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앞 솜리에 가게 된 것은 kbs 동네한바퀴 영향이다.

이곳이 이리역 개설당시부터 중심가였기에 명칭도 이리 영정통 문화예술의 거리, 또는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비가 엉뚱한 곳으로 안내해 방황하다가 사람들이 줄을 선 칼국수 집에서 동행이 대기하는 동안 주변을 정탐하여 

겨우 목적지를 발견했다.

일단 칼국수를 혼잡한 인파 속에 먹으면서 코로나가 걱정되었다는..ㅎ

점심 식사후 고구마 빵이 인상깊었던 솜리당 빵집을 찾아 갔더니 이미 고구마빵등 대부분 팔려나가고 자투리만 남았있었다.

 

2층에 올라가 밖을 내다보니 go - 100입구가 보인다.

각종 사진찍게 인테리어 해놓은 곳이란다..

go-100이 뭔가 했더니 사랑 고백을 말하는갑다..ㅎ

일제 시대 삼산병원을 개조한 익산근대역사관..

익산역의 옛이름 이리역이 개통하면서 발전한 동네..

하춘화와 이주일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폭발 사고 후 이리역이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는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하여 익산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금마가 중심지였는데, 철도역 개통 1방에 역사가 바뀌었다.

전성기때는 전주의 도청도 옮길 뻔 했었단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

돌발변수가 발생하여 급변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코로나 같은 이상한 전염병이 일상을 이상하게 변하게 만든다.

고질병이 되지 않고 빨리 사라지기를..

어려운 시절 청년은 더 괴롭다.

밥은 먹었어? 수고했어..

따뜻한 말이 그리운 시절이다.

내가 19에 너를 낳았는데, 언제 요로코롬 컸다냐?

시상에..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만 나는 이렇게 늙고 우리 딸은 허연 꽃이 되버렸네잉..

 

어디를 가도 세파를 지나온 흔적..

그리고 또다시 세파가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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