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전북구간 익산 - 여산 을 걷는다..

가다가 여산휴게소 화장실에 들였더니 난초 시조가 환영한다..

 

 

원래는 전에 도보를 종료한 역기마을 부터 걸어야 하나, 축사 분뇨 냄새 요란하여 그냥 건너뛰고 화석전시관 옆 주차장에 버스를 대었다..

 

 

체조를 하다가 공룡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란다..

아니, 멸종한지 언젠데, 도처에 출몰하고 여기까지 나타나는가?

 

 

 

46억년전에 지구가 탄생했다..

그 때로부터 5억 8000만년전 어느 시기에 생명이 태어났다..

그 생명이 진화하여 2억 4,500만 년~6,500만 년 전 쥬라기 시대에 공룡과 시조새가 나타나 약 1억 6,000만 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그 당시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고..포유류는 쥐 처럼 작은 존재로 근근히 생존하고 있었다..

 

 

 

 

 

 

인간과 공룡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즐거운 사이가 될 수있겠지...

둘리같은 동화도 등장할 수 있고..

 

 

 

지놈들끼리 싸우던 말던 우리는 간다..

공룡은 지들 끼리 싸우다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1억년 이상 번성한 그 종족은 사실 영원히 번성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우연이 다가 왔다..우주의 큰 물체..딥 임팩트..미국 플로리다 해안을 강타하고 움푹 파놓는다..

그리고 거대한 해일, 거대한 구름, 날씨 변화, 화산 폭발, 혹독한 기후변화..

거대 공룡은 그들의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순식간에 멸망했다..

급전직하..항룡유회..

그것은 신의 한수 였을까?

 

공룡이 멸망한 세상, 혹독한 환경 속에서 땅굴 속에 살던 포유류가 지상으로 나와 활동하며 진화한다..

그 중에 영장류가 생긴 것이다..

 

 

 

 

생명의 진화가 신비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메카니즘에 잇다..

창조설이 아니고 진화설에 따른다면 양성의 결합에 의한 생명의 잉태와 탄생이라는 절묘한 한수는 어찌 생겨났을까?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과 여성이 유별해지고, 서로 다른 성을 찾아 다니느라 안달을 한다..

생명을 배출하는 소명을 다하고도, 그 쾌락을 잊지 못해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서로 탐닉하기도 한다..

그 부산물로 파생된 수많은 눈물, 시, 소설, 영화..로맨스, 불륜...막장 드라마..

 

 

 

보석 테마 조각공원을 지나 보석정을 지나면 수변정이라는 고지식한 이름을 가진 정자를 만난다..

왕궁저수지의 정자치고 좀 거시기하다..

 

 

 

 

 

 

 

익산의 삼남길 주변 동네는 폐가가 눈에 많이 띈다..


 

 

 

 

 

 

 

양반은 추워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

하지만 걷기꾼이 깨단을 태우는 곁불을 쬐는 것이야 아무런 하자가 없다..

겻불과 곁불의 차이를 아시나요?

 

 

 

 

 

아스팔트길 지겹다고 찾아간 길에서 알바를 자초하고..

 

 

 

 

가람선생 생가를 2km 남긴 동네 어귀에 앉아 불소주 한잔하는데..

비닐하우스에서 한소리가 들린다..

자리세를 내시오!!

돌아다 보니 동네분들이 하우스 속에서 일하고 있다..

남은 불소주 들고 들어가 한잔 씩 권하니..

안주 삼아 입가심하라고 무우 몇 다발을 건넨다..

시골 인심 좋은 동네다..

 

 

 

 

시몬, 너는 좋으냐? 로 시작되는 시가 떠오르는 길을 만났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람 이병기..시조시인으로 유명한 그는 스스로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 불렀다 한다..

무엇이 삼복이냐?

술복·문복·제자복..이라니 술을 어지간히 좋아한 모양이다..

 

 

생가 주련에 쓰인 글씨를 보자..

 

安分身無辱(안분신무욕)   
知幾心自閑(지기심자한)

 

분수에 맞게 살면  몸에 욕됨이 없을 것이요,
기미를 알고 지내면 마음이 저절로 한가할 것이니

 

雖居人世上 (수거인세상)    
却是出人間 (각시출인간)

 

비록 인간 세상에 살더라도  도리어 인간 세상을 벗어났다 할 것이다..

