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암자 시리즈, 진불암에 이어 2번째 중암암에 간다.

큰 바위 틈새에 자리잡은 절 모습을 보고 가려고 벼르는 중 작년 무릎 연골 부상을 당햇다. 

다시는 등산은 못하리라 생각하고 목록에서 지웠는데, 운명의 발걸음이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무릎 건강에서 연골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허벅지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고,

지속적인 허벅지 운동과 피시(또는 치킨) 콜라겐으로 영양을 공급하니 어느 정도 트레킹 할 정도가 되었다.

무슨 장애가 생기든지, 좌절보다는 연구를 하면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찍 대전을 출발해 청주- 상주 - 영천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만에 영천 은해사 주차장에 도착..

일주문을 지난다.

이 절이 일타 선사의 수도처엿구나??

그는 오른 손 네손가락 12마디를 연지공양을 하면서 참선 정진한다.

말년(1999년)에는 하와이 다이아몬드 헤드 금강굴에서 열반했다.

다음 생은 미국에서 환생해서 미국을 불국토로 만들겠다고 발원했단다..

지금쯤 미국에서 스님으로 수도하지 않을까?

blog.daum.net/servan/6350745

 

 

일주문부터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 놓을 정도로 절터가 넓어서 참 좋다.

 

오늘의 계획은 일주문 - 신일지 - 백흥암(차도) - 임도(백흥암 좌측) - 사인암- 극락굴 - 중암암으로 진행한다.

 

은해사 극락보전에 문안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전각 모서리의 삼점이 무슨 의미인가 항상 궁금했다.

원이삼점(圓伊三點)..

공·성·상()의 세 교리가 떠나지도 붙지도 못함을 나타내는 범어자()로 "곧"을 뜻한다.

조계종에서는 일원상안에 불법승 삼보와 계정학 3학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사용한다.

 

신일지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에서 3갈래 길이 전개된다.

백흥암은 좌측 차도나 등산로로 가고, 저수지 옆을 따라가면 운부암 - 신원리 캠핑장- 거조암(팔공산 둘레길 12. 13 구간)으로 이어진다.

다음엔, 거조암으로 이어지지는 팔공산 둘레길을 걸어보겠다는 인연을 만들고 간다.

 

등산로로 백흥암- 중암암으로 가자는 동행의 제의를 뿌리치고 원래 계획대로 좌측 차도를 따라 백흥암으로 간다.

잘한 결정이었다.

나중에 중암암에서 이 등산로로 하산하면서 보니, 하산길임에도 업다운이 심해 힘들엇다.

그러니, 거꾸러 오르막 업다운 등산로로 올라가면 중간에 지칠 것 같다..

 

이 길로 가야 만날 인연..팔공산 다람쥐..ㅎ

양볼에 욕심을 가득 채운 귀염둥이..ㅎ

 

신일지에서 1.5km 올라가면 백흥암이 성처럼 나타난다..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이 보물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나쳤다..

 

백흥암 왼쪽 옆길로 임도가 이어진다.

이 길을 강추한다. 

 

초입은 만고상청 대숲이 반겨주고, 완만한 오름길에 바위와 소나무가 여여부동의 자세로 맞아준다..

 

너무 좋은 것은 순식간에 지난다. 600미터가 짧게 끝나고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이 신일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다..

하산길에는 좌측길로 갈 예정이다..

 

이제 길은 본격적으로 오르막이다.

바위를 깍아 놓은 계단은 원래 이길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벤치..

송가인이 부르는 벤치가 듣고 싶어진다.

가다가 길을 가다가 피곤해지면

내게 와..

 

 

마지막 고바위를 장식하는 것은 큰 바위 밑 계단길이다..

 

큰 바위들을 첩첩히 쌓아 올린 것 같다.

그래서 난 중암을 重巖(쌓아 올린 바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中巖이란다..돌구멍 바위라는 뜻인가??

 

바위에 군수 조재득, 원주 판관 재익, 고산 현감 재한 이름이 새겨졋다.

이들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조현명의 아들들인데, 형 조재득이 영천군수할 때 2동생이 놀러와 함께 이 곳을 유람한 모양이다.

조재득은 영조 35년(1759년) - 1762 사이 영천군수를 지냇다.

 

바위 돌 구멍을 지나고 좁은 틈을 빠져 돌아나가니 너럭 바위 위에 소나무가 뿌리내고 있다..

 

 

만년송..

자연이 보여주는 기적이다..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리 잡았으니 만년은 문제 없다..

 

삼인암..

1)설

앞서 본 조씨 삼형제가  "삼도관찰사가 관인을 소나무에 걸어놓고 평상복 차림으로 무학대사를 찾아 갔다"는 삼인봉의 고사를 빗대어 관직에 오른 삼형제의 방문을 기념하여 삼인암(三印巖)이라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2)설: 기도로 삼형제를 낳았다는 설

3)설 : 불교의 삼법인을 의미한다는 설..

 

1)설이 그럴 듯해 보인다.

 

삼인암 바로 아래가 대웅전 건물이다.

 

이제 극락굴이 나타난다.

굴이 아니라 타이탄족이 공기돌을 고여 놓은 것 같다..

 

 

 

 

이 굴에서 김유신이 화랑시절인 17살 때 이 곳에서 수련을 했다는 설화가 잇고,

원효도 이굴에서 화엄삼매에 들어 정진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동행은 굴 위로 부처님 얼굴이 보인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보이네..ㅎ

 

극락굴을 나와서 삼층석탑을 지나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우측으로 관음전, 좌측으로 대웅전 가는 길이다.

 

거대한 돌구멍 사이로 들어가야 대웅전이 잇다.

그래서 돌구멍절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에 붙은 소원지..

"주식 대박나게 해주세요"

대웅전 주련이 즉문즉설 한다.

"여몽환포영이며 여로역여전이니라"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거품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고 생각하여라.

"무엇을요??"

'인생사가 그렇다는 것이니라.." ㅎㅎ

 

유명한 돌구멍절의 해우소를 찾앗다.

바위틈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그 옛날에도 자랑질이 심했나 보다.

이절은 자랑할게 없어서 변소가 깊다고 자랑했다니..ㅎㅎ

 

인생사 이 돌구멍으로 쳐다보면 별거 아닌데, 우리는 돈과 쾌락에 빠져 지낸다..

 

돌아오는 길..

다시 만난 백흥암 삼거리..

약속대로 좌측 임도로 하산한다..

송가인의 벤치를 들으며..

 

너 올 때까지 기다릴게
비를 맞고 와도 돼
술 취해서 와도 돼
나는야 너의 벤치야

 

오르막 내리막 지칠 즈음에 인종대왕 태실을 만난다.

조선시대 왕의 공식칭호가 대왕이란다. 

그것도 모르고 단종대왕이라고 표기한 것을 타박한 적이 잇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ㅎ

 

이제 신일지 저수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주차장까지 1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오늘 걷기> 은해사 주차장 - 일주문 - 신일지 - 백흥암(차도)- 임도 삼거리 - 삼인암 - 극락굴 - 중앙암 - 임도삼거리(하산) - 인종대왕태실 - 신일지 - 주차장  약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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