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긴 추석 연휴..어디를 걸을까? 궁리하다 해남에 필이 꽂혔다..

지난 번 고흥 걷기 여행 휴유증인지 남도의 길이  자꾸 잡아 끈다..

그러나, 너무 기대 했던지, 가는 날이 장날인지, 노처녀 시집가는 날 등창나는 격인지

비가 내린다...

하지만, 나의 날씨복을 믿기로 했다..

 

 

일단 대흥사 부터 들러 일지암으로 가기로 했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니 비가 그치지 않는다..우비와 우산을 챙기고 걷는다..

 

 

차도와 별도로 산책길을 개설했는데,  걷기 좋다..

참 좋은 시도요 변화다..

이 길은 땅끝 천년숲길(대흥사 - 미황사 - 도솔암 - 땅끝)의 거창한 타이틀도 달고 있다..

 

 

빗소리 들으며 숲길을 걷는 기분은 걷기 마니아는 알겠지..

마니아만이 아니다..많은 사람이 빗속에 걷고 잇다..

비란 우리 주변 여건 중 매우 작은 번뇌요 소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동나무 숲길이 좋다..

동백 기름으로 윤이 나는 까만 머리의 가르마 같은 길을 빗속에 걷는다..

 

 

유선관이다..유선여관이다..

20년전 가족여행와서 묵었던 곳..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일지암 가는 길은 미루었지...

언젠가 다시와서 걸으마 하던 다짐..오늘 현실이 되었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르마..수인사하고 길을 재촉한다..

 

 

멀리 일주문이 보인다..

입구로부터 1.5km

 

 

 

 

절안 대웅보전 입구 침계루..글씨도 여전하다..

 

 

침계루의 글씨와 대웅보전의 글씨는 모두 원사 이광사가 썼다..

외국물 먹지 않고 서첩으로 배운 토종의 글씨..나름 일가를 이루었는데, 외국물 먹고 최첨단 패션을 익히고 돌아온 추사의 눈에는 촌스럽게 보였나 보다..

대웅보전 옆 백설당에 추사의 글씨 "무량수각"이 있다..

 

 

 

 

 

귀양가기 전에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의 현판을 떼어내라고 호통치던 추사..

9년의 귀양살이..추운 세한의 시절을 겪고 난후 다시 현판을 달라고 했다던가??

 

내가 20년의 세월동안 그들의 글씨, 서책, 일화을 보고 듣고, 세상경험을 보태보니

글씨건 음악이건 종교건 정통은 없다..

그들의 행동과 취향으로 바라 볼 뿐이다..

그러니 시비 분별이 무슨 소용이랴..

 

 

부도전 옆에 비맞고 앉아 있는 초의선사는 알았을 것이다..

다산에게 배우고 추사를 사귀고 소치를 가르쳤던 초의는 알았을 것이다..

재능과 덕은 꽃과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차꽃을 키우며 수행하면서 번뇌 속 중생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차나 한잔 마시게"

 

 

 

 

 

 

부도전에서 1.5km 거리..

초의 당시에는 사람이 찾아 오는 것을 꺼려 일부러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했다던데..

이제는 이리 넓어져 어서들 오라 하네..

 

마지막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차밭이 마중한다..

추사가 걸명차의 편지를 보내게 했던 차밭이다..

 

"초의 안녕하신가? 초의선사 보고 싶으니 간밤엔 눈꼽이 다 끼었나니 그 청량하고 고고한 모습 한번 보기 원하나니. 그러나 불사에 바쁜 몸 어찌 욕심 내겠는가

원컨대 초의가 만든 차(茶)라도 보내주시면 초의 대하듯 ‘초의차’ 만지고 어르고 혀끝으로 음미하리니

이보시게, ‘초의차’ 떨어져 ‘초의차’ 못 마시니 혓바늘이 돋고 정신이 멍해지느니

그러니 ‘초의차’ 보내지 않으시면 내 당장 말을 몰아 일지암으로 향하여 차밭을 모두 밟아버릴 터.

그러나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의차’에 중독시킨 죗값 응당 그대의 몫이려니.”

 

 

 

일지암에서 수행하면서 제주로 몇번이고 건너가 귀양살이 추사를 위로했던 초의..

세한도의 주인공 못지않은 의리..

 

 

일지암 글씨는 전주 명필 강암선생이 쓰셨네..

 

 

일지암 툇마루에 앉아 비를 피하며 주련을 본다..

 

故射仙子粉肌潔 閻浮檀金芳心結

고사선자분기결 염부단금방심결

 

沆瀣嗽淸碧玉條 朝霞含潤翠禽舌

항해수청벽옥조 조하함윤취금설

 

고사선자의 분바른 뽀얀 살결처럼 깨끗하고

염부단금처럼 아름다운 꽃술 맺혔네.

이슬에 맑게 씻기어 벽옥같이 푸른 가지

아침안개 흠뻑 머금은 푸른 새의 혀라네.

 

초의가 쓴 동다송의 한 귀절을 주련으로 달았다..

 

 

스스로 읊기를..

 

못을 파서 허공 달빛 해맑게 깃들이고,
대통이어 구름 샘을 저멀리서 끌어왔네

 

시야 막는 꽃가지를 잘라내어 없애니
석양의 멋진 산이 또렷이 눈에 드네


제자인 소치가 방문햇을 때 방안 풍경은

시렁에 불경이 가득하고 상자에는 두루말이 법서과 명화가 가득했다..

 

 

 

일지암 옆에는 자우홍련사가 있다..

자주빛 토란과 붉은 연꽃의 집..

 

 

홍련사 누정에 찻잔이 진열되엇네

그대로 주저앉아 한잔 하면 되겠네..ㅎ

 

 

 

 

추사가 구걸하던 차의 밭이 이렇게 작은데..

나오는 차의 양은 오죽하겠는가?

 

 

 

차밭 옆에 숲속 도서관 건물에서 먼산을 바라본다..

이곳에서 차마시고 책을 보며 사는 인생...

그리고 가끔 다산, 추사, 소치와 만나 차와 시..그리고 에술을 토론하는 인생...

멋진 인생 디자이너다..

 

 

 

 

 

내려오는 길에 유선관에 다시 들럿다..

 

 

관산청천..

산을 바라보고 물소리를 듣고..

 

 

월색 다색 불여 우리가족 화안색

달빛 찻빛 좋다 해도 우리 가족 환안 얼굴색만 못하다..

 

 

다시 20년 후에 들러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옛추억을 불러본다..

 

 

 

<오늘 걷기> 대흥사 입구 - 산책로 - 부도전 - 일지암  왕복 약 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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