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산 걷기를 마치고 간 곳은 곡운구곡 3곡 신녀협이다..
흰돌 위에 나는 여울 귀절이 멋지다..
정자 이름은 청은대..
글씨는 여초가 썼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에게나 보이는 건 똑같다..
"흰돌 위에 나는 여울 "
300년전에 이곳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김수증이 기획하고 숙종 때 평양 화사 조세걸이 그린 곡운구곡도 중 3곡 신녀협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구곡(九曲)이 왜 이리 많을까?
화양구곡, 선유구곡, 갈론구곡 등등..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처럼 한때 구곡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구곡의 유래는 성리학의 시조 주자가 은거하던 무이산에 구곡(아홉 구비)의 절경을 명명하고 무이구곡가를 지은데서 시작한다..
당연히 성리학을 섬기던 우리나라에서 추종하는데, 율곡이 황해도에서 고산구곡을 명명한다..
그의 학파인 송시열이 괴산에서 화양구곡을 명명한다..
송시열과 동시대를 살고 같은 당파였던 김수증은 화천에 곡운구곡을 명명하고, 한수 더떠 실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그후 추종자들이 전국에 자신만의 구곡을 찾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계룡산 상신리 개울가에도 용산구곡이 있다..
위 곡운구곡도의 곡운은 김수증의 호다..
그가 기획하고 숙종 때 평양화가 조세걸을 시켜 실경 그대로 그리게 했다..
우리가 그 곳에서 카메라로 사진 찍은 것 처럼..
김수증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 김상헌의 손자로 서인의 중추집안..훗날 그 집안이 순조이후 60년 세도정치를 한 장동 김씨라 불린다..
김수증이 시작한 우리 땅 그림그리기는 영조 때 겸재 정선의 인왕산 그림, 정조때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의 시대의 문을 열엇다...
그래서 위 곡운구곡도는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잇다..
그때 우리 땅을 돌아보고 그림 그리기가 1차 걷기 열풍이엇다면,
그뒤 2007년 제주 올레를 기점으로 시작된 것이 2차 걷기 열풍이다..
이번 걷기 열풍에서는 그림대신 인증샷으로 대체되었고,
그때는 직접 바위에 글씨를 썼는데, 지금은 불러그나 카페에 글씨를 쓴다..
조선시대에 우리 산수화는 원래 중국의 산천을 그렸다. 그렇게 사대주의가 심했다
그런데, 왜 숙종 때 김수증은 곡운계곡의 실경을 그리게 했을까?
병자호란 이후 척화파 계열들은 명나라의 재조지은(나라를 구해준 은혜)를 강조하여 명나라를 아버지 나라처럼 섬겼다..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명나라의 정신 문화를 조선이 계승하였다고 생각한 성리학자들이 많았다...
조선이 명나라의 상속자라는 개념이 소중화주의 정신이다
그런 정신이라면 자연히 우리나라 산수 실경을 그릴 수 밖에 없다...
또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명나라 마지막 연호를 사용하여 "숭정후 몇년"이런 식으로 표시했다..
업어치나 메치나 어쨌던 우리 땅을 제대로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계곡에 내려가 저마다의 포즈로 휴식을 즐긴다..
이곳에도 3곡과 4곡 사이에 왕복 4km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나 저 거시기스러운 작품??을 만났다..ㅎ
하늘, 빈공간에 글씨를 쓰고 싶었지요 그림도 그리고 싶었어요
멋진 글로 소원도 빌어보고, 사람하는 이에게 편지도 쓰고 말이예요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생각도하고 낯선 사람들과 둥그렇게 둘러 앉아
웃음꽃도 피우고, 수건돌리기 놀이도 하고 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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