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암에서 내려온 뒤에 비는 다시 굵어진다..

녹우당으로 향한다..

푸른 비가 내리는 집..녹우당을 방문하기 제격이라고 위로하면서...

 

 

정문앞에 커다란 은행나무..

행단..원래 행단은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을 상징하기에 사대부들은 자신의 집에 은행나무를 즐겨 심는다..

대표적인 것이 맹사성의 집안의 맹씨행단이다..

그런데, 사실은 공자의 행단은 은행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였다고 한다..

 

 

 

문이 닫혀 관람을 못한 녹우당 내부..

고산 윤선도은 효종이 봉림대군시절 사부였다..효종이 등극하자 윤선도를 불러 등용한다..

그가 낙향할 때 효종이 하사한 집을 해체하여 배에 실고 내려와 이곳에 지은 것이 녹우당이란다..

 

 

유적전시관에서 찍은 녹우당 현판..

동국진체의 대가 옥동 이서가 쓴 글씨..

옥동 이서는 남인출신이라 자연히 같은 남인인 고산 윤선도의 손자 윤두서와 가까이 지낸다..

이서는 성호 이익의 형이다..그의 글씨는 동국진체라 불렸는데, 공재 윤두서, 윤순, 대흥사 대웅보전을 쓴 원사 이광사 등이 그의 필체를 추종하였다고 한다..

 

 

집안을 보지 못하는 대신 담장을 끼고 돈다..

 

 

 

10월의 막바지 푸름의 공간에 푸른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도 남다르다..

 

 

 

녹우당 뒷편 비자림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숲속 내리는 비는 녹우당의 이름과 명실상부하다..

 

 

유물전시관에서 만나는 고산 집안의 예술..

전시관에 새겨진 미인도는 누가 그린 것인가?

집안 사람들은 공재 윤두서가 아니라 그의 손자인 청고 윤용이 그린 것으로 추측한단다..

 

 

이 집안의 토대를 구축한 분은 고산의 고조부..어초은 윤효정이다..

그가 해남 정씨 집안에 장가들면서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 바탕위에 자손들이 번창한다..

 

 

고산 윤선도의 영정..

 

 

그의 과거 급제 답안지도 전시되어 잇다..

그는 효종, 현종 시절 서인 송시열, 송준길 등과 대결하는 남인의 정치인으로 활약하다..

그뒤 낙향하여 보길도 등지에서 생활한다..

 

그를 이름 나게한 오우가..

수,석,송,죽,월,

 

 

고산의 가훈..

수신, 근검, 적선...

 

그의 가훈을 보면, 경주 최씨나 구례의 운조루 집안 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몸에 밴 사람임을 알겠다..

그의 가르침이 이어져 오랫동안 명문으로 존재하였던 것 아닐까?

 

 

고산의 증손자..공재 윤두서는 그림에 뛰어났다..

그의 예술성은 그의 자손에게 이어지고, 그들이 소장한 명화는 후일 소치 허련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공재의 피는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에게 이어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