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걷기에 나섰다..김해박물관부터 들렀다..

 

 

 

김해의 들판에 곡식 추수하던 도구들..

세련된 검들..

 

 

 

찬란한 금동관..

굵고 가는 귀고리들..

고려때 까지 남자들도 귀고리를 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남자들꺼는 가는 거..여자는 굵은 거..

 

 

 

 

서기 42년 구지봉에 알 6개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구지가를 불렀다..알은 사람으로 변했다..그중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수로왕이다..

그는 금관가야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나머지 5명도 5가야의 왕이 되었다..

 

그러니까..위 설화 중 팩트는 42년경 외부에서 6명이 등장하여 왕으로 군림하였다는 거..

그 무렵 신라에도 석탈해가 바다로 입국..왕의 사위가 되었다가 왕으로 등극..

65년경 김알지가 계림에 등장하는데, 외부에서 온 것이다..

 

왜 그 무렵..외부세력들이 한반도 동남해안에 대거 등장하게 되었을까?

왕이 될 정도로 강력한 세력들...

 

 

 

 

김해의 고대인들은 산티아고 순레를 다녀왔나? ㅎㅎ

 

 

편두..

김해에서 발견된 편두를 돌로 앞 머리를 눌러 평평하게 만들면 코는 오똑해진단다..

김해 가야지역, 신라 초기 시대에 지배층은 편두를 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드러난다..

편두의 습속은 북방민족(흉노 등)의 스타일이다..

그러면, 가야나 신라의 지배층이 흉노족의 후예인가?

 

서기 36년 광무제 유수가 왕망의 신나라를 멸하고 후한을 건국한다..

이후 김해, 신라 지역에 외부 세력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신라 문문왕비에 자신은 흉노 성한왕의 후손이라는 귀절이 나온다..

 

한 설에 의하면,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아들인데 한무제 때 포로가 되었다가 공을 세워 투후라는 제후가 된 인물이고..그가 문무왕비에서 말하는 성한왕이라는 것이다.

그 후손이 다스리는 투후국은 산동지역에 있었는데, 왕망과 인척으로 맺어져 왕망의 신나라 건국에 일조하였다.

광무제 유수에 의하여 신나라가 망하자, 그들은 일족을 거느리고 바다를 통해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 김씨를 칭하는 사람들은 금인(金人).,즉.금으로 조각한 인물을 숭배하는 흉노족의 후예라는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9D%BC%EC%A0%9C

 

 

 

 

모르는 가운데 신령함이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심 공원이 된 구지봉에서는 신령함은 사라졌다..

 

 

 

 

 

차꽃만이 알듯 말듯 미소만 짓고있다..

 

 

 

박물관 뒷산인 구지봉에서 내려가면 수로왕비릉이 있다..

 

 

 

허황옥..그녀는 남방 아유타국 출신이다..

그녀의 고향 아유타국이 어디인가?

어느해 방송에서 쌍어문(쌍동이 물고기) 문양을 가지고 추적하여 인도에 있는 아요디아 왕국(현 우타르프라데시 주)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다조..다(차)의 시조??  그리고 보주태후는 무슨 의미일까??

 

김해 김씨 후손이 쌍어문의 문양을 추적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도 아요디아의 후예들이 미얀마 - 운남의 차마고도를 통해 중국 운남 지역으로 이동.. 일부 세력이 보주(현 사천성 자양시 안악현)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후한 47년 보주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많은 소수민족이 무한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하는 와중에

허황옥 일행은 중국 남부해안에서 배를 타고 김해로 망명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도 중국 안악현 (보주)지역에는 현재도 보주 허씨가 15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허황옥 왕비의 시호가 보주태후이고..다조(茶祖)라고 하는 것은 차마고도의 통한 차 거래와 관련을 두는 것 같고..

허황후 능으로 가는 길에 차나무를 심어 차꽃을 피우는 것 같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qkBb&articleno=2804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는 이유는??

공자가 행(杏)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살구나무라는 뜻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로 보고 주로 은행나무를 심는다..그리고 행단이라 부른다..


 

Bee happy, Be happy

벌이 행복하면 행복해진다는 꿀가게..

 

수로왕릉 가는 길..김해읍성 유적지 부근에 다문화 치안센터가 있다..

여기는 다국적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가보다..

실제로 외국인과 외국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공단이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외국에서 들어온 수로왕과 허왕후가 결혼하여 최초로 다문화 국가를 이룬 전통이 19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동네이다..


 

 

 

수로왕릉에 들어왔다..

그는  당대 외국계 석탈해와 겨룬 적이 있으며, 신라 파사 이사금의 요청으로 주변 소국의 분쟁을 중재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의 가야는 강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구형왕 대에 신라에 병합되었으나..

후손 김유신의 딸 문희와 김춘추가 결혼하고 아들 문무왕이 등극함으로써 신라와 혈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문무왕이 교서를 내려 자신이 수로왕의 15대 외손임을 천명하고 신라의 종묘에 합사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거기다 그의 후손이  412만명이나 된다니.. 수로왕..이땅에 이민 와서 참으로 성공하였다..


 

 

 

날씨가 얼마나 따뜻한지..진달래도 피었다..

동백이야 오죽하겠나?


 

 

수로왕릉 주변에는 거북이가 득시글하다..


 

 

 

패총 유적지 봉황대에 갔다..

예전에 이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증거..

그 패총에서 중국 왕망의 신나라에서 만들어진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었다..

15년간 존재한 신나라의 화폐..

신 나라의 멸망후 바다를 떠돌던 보트피플들..

서기 1세기의 동북아 바다는 필사의 탈출이 이어지는 긴장의 바다였을까?


 

 

 

 

<오늘 걷기> 김해 박물관 - 구지봉 - 수로왕비릉 - 김해향교 - 김해 읍성 - 수로왕릉 - 수릉원 - 봉황대  약 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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