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 애간장이 다 탔어.."
언젠가 어머니는 말했다.
그때??
50몇년전..
냇가로 놀러간 형제 중에 동생이 헐레벌떡 와서 하는 말이 형이 백금정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쌀전거리, 남리를 지나 조천 제방에 올라섰다.
서평리 들판 저멀리 백금정 까지는 아직도 오리 넘게 더 가야하는데..
그 사이에 물에 빠진 아들은 살아있을까???
****
1주전 조천연꽃공원을 방문하여 지척거리의 스물두강다리를 보자, 추억 속의 백금정 이야기가 또 떠올랐다.
백금정의 위치는 네이버와 구글 지도에 나오지 않아 가는 길을 몰랐는데, 다음지도를 검색하다 단서를 얻게 되었다.
장마전선이 올라 올라와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는 날..
오전 일찍 조천연꽃공원으로 향햇다.
계획은 조천 - 번암바위 - 비로봉 - 관음암 - 스물두강다리 - 백금정, 이런 순으로 탐방하기로 했다.
조천 우안길로 출발한다.
조천이 미호천과 합류하자, 길도 미호천 자전거 길과 합류한다.
저곳이 번암(磻岩)인가??
번암은 강바위라는 뜻이다.
조천과 미호천 합수 지점부근의 넓고 펀펀한 바위에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곳이라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 지류 반계(磻溪, "반" 또는 "번"으로 읽음)에서 따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고개길을 오르면 저멀리 스물두강다리가 보이고..
조천을 포용한 미호천은 금강과 합류하기 위해 합강리로 향한다..
비로봉 앞 정자..
산세가 마치 백로가 하늘로 나르려는 듯한 형상이라 해서 비로(飛鷺)봉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번암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미꾸지 마을 쪽으로 더 가서 관음암가는 길을 찾았으나 시간상 찾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로 한다..
관음암은 걷기 종료후에 차로 이동하기로 한다.
복숭아는 익어가고
기차는 달려가고
강물은 흘러가고
나는 걸어간다..
미호천 자전거길로 걸어 조천연꽃공원으로 간다.
연꽃공원의 백련은 이제 피기 시작한다..
이 미호천 길을 400리 달리면 금강을 거쳐 하구둑까지 이른다.
스물두강다리..
경부선 철교 교각이 22개라 붙은 이름..
여름철 갈수기도 이 교각 아래는 물이 고였다..
해마다 1-2명이 익사한다는 이곳은 읍내 아이들의 수영장이었다.
51년전인가? 나도 친구따라 이곳에 물놀이하러 왔다.
수영은 맥주병급이라 그냥 친구가 건네준 매트리스형 튜브를 타고 놀앗다.
그러다가 누군가 장난치는 바람에 강물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내 두눈에 파란 하늘과 푸른 강물이 동시에 들어왔다.
두번이나 들락 거리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강가로 나왔다.
한참을 물을 토해내면서 교각을 바라보았다.
그후 나는 물놀이 가지 않았다.
이 사건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1순위가 '강에 물놀이 가지말라"였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교각을 바라보았다
내가 직면한 죽음의 순간에 보인 파란 하늘..
그래서 내가 하늘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백금정으로 가기로 한다.
지도 앱으로 위치 지정해서 검토해보니 여기서 1.5km는 걸어가야 한다.
청주시 강외면 서평리, 동평리 찻길과 들판을 지난다.
가는 길에는 무궁화도 피었고, 능소화도 피었다.
능소화..
요즘 젊은이는 능소화를 보면 휴가시즌이 가까워 졌다고 반가워하지만,
예전 늙은이는 장마가 온다고 걱정하기 시작한다던가??
복숭아 붉게 익어간다..
여기 서평교에서 우측으로 수로길로 접어든다..
어릴 적 기억에 수로를 따라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압이라고 부르던 둠벙을 거쳐서 갔던 것 같은데..
백금정..
서평리, 동평리 들판의 젖줄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이 곳에서는 꽃도 벌도 잠자리도 행복하다.
그때 한 떼의 오리들이 우측 논에서 좌측 백금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두둥실 건너간다.
엄마 오리와 새끼들..
그런데 도대체 몇마리야??
17마리??
갑천변을 수년간 걸어다니면서 관찰해본 결과
어미 오리들은 장마 직전에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며 훈련시키더라.
장마가 오면 먹거리가 풍성해지기 때문에 새끼를 키우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위기가 바로 기회인셈이다..
어미 오리와 새끼를 보다가 문득 형제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는 평생 8명을 낳은 거지??"
"아니, 12을 낳았대"
"그럼 반타작하거야??"
" 경상도 고향에서 자식 6명을 낳앗는데, 5을 잃고 1명만 남아서, 하나라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대. 그런데, 여기서 아들 5명을 2년 터울로 내리낳고 40이 넘어서 또 애가 들어섰대나.."
오리 가족 중에 막둥이를 찾아본다..
한꺼번에 부화했으니 저넘들에겐 그런 개념이 없겠구나..ㅎ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자식을 그렇게 많이 낳았어요?"
"그때는 피임이라는 말도, 방법도 몰랐어"
박통시절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외쳤는데, 이제는 출생률이 세계 최하위다..
그 만큼 우리 젊은이들의 생각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다..
가을날 감이 주렁 주렁 열린 작은 감나무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났다.
나훈아 노래 홍시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졌다.
오늘 오리 가족을 보니 또 어머니 생각이 나고 눈가가 젖는다..
오늘 엄마를 만났다..
추억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한다.
이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인생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할 수도 있고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 살아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뭐라고??
그런데 백금정에 빠진 아들은 어찌되었냐고??
아참!!
오리 가족 보다가 까먹었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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