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현서원  묘정비>

조선 유학 18현 중에 충청인이 4명이다.

그것도 동시대 사제지간이 4명이다.

사계 김장생, 아들 신독재 김집, 제자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이다..

이중 동춘당과 우암은 같은 집안 사람으로 노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현종, 숙종 년간에 충청도 양반의 위세를 단단히 보여준 인물들이다..

이들과 대척점에 섰던  우암의 제자로 소론의 막후거물  명재 윤증까지 해서 "충청도 양반"이라는 이미지가 확립된다..

이들의 전성시대에 우암이 글을 짓고, 동춘당이 글씨를 쓰는 콤비 플레이가 많아서 이들의 글씨를 양송체라고 부른다..

대전 유성구 원촌동 숭현서원에는 이들을 모시는 서원이 있고, 그 마당 묘정비에 동춘당의 글씨가 남아있다.

비문 내용은 상촌 신흠이 짓고, 우암이 추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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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기의 주류 필체는 송설체이다..

여기에 중기에 석봉체 한호의 글씨가 두각을 나타냈는데, 동춘당은 이 주류 필체를 이었다.

동춘당은 석봉체를 골격으로 삼아 당나라 안진경의 글씨를 녹여내 자신만의 글씨체를 확립한다.

그는 특히 행초서를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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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도 당파가 있다..

동춘당이 행초서를 잘 쓰는데 반해서, 남인 영수 미수 허목은 전서체를 조예가 깊었다.

우암, 동춘당은 서인 특히 노론에게 글씨를 써주고, 미수는 남인에게 글씨를 써준다.

동춘당 고택이나 우암의 남간정사에 가보면 노론파 후인들의 편액이 걸려있고, 남인 거두 서애 유성룡의 고택에 가면 미수 허목의 글씨를 만나게 된다..

 

이 당파성이 뿌리를 내렸는지, 지금도 글씨가지고 싸운다. 

운동권 출신은 박정희, 전두환 글씨 지우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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