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서울 구경에 나섰다..

친구들 모임에 가는 김에 한술 더 떠보자는 생각..

 

 

대전역의 명물이 된 튀김 소보로를 사들고 기차에 올라 요기 보충하니 금방 서울역이다..

 

 

 

걸을 곳은 경복궁 서쪽의 서촌마을..종로구 통의동, 누하동, 창성동 일대..

일단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한다..세종마을 음식거리로 올라간다..  

세종마을??

세종로에 가까와서? 아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 증거는 뒤에 제시된다..

 

 

 

 

이 골목을 슬슬 걷는 이유는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필운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배화여고 생활관 뒤편이라 해서 갔다..

 

 

조세핀 캠벨..21살에 결혼, 6년만에 남편이 죽고 1남1녀의 자녀가 수년 사이에  사망하자, 신앙심에 의지하여 고통을 극복하고 선교활동에 나선다..

청나라 선교를 거쳐 1897년 10월 서울에 도착..1898. 8. 이곳 백사의 집터에 자리를 잡고 선교를 시작하고, 배화학당을 세웠다..

 

 

 

배화여고(배화여대) 입구나 안에 표지판 없어 헤메다가 입구 경비실에 가서 물어보니..

보행자 계단으로 올라가 계속 왼쪽으로 가면 붉은 글씨가 있다고 한다..역사적 의미는 거의 모르는 듯..

 

 

인왕산의 별칭이 필운산인데..임금을 오른쪽에서 보필한다는 ‘우필운룡(右弼雲龍)’에서 따왔다.

아, 필운대..

이곳 부근이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집터..오성과 한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구장이 오성이 그 사람이다..

실제 오성과 한음은 어릴적 친구가 아니다..그들은 나이들어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오성이라는 말은 이항복이 공신으로 오성군에 책봉이 되어 거기서 유래하는 명칭인데, 이때 오성(鰲城)은 경주의 별칭으로 이항복이 경주 이씨이기 때문에 붙여준 군호인 것이다..

그의 호는 백사(白沙)..흰 모래..

백사라는 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1611년 1월 흰모래가 가득 깔린 계곡의 꿈을 꾸고 호를 백사라 지었단다..

지금 부암동과 세검정 사이의 백사실계곡이 백사의 별장이 있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1611년이면 그의 나이 55세, 광해군 3년이고 정승반열에 있었다..

 

그러니 필운은 이항복이 백사로 개호하기 전의 호가 아닐까 한다..

 

야사에 의하면, 이 집터 옆집이 권율장군의 부친 권철 대감 댁이다..

이 항복의 어린 시절 이 집터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감나무의 가지가 늘어져  담 넘어 권대감의 집으로 뻗어 있었다..

당시는 권율의 아버지 권철이 영의정을 지낼 정도로 거물인지라 그 집 하인들도 위세당당하여  담장 넘은 가지의 감 정도 우습게 생각하고 익기만 하면 모조리 따먹어버렸다..하루는 어린 오성이 이 사실을 알고 꾸짖었으나 하인들은 오히려 감이 자신들의 소유라고 우겼다.

어느날 이항복은 권철이 있는 방의 창호지 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이 주먹이 누구의 주먹입니까?" 하고 물었다.

" 이놈아, 그건 네 주먹이 아니더냐"

"그럼 이 댁 담장 넘어 늘어진 가지의 감은 누구네 것입니까?"

권철 정승이 그간의 사연을 듣고 하인 단속을 시켰고, 어린 이항복의 당돌함과 기개를 눈여겨 보앗다가 훗날(1573년) 손녀사위로 삼으니 권율이 백사의 장인이 되었다..

 

위 야사가 사실이라면 언제 쯤이었을까?

권철은 선조1년 64세로 좌의정이 되었고, 그 무렵 그의 막내 아들 권율은 30세, 옆집 꼬마도령 이항복은 11살 쯤되었으니..딱 그림이 나온다..

 

(2021. 8.18.추가분)

권율장군이 분가하여 살던 집은 종로구 사직동 사직터널 언덕위 딜쿠샤 건물 부근 은행나무 부근이라고 한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0269.html

 

 

**

이항복은 1580년(선조 13) 24살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장인인 권율은 사위보다 늦게 1582년(선조 15) 46세의 나이로 과거(문과)에 급제한다..

그래서 권율의 호는 만취당(晩翠堂)..더디게 자라지만 늦게까지 푸르르다..는 뜻..

 

임진왜란 당시 사위가 병조판서였는데, 장인은 광주목사였다..

