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는 평소 가기 어려운 김포,강화, 파주 지역으로 간다..

첫날..김포 대곶면 덕포진으로 갔다..차를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댔다

무궁화가 반겨준다..




오늘 일정은 덕포진 교육박물관 - 덕포진 유적지 - 대명항으로 걸어간다..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먼저 들린 이유는 신문기사로 이곳 부부의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사고 탓에 시력을 잃은 아내를 위해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오랫동안 수집해 온 자료들을 모아 3층짜리 건물에 마련한 박물관이다.



입구에 노랑냥이는 비킬 줄 모른다..

날 죽이시요..

뭐..내가 티어스 부르라고 할 것도 아닌데..ㅎㅎ





갑자기 50년전으로 돌아간 기분..



도시락 아래 놓으려고 눈치싸움 치열했지..

아예 김치를 미리 넣고 흔들어 비빔밥을 만들어 구웟지..ㅎ



아! 조개탄도 그대로 있구나..

연기 때문에 창문열고 있자니 추워..

"차라리 불끄고 창문 닫자"고 했다가 디지게 지청구 먹었지..



ㅎㅎ 금거놓고 옆자리 못생긴 여자동무 매일 금넘어 온다고 괴롭히고..ㅎㅎ



내가 괴롭히던 여자애들 다 할매 되었을텐데..아니 살아있기는 한지..ㅎㅎ



욕보지덕 호천망극이라...

부모님의 은혜

다 갚으려하면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학도호국단..교련..주황색 마후라..



추억 속의 만화책도 보인다..

원래 나는 박기당, 김종래 세대인데..중학교 입학 시험 공부하면서 끊었고..

이상무의 독고탁은 대학 무렵에 보던 기억이 난다..



주산학원이 한때는 영재교육의 출발점이었다..

어머니들에게 세계문학전집, 백과사전 판매가 세일맨들의 노다지였던 시절도 있었다..




미싱..

미싱이 혼수의 상징이었다..

발로 굴르던 것이 전동으로 진화한다..



인두..ㅎㅎ

어떤 정치인이 상대방의 쓴소리에 "인두로 지질수도 없고"햇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 이제는 유머로 들린다..

숯불 다리미..

어릴 적 할머니가 쓰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젊은 세대는 우리가 원래 잘사는 나라였다고 생각하는데..

60년전에는 저런 물건을 사용하며 살던 아프리카 수준이엇다고 생각하면 된다..

갖은 노력과 고생으로 이처럼 성장한 것을 잊고 과거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한 때의 영광이 빛나던 이곳도..관람객 감소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안타갑다..



근처에 두개의 비석이 있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매국이다..

이것은 병인양요 후에 대원군이 세우게 한 것이다..

무조건 척화..이것이야말로 망국의 길임을 그 때는 몰랐다..

지금도 이런 식 논법이 횡행하고 잇다..


두번째는

해문방수 타국선 신물과..

바다의 관문을 지켜라

타국의 배는 절대 통과시키지 말라..


하지만, 힘이 있어야 지킨다..

우리는 힘이 있엇는가?

의병과 죽창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잇는가??



덕포진 수군 첨절제사 김상운의 기적비를 후손들이 세웠다..

고종 때는 무과시험에 조총 사격도 잇었나보다..

그는 무과시험에 조총 3발을 명중시키며 합격했다..



1893년 5월 이곳에 수군 첨제절사로 발령을 받았다..

고종이 그에게 권총을 하사했다..

요즘은 장군 승진하면 검을 하사한다는데..ㅎ

1893년이면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이었다..

그는 이 곳에 근무한뒤 1895년 일본의 민비 습격사건 때 궁궐을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덕포진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 염하강를 지키는 전초 요새다..

프랑스 함대, 미국함대와 싸운 전적지다..





이런 포가지고 프랑스, 미국과 싸울려고 했다면 당랑거철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도해나가는 선각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초가집 포대를 보니 동키호테가 생각난다..

철지난 중세기사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행각..




1871년 미국함대가 왓다..

