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저근막염으로 근신한 2주..

발바닥 점검차원에서 대청호 주변 문의 양성산으로 간다.

문의문화재단지에는 오랜만에 간다..

코로나 여파로 주차장은 한가하고, 입장료는 한시적으로 면제란다.

 

청소년수련원 입구에서 좌측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잠시라도 바람을 쐬려는 등산객들이 많이 오른다..

 

오늘 걷기는 1번-6번까지 4km를 걷는다..

 

어느날 부터 제법 걸으면 오른쪽 발바닥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경주 단석산을 종주하듯 10여km를 걷고 숙소에 가서 내리려는 순간 발을 디딜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족저근막염..

그래서 각종 지식을 검색하여 족저근막염 치료방법을 정리했다.

1. 염증이 심하면 일단 병원에 가서 염증치료를 받아야 한다.

2. 내 경우는 다음날 심한 통증이 가라앉을 정도라서, 심한 염증보다는 근막이 부었다가 가라앉는 상황으로 판단햇다.

3. 족욕 - 근막의 탄력성을 회복시켜주는데 효과가 좋은 것 같다.

4. 마사지 - 발바닥 근막

5. 다리 스트레칭

6. 얇고 둥근 막대를 구해 발바닥으로 굴리고, 아래 위로 자근 자근 밟아준다.

7. 신발 깔창을 보강한다.

    - 누가 알즈너 깔창을 추천했지만, 통증이 심한 정도도 아니고 비용 등을 고려해 잠시 미뤄두고 있다.

 

이럴때는 좌측으로 가는데.. 오늘은 우측으로 간다..

물론 정치성향 때문은 아니다..ㅎ

 

여기가 삼거리다..

우리는 독수리바위로 직진한다..

 

중간에 몇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천천히 자유롭게..

젊었을 때는 마음을 달랬는데, 지금은 몸을 달랜다..

능선에 올라서니 멀리 멀리 팔각정자가 보인다.

 

잠시후 독수리바위가 나타났다..

 

절경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곳에 숨어있었다..

대청호의 실루엣이 예술이다.. 

 

능선은 파도치며 사라지고

호수는 펄화장하고 다가선다 

 

드디어 팔각정자다..

출발지서 부터 1.7km..

 

국태정..나라의 평안을 비는 정자..

 

겨우 해발 378미터인데, 무슨 한라산 올라온듯이 숨차다..

 

정자에서 대청호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았다.

여기서는 거리두기가 안될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저아래 출발장소 주차장이 보인다..

 

여기는 작두산 능선이고 양성산을 더 가야 한다..

 

한참을 내려간다..

 

안부에서 대청호 오백리 20구간과 만난다..

20구간은 문의보건소 쪽에서 이 고개로 올라와  청소년수련원 쪽으로 내려간다..

 

고개에 산적 한마리 있으니 주의바람..ㅎㅎ

통행세로 떡고물 뜯어먹고 삼..

동고비 맞지??

 

여기서 조금 오르면 양성산이다..

 

정상은 전망도 없고 돌탑만..

 

양성산성이 있었다.

대청호..그 전에 금강을 지키던 산성인가?? 했더니

신라가 처음 산성을 쌓았고, 후삼국시절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하니..

금강 교두보쯤 되는 곳이다..

 

4km 걷고 발바닥 통증이 거의 없으니 족저근막염이 완치될때까지는 당분간 이정도로 만족했야겠다.. 

 

<오늘 걷기>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 - 청소년 수련원 입구 - 독수리바위 - 팔각정자 - 양성산 정상 - 주차장 4km

논산 연산면 황산성 가는 길이 연산향교에서 시작된다는 정보를 듣고 연산향교에 차를 대고, 향교 좌측 담장을 끼고 끼고 올라갔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향교 분에게 물어보니, 홍살문 아래 혜림선원 옆길로 올라가라 한다..

 

혜림선원을 지나자, 글씨들이 눈길을 잡는다.

간자치인 내가 참새처럼 그냥 지나칠리 없다.

 

늘 비우고 즐겁게 웃고 살자..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時不再來)

 

난초는 은자의 지조를 지녔으며, 대나무는 군자의 덕을 품고 있다..

그냥웃자 전시장??

그때 주인장이 나와 커피한잔 하고 가라신다.

길초입부터 지체하기가 뭣해 주춤거리다가 워낙 은근히 권유하는 바람에 폐를 끼치러 들어갔다.

