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다시 찾아왔다..단재생가..

전에도 추운 겨울에 왔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그가 추운 시절에 춥게 살아왔기에 추우 계절에 와서 보아야 그의 간난고초가 조금이라도 실감될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번과 달라진 것은 생가 곁에 홍보관이 생긴 것이다..




그는 태어나 8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8살이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서 성장했다..



민족사학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 조선상고사는 1931년 6월부터 같은해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인데, 1948년에 이를 엮어 출간되었다.



그는 57세인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그가 태어난 이곳은 할아버지의 외가(즉 진외가)인 안동 권씨 집성촌이었다..





8세 이후 집안 본향인 청주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이사간 뒤 할아버지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한다..

어려서 부터 총기있고, 한시도 잘 지었다...

지금으로 치면, 영어를 조기 교육하여 초등학생이 영시를 짓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요즘 문정부가 유치원 영어교육금지 운운하는 것은 조선시대만도 못한 가소로운 일이다..





人生四十太支離(인생사십태지리) : 인생 사십 년이 너무도 지리하여

貧病相隨暫不移(빈병상수잠불이) : 가난과 병 잠시도 날 떠나지 않는구나

最恨水窮山盡處(최한수궁산진처) : 한스러워라, 물 다하고 산 다한 곳

任情歌曲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 : 내 마음대로 노래부르기도 어렵구나

 

- 백두산도중(白頭山途中) -




"가을 밤에 읊다" (추야술회秋夜述懷)의 시가 행서로 써있다..

                                            
孤燈耿耿伴人愁   고등경경반인수   가물거리는 등불아래 근심만 가득하여
燒盡丹心不自由   소진단심부자유   일편단심 다 태워도 자유롭지 못함은
未得天戈回赫日   미득천과회혁일   하늘이 준 창으로도 밝은 해 되돌리지 못했으니
羞將禿筆畵靑丘   수장독필화청구   몽당붓으로 청구강산의 역사를 끄적임이 부끄럽구나
殊方十載霜侵鬢   수방십재상침빈   이역 땅 방랑십년 귀밑머리 서리내려
病枕三更月入樓   병침삼경월입루   병들어 누운 베갯머리 삼경의 달빛만 비쳐드네
莫說江東鱸膾美   막설강동노회미   말하지 말게나! 강동의 농어회 맛이 좋다고
如今無地繫漁舟   여금무지계어주   지금은 고깃배 맬 땅 한뼘도 없다네 



단재..붉은 마음를 간직한 사람..



생가 옆으로 산 길이어진다..

도리뫼에서 모랭이로 이어지는 길..

숫눈을 밟고 걸어간다..





쇠재 너머로 식장산이 보인다..




솔고개를 넘어 가면 모랭이마을이다..



모랭이 정류장에서 바람을 피하며 뜨거운 차와 요기를 하고  다시 생가로 돌아간다..




모랭이 동쪽으로는 금동고개로 대전둘레산길 1코스와 2코스가 이어지고..

서쪽으로 정생마을 사기점골에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가 있다..




돌아오는 길 솔고개에서 바라보는 쇠재 오르는 길...




저 아래 단재 생가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그의 일생처럼..

궁벽한 곳에서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돌아가는 길에 정생동 사기점골에 들렀다..

조선 후기의 백자가마터..





<오늘 걷기> 대전시 어남동 단재생가 - 쇠재 - 솔고개 - 모랭이  왕복 약 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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