덕포진의 포격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미군은 강화도에 상륙..초지진, 덕진진을 제압하고 광성보에서 어재연이끄는 조선군과 격전,,

조선군이 한명도 항복하지 않고 결사항전 끝에 전사하자, 질렷는지 미군은 철수한다..

어차피, 4년뒤..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하느니, 이 때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엇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대원군이 실각하기 전이라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우리의 국운은 참 안풀리던 시절이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하면서 1875년 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한다..

이것이 두고 두고 족쇄가 되었다..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다..

이런 구녕에 대고 어찌 포를 쏘고 적선을 맞춘단 말인가??




덕포진 북쪽 끝에 손돌의 묘가 잇다..

사공의 충정을 몰라주고 성급히 죽인 왕의 후회..

이런 일은 선조가 많이 저질렀다..

다행히 이순신은 죽이지 않길 망정이지..




정말 손돌목 물살에는 자국이 생긴다..



건너편 강화에는 광성보와 덕진진이 보인다..

양쪽에 최신포를 설치해 놓으면 절대 통과하지 못할 지형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처들어 왔다..

강화읍성을 점령하고 한강 입구 문수산성을 유린햇다..

대원군은 양헌수 장군을 파견했다..

양헌수는 550명의 군대를 끌고 덕포진에 도착..이곳 손돌목에서 강화도를 쳐다보다가 문득 정족산성을 생각햇다..

급히 염하강 수로를 건너 정족산성에 입성..

강화도 읍성을 점령해서 느긋하던 프랑스 군이 퇴로를 끊길까 놀라 정족산성을 공격..전사자 수십명을 남기고 후퇴..








신미양요 때 미군에게 빼앗긴 장수기..136년만에 귀향했다..자랑할 일 아니다..

지금도 국방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잇는가?

국군포로 귀환에 무관심한 정부가 어찌 나라를 잘 지켜내겟는가?




이길도 2가지 임무를 띄고 잇다..

1. 덕포진둘레길 6.8KM

2. 평화누리길 16.6KM





말뚝박기에 뛰어들었다..

내가 보를 내서 이겼더니 저넘 표정이 안좋다..





민들레 불어 날린다..

아빠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

조용히 나만 혼자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않아요 민들레처럼..




이 넘이 연주하는 노래는?

길은 끝이 없어라..




염하강 끝에 정박한 철선..

100년전에 서양배를 보고 저런 모습을 느꼈을까?

우물안 개구리처럼 우리가 적들을 영원히 격퇴했다고 생각했을까?

지금도 중국, 일본을 마음대로 격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잇는가??


그때 격퇴한 미국을 그뒤에 계속 러브콜을 했지만, 일본은 미국과 테프트 - 카스라 협약으로 우리의 목줄을 검어 쥐었다..

그리고 이승만의 노력으로 한미동맹을 체결햇는데, 이제 제손으로 한미동맹에서 빠져 나가려한다..

일본 아베는 그 틈새를 노리고, 한국을 제2의 에치슨라인 밖으로 밀어내고, 트러프와 미-일 협약을 맺으려고 한다..

그들은 안다..

우리의 일부 세력이 삼성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그리고 삼성을 쓰러뜨리면 한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다는 것을..

그래서 삼성 반도체의 아킬레스 건인 불화수소 수출금지로 삼성 붕괴를 시도한다..

중국은 사드 설치 금지 조칙을 내리고 제2의 원세개가 되려 한다..

이른바, 제2의 청일전쟁, 제3의 임진왜란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안전한가?"

덕포진에서 묻고싶어요..





대명항에서 눈이 마주치자 인사하는 식당 주인을 보고 들어가

요즘 잘나가는 삼식이 탕을 4만원에 시켜먹는다..

주인장에게 차를 회수하러 콜택시 불러달랬더니, 자기가 한가하면 태워준단다..

이리 고마울때가..



<오늘 걷기> 덕포진 교육박물관 - 덕포진 일주 - 손돌묘 -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대명항 약 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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