길..서운하다면 다시 한바퀴 돌아도 좋은 길이다..
고택을 둘러본다..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영당안 교서.."백대의 스승(百代之師)"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 교서 말미에 강희 56년이라는 연호에 눈이 갔다..
그러니 청 강희제 56년..숙종 43년인 1717년 교서이다..
그당시 조정의 공식문서에는 청의 연호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양반들은 사적으로는 "숭정후 00년"이라는 식의 명의 연호를 쓰면서 자기 만족을 즐기고 있었다.(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나온다)
고택의 장독대는 언제 봐도 정갈하다...
명재고택의 장독대로 그렇고..
사대부 집안의 부인네들은 내공을 닦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란. 호란 때 적에게 잡히기 전에 자결해야 자식의 앞날이 보장되었고, 남편이 죽은 후 순절하면 집안의 영화가 된다고 하니..
여기 멋진 글씨가 있다 ..
만변수작 의리일관((萬變酬酌 義理一貫) “만가지로 변하고 수작을 부려도 의리로 일관하겠다"
의리로 일관하니 요즘 김보성도 뜨지 않더냐? ㅎㅎ
독실천리 진성적구(篤實踐履 眞誠積久)
독실하게 실천하고 참됨과 성실함을 오래도록 쌓으리라..
그의 친필..싸인 장생(長生)..
그의 이름 참 잘지었다..
평균수명 40도 안되던 시대에 84세를 사셨으니 요증으로 치면 120세 쯤 산 것 아닐까?
숙종의 어머니..명성왕후 김씨..현종의 정비..
머리가 총명하였으나 성격이 드세서 남편 현종이 후궁을 한 명도 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숙종이 그의 어머니 성격을 닮았나 보다..
명성왕후는 어머니가 은진 송씨다..
같은 서인인 김장생의 증손녀를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로 삼는다..
인경왕후의 아버지는 김만기로 동생이 서포 김만중이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사계의 손자인데, 병자호란때 20대의 나이로 김상용을 따라 순사하였고, 당시 서포를 포태한 그의 처는 어린 김만기 손을 잡고 강화도를 탈출한다..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속에 두 아들이 성장하여 큰 아들 김만기가 숙종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딸 인경왕후는 숙종 6년 병사하고, 이번엔 여흥 민씨 인현왕후가 숙종비가 되어 파란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혼맥을 잘 보면, 명성왕후의 외가는 은진 송씨이고, 인경왕후는 사계 김장생의 현손녀, 인현왕후는 사계의 제자인 동춘당 송준길의 외손녀..
그러니 당시 정권의 외척은 충청도 양반..광산 김씨, 은진송씨, 여흥 민씨로 구축되어 있었다..
위 편지는 명성왕후가 사돈인 인경왕후의 모친인 서원부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인경왕후 영정 그리는 일을 상의 하는 내용이다..
숙종이 장인 김만기에 보낸 어찰..
서포 김만중 초상화..
인현왕후 사건을 빗대어 쓴 사씨남정기, 구운몽의 저자..
할아버지 사계가 증손자 서포가 쓴 구운몽을 읽었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시대는 강물처럼 흐르는 것..
그만큼 시대는 흐르고 흘러 사대부가 성리학과 예학만을 공부하던 시대에서 불교 설화와 연예담을 담은 평민문학을 쓸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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