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필 때 경주 남산을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금년엔 잊지 않고 계획을 짰다..

이번엔 통일전 - 금오봉 - 용장사지 - 칠불암을 거치는 코스로 잡았다..

 

 

신경주 역에 ktx도착..고속터미널에서 통일전 가는 버스를 갈아 타려했는데..

오잉..마라톤 대회로 시내 교통 차단 중이다..

다행히 고속터미널에서 통일전으로 택시 타고 가는 길은 통제 제외 구역이다..

택시비 1만원..

 

 

통일전 앞에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이슬비를 맞아 함초롬하다..

바라보노라니 천년의 미소 저절로 떠오른다..

 

 

 

일단 서출지를 방문한다..

편지가 나온 연못..

편지 봉투에 쓰기를 " 개봉하면 두명이 죽고, 개봉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이 편지를 전달 받은 왕은 어찌했을까?

궁금하면??

다음회 마지막에 이곳에 다시 돌아오니 그때 사연을 밝히겠다..

 

 

 

서출지는 신라의 전설지이지만, 연못가의 건물은 조선의 유적이다..

역사란 그렇게 쌓여가는 것이다..

 

 

 

무량사에서 진달래를 만낫다..

분홍을 보면 새색시가 생각난다는 색깔이다..

지난 주 노랑은 병아리가 생각나듯이..

 

 

 

진공묘유(眞空妙有)..

비어있으나 묘하게 자리한다..

이말을 들을 때마다 뇌를 생각한다..

뇌를 해부해보면 빈 물질에 불과하나 사고와 철학, 과학이 생겨나나니..

하지만, 이말을 우리말로 가장 잘 표현 말은 "텅빈 충만"이다..

 

 

 

오늘 코스는 통일전 - 금오봉 - 용장사지 - 설잠교 - 이영재 방향 임도 - 산정호수 - 백운재 - 신선암- 칠불암 - 염불사지 - 서출지 - 통일전으로 이어진다..

제법 긴 종주코스..

 

 

 

서서히 진달래가 보인다..

워낙 드문 드문 보여 벌써졌나 걱정이 되었다..

길은 좋다..

마라톤 대회라 경주 사람은 오지 않았고, 비가 오니 객지 사람도 드므니 참 호젓한 산행이 되었다..

 

 

약 1.5km 정도 오르면 임도가 시작된다..

포석정에서 통일전에 이르는 임도는 약 8.5km

 

 

 

 

 

 

임도에서 200미터만 오르면 금오봉 정상이다..

그 초입에서 만난 묘한 새..

사람도 피하지 않고 의젓하고 위엄이 있다..

 

 

 

 

금오봉..참 소박한 정상이다..

 

 

 

금오..금 거북이..

김시습이 이산의 이름을 따 "금오신화"를 지어 영원한 기억에 한마디를 보탰다..

 

 

 

용장사지로 가는 길은 능선을 탔 줄 알앗는데, 의외로 다시 임도로 나와 한참을 간다..

 

 

 

 

그러다가 진달래를 따라 들어선 산 길을 내려가니..진달래 꽃 너머로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참으로 정갈하고 고아한 풍광이다..

두보가 말하는 전어풍광공류전(傳語風光共流轉)이란 이런 경지인가..

바람과 빛이 역사와 전설을 나누며 천년을 함께 흘러간다는..

 

 

 

 

 

 

바람과 빛이 나누는 대화는 어찌 인간의 수다와 같겠는가?

그저 붉은 꽃, 흰꽃을 보이고 미소 짓는 가운데 전하는 그 무엇 아니겠는가?

 

 

 

 

꽃이 활짝 피었으나 부처님은 면목이 없다..



 

 

석조여래좌상의 부드러운 손길과 옷자락에서 대자대비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진달래에 팔려 마애여래좌상으로 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계곡에 내려와 사진으로 알현한다..


 

 

 

 

 

간간히 날리는 빗방울 속에 진달래를 보고 걸으니 문득 빗 속에 지리산 구룡치를 넘을 때 가득 피었던 진달래가 생각났다..

지금도 지리산에서 비맞으며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겟지..


 

 

 

 

 

 

 

 

 

용장사 계곡에 다다르니 설잠교가 보인다..

설잠..김시습의 법명이다.. 호는 매월당..

5세 신동..세종대왕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인물..

그는 어머니 사망후 18세에 일시 불교에 귀의하였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과거시험 공부를 하던 중 21세에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불교에 귀의하여 중이 된다..

34세 이후 6년동안 경주 남산 용장사에 있을 때 금오신화를 저술했다..

그뒤 환속하였다가 다시 불문에 들어가 59세(1493년)에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입적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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