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나카헤치 걷기 후 본궁을 관람하고 왔으면 시간 절약이 되었을텐데..
날이 어두워 온천후 그냥 왔기에 다시 본궁 관람하러 길을 또 간다..
시간을 잘 사용했으면 마지막날 고야산 곤고부지 구경도 가능했을터인데..
구마노강 풍경은 언제봐도 시원하다..
그런데 강 백사장에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트레커들이다...
강으로 길은 없을 터인데...상상력과 도전이 가상하다..
본궁 입구에 도착..
입구에 지도가 있어 살펴보니..구마노고도의 시작점, 종착지 대제원 표시가 되어있다...
예습이 없어 무슨 얘기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구 본궁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구 본궁은 현위치가 아니라 몇백미터 아래 강으로 둘러쌓인 지역에 위치했는데,130년전 대홍수로 침수되었다..
그이후 고지대로 다시 지어 이전한 것이다...
그래서 2011년에 닥친 대홍수에는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원래 신사는 높은 곳에 짓는 줄 알았는데, 여기와서 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돼지해를 축복하는 글을 붙여놨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구마노"
고신례(古神禮)는 일년동안 사용한 부적 등 신사에 반납하여 신관이 태우는 행사를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고신례(告神禮)..고시레는 아닌 것 같다..ㅎ
본궁 입구..좌측에 덕담..
신을 아버지로, 부처를 어머니로 섬기면서 구마노처럼 흥하는 출발을 하는 때..
현판에는 기해년 돼지해에 돼지꿈을 꾸라는 말인가??
본전 앞에 남녀노소가 모두 경건히 기도를 한다..
자세히 보니, 일단 돈(?)을 넣고,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기도를 하더니 손벽을 2번 치고 마무리 한다..
본전 중 4관은 일본의 천황계의 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곳이다..
젊은이들도 엄숙함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일본에서는 태양신(천조대신) 아마테라스를 제우스처럼 모신다..
다만, 아마테라스는 여신으로 보는 듯하다..
일본 천황도 이 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본궁의 주재신은 누구인가??
아마테라스가 아니다..
곤겐(権現 권현)이라고 부른다..
그럼 구마노 곤겐은 누구인가?
곤겐은 일본에 불교가 들어와 전통 신도와 습합(콜라보??)하면서 생긴 개념이다..
즉 천태종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의 권(權)은 임시로 라는 뜻으로 즉 부처가 신도의 신의 모습을 빌려 임시로 몸을 드러냈다는 의미다..
이는 헤이안 시대 중엽에 크게 유행하여, 원래 본궁의 신이 누구인든 아미타여래의 화신으로, 신궁의 신(하야타마)은 약사여래의 화신으로, 나치 대사의 신은 천수관음의 화신으로 여겨 섬기고, 이들을 합쳐서 구마노 산쇼 곤겐 (구마노 삼소 권현)으로 숭배하다가 5개소 오지(왕자)와 4개소 묘진(明神,명신)을 합쳐 모시면서 구마노 쥬니쇼 곤겐(12소 권현)으로 호칭한단다..
우편함에 앉아잇는 새는 까마귀다..
까마귀는 일본신화에 초대천황인 진무천황과 관련이 있다..
그가 쿠슈 히무카(日向)의 다카치호궁(高天穗宮)에서 출발하여 세토내해를 거쳐 가와치에 상륙하여 야마토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이코마산의 토족의 저항을 받고 기이반도 남쪽으로 남하하여 구마노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세발 달린 까마귀(야타가라스)가 나타나 요시노강 상류까지 인도했다고 한다.
그덕에 그는 요시노 산을 넘어 야마토로 진군하여 정복하여 초대 천황에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마노고도의 휘장에서 삼족오가 등장한다..
원래 고구려의 경우 주몽이 일월지자요 하백지손이라고 했다..
태양의 아들이라는 것인바, 고구려 벽화에 삼족오가 등장한다..
삼족오는 태양의 흑점에서 나오는 신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일본 신화도 이런 전승을 차용한 것으로 본다..
저 전각 좌측에 쓰인 글씨를 본다..
叶
우리는 화합할 협자로 읽는데, 일본에서는 가나우(かなう)라고 읽고
그 뜻은 "(소원대로) 이루어지다"라고 한다...
건물 벽에 각(刻) 자가 써져있다..
해마다 신년 휘호를 신관이 1자씩 발표하는 모양인데, 기해년에 돼지 해(亥)자를 이용하여 각자를 쓴 모양이다..
하루 하루를 매우 간절하게, 저마다의 시간에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해를 평온하게 보내기를 기원하면서 썼단다..
