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운 겨울 한복판에서 길을 고르는데, 3가지 주문이 들어왔다..

1) 가까운 곳 2) 새로운 곳 3) 힘들지 않을 것

이 조건에 맞출 곳이 있을까?

우선 단재 신채호 생가 둘레길을 생각했다..너무 평탄해서 겨울엔 추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근처 천비산에 눈이 갔다..

대전둘레산길에 벗어나 잇어서 마치 서자처럼 취급받는 산...



일단 내비에 중암사를 치고 간다..정생동마을을 지나 정생지까지 간다..

정생지가 끝나갈 무렵 넓은 공터가 잇어 주차 및 회차가 편리한 곳이다..

강추위에 정생지는 거울처럼 얼어 붙었다..새 한마리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중암사 표지를 따라 올라가면 거목이 나온다..

마을이나 절이 있었다는 징표...예전에 묘각사라는 절이 있었단다..



평범한 임도 길인데, 신비암 직전에 산길로 700미터 가면 중암사라는 표지가 있긴 하지만, 일단 군자대로행이다..

소로는 내려올 때 이용하기로..ㅎ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길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길입니다


- 박노해, 굽이 돌아가는 길-





중암사 직전의 정자 부근도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동장군..이번엔 신났다..약졸들 맘껏 부리며 승승장구중이다..



멀리 식장산이 보일 즈음 부도탑이 나타난다..





홍파당이라는 글씨가 뚜렷한 부도탑..

정조8년(1784)에 건립된 탑비로 보아 오래된 부도탑들이다..




순서로 보아 수월당 부도탑이다..

수월..문리버와 사형지간 같은 당호라 더 정감이 간다..ㅎㅎ




오래된 절터에 비해 가정집 같은 법당..





산너머 신대리 문암에 사는 박보살..50여년을 이절에 봉사하였단다..

우리 집 보살보다 한수위네..ㅎ





이 묘한 비석 비스무리한 돌의 정체는 정료대(庭燎臺)란다. 

기둥위에 판석을 올려놓은 형태로 옛날 조명시설로 야간 긴급상황시  이곳에 관솔이나 장작을 쌓아 불을 피웠다.





비석에는 부실(副室) 유인(孺人) 영산 신씨 영세원향비라고 씌여 잇다..

추측컨대, 진주 목사의 소실인 영산 신씨가 자손도 없이 죽게되자 1868년 이 절에 재산을 시주하고 영원히 향을 올려달라고 한 것 같다..

1868년이면 고종 5년으로 병인양요 2년 뒤이며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한 해로 전국이 어수선 할 때다..

조선 시대 1냥의 가치가 2만원 -5만원이라는 견해에 의하면, 460만원 - 1150만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내 생각엔 1000만원 정도 가치가 되어야 영세원향비를 세워줄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땅을 시주받고 열심히 수행하여 부도탑이 즐비한 한 절이었으리..



산신각에는 영규대사의 영정이 있다..



법당 옆 푸른 대숲 사이로 영규대사 순의비가 있다..

영규..

그는 서산대산의 제자로서 갑사 청련암에서 수행하다가 거병한 최초의 승장이었고, 조헌의 의병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엿다..

그리고 조헌과 함께 금산으로 진군하여 전라도로 진출하려는 왜군과 격전을 벌여 조헌의 700의병, 영규의 800 승병이 전사하엿다...

그런데, 금산에는 700의총만 있는 것은 부당하는 주장이 있다..



기허당 영규대사 순의비..의를 위하여 죽엇다는 것이다..

순교는 아니지만, 나라와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보살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 여기에 그의 비가 있을까?

그는 금산 연곤평전투에서 복부에 부상을 입고 이곳 까지와서 피묻은 갑옷을 벗어 놓고, 공주 계룡면 월암리까지 가서 숨을 거두었단다..

왜 공주로 돌아가려고 하였을까?

일설에 의하면, 충청감사 윤선각이 조헌의 의병을 견제하는 바람에 소수의 병력으로 금산 전투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엇기에  공주감영으로 감사 윤선각을 찾아가 항의하려다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견해는 이곳을 거쳐 공주 갑사 청련암으로 돌아가 부상악화로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암사에는 영규대사의 갑옷이 보존되어 오다가 1932년 화재로 소실되었단다..