 

 

도회지 아파트에 살면서 다양한 직종을 섭렵하다가 이제 은퇴하고, 고향땅에 들어와 놀면서 봉사도 하고 지낸단다.

 

1층엔 황토방도 있고, 2층엔 몽고식 게르로 꾸며, 여름에는 천장을 열고 고기를 구워먹는단다.

 

난타 동호인들과 난타를 즐기고, 섹스폰 연주하며, 서예도 즐기는 풍류가다..

물론 틈틈히 연주 봉사도 다닌단다..

 

그리고 어린이집 아이들 체험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버려지는 접시를 가져다가 아이들 글씨 만들기 놀이도 하면서..ㅎ

 

이 공간은 행복이 스스로 연주하는 공간이란다.

누구든 그 연주를 감상하면 된다..

 

커피를 서로 나누는 동안 그가 최근에 쓴 글씨를 보여준다.

"총명한 사람은 명이 짧고, 미련한 사람은 오래산다"

머리 많이 쓰고 바쁘게 살면 스트레스가 많을테지..ㅎㅎ

 

그에게 함자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정원에 명함이 있다..

청석 한대장...

 

언젠가 날좋은 날 돼지고기 두어근에 잎새주 한병들고 찾아가 난타나 두드리다 오면 좋겠다..

 

전시장에서 커피 잘 마시고 황산성으로 오른다...

돌아보면 황산벌이 보인다..

황산벌 초입에 자리잡은 이 동네 이름이 관동리다..

원래는 관창리였단다..

관창??

황산벌에서 죽은 관창??

 

 

임도길을 올라서면 관동리 - 표정리 구간 임도와 만난다.

길 건너 올라가면 황산성이다..

 

황산성- 깃대봉 - 함지봉 - 향적산(국사봉)으로 이어지는 9km 등산로가 있다..

청석 한대장이 나에게 말하길,

자신은 은퇴후 2년간 전국의 산 정상을 노리다가 양무릎이 나가서 요즘은 만보걷기로 만족하고 산단다.

그래서 나에게 권유하기를,  당시 연배에는 무리하게 정상을 노리지 말고 둘레길을 다니는게 좋겠단다..

그의 말씀을 계룡산신이 대신하는 것으로 알아듣기로 했다..ㅎ

 

황산성에 오르니 황산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번에 천호산 -함박산- 깃대봉 능선에서 황산벌을 조망하였다..

그러고 보니, 백제- 신라 전선은 계룡산줄기와 대둔산줄기(천호산방향)가 장성처럼 늘어서서 

직진 출입구는 금강을 통한 공주방향과 황산벌 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신라군을 막기위해서는 1차는 대전- 옥천 사이 탄현(현 식장산 마달령)에서 막고, 뚤리면 황산성과 천호산 사이 통로(황산벌 입구, 현 1번국도)에 진을 치고 막을 수 밖에 없다.

이곳이 뚤리면 평야지대로 부여까지는 무풍지대니까..

황산벌 입구를 조망하는 이 성에 백제군의 본진이 잇었다고 한다.

성아래 백제 5천결사대에 몇일간 진군이 막힌 신라군의 화랑 관창이 나선다..

김유신 이래 젊은 화랑의 돌격은 신라군의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죽는다.

그래서 성아래 지역 이름이 원래는 관창리였는데, 지금은 관동리도 바뀌엇다.

지금이라도 다시 관창리로 지명을 환원하기를 권한다..

(참고, 옥천 서화천 성왕이 전사한 부근 길 이름이 성왕로이고,  경북 경산시 원효 탄생지 부근에는 원효로가 있다..)

 

지금도 이 통로는 호남으로 가는 1번 국도과 호남선 철도가 다니는 요지이다..

과거의 요지가 현재도 요지다..

그러니,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도 이곳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엇다.

이곳에서 승리한 고려 왕건은 건너편 산을 하늘이 도왔다는 의미로 천호산(天護山)이라 명명하고, 그 아래 개태사(開泰寺)를 창건하여 태평성대의 개막을 알렸다.

아들 신검의 배신에 분노하여 왕건에게 귀부한 견훤..

왕건이 자신의 청을 거절하고 신검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자, 홧병이 나서 개태사에서 죽었다던가??

태조의 후원을 받은 개태사는 한때 1000명의 승려가 수행하는 큰 절이 되엇다. 

그 증거로 1000명의 밥을 짓었다는 쇠솥(철확)이 지금도 남아잇다.

