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정>

 

의주길..마지막..중에교-화석정 -임진각을 걷는다..

일단 파주 율곡문화단지에 들러 율곡모자께 문안을 드린다..

두분께 잘 보여야 둔 만질 수 있다..특히 신사임당께 더 잘보여야 한다..

 

 

 

 

정조는 정말 호학 군주다..율곡의 물건을 보고 감격한 것을 보면..

 

 

 

16세에 어머니가 돌이가시자 금강산에 불문에 들어갔다가 다시 성리학으로 복귀하여 퇴계를 만나 뵙는다..그리고 정진.. 9번 장원한다..

 

 

율곡의 동생..이우..어머니를 닮아 시서에 능했단다..

 

 

딸 매창(부안 기생 매창이 아니다...)은 어머니의 그림 솜씨를 이어받았다..

이 그림은 오만원권 뒷면의 그림과 비슷하나, 매창의 그림이 아니다..

5만원권에 그림으로 파주 사람들은 딸 매창의 위 그림을 넣어 달라고 탄원했는데 받아 들여지지 않았단다..

 

 

 

오만원권 뒷면의 그림은 어몽룡의 월매도..이왕이면 딸 매창의 월매도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성학집요..선조를 성군으로 만들려고..요점 정리하여 올린 것..

퇴계는 선조를 위해 성학10도를 지어 올렸다..

 

얼렁뚤땅 왕위에 오른 선조를 위하여 조선 양대 거봉이 각자 요점 정리 쪽집게 과외를 했으나, 해찰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당쟁만 격화시키고..의병장들 시샘해서 죽이고..공을 세운 이순신, 유성룡을 미워한 용렬한 임금으로 밝혀졌다..

종국에는 씰데없이 처녀 장가나 가서 막둥이를 낳는 바람에 나라에 평지 풍파만 일으켰으니..원..참..

 

 

 

 

해군에 율곡함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병조판서로서 군사개혁과 10만양병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율곡은 해주 고산면 석담에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고산 구곡의 경치를 연시조롤 지었는데..

주자의 무이구곡의 그리워한 것이며, 후대 송시열의 화양구곡 등 후학들의 각종 구곡의 원조 격이다..

 

 

 

 

율곡의 가족묘지 입구는 여견문이다..

묘지 맨 위자리에 율곡의 부인 고산 노씨의 묘소가 있다..

남편 사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쳐들어 오자 묘소 자리에서 자결하였단다..

 

 

 

수백년의 세월이 지층처럼 하늘로 싸인다..

 

 

율곡유적지를 관람한후 중에교에 와서 화석정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역전 앞 참새구이 포장집들이 사라진 이후 참새들은 행복해졌겠지?

한 때 참새 시리즈가 유행했었지..

 

부부참새가 전기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포수가 그 중 한 마리를 맞춰 떨어 뜨렸다.

총알에 맞은 참새가 추락하며 하는 말


"내 몫까지 살아주오."

 

 

 

 

신사임당의 초충도수병 그림이 담장에 가득..

 

 

 

 

 

 

 

 

화석정..

이 정자는 율곡의 선조들이 지었고, 율곡도 이곳에서 제자들과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밤중에 임진나루에 당도한 선조 일행..화석정을 불지르고 그 불빛을 틈타 임진강을 건너갔단다..

율곡이 생전에 이런 일을 예견하고 화석정에 참기름을 많이 발라두엇다던가?

하지만, 그럴것 같지는 않다..그런 예견이 있었다면 그의 부인이 그렇게 자결하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석정 불태우고 임진강 건너던 그때 그사람..

피난에서 돌아와 율곡의 부인에게 정려문을 내리던 그 때 그사람..

그 사람의 면상은 어찌 생겼는지 궁금하다..

그러기 위해서 불소주의 도움을 받았다..

뜨거운 가슴이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역사..

 

 

임진강을 왜란때도 주요 방어선이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의주길이 평화누리길도 일부 겹치기도 한다..

평화누리길은 DMZ를 모티브로 동서 횡단하는 걷기코스다..

 

 

 

임진나루 길에서 한 동행의 유머..

 

김삿갓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이 이르러 나룻배를 탔는대 뱃사공이 여자였것다.

희롱할 마음이 생겨 한마디 했다

" 여보, 마누라"

"내가 왜 당신 마누라요?"

" 내가 자네 배에 올라 탔으니 내 마누라 아니고 무언가?"

 

여자 뱃사공은 분한 마음을 꼭 참고 기다렸다..강을 다 건너 김삿갓이 내리자, 등뒤에다 대고 한마디 했다..

" 내 새끼 잘거라..내 뱃속에서 나갔으니까 내 새끼아니고 무언가?"

 

 

 

그렇다..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

참고 견디며 사랑할 일이다..

 

 

떡두꺼비, 시래기..행복한 솟대들..

 

 

 

 

 

그 때 그 사람 토끼던 모습도 저 사진을 보니 대충 연상이 된다..

 

 

이제 임진나루를 지나 임진각으로 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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