이 글씨를 보자,
기, 체험하여 느끼자..
갱생, 다시 산다는 것은 현재를 산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부적을 팔고, 년말에는 반환받아 고신례를 하고..
신사의 수입원이 되겠다..ㅎ
나오다 보니 "발호대신"이라는 비석이 잇다..
그 신은 재액을 없애주고 신명을 넣어 주는 신이란다..
저런 신이 제대로 활동했으면 일본이 한때 자살율 1위 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요즘은 분발하여 열심히 활동하시는지, 1위 자리를 한국에 넘겨주었네..
일본의 정신적 엑기스 본궁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동양 삼국을 비교해보면
중국은 자신의 전통신앙사상을 도교로, 일본은 신도로 전승하여 수천년을 이어온다..
우리는 신라시대 이차돈의 순교이후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전통신앙은 산신각의 단군, 칠성각의 삼신할미 정도 뒷방으로 밀려나고, 무녀의 굿소리에 남앗을 뿐이다..
그이후 세계조류를 잘타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습속이 발휘되어
불교 - 성리학 - 공산주의 - 기독교 -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잘 갈아타고, 한 번 갈아타면 교조주의자가 되어 타 사상을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한다..
장점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그때마다 갈아 엎으니 신선도를 유지하기는 좋겠다..
단점은 그러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지고, 정통성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해 자꾸 외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종자 사상을 가지고 제 숙명의 사상인양 원조보다 더 지독하게 배타적인 행태로 나간다..
한편, 일본에서 느끼는 그들의 장점은 자신의 전통사상을 이어가는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래종교, 사상이 들어오면 받아들이지만, 그저 요리의 한 재료처럼 섞일 뿐이다.. 요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의 단하나의 예외는 기술의 도입은 진취적이다..
100년전의 그들의 신의 한수가 우리를 지금껏 핍박한다..
하지만, 앞으로 제4차혁명의 시대에서는 새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장점이 빛을 보게되고, 일본을 능가할 수있지도 모른다..
의심스러우면 읽어보시라
http://blog.daum.net/servan/6351273
신사와 신궁
일본 천황과 관련된 곳은 신궁이라 부르고(일부 예외있음), 그외는 신사라고 한다..
천황의 조상인 천조대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최초의 신궁이 미에현의 이세신궁이다..
에도시대 이전에는 왕과 귀족들은 교토 - 오사카 - 와카야마 - 타나베 - 중변로를 통해 순례를 했고,
에도(현 도쿄)가 수도기능을 담당한 이후에는 에도 사람들이 이세신궁을 참배하고 구마노고도를 순례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엇다..
메이지 시대 대홍수 이전의 구 본궁의 모습..
순례자의 복장..
천황이나 상황의 순례시에는 씨름대회 등 행사도 개최되었다..
넓은 백사장이 130년전의 대홍수를 상상 가능하게 만든다..
구경나온 한 가족의 오붓한 점심장소로는 넉넉하다..
오도리이..일본 최대의 도리이..높이 34미터
평성 12년(2000년)에 이 도리이를 세웟단다..
올때는 몰랐는데..이 대제원이 구 본궁의 터다..
3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빈터에 일편상인 신칙명호비와 부도탑이 눈에 띈다...
일편상인?? 그는 누구인가?
그는 1239년 이예지역 토호 하야칠랑통광의 2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출가할 당시 집안은 영지가 몰수되고 풍비박산난 상태였다..
1271년 그는 산속 암자에서 칭명염불을 3년 동안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후 고야산을 참배하고 구마노 본궁(구 본궁터) 아미타불을 모시는 증성전에서 다시 깨달음을 얻었다.
유행(만행)+부산('나무아무타불결정왕생16만인'이라고 쓴 종이부적을 나누어 주는 행위) + 용약염불(기뻐하며 염불하는 행위)를 통해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원효처럼 '나무아미타불'염불만 정성껏하면 극락왕생한다는 간단한 교리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정성껏 귀명한 일념의 후에는 나도 나가 아니어서, 마음도 아미타불의 마음, 몸의 움직임도 아미타불의 거동, 말도 아미타불의 말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목숨도 아미타불의 목숨"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있는 상테에서 성불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의 사후 시종이라는 종단으로 발전하였는데, 그당시 "몇백명이 춤을 추며 돌면서 염불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마루청이 부서질 정도이고 장날 같앗다고 묘사한다..
그런 그의 종파가 아직도 명맥이 이어져 오나보다.
그의 후인들이 소화46년(1971년)에 비석을 세웟다..
이제는 빈터과 가을 단풍과 어울린다..
이곳에서 몇백미터 가면 이전한 본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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