 

 

황산성 정상에서 보니 황산벌 우측으로 탑정호 일대와 계백장군묘 지역이 보인다..

관창의 분전으로 분기탱천한 신라군의 맹공으로 황산벌 입구가 뚫리자, 그때부터 파죽지세라..

백제군도 어쩔 수 없이 밀리기 시작하고, 계백장군도 전사한다..

그가 전사한 부근에 계백장군묘가 생기고, 현재는 백제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등산로는 계룡산으로 이어지는데, 깃대봉- 함지봉이 눈앞이다.

 

깃대봉까지 올랐으나, 조망은 별로다..

금년 최강추위라는 날, 무리하지 않고 돌아선다..

돌아오면서 보니, 황산성이 성답게 우뚝하다..

 

이 성 위치는 나제 전쟁시 부여방어에 필수적인 곳이다. 

 

성에서 내려와서 표정리 방향 임도로 걸어간다..

자료에 의하면, 이 임도는 상월면 대명2리 금강대학 입구까지 20km 정도 이어진다고 한다..

 

 

길가에 부여왕족 부여 서씨 묘소가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부여 서씨의 시조는 의자왕 아들 부여융이라고 한다.

부여융은 백제 최후의 날 계룡산 신원사 고왕암에 숨엇다가 당군에게 잡혔다는 전설이 잇다.

그는 당나라에 끌려갓다가 당나라 황제에게 서씨 성을 받고,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당나라의 백제통치에 협력하였다고 한다. 

 

안내지도도 없이 황산성둘레길이라 해놓으니, 좀 뜬금없어 보인다..

 

 

한참 임도를 걷다가 꽃피는 봄날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주차장소인 연산향교로 돌아오면서 다시 황산벌을 바라본다.

땅은 말이 없지만 역사를 증거한다..

 

 

 

<오늘 걷기> 연산향교 주차장 - 혜림정사 - 그냥웃자전시장 - 임도삼거리 - 황산성 - 깃대봉 - 임도 삼거리 - 표정리 - 원점회귀 약 7km

이번 경주걷기의 메인이 단석산인데, 단석산 설화의 주인공은 김유신이다..

우연히,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가는 둘레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 걷기의 테마는 김유신이 되겠다.

김유신에게 명활산성은 김춘추와 함께 정권을 잡게된 터닝포인트가 되는 곳이니까..

***

일단 진평왕릉으로 간다..

숙소 경지당에서 가깝다. 경지당에서 읽은 신라왕릉 책에 의하면, 조선 18C경에 경주김씨 종중에서 조상묘 찾기 할때 진평왕릉으로 비정했단다.

그 이유는 진평왕을 한지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이 들판이 한지로 불리기 때문이란다..

한지란 북천의 범람이 잦아  홍수발생시 물을 가두는 유수지 역할을 하는 들판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근대의 조사에 의하면, 왕릉의 구조가 통일신라 시대 양식으로 드러나 신문왕이나 효소왕릉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진평왕릉은 북천의 홍수 때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왕릉에서 보면 딸인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보인다..

선덕여왕은 죽을 때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다.

도리천이 어디냐고 했더니 낭산 남쪽이라고 했다.

낭산일대는 신유림(神遊林)이라 해서 천경림 등과 함께 신라초부터 소도처럼 신성시하던 숲이 있는 곳이었다.

낭산에 여왕릉을 설치하고도 신하들은 그곳이 도리천이라는 의미를 몰랏다.

그런데, 문무왕 때 대당전쟁을 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한 사천왕사를  낭산 여왕릉 아래 신유림에 짓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교적 천문관을 깨닫고 여왕의 예지에 탄복했다고 한다.

 

용비늘 갑옷으로 무장한 소나무가 왕릉을 호위하고 잇다.

진평왕의 딸 중에 선화공주 설화..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이고, 익산 쌍릉과 미륵사지 설화의 주인공 여부로 논란이 많다.

그러나, 진평왕- 선덕여왕 시절 신라는 성왕의 복수를 다짐하던 백제와 피어린 전투를 벌인 것을 보면, 그 진실여부가 아리송하다.

 

각설하고,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으로 가는 길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헤메다가 큰길로 나가 북쪽으로 가다가 발견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길을 따라 수로를 쫓아 가는 코스가 둘레길이다..

 

이렇게 한참 떨어진 큰길가에 겨우 표지판 한개가 보인다..

