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관터를 지나 고양관청길을 걷는다..
고양 향교..
고양군의 관아가 이 동네 있었다...
조선 시대 고양군은 한양부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왕십리, 용산, 이태원도 고양군 관할이었다면 믿겠나..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중남미 문화원에 동키호테와 카르멘의 이미지가...
최영장군 묘역이 이 근처구나.
그의 생가는 홍성인데..
그러나, 갈 길이 바빠 가보지는 못했다..
무덤에 아직도 풀이 나지 않는지 궁금하다..
최영장군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는데...
검색해보니, 1976년부터는 풀이 나기 시작했단다..
최씨 고집도 600년 정도 가나 보다..
이 고개마루에서 마지막으로 북한산을 바라본다..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가노라 삼각산아"로 시작되는 시조를 읊었던 척화파 청음 김상헌..
그의 후손은 서인의 핵심으로 숙종때는 송시열의 제자였고, 인현왕후 복위 운동의 중추였으며, 정조 때 노론 시파로서 탕평의 일축을 형성하였다.
정조에 의하여 규장각 각신으로 발탁되어 총애를 받은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 되어 후견인이 역할을 맡았으나 결국 안동 김씨 60년 세도 정치의 단초를 열게 된다..
금표를 범하여 칩입한 자는 기훼제서율죄로 의율하여 참형에 처한다..
엄청난 포고비를 세우고..도성 백리밖 백성을 내쫓고 사냥터를 만든 배짱 좋은 남자..연산군..
운평, 흥청의 기쁨조를 뽑아 흥청망청 지냈다는 말씀..
고읍 마을 회관 앞에서 잠시 쉰다..
예전 고양군 관아가 있던 곳이라 고읍이라 한다..
회관 이름이 백만정이다..
그래서 물었봤다.,.
어느분의 말씀이 자신의 숙부 백만씨가 땅을 희사하여 회관을 세우게 되자 그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내가 말하길, 나의 당숙 백만씨도 시골 갑부였는데, 백만이라는 이름이 좋은가 보다 하자, 그 분 말씀이 "부자면 뭘하나 자식도 없었는데.."
뚱딴지가 가을하늘에게 딴지를 건다..
용미리에 도착..이유 없는 무덤이 있나 찾아보라..
달동네 상회에 앉아 아이스께끼 하나씩 물고..사초와 벌초에 대해 물어본다..
사초는 무덤의 떼를 입히는 것
벌초는 무덤의 풀을 깍는 것..
분홍꽃의 이름을 두고 나는 풍접초, 일행은 족두리꽃..하고 옥신 각신..
나중에 검색해보니 같은 꽃이었다..
아스팔트 포장율 90% 순도를 자랑하는 이길,,발바닥에서 불이 날 즈음..멀리 쌍미륵의 미소가 보인다..
"쪼매마 참꼬 온나"
장지산 용암사에 도착..
그렇게 불공드려 태어난 아들이건만, 한산후는 나중에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려 고려 숙종에 의해 원신궁주와 함께 귀양간다..
의주길..
독립문을 지나는 길..
선조 도망가던 길..
이여송 싸우던 길
김상헌 심양으로 끌려가던 길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가던 길..
그 길에는 역사가 있고 삶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오늘 걷기> 벽제관터 - 고양 향교 - 금표비- 고음마을 - 용미리 - 용암사 쌍미륵..약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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