 

 

주련을 보니 주인장의 마음가짐을 알 법하다..

당호도 수우재(守愚齋)..어리석음을 지키는 집이다..

중국 정섭이 쓴 난득호도(難得糊塗)..바보처럼 살기 어렵다..와 상통하는 말이다..

 

 

출입구에 삼행시를 지어 걸어 놓는 공간이 있다..

 

 

 

나도 한수 지어봤다..

인..인생은 나그네길

도..도로 위를 궁시렁대며 걷다가

행..행선지도 모르는채 스러져가는 존재들이여!

 

 

 

 

 

생가 앞마당에서 뜨거운 라면국물에 불소주로 점심을 하니 기분이 팔팔해진다..

 

 

 

 

 

 

 

단단함에 놀라고 크기에 한번 더 놀란다..

거시기 야그가 아니다..

 

 

여산향교에 다다랗다..

 

 

 

명륜당..

학생을 가르치던 강당..

무엇을 가르치나?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더욱 밝히고, 백성과 친밀하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느니라..

 

 

대성전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 5성, 10철, 송조 6현, 조선 18현의 위패를 모셨다..

조선 18현 중에 4분이 충청도 양반이다..

물론 인조반정이후 정권을 장악한 서인들의 결정이긴 하지만..

 

 

대성전..

맹자는 공자를 집대성(集大成)한 분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말에서 대성전(크게 이룬 분을 모신 전각)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공자는 6예를 가르쳤다..그리고 평민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샘물이 되었다..

천년이 지나자 교육을 잘 받은 자가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교과목 6예는 예(禮 : 예의), 악(樂 : 음악), 사(射 : 활쏘기), 어(御 : 말타기), 서(書 : 글쓰기), 수(數 : 수학)이다..

요약하면 시, 음악, 체육으로 도야시켰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국가를 이끌어 갈 리더(수호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가교육과 체력단련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이런 현자들의 가르침을 잊어버렸다..

운동장도 없는 교실에서 그저 등수 내기 교육, 맨 앞줄에 서있는 대학가기 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본말은 잊고 권력을 등에 업고 대학에 들어가서 큰소리친다..

"부모의 돈도 실력이라고"

 

우리의 초등, 중등 교육이라도 시가교육과 체력단련을 주된 과목으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름과 부끄러움이 무언지 아는 사회가 된다..

 

 

여산 동헌 뒷편 처형장은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다..

백지사터..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창호지)을 붙이고 다시 물을 뿌리고 백지를 붙이는 식으로 결국 질식사시키는 처형...

 

 

 

 

대원군 시절 병인박해..그리고 병인양요..

대원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데 프랑스 세력을 이용해볼려고 선교사들과 접촉하다가 조대비 이하 조정대신의 비난에 직면하자, 태도가 돌변하여 탄압에 나선다..

그 바람에 8000여명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하였다..

그 와중에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톈진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프랑스 함대가 출병하여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동헌의 저나무는  그날의 사연을 알고 있으리..

 

 

 

 

 

여산성당..

 

 

 

 

 

 

 

피에타..슬픔..자비를 베푸소서..

 

 

 

 

 

 

 

 

 

 

여산 가람로의 끝에 충남 경계가 잇다...

그렇게 삼남길 걷기가 끝난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논산 견훤묘을 들렀다..

 

 

아버지와 불화하여 아버지는 일찌감치 적인 왕건편에 붙었다..

늙으막에 자식의 배신으로 분노의 세월을 보내다가 순천을 거쳐 개경으로 탈출하여 적인 왕건에게 항복하고

그의 선봉을 자처하여 후백제 군을 무너뜨린 견훤..

자식의 목숨을 거두고자한 그의 소망을 왕건이 들어주지 않자, 분노 속에 등창이 나서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앗는지 이 계절에 아직 단풍이 붉다..

 

 

 

견훤이 그리 보고 싶어햇던 완산의 7봉이 보인다는 이 곳에 서서 삼남길을 생각한다..

땅끝마을에서 시작하여 과천 남태령까지 구비 구비 걸었다..

직진만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때론 기다리면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사랑도 깊어진다..

빠르지만 피상적으로 흐르기 쉬운 인터넷 시대에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삼남길 걷기..

이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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