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14코스를 간다..

경남 하동군 원부춘 마을에서 평사리 최참판댁을 거쳐 대축마을 까지 걷는다.. 



부춘(富春) ??

이름 느낌 뭔가 땡기는 맛이 잇다..

   원래 마을 사람들은 부치동으로 불렀단다..그 이유는 마을이 형제봉 산허리에 매달리듯 붙어 잇다고 해서 그리 불렸는데, 부춘으로 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춘(富春)이라는 한자어를 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연구해보니..

부춘은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옛 친구였던 엄자릉(嚴子陵, 광光)이 숨어 살던 지명이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명성이 높았고,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젊은 시절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뒤 광무제가 신나라 왕망의 백만대군을 곤양에서 격파한뒤 승승장구하여 황제에 즉위하자 엄자릉은 이름을 바꾸고 은거했다. 광무제가 불러 낙양에 간 적이 었는데, 황제를 옛 시절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지냈다.

광무제가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려고 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했다.


그래서 이런 시도 잇다..

潔身富春志 濟世磻溪心(결신부춘지 제세반계심)

몸 깨끗이 가지기는 부춘에 사는 사람(엄자릉)의 뜻과 같이 하고

 세상을 구제하기는 반계에 사는 사람(강태공)의 마음과 같이 하라.


그러니 부치동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때 글자 속이 기특한 선비가 발음이 비슷하고 의미가 심장한 부춘이라고 표기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부치동의 이름을 만든 형제봉 산자락으로 올라 가는 길에는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은거하는 사람이 사는데 구름이 없을 수 없다..


 

역시 조운(朝雲)사라는 절이 잇다..

아침 안개가 아름다운 절..


이 가득한 흰구름을 그대에게는 부칠 수 없다..

단지 지금 스스로 즐길뿐..


 

 

 

 

 

동행의 특이한 무릎보호대..

올라가는데 도움이 되게 스프링 장치가 되어있다..

오르막에서 힘들어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유용할라나??

 

돌배..기관지에 좋단다..

오봉산 꼭대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형제봉 기슭에도 있다..

멀리 천왕봉에서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능선을 따라 이어져 온 지리의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형제봉(성제봉)~신선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긴다..

 

 

이 형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산길이 울퉁불퉁 제법 올라간다..물론 그럴 수록 길은 운치가 난다..

 

 

 

산고천하립(山高天下立)

수심지상류(水深地上流)

 

산이 높다하나 하늘 아래 서있고

물이 깊다하니 땅 위를 흐른다..

 

그 사이를 우리는 간다...

 

 

 

 

틈틈히 겸손을 가르치는 자연의 노파심에 감사드린다..

 

 

 

문득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 다다랗다..

좌로 가면 형제봉이요 우로 가면 신선봉이라..

 

 

 

문득 야쿠시마급 거목이 길을 호위하고..

 

 

 

푸른 대숲을 지나면 평사리 들판이다..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이 데이트 하는 장소는 만석지기가 산다는 평사리 들판이렷다..

 

 

 

 

 

 

 

하늘을 바라보고(仰觀宇宙) 땅을 살피는(俯察地理) 이유는

철을 알고 때를 보아 

만사에 감을 잡기 위함이라..

 

지리산 둘레길 14코스에서 이분은 확실히

"감 잡았쓰"

 

 

이제 산길 벗어나 최참판댁 고샅으로 오른다..

길목에 '토지'에서 길상이 최참판댁에 처음 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최참판댁 아래 장터에서 일단 점심을 먹는다..

 

 

 

날 추운데..이 바람박이 부착된 코펠이 맘에 든다..

버너와 연료통도 쌈빡하고..

버너위에 삼발이는 2개 구입하란다..후라이펜 올려 놓고 고기 구워먹게..ㅎ

 

 

초겨울의 죽부인은 여름 화로, 가을 부채와 비슷한 신세이고..

 

 

오..붓이 가득하다..

하여 술김에 일필휘지 하여본다..

 

 

수처작주...어디서나 주인이 되라..

동행이 월등한 필체로 거든다..심축(心祝)..진심으로 축하한다고..

 

 

 

 

 

고천명차??

중국의 무이산의 무이암차를 벤치마킹하여 대홍포의 포를 집자하여 만송포라는 차를 만들었단다..

무이암차는 무엇인가?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서 나는 차를 통칭하여 무이암차라고 한다.

무이(중국어, 우이)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빼어난 산으로 성리학의 중시조 주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무이산은 해발 700m가 넘고, 사시사철 따뜻한 기온과 높은 습도를 유지하여 그 자연환경이 차 재배에 적당하다.

연평균 기온 17.5℃, 연평균 강우량 2,000mm이상이다.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일반적으로 습도 80%를 유지한다.

