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읍을 떠나 대화를 지나 봉평에 도착햇다..<내비 봉평면사무소>

봉평에도 "메밀꽃 필 무렵" 축제가 끝났지만 소금 뿌린듯 하얀 메밀꽃밭은 그대로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나오자 거대한 손이 메밀가락을 집어 올리고 있다..

 

 

 

대화장에 갈 준비를 하는 당나귀와 허생원 일행이 길가에 죽 늘어섰다..

 

 

 

 

 

 

 

메밀꽃이다..하얀 꽃이되..소금을 뿌린듯하다는 표현이 정말 적절한 꽃..

 

 

 

 

 

물레방아..

전통시대의 무료 러브호텔이랄까?

숨을 곳도 있고, 감창소리도 삼키는 물방아 소리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허생원도 이 물레방아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을 평생 잊지 못한다..

 

 

물레방아간 옆을 오르면 효석문학관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1936년 최초로 조광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모밀꽃 필 무렵"이다..

 

 

 

오후에 도착하였기에 문학관 구경은 미루고 일단 효석 문학 100길 걷기에 나섰다..

 

 

 

그런데, 둘레길 안내지기가 산티아고 순례자 모습이라 어째 좀 그렇다..

허생원의 당나귀로 하면 어떨까?

 

 

 

 

 

 

이길이 실제 사람들이 대화장에 갈 때 걸었던 길일까 싶었는데..

안내판에는 실제 효석도 걸었던 길이고 허생원이 대화장에 가던 길이란다..

 

 

 

 

평촌리..

율곡의 부친 이원수가 이곳에 수운판관으로 18년 근무할 때 사임당이 율곡을 회임하였고, 그후 친정인 강릉 오죽헌으로 가서 율곡을 낳았다..

하긴 여기는 대관령이 가까워 사임당은 친정에 자주 다녔을 법하다..

 

 

포장길이 여기서 부터 숲길로 이어지니 운치가 살아난다..

 

 

 

 

맨숭 맨숭한 이 길을 생동감나게 만들어 주는 풍광이 팔석정이다..

봉래 양사언의 유적지..

태산이 높자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작자..그리고 석봉과 쌍벽을 이루는 명필..

그는 평창군수, 강릉부사, 철원군수, 회양군수, 안변군수 등 주로 금강산 주변의 지방관을 자청하고 금강산을 좋아하여 호도 봉래다..

 

 

 

 

 

잠시 물결을 희롱하며 와인 한잔하니  머리를 가득 채운 상념들이 모두 씻기는듯..

 

 

 

이제 쑥부쟁이가 당당히 명함을 내민다..내 나와바리라고..

 

 

 

 

 

 

 

백옥포 마을에 도착하니 메밀꽃이 한창 흐드러진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다가 되돌아간다..

 

 

 

 

 

 

때가 되었다..

잠자리는 이제 대놓고 잠자리만 찾는다..

음..갈 때가 되었다..

그래서 때 맞춰 갈대 꽃이 피는갑다..

 

 

 

 

 

 

오미자가 붉은 계절이 십리 밖에 와있다고 예고한다..

 

 

돌아와 창동리 효석 생가로 간다..

 

 

 

 

생가 입구에 진짜 당나귀를 키우고 잇다..

당나귀와 허생원을 기념품으로 개발하면 스페인 미하스의 당나귀도 이길 수 잇을 것 같다..

당나귀타고 대화장까지 가기는 어떨까? ㅎ

 

 

 

살제 생가는 서쪽 700미터 지점 현재 식당 자리란다..

 

 

 

뒷편에는 효석이 평양에서 살앗던 푸른 집을 재현해놓았다..

 

 

그는 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며 푸른 집에서 살앗다..

1936년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고 1940년까지 그 인생의 절정기였다..

1940년 부인이 죽고 아들고 죽자 그는 실의 빠져 방황하다가 1942년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오늘 걷기> 문학 100리길 1코스 중  물레방아 - 효석 문학관 - 관광안내센타 - 흥정천교 - 팔석정 - 평촌2교 - 백옥포 마을 - 원점회귀 - 효석생가 - 푸른 집..약 12km

 

 

봉평 메밀국수를 먹고 싶다는 사람과 대관령한우를 먹고 싶다는 사람 사이에서

후자에 한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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