 

 

길가가 모두 벚꽃이다..

벚꽃 만개한 날 다시와서 걸어야 겠다..

 

수로를 따라가는 길은 공사구간에서 일부 우회하는데..

거기서 명활산 등산로 표지를 만났다.

 

등산로 몇백미터 숨차게 오르니 명활산성 탐방로와 만났다.

북문과 남문의 중간지점..

 

일단 남문지로 가서 성안길로 북문으로 갈까 생각하고, 남문지로 간다.

 

하지만, 시간이나 정확한 정보가 없어 회군하여 북문지로 향한다..

 

북문지로 가는 길에 성안 연못을 만난다..

성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도중 고지에서 보문호와 북천을 조망한다.

명활산성은 신라 왕경을 방어하는 4대산성 중 하나로 동쪽, 울산 등지에 칩입하는 적을 방어한다.

 북천 양안으로 명활산과 소금강산이 자리한 협곡같은 지역이라 군사적 요지이다.

실제 신라초기 왜구들의 침략을 막앗던 역사도 있다.

북천은 경주 동쪽 함월산 등 고지대에서 발원하여 왕경이 있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형산강에 합류한다.

그런데, 경주가 태풍경로상에 위치하기도 하여 북천 홍수 피해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북천(알천)의 범람으로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명주군왕으로 밀린 김주원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또한 북천 홍수로 북천변에 위치한 헌덕왕릉 등이 유실되기도 했단다.  

 

북천 상류에 덕동댐과 보문호가 건설되면서 이제는 수량이 부족한 하천이 되었다..

하천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ㅎ

 

명활산성 북문지..

이쪽은 남문지와 연결되는 길 같은데, 지금 개통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선덕여왕 말기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다.

상대등이면 귀족 화백회의 의장격이다. 

선덕여왕이 병이 나자(50대 중반 추정)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친왕파 김춘추, 김유신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을 생각이었다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집결했다.

왕성인 월성에는 여왕파인 김춘추, 김유신등이 포진했다.

보문들을 두고 쌍방이 대치하던 밤..

유성이 월성으로 떨어졌다. 이를 보고, 반군의 사기가 충천했다.

김유신은 밤중에 연에 불을 달아 하늘로 날려 올렸다.

"별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반전되어 김유신은 비담의 반란을 진압했다

여왕은 그 소동 속에 승하하고 최규하같은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

김유신..그는 심리전, 선전술의 귀재이고, 합리주의자, 과학자였다..

"길흉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사람이 부르는대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봉황이 날았들었어도 은나라 주왕은 망했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어도 쇠퇴하였으며,

당 고종은 꿩새가 울었어도 흥하였고, 정공은 용과 싸우고도 흥성했다고 합니다" 

 

 

단석산에 수련하여 화랑으로 입신한 김유신은 대 백제전투에서 승승장구..

신진무장세력으로 전통 귀족들의 대표인 상대등 세력과 이곳 명활산성 대결에서 승리하여 진골 무열왕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삼국통일의 길로 매진한다.

우리 역사에 신하로서 왕으로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다.

 

북문지에서는 진평왕릉 가는 길을 크게 써놓으니 좋다..

 

길가의 저 부처님은 왕년에 벚꽃 방창할 때 알현한 적이 있다.

모로코의 페스를 연상시키는 석물들..

 

진평왕릉가는 길에 벚나무가 즐비하다.

벚꽃 피는 날 오시라고 기약한다..

 

우측으로 북천 건너 소금강산 능선이 보인다.

다음에 저기를 걷자고 드림빌더가 속삭인다..

 

이길의 정식이름은 선덕여왕길이다..

진평왕릉를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이어지는가보다..

 

다시 등산로 입구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람불고 날이 추운데, 그동안 엄청 따뜻한 날씨였나 보다.

철모르는 개나리가 바람에 떨고 있다..

 

그때 단석산 상공으로 오색찬란한 상운이 나타났다.

삼국통일을 기원한 단석(斷石)의 에너지가 남북통일로 이어지는 조짐이 아닐까?

 

<오늘 걷기> 

단석산 정상에서 장군바위로 가는 방법은 일단 천주암 표지를 보고 가다가 갈림길에서 방내지 표지를 따라간다..

 

이 능선 길은 진달래 군락지를 지난다..

진달래 필 때는 장관이겠다.

 

나무에 새겨진 맹세..