천비산 등산로는 절 입구에 잇다..

천비산(天庇山)..하늘을 덮는 산??

지명 유래에 관하여는 설명된 자료가 없다..

그러나, 둘레길 걷기를 마칠 즈음 스스로 자득한바가 있다..

중암사를 감싸안은 산세가 서북풍을 막아주고 남동향으로 따스하니 마치 온실 안에 들어잇는 형국이라..

그러니 하늘을 덮은 산이라하겠다..




능선에 이르는 오솔길은 낙엽으로 만들어진 양탄자 길이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길이 섬세한 그림같다..

`




능선에서 정상까지 700미터..




정상 옆 벤취에 햇볕이 봄볕이다..

몽골 보드카를 반주로 점심 따스하게 챙겨 먹고 나서니, 쓸데없이 집에서 날씨 추운거 걱정했다는 생각..




나무사이로 언듯 보이는 것이 다랭이 논인가?? 묘원인가??



보문산, 계족산, 식장산을 한꺼번에 보기는 처음이다..



정상에서 안산쪽으로 평탄한 능선이 일순 응달 눈길을 가파르게 내려간다..

얼릉 아이젠을 찬다..

거기서 반가운 이름을 만난다..

한 때 그를 따라 울릉도 일주와 지리산 둘레길을 걸엇는데..

그는 지금 어느 길위에 잇는지.. 

그의 불러그에 가면 2015년 해파랑길 이후에는 행적이 묘연하다..




이어 계단을 내려오면 길은 안정궤도를 가는듯..





그러다가 드디어 정생동 표지판을 만난다..

사거리인데, 반대편은 안내가 없다..참고지도를 보면 반대편 길로 가면 미륵사로 이어지는 것 같다..




정생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희미한다..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중암사가는 임도와 만나게되었는데..



중간 묘지부근에서 길이 자취를 감추고 이 바위 앞에서 헤매다가 네이버 지도의 현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며 길인듯 아닌 듯한 길을 발에 맡기고 내려갈 밖에..



과연, 문중묘지 옆으로 임도와 만난다..

이곳이 지도상으로 서당골이다..




다시 임도를 걸어 중암사로 간다..




중암사 가까이와서 네이버 지도를 확인하니

뒤로 조금 되돌아가면 임도를 굽이돌지 않고 더덜이골을 통해 다이렉트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잇다..

망설이다가, 새로운 경험을 선택햇다..



과연 절묘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낙엽속에 다듬어진 계단의 흔적도 잇고..

무협지에 이런 오솔길을 헤메다가 문득 길이 끊어진 곳이 동굴이 있고, 거기에 비급이 숨겨져있던데..ㅎㅎ



신비한 호기심을 안고 내려가는 길..계곡옆을 지나다보니 길을 막아놓았다..

어찌하나 되돌아가기엔 길이 너무 가파르고., 네이버 지도는 길이 잇다고 주장하고..

얼어붙은 계곡 바위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겨우 겨우 계곡을 건너고 보니 실가닥같은 길이 나타난다.. 



그리곤 또다시 잘 다듬은 계단길이 나타나니

마치 얼르고 달래는 형국의 길이다..



심심산골에 갇힌 거 아닌가 하는 순간 아래에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면서 내려다 보니 신비암의 개와 주인장이 보인다..

안심이 되는 순간..백구가 자꾸 접근하면서 짖는다..이번에는 개에게 물릴까 걱정..ㅎㅎ




내려오니 임도 오르다 만난 갈림길 표지판 옆이다..

생각컨대, 임도를 새로 개설하기 전에 중암사에 오르던 옛길인가 본데, 좀 정비하면 좋은 걷기 코스가 되련만,

지금은 너무 황폐하고 중간에 끊겨 위험하기도 하다..

도에 비유하면, 임도를 굽이 도는 것은 돈오점수요, 오솔길로 바로 오르는 것이 돈오돈수라 할까?





<오늘 걷기> 정생지 - 임도 - 중암사- 천비산 정상 - 안산 쪽 능선 - 정생동 표지판 하산 - 임도 - 중암사 직전 오솔길 더덜이골 하산 - 정생지 약 1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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