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으로 갔다..
언젠가 십리 대숲과 까마귀 나는 풍경을 보고 한번 걸으리라고 했기에..
고속도로 건천휴게소에 도착..
건천..전설의 시대에 무량 대수촌이었다는 설..
참새가 소복히 앉아 조잘 거리는 주제는..순시리..탄해기...
태화강가에 버스가 도착하자..멀리 태화루부터 눈에 들어온다...
전생에 놀던 인연이라도 있었던겐가?
태화(太和)..
한 사람이라도 화평하지 못한 사람이 없어야 정사(政事)에 마땅함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합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태화라는 연호나 누각을 지었으리라..
이 시대에 태화를 이룰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십리대밭교를 건너면 대숲길이 시작이다..
죽림이 주렴처럼 펼쳐진 대밭길에 들어서니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으니..하는 귀절이 떠오른다..
마치 한폭의 묵죽도가 펼쳐진다..
묵죽을 그리는 마음은 세속의 오탁에 물들지 않고 고절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게다..
세한 삼우(歲寒三友)..송,죽,매의 추운 시절에 변치않는 기상을 흠모했다..
그중에 으뜸이 대나무다..
김극기의 태화루 시라..(시는 詩인데, 간판에는 時로 표기해 놨으니 개망신급 오타다..ㅎㅎ)
고요한 숲 속의 절은
흰구름 낀 언덕에 높이 기대어 있고
북으로는 푸른 옥같은 봉우리를 두르고
남으로는 푸른 대밭과 강을 둘렀네
샘물은 구슬처럼 똑똑 떨어지고
숲을 지키듯 석벽이 늘어서고
이끼 낀 길에는 호랑이 오가고
연꽃 핀 못에는 오리 노니누나
난간에 들어오는 햇빛은 적으나
불어오는 바람은 가득하여
산중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누가 다시 다른 것을 물으리오?
***
위 시에 등장하는 절은 태화사다..
태화사는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진신사리를 모셨던 신라시대 사찰이엇다..
고려시대까지 태화사는 태화루 곁에 잇었던 모양이다..
위 김극기는 고려 명종 때 사람이고, 후대인 충혜왕 때 사람 정포의 시에도 태화사 귀절이 나온다..
"태화루(太和樓) 붉은 난간은 관도에 임해 있고, 푸른 물결은 절 문을 격했어라.
시끄러운 수레 소리 동헌으로 돌려보내니, 노래 소리 날마다 끊이지 않네."
죽림 밖에 만회정이 있다..
효종 때 사람 박취문이 지은 정자 이름이다..
만회(晩悔)정..
나이들어 후회하는 정자..??
무엇을 후회하는가?
박취문(인조 때)은 부친 박계숙(선조때)과 40년의 차이를 두고 각기 무관으로 함경도 6진 지역 복무를 위해 떠난 여정과 복무 기록을 엮은 부자의 일기를 남겼다..
그는 각지의 수령를 역임한 후 울산에 은거하며 만회정을 지어 소일하엿다..
그러니 그닥 돌아온 탕자처럼 후회할 일은 없겠으나 겸손의 의미로 작호한 것이 아닐까?
만회정 앞에 관어대 표지가 잇어 갔더니 과연 바위에 관어대 글씨가 있다..
예전에는 맑은 물에 고기 노니는 모습이 보였는지 모르나 지금은 왜가리와 오리만 한가롭다..
하긴, 저 들이 많은 것은 고기가 많다는 뜻이겟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호랑이 오갔다는 길에는 호랑이 같은 사람만 담배 버끔 거리며 돌아다닌다...
검게 보인다고 다 오죽이 아니다..
이 것이 오죽이다..
죽림에는 음이온이 많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다"던 송강 정철이 강원도 방백이 제수되자 쏜 살 같이 관동팔경을 구경다닌 체력의 바탕을 알겠다..
<오늘 걷기> 태화강변 십리대숲교 - 만화정 왕복 길어봐야 5-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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