사랑의 맹세가 상처처럼 아물었다..

 

오늘은 낙엽부자다..

발에 채이는 낙엽소리가 이과수 폭포처럼 우렁차다..

이런때 어텀립스를 들어야..ㅎ

 

길 같지 않은 길..길 없는 길을 걷다..

한번 낙엽에 미끄러져 뒹굴고..

 

그러다 고개를 드니 미소짓은 부처의 얼굴이..

 

마치 초등생이 크레용으로 그려 놓은 듯하다..

누가 오고 가기도 힘든 이 깊은 산중에 부처를 모셔놓았는가?

 

 

주변 바위에 가득 붙어있는 것은 바위솔??

 

하산길도 그냥 내리막이 아니다..

다시 올라간다..

이게 사람 힘들게 만든다..

 

장군바위 표지판이 버젓이 있는데, 드림빌더가 확인못하고 알바를 한차례 시키고..ㅎ

 

발도 지쳐가는 하산길에 낙엽은 고치구이를 자청하고 달라붙는다..

이넘들도 낙엽만 가득한 산이 질린 모양이다..

 

또 내려가는 듯 올라가는 코스..

마치 달래는척 뺨을 치는 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게 만드는 코스..

족저근막염이 도진 오른발바닥은 아프고, 양 장딴지에서는 쥐가 돌아다니고..ㅎ

 

장군봉은 허접한 표지처럼 이름만 거창하다..

 

동지가 가까워져 슬슬 어스름이 깔리는데...

장군바위가 나타났다..

 

 

장군바위에서 바라보니 건천 ic가 한눈에 들어온다..

 

차를 세워둔 전원 홈그린 아파트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고속도로변 개울을 건너면 걷기 끝..

 

 

<오늘 걷기> 오덕선원 - 신선사 마애불 - 단석산 정상 - 송선리 마애불 - 장군봉 - 장군바위 - 홈그린아파트 약 12km

경주로 1박2일 걷기에 나섰다.

첫날은 건천 ic 부근 아파트입구에서 만나 카풀로 신선사 입구로 간다.

단석산을 오르는 길..

신선사 마애불을 보러 가려면 이길이 필수코스다..

 

오덕선원, 탑림공원에 다보탑, 석가탑을 알현하고..

 

가파른 포장길을 1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ㅗ는

오늘 코스는 오덕선원 - 신선사 마애불 - 정상 - 송선리 마애불 - 장군봉 - 주차장소 로 가는 12km 종주코스다..

 

글씨가 탐나는 신선사 표지석이 반가울 정도로 급경사 포장길이다.. 

 

신선사에서 마애불로 가는 구간에 비계가 설치되어있다..

무슨 공사중인가??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ㄷ자 돌방에 돌지붕을 씌워만든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었단다..

2번째는 군위 석굴암이고, 경주 석굴암이 3번째란다..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불상이 동방 관세음보살이다..

수행자가 정성껏 예불중이다..

 

북방 미륵본존불은 장륙존불이다..

장육이면 4m80cm 정도의 크기다..

 

엄지 발가락이도 머리통만하다..ㅎ

 

동방엔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남방엔 지장보살이 자리잡았다..

그러고 보면, 미래(미륵불), 현세(관음보살), 과거(지장보살)를 다 커버해주는 공간이다..ㅎ

 

지장보살의 모습이 신라 천년의 미소를 닮앗다..

 

그런데, 수행자가 마애불 옆 공사구간을 가리키며 말한다..

2016. 9. 12. 진도 5.8의 경주지진시 그는 이곳에서 지진을 경험했는데..

마애불상 바로 옆으로 지진이 지나갔단다..

그 지진여파로 수리공사를 하고 잇는데, 다행히 마애불은 지진피해를 입지 않았다며 마애불을 찬탄한다..

 

알현을 마치고 단석산 정상으로 향한다..

 

단석산 정상가는 길이 쉽지 않다

해발 827m로 경주 제일봉이다..

계룡산 842m와 비슷한 높이다..

 

스틱에 걸리는 낙엽..

1장이 5만원짜리라면 오는 수억 벌텐데..ㅎㅎ

 

드디어 단석산 정상..

단석..바위를 자른다는 뜻인데..그 증거 바위 앞에 섰다..

17세 김유신이 화랑이 되어 수련하던 중 삼한일통을 기원하면서 바위를 잘랐다는 설화..

**

칼이 있었다면, 현시국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바위를 갈라볼텐데...안되면 말구..