연 평균 일조시간은 1,900시간 정도로 적은 일조량을 가지고 있어서 찻잎이 부드러워 우수한 품질의 차가 생산된다.

무이산의 토양은 붉은색의 사암(沙岩)으로 이런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곳은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여, 암차라고 부른다.

어린 차싹을 따는 녹차와는 달리 무이암차는 다 펼쳐진 찻잎을 딴다. 그래서 무이암차만의 독특한 향기와 맛이 나타난다.

그중 대홍포를 최고로 치고 우롱차도 유명하다..

 

 

 

최참판댁 안채..

처마에 씨알이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그댁 주인 최치수의 씨알이 부실해서 사단이 생기고..결국 외동 딸 서희의 파란의 인생이 시작된다..

 

 

 

안방에 현학을 수놓은 병풍이 놓였다..

 

오! 자네 왔는가? 이 무정한 사람아

청풍(淸風)에 날려 왔나, 현학(玄鶴)을 타고 왔나

자넨 먹이나 갈게, 난 차(茶)나 끓임세

 

 

 

그때 문득 안방마님이 등장하신다..헐..

 

 

 

 

사랑채 주련..

 

                  歸心天盡頭(일국귀심천진두)  한가닥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늘에 닿았는데

                  岳陽無處不淸幽(악양무처불청유)  악양은 맑고 그윽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杜谷林塘春日遠(두곡임당춘일원)  두견새 우는 골짜기 숲속 연못에 봄날은 아직 멀었지만

                  輞川煙雨暮山浮(망천연우모산부)  구비도는 강 안개비 속에 저문 산이 떠있구나

                  雲泉歷歷編供興(운천역역편공흥)  구름과 샘은 뚜렷이 흥취를 돋우나

                  軒冕悠悠惹起愁(헌면유유야기수)  초헌의 사대부도 은근히 수심이 이는구나.

                  經筵每被摧三接(경연매피최삼접)  글 자리에서 자꾸만 재촉 받으니                  

                  睾負亭前月滿舟(고부정전월만주)  정자에 업힌 달빛만 배에 가득하더라.


                  - 유호인, 악양동천 -

 

유호인은 성종대 문신으로 합천군수 시절 사망한 사람이다..

그의 시가 최참판댁 주련으로 쓸 요량으로 지은 것처럼 안성마춤이다..

 

 

최참판 사랑채나 대문간에서 보면 평사리 들판이 훤히 보인다..

어느 집 소작이 게으른지 감시하기 십상이다.. 

 

 

 

 

지나가는 아낙 왈...글자도 없는 책 들여다 보느라 얼매나 힘들까? ㅎ

 

 

 

 

 

 

 

감은 시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숙성되는 것이고

인생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이라..

 

 

 

 

반갑고 기쁘다..

그래서 웃는다..지는 해를 바라보며..

 

 

 

글쎄..

서양에서는 부엉이는 미네르바와 관련이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나른다..

부엉이는 복의 상징이 아닐라 지혜의 상징이다..

일본에선

부엉이 우는 소리가 복(福)의 일본 발음(후꾸)과 비슷하다고 해서 복의 상징으로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저녁이 되니 겨울 태양은 붉은 홍시처럼 산등성이로 내려가며

아쉬움에 소나무에게 같이 가지고 붙잡는다..

 

 

 

 

평사리 들판을 걸으며 멀리 문암과 구재봉을 바라본다..

지난번에 우리가 섬진강을 바라보며 걸어 내려왔던 산이다..

 

 

문암송과 문암정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부부소나무 앞에 파릇한 싹들..

마치 자식들을 돌보는 부모의 모습같기도 하다..

자식들은 멀리 바라보며 뒤에서 돼지 몰듯이..생선 굽듯이 키워야 한다더라..

 

 

 

만석지기의 땅..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인다는 이야기..땅으로는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한다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되고, 2011년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의 수입이다..

만석지기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되는데,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만석지기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돈 이야기하지마라..

요즘 이나라 최씨 여자들(여변호사, 순실이) 때문에 20억, 30억이 껌값처럼 들리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잇는 판에..

씰데없는 돈야그라니 집어치라우...

 

 

 

 

지리산으로 들어가세

가야산으로 들어간 최씨 남자처럼..

세속의 찌꺼기 다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세..

 

 

 

 

 

석양에 새가 날아오른다..

문득 떠오르는 도연명의 시 한수..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빛은 해질녘에 더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들도 서로 무리지어 돌아가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이러한 속에 참된 의미가 있으니

欲辨已忘言(용변이망언)   무언가 밝히려 하다 문득 말을 잊는구나.


 

 

고인과 동감이라..무슨 말을 하고, 무슨 시비를 풀어내랴..

말은 잊고 술이나 한잔 하시게..

 

 

 

지리산둘레길에서 위로를 받고 간다...

고맙네..길이여..

평생 걸어 갈 내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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