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양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해변 억새길로 이어지고..

 

 

 

 

 

 

바람에 흰머리 날리고 서있는 모습..바로 내 모습이다..

 

 

 

 

 

 

 

금릉리 등대..

 

 

 

 

 

 

 

 

요 앙증맞은 찻집에서 뜨거운 차한잔 시켜 놓고 신 벗고 다리 뻗고 벽에 등을 대고 한숨잤다..

 

 

 

 

 

협재해수욕장에는 여름날의 추억만 낙엽이 되어 바람에 날리고 잇다..  

 

 

 

 

 

해국마저 비양도를 사모하니..어쩌란 말이냐..

 

 

 

 

 

못된 넘..개를 묶어 놓고 입마개까정 해야지..

그냥 협박문만 붙여놔?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수평선을 사모하여
다가갈 수 없는 그 곳에
그리움을 심어 놓앗습니다

 

 

 

 

 

 

 

옹포포구..독개..

예전엔 명월포라 불렸단다..

 

 

 

명월포 ..

1) 고려 원종때 삼별초가 이곳에 상륙하였다..

고려 무신정권 말기 최씨정권이 타도된후 원종이 몽고에 항복하기로 하자, 개경환도를 거부한 삼별초 부대가 반란을 일으킨다..1270년 6월 배중손 등은 새로 왕을 세우고 배 1천척을 동원 진도를 근거지로 대몽항쟁을 이어간다..

1270년 11월 삼별초는 이곳에 상륙..제주를 점령한다..

그러나 1271년 5월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진도는 함락되고, 일부는 김통정의 지휘아래 제주로 도피하여 항쟁을 이어간다..

1273년 2월 여몽연합군 160여척 1만군이 이곳에 상륙, 삼별초를 토벌하였다.

 

2) 고려 공민왕때 최영장군이 원의 잔당 목호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애 상륙하였다..

목호??

사람 이름이 아니다.

삼별초를 진압한 후 몽고(원)는 다루가치를 두고 말,소등을 방목하고 관리하는 바람에 제주는 이중국적지 상황이 된다.

공민왕 무렵 목호(말을 관리하는 몽골 목동)들이 1000여명 이상 거주하면서 제주사람과 혼인하는 등 일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당시 배원 친명정책을 쓰던 공민왕이 명나라 공물용 말 2000마리의 공납을 요구하자, 목호들이 원나라 아닌 명나라에게 줄 수 없다며 단지 300마리만 내주며 나머지 공납을 거부하자, 공민왕은 제주 정벌을 결정한다.

이 때 총사령관이 최영장군..

정예군 2만5천여명에 전함 314척의 함선이 출전했다.

 명월포에서 상륙하여 벌어진 첫전투에서 3000여 기병의 목호군에게 고려군이 패배하였으나, 심기일전 2차전에서 고려군이 대승..

이후 고려군은 서귀포 앞 범선까지 목호 잔당을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그이후 제주는 고려에 확실히 귀속되었다.

한편, 최영의 출정 중에 공민왕이 피살되는 바람에 고려는 이인임의 천하가 되어 몰락의 길로 들어간다. 

 

 

 

 

 

 

 

 

 

한림항에 도착하자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항구에서 비양도를 촬영하는데, 한 분이 뷰포인트와 구도를 설명한다..

자신은 한림항에 살면서 4철 비양도만 촬영한단다..

함께 항구에 자리잡고 앉아 비양도의 일몰을 찍었다..

 

 

 

 

 

 

 

항구 출구 양쪽 빨간 등대의 빨간 불빛과 하양 등대의 초록불빛을 동시에 찍으면 행운이 온다는데..

서너번의 시도 끝에 동시에 찍었다..무슨 행운이 올지 기다려진다..

비양도를 반나절 바라보며 걷고 사진을 찍다보니 직접 가보고 싶어진다...

 

 

비양도 도선 대합실에 갔더니 문이 잠겼다..

내일 비양도 가는 첫배가 9시란다..

 

 

<오늘 걷기> 저지마을 - 소낭숲길 - 무명천 - 새옷교 - 워평포구 - 금릉 등대 - 협재해수욕장 - 옹포포구 - 한림항 약 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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