 

 

동행한 경지당 남촌선생 부부와 인증샷..

 

누가 보면 내가 완주한 것으로 알겠다...ㅎ

이날 단석산 정상에서 1대간 9정맥 완주를 기념하는 부부가 있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최근 2년 6개월동안 집중하여 달성했단다..

그를 축하한뒤, 깃발을 빌려 기분한번 내본다..

덩달아 기분좋은 날이다..

 

<계속>

중국에도 전주, 완산, 기린봉 지명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는 신기한 유튜브 내용을 보고..

기린봉 둘레길을 알게 되었다.

아중호수 생태공원을 내비에 쳤더니 안내한 곳은 호동골 공원이었다..

우연의 연속이지만, 주차장소와 출발지로서 적격이었다.

 

아중호수 데크길을 걸어 2문 표시된 곳으로 등산을 시작했다가, 하산길은 약수터 방향에서 4문 방향으로 돌아오면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몰라도 내년에는 코로나가 사라지고, 아이슬란드 여행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호수 둘레 데크길은 일단 찬성이다.

하지만, 너무 남발되는 출렁다리, 케이블카에 대해서는 토를 달고 싶다..

 

약속대로 2문 쪽으로 기린봉을 올라간다.

전주 시내와 가까워 산보객이 많은 곳이다.

 

200대 고지라고 우습게 본다가 제법 가파른 언덕에서 몇번 가쁜 숨을 정리하고 간다..

 

일단 능선을 타면 수월한 길이 이어지고, 조금 가다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아중호수를 내려다 본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00미터 쯤 될까??

 

해발 271미터지만, 당당한 전주의 좌익을 담당하는 산이다.

좌청룡이지만, 기린도 동쪽을 담당해서 혼용된단다..

정상에서 보니 완산7봉도 내려다 보인다..

 

이 작은 봉우리만 걸으러 온 것은 아니다.

후백제 유적지 동고산성을 보러간다..

 

기린봉에서 내려와 중바위 쪽으로 가야한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2번째 고바위를 넘어서면 거기에 동고산성이 나타난다..

 

견훤이 전주에 후백제의 수도를 정하고, 수도 방위를 위해 4방위 산성을 쌓았다.

남고산성은 전에 가봤고..( https://blog.daum.net/servan/6350475 )

동고산성은 건물 규모 등을 봤을 때 전시 지휘벙커 기능을 한 곳으로 보인다..

 

건물터가 널널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중바위로 가다보면 건물지가 계속 나타난다..

 

공산성 승리후 안동전투에서 마저 승리했다면 견훤이 삼국을 통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전주가 고려의 개성을 대신했을터인데...ㅎ

 

흥망이 유수하여 이제는 추춧돌 몇개에 청송만이 쓸쓸한 유적지가 되었다. 

 

이제 몇걸음 더가면 중바위다..

 

중바위 전망대서 보니 한벽루, 청연루, 오목대, 전주한목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왕년에 걷던 한옥마을 둘레길 기억도 나고..( https://blog.daum.net/servan/6348481 )

 

잠시 중바위(승암)에 앉아 요기를 한후  하산한다..

 

견훤이 아들농사를 잘지었으면, 삼국을 통일했을까?

그것은 모른다.

통일은 사람의 일이니까?

현재 남북통일은 어떤가?

지유 평화 통일에 대하여 실현가능한 방략을 구현할 수 있는 대지략가는 어디에 있는가?? 

 

하산길은 기린봉으로 올라가지 않고 약수터 방향으로 돌아간다..

 

약수터의 두꺼비는 아들을 업고 있는가? 서방을 업고있는가?

 

아중호수와 만나는 길..

호수를 느긋이 보란다..

느그시 보는 넘은 백로와 오리다..

그곳에 괴기들이 많으니까..ㅎ

 

벤취에 앉아 호수를 느긋이 보다가 길을 마무리 한다..

 

 

<오늘 걷기> 호동골 공원 주차장 - 아중호 데크길 - 기린봉 - 동고산성 - 중바위 - (바꾸) - 동고산성 - 약수터 - 아중호 - 주차장 약 7km

지난주에 늦게 가는 바람에 임도길을 도중에 돌아왔는데, 궁금증이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른 아침에 보니, 온빛의 뜻을 알것 같기도 하다..

 

주위는 무서리 하얗게 내렸다.

노래 가사 그대로..