권율이 행주산성의 승전 소식을 의주행궁에 전할 때 17살 소년 정충신이 연락병 임무를 받고 병조판서인 이항복을 찾아가게 되엇고, 그후 정충신은 이항복의 심복이 되어 명장으로 거듭나 이괄의 난 평정에 기여한다..

서인 소속 오성 이항복은 국방업무에 정통, 동인(분당후 북인- 소북) 소속 한음 이덕형은 외교 업무에 통달..

그러니 광해군이 이항복, 이덕형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면 정권이 오래 갔을 터인데..

 

그가 인목대비 폐비를 반대하다 귀양가면서 읊은 시조를 보면 그의 충심이 들어난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가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 삼아 띄워다가

임 계신 구중 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필운대 바위 옆에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그는 경주 이씨로 이항복의 후손으로 고종 즉위초 대원권 집권기 좌의정이 되었다가 대원군과 반목하다 좌천되엇다가 고종 10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다시 영의정에 복귀한 사람이다..

 

我祖舊居後裔尋(아조구거후예심)  우리 할아버지 옛날 살던 집에 후손이 찾아왔는데

蒼松石壁白雲深(창송석벽백운심)  푸른 돌 벽에는 흰구름이 깊이 잠겼도다.

遺風不盡百年久 (유풍부진백년구)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오래 전했으니

父老衣冠古亦今(부로의관고역금)   옛 조상들의 의관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癸酉月城 李裕元 題 白沙先生 弼雲臺  계유년 월성 이유원 제하다. 백사 선생 필운대

 

 

위 시 각석  옆엔 동추(同樞) 박효관(朴孝寬) 등 9명의 감동명이 있는데..아마 시 각석보다 앞서 19세기(1873년 또는 1813년) 때 필운대 구거의 수축과 관련 있는 명문으로 추정된다. 이 공사를 감독했다고 새겨져 있다.

 

필운대는 그뒤 19c에는 운애 박효관이 운애산방을 지어 살면서 제자를 가르치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엇다..

그러니 필운대 집터는 이항복, 권율 - 운애산방 - 배화학당..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필운대...

영조 시절에도 누군가 살고 있었나보다..

 

 

 

 

 

식당을 참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통의동 거리에 벚꽃이 가득 피었다..

 

 

 

 

그 거리를 걷다가 남정 박노수 집에 들렀다..지금은 구립 미술관이다..관람료 2000원..

마루바닥 삐걱 거리는 소리가 인상에 남는다..2층 다락방에 앉아 창밖의 개나리를 물끄럼이 바라본다..

 

 

 

자목련은 처연하게 지고 있다..

이제 봄은 시작되는 중인데..

 

 

 

 

80년대 갤러그도 좀 해보고..처음엔 어찌 하는 줄도 기억나지 않더먼..

 

 

 

통인시장에서 중학교 1학년때 만났던 라면땅과 해후했다..

마약 딱볶이, 마약 김밥은 제쳐 두고 진짜 떡갈비와 오뎅으로  간식을 즐겨보고..

 

 

 

 

대오서점은 천으로 가리고 사진도 찍지말라고 써있다..

무슨 사연이 있나?

 

 

길거리를 우왕좌왕하다가 만난 세종대왕 탄생지 표지석..

세종은 태종 이방원이 정안대군시절 3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이 동네에 세종마을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그렇다면 표지석을 눈에 잘띄는 멋진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 해보면 어떨까?

 

 

서촌 한옥마을은 허접하다..지나치다가 대림미술관에 들어갔다..

현대 작가들의 다양한 디자인 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새싹 같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에 집중한다..

저런 아이들이 높은 안목을 배우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를..

 

 

 

추사 김정희 집터가 여기 근방일터인데 찾을 수가 없다..

추사의 조부가 영조의 사위가 되어 살던 곳인데 추사가 물려받았던 집이다..

물론 아산의 추사고택도 왕래하였겟지..ㅎ

 

 

<오늘  걷기> 경복궁역 2번 출구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 배화여고 생활관 - 필운대 - 박노수 구립 미술관 - 통인시장 - 서촌 한옥마을 - 대림미술관 - 경복궁역 2번출구, 약 4km

 

<참고 걷기>

경복궁역 2번 출구 - 우당기념관 - 청휘각 →가재우물터 →인곡정사터 →청풍계(김상용 집터) 및 백세청풍 →겸재 정선 생가터 →청송당터 →백운동(백운동천) - 윤동주문학관 - 인왕산 자락길 - 수성동 계곡 - 윤동주 하숙집 - 경복궁역 2번출구 약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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