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길 걷기에 나섰다..

아침 6시 15분에 출발..경부고속도로 - 한남대교 - 광화문 - 독립문 - 삼송역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한다..

마침 삼송역 부근에 벽화골목이 있어 구경을 하고 간다..

 

 

 

삼송역 인근 숫돌고개에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이 왜군과 싸운 장면을 묘사..

숫돌 고개의 내력에는 이여송이 전투에 패배하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데서 지명이 유래한다고 하는데, 벽화는 승리한 양 묘사하고 있어 고증이 안되었다..

 

 

 

 

 

 

 

 

 

 

 

 

 

 

 

 

 

 

벽화 사진 찍다 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전화를 하고 허겁지겁 쫓아간다..

 

 

동네를 벗어나 오르는 고개길..이 산의 통일로변에 숫돌고개가 있다..

 

 

위 설명과는 달리 이여송은 숫돌고개까지는 진출해보지도 못하였다...

 

 

평양를 탈환한 명나라 이여송 장군은 왜군 추격하여 남하한다.. 그러나 왜군을 얕잡아 보고 성급한 마음에 파주의 포병 등 본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3000여명의 기,보병을 내세워 한양공략에 나섰다가 숫돌고개에 매복하였던 왜군의 조총사격에 전멸하다시피 궤멸당하며 밀리는 상황에서 이여송도 친위부대를 이끌고 망객현까지 진출하였으나 포위 당하여  심복이 전사할 정도로 분전하는 통에 겨우 탈출...

이어 당도한 명군의 포병 등 공격으로 다행히 왜군을 해음령에서 격퇴...

명군의 치명적인 패배는 아니고 판정패 정도이나 이여송의 기세가 꺽이는 바람에 평양으로 철수..

삼송역과 지근 거리에 있던 행주산성의 권율장군만 애매한 입장에 빠졌으나 조선군은 행주대첩의 승리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이여송이 서두르지 않고 용의주도하게 병력을 집중시키고 조명연합군의 연계작전을 이용하였더라면 왜군을 초전에 박살 낼수도 있었을 터인데..

벽제관 전투의 여파로 전선은 소강상태에 빠지고 이후 7년의 세월동안 백성들은 고통 속에 살게되었다..

 

 

숫돌고개는 전략적 거점으로 6,25 때도 삼송리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의주로는 통일로로 성장하였고..우리는 "의주길을 위한 변주곡" 같은 길을 찾아간다..

 

 

 

저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삼각형으로 솟아 삼각산으로 불렸다..

병자호란이후 척화파 청음 김상헌이 청의 출병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이유로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여기 어디 쯤에서 저 산을 보며 시조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가노라 삼각산아,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그는 6년간 억류생활후에 풀어나 귀국하여 다시 북한산을 바라보며 귀국하였다..

 

 

 역관으로 숙종때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 공을 세워 판서급으로 승차한 김지남의 묘소..

백두산 정계비로 토문강을 국경으로 정하여 간도가 우리의 땅이 되었는데..

일제가도협약으로 중국에개 현상했다는 거..

 

 

 

 

 

 

 

 

 

이것이 원래의 의주로다..

 

 

벽제천을 지나고..

 

 

 

 

 

 

 

 

 

 

점심은 돼지불백으로..

누군가를 위해 항상 뜨거운 연탄에 감사하며..

 

 

 

 

 

 

 

여기가 벽제관터다..

빈터만 남았다..

오늘 역사의 바람이 서늘하다..

 

 

 

 

 

 

<오늘 걷기> 삼송역 - 숫돌고개 부근 - 김지남 묘 - 제1대자교 - 벽제관터 약 7.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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