 

국화 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사진명소에선 아침부터 의상까지 챙겨온 커플이 사진 삼매경에 빠지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메타세콰이어는 무슨 이유로 얼굴을 붉히나?

 

드디어 등산로라 표시된 임도로 오른다.

 

억새가 기웃거리는데, 한순간 햇살을 받으니 아카데미상 레드카펫에 선양 눈부시다..

 

임도는 유장하게 구비 구비 올라간다.

어울릴듯한 풍입송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다..

 

초 겨울에 매화처럼 하얀 이것은 무엇인고??

 

 

이길에서 고스톱을 치면 오동나무가 똥 쌍피로 삼점을 내고 피박 씌려고 고를 부를 것 같다는...ㅎ 

 

도중에 내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가 물었더니  임도 끝을 보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길 중간에 서있는 표지판..

깃대봉 - 함박봉 - 황령재 -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와 만난다.

이 능선은 1500년전 백제 계백 장군의 오천결사대가 지켜던 피의 능선이었다..

 

 

그래서 잠시 깃대봉 쪽으로 오르다가 황산벌을 쳐다본다..

다음에 이 능선길을 걸어보고, 또 황산성도 탐방해봐야겠다.

 

임도의 끝은 휴양림 출구와 만나는 것으로 추정은 되나, 제법 길 것으로 예상되어 

다음에 점심 준비까지하고 다시 오마 기약한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코스 특템한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 걷기> 온빛 자연휴양림 주차장 - 등산로 표시 (임도) - 함박산 표지판 , 원점회귀 약 6km

수암산에 접어들어 슬슬 오르다보면 뫼넘이 고개가 나온다.

 

2주만에 다시 만난 수암장군들은 여전하시네..ㅎ

이제 용봉산으로 간다..

 

좀 오르막에 투자를 해야한다. 

용봉산은 서해안에서 족보있는 산이니까..ㅎ

특히 공직자들이 틈틈히 오른다고 소문났다..용봉이 되는 지름길이라나..ㅎ

 

전망대에 서니 안개가 가득하여 전망이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개와 미세먼지가 함께한 것이란다..헉..

용바위에 서니 비로서 용봉산 전모가 보인다..

 

병풍바위로 가다가 돌아보니 용바위가 우뚝하다..

동행이 용봉산이면 봉황바위는 어디있나? 하고 묻는다..

그때 좌측에 보이는 바위..기상이 상서롭다..

옛다..저기를 봉황바위라고 하자..ㅎ

 

음..실제 이름은 내남바위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 개명이닷..ㅎ

잠시 쉬면서 바라보니 악귀봉, 노적봉, 고위봉이 나라비하고 섰다.

 

악귀봉에 악귀이빨 사이로 사람들 모습이 어른거린다..ㅎ

 

참 기암괴석이 즐비한 전시장 같다..

 

암릉을 이리저리 걸어 내려간다. 

길은 어렵지 않다..

 

병풍바위 표석은 있는데, 병풍이 없다..

아마 지금 병풍 꼭대기에 있나보다..

 

병풍바위를 끼고 용봉사로 내려간다..

 

절마당에서는 김장담는 중..

 

용봉사 주련이 경허선사의 선시를 툭 던진다..

世與靑山何者是  세여청산하자시
春光無處不開花  춘광무처불개화

 

세속과 청산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 없는 곳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네..

 

봄볕과 가을빛 어느 것이 옳은가?

빛이 오고 가면 저절로 붉어지는 것이 있느니라..

 

병풍바위 아래 용봉사는 마지막 불꽃을 붉게 태운다..

 

부처는 그저 모자리자를 연습할뿐..

 

청산을 나와 속세로 가는 길은 가을로 가는 길이다..

어텀립스가 굴러가며 음악이 되어 흐른다..

 

 

모처럼 장강선생 글씨를 여기서 만나네..ㅎ

 

여기서 1구간은 용봉초등학교로 가야하는데, 도로로는 가기 싫고,

지도상 산림휴양관 - 용봉폭포 - 미륵불 - 용봉초등학교로 가고 싶은데, 산림휴양관 뒷길 진입을 코로나 때문에 막아 놓아서 가지 못했다.

하여 오늘 1구간은 구룡대에서 마치고 후일을 기약한다..

 

<내포역사인물길 1구간> 충의사 - 뫼너미고개 - 용봉산전망대 - 병풍바위 - 용봉사 - 구룡대 약 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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