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진산사건.. 윤지충..을 배울 때 그 현장을 방문하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출발점을 가려면 내비에 "산그림 펜션" 또는 "자작나무 펜션"을 치면 된다.
두 집 사이에 길이 있으니..ㅎ
길은 옛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올드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 난다.
마치 송가인이 부르는 한많은 대동강이 노래는 옛노래되 창법은 새로운 것처럼..
코로나의 거리두기 시절에 맞게 이 길에서 딱 한 팀만 만났다.
짧은 오르막을 숨차게 오르면 대전과 금산의 경계 능선이다..
마근대미재..
막은 덤이..사방이 산으로 막혔다는 의미가 진솔하게 묻어나는 지명이다.
내려갈 동네 이름이 막현리..말 그대로 막혔니? 다..ㅎㅎ
근데, 문제는 출발점 지도에는 순례길 코스가 마근대미재에서 막현리로 가는 것인데,
여기서는 능선따라 배골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잠시 들마루에 앉아 쉬면서 생각하다가 원래 출발때 부터 염두에 두고 온 막현리로 내려가기로 한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최근에 코스를 능선- 배골 코스로 변경 개설한 것 같다.
그러면 출발 안내판에도 코스를 바꿔 표시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막현리로 내려가는 풍광에서 뉴질랜드 루트번 트레킹의 추억을 떠올려서 좋았다..
언제 코로나가 물러나 다시 외국 명품트레킹 코스을 걸어볼까?
내려가다 돌아보니 정말 "막혔니?" 소리가 절로난다.
메아리의 대답은 "막은데미"하고 들리듯 하다..ㅎ
이 길의 코스를 바꾼 이유는 막현리 삼거리부터는 차길을 따라 성당까지 가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긴 같은 이유로 나도 여기서 되돌아간다..
다시 좋은 날 잡아 새코스를 따라 진산 순레길 다시 걸으러 오리라..
윤지충..
그는 남인 거두 윤선도 집안으로 윤두서의 증손자이다.
정조시대 24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유생이었다.
그는 25살에 사촌인 정약용 형제에게 천주교를 알게되어 3년간 교리공부후에 28살에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아 바오로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 동생, 외종사촌 권상연에게 전도한다.
1790년 그의 나이 31세 때 북경 주교 구베아가 조선카톨릭 제사금지령을 내린다.
그러자 그는 지침에 따라 집안의 신주를 땅에 묻었다.
지금도 제사문제로 집안에 분란이 그치지 않는데, 200년전 유교 그중에 강경한 성리학 시대에서는 온 사회가 경악할 일이었다.
이듬해 그의 나이 32세에 모친이 돌아가시자, 상례는 갖추었으나, 음식을 차리거나 신주를 모시는 의식은 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천주교 신유박해가 시작되엇다.
그는 33살 나이로 전주 풍남문 밖에서 참수되고, 그 머리는 9일동안 효수되었다.
그터에 전동성당이 세워졌고, 그가 살던 진산면 지방리에는 진산성지 성당이 세워진 것이다.
당시 진산군은 5년간 진산현으로 강등되고, 진산군수는 유배를 당하였다.
2014년 윤지충은 조선카톨릭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 반열에 올랐다.
제사금지령..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1742년 칙서 <엑스 쿠어 싱굴라리>(Ex quo Singulari)를 통해 조상 제사에 대한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중국과 조선에서는 준수 여부에 논란이 있다가 1790년 북경주교 구베아가 재차 제사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이 제사금지령은 교황청이 1939년 12월 8일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공포하면서 폐지되고 조상제사를 허용하였다.
물론 교황은 1936년 일본의 신도예식도 허용하였다.
***
카톨릭의 순교자, 박해자에 대한 끝없는 추모를 보면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그에 100분지 1이라도 우리 정부는 배워야 한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고 할 것인지.
눈만 뜨면 우리도 못맞는 백신을 북한에 못줘서 안달하지 말고..
'걷기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동 걷기 - 양산8경 둘레길 (0) | 2021.02.09 |
---|---|
대전 걷기 - 장태산 자연휴양림 (feat. 팔마정) (0) | 2021.02.08 |
대청호 걷기 - 노고산성 둘레길 (0) | 2021.02.01 |
청양 걷기 - 지천구곡 (0) | 2021.01.26 |
청양 걷기 - 장승공원 --> 장곡사 (0) | 202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