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李)씨의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 주돈이, 애련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전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졈그랄셰라
어느이다 노코시라
내 가논데 졈그랄세라
어긔야 어강도리아으 다롱디리
달님 높이 떠서
멀리 비춰주시라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진 곳을 디딜세라
어느 곳에나 다 놓으시라
내 가는 길 저물까 두려워라
기다림의 미학..망부석(望夫石)
백제에는 정읍사가 있다면 신라에는 박제상 부인이 있다.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이 왜왕에게 죽어 결국 남편을 만나지 못했지만, 정읍사의 부인은 어찌 결말이 났을까?
구름 속에 노닐다가 이름만 떨구고 몸은 해인사 홍류동에 숨긴 사람을 이 동네는 잊지 못한다..
그는 외로운 구름이라 어느 계곡에든 잠겨있을 수 밖에 없으리..
12살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떠난 소년..
요즘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는 풍조의 뿌리가 1500년이나 되었구나.
요즘 기러기 엄마보다 그때 아버지가 더 독했다.
"10년안에 과거급제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게임을 끊지 않으면 내 아들이 아니다"로 비뀌었다는..ㅎ
인생사희 시를 읽으면
외로운 외국에서 외국어 익히고 과거공부하던 외로운 청소년이 생각나고,
6년만에 18살 나이로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하였때 기쁨이 저절로 느껴진다.
인백기천(人百己千)..
다른 사람이 100을 공부하면 너는 1000을 공부해라..
남보다 10배의 노력을 하라..
요즘 이런 얘기하면, 꼰대라고 하고, 학대라고하겠지??
하지만, 네팔,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사람은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율수현(현 상해 인근) 현위..
현령 아래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직책이니, 지금의 경찰서장 쯤되는갑다..
연봉은 쌀 200석-400석이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 연봉 8천만원(=쌀 400가마 x 1가마당 20만원)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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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녀분 설화??
최치원이 현위로 근무할때 요절한 2낭자의 무덤을 발견하고 꿈에라도 보고싶다는 시를 남긴다.
정말 두 낭자가 꿈에 나타나 시와 술을 나누고, 쓰리썸을 즐기고 사라졌다는 기괴한 이야기?? ㅎ
그러다 황소의 난 토벌대장 고병의 종사관이 되어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쓴다..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개는 황소(黃巢)에게 알린다.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여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백 년도 못사는 인생의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萬事)는 마음의 주장에 따르나니,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왕사(王師)를 거느리매, 정벌(征伐)은 있으나 싸움은 없는 것이요,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상경(上京)을 회복하고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함에 공경하게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강상(綱常)을 어지럽게 하였다. 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노려보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로 되었으니, 반드시 크게 패하여 망할 것이다. .....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은 없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가만히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완악하고 흉악한 짓만 늘어간다. 이에 임금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있었는데, 너는 국가에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다.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 하물며 주(周)나라 솥[鼎]은 물어볼 것이 아니요, 한(漢)나라 궁궐이 어찌 너 같은 자가 머물 곳이랴. 너의 생각은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종일 내리기 어렵다" 하였으니 천지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제 너는 간사한 것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앙화[禍]가 가득하였는데도 위험한 것으로 스스로 편케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니, 옛말에 이른바 제비가 막(幕) 위에다 집을 지어 놓고 불이 막을 태우는데도 방자히 날아드는 거나 물고기가 솥[鼎] 속에서 너울거린들 바로 삶아 데인 꼴을 보는 격이다. ....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상제(上帝)의 깊으신 인자(仁慈)함이요, 법을 굴하여 은혜를 펴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다. 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忿)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하여 주어야 한다. .... 나의 한 장 편지로써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한 것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고집을 하지 말고 일의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잘하여 허물을 짓다가도 고치라. .... 만일 미쳐 덤비는 도당에 이끌려 취한 잠이 깨지 못하고 여전히 사마귀처럼 수레바퀴에 항거하기를 고집한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번 휘둘러 없애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소리개 같이 덤비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다. 몸은 도끼에 기름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마차 밑에 가루가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도 베임을 당할 것이다. .... 생각하건대, 동탁(董卓)의 배처럼 불로 태울 때에 후회하여도 때는 늦으리라. 너는 모름지기 진퇴(進退)를 참작하고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분별하라. 배반하여 멸망되기보다 어찌 귀순하여 영화롭게 됨을 구하지 않느냐. 다만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 장사(壯士)의 행동을 취하여 갑자기 변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라.
### 황소가 이 격문을 읽다가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가만히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는 귀절을 보고 놀라 자빠졌다던가?? ㅎㅎ
지금은 겨울 끝자락이라 푸름이 사라지고 황량하지만, 초록 가득한 날 오면 멋진 정취가 살아나리라..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 집성촌으로 고려명장 김방경 장군의 후손이다..
김방경 장군은 여원연합군 일본 원정시 고려군 사령관이었다.
어차피 몽고의 압력으로 정벌에 나섰지만, 벌어진 김에 그때 일본을 점령했다면, 지금껏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일 감정은 좀 수그러졌을라나??
일본과의 악연은 후손에게 이어진다..
사촌마을 글씨 뒤로 만취당과 만년송이 보인다..
사촌마을의 종가는 도평의공댁이다..
입향조 김자첨의 아버지가 도평의공인데, 고려말 우왕, 창왕 시절 도평의사사에 종사하였기에 "도평의공 고려(옛집)"이라고 부른다..
그들 부자는 고려왕조에 대한 충의와 조선 개국세력의 틈바귀에서 낙향을 준비하였고, 아들 김자첨이 실행에 옮겼다.
그가 사촌마을 서쪽에 가로숲을 조성한 이유에는 세상 바람을 피하여 올곧게 살고 싶은 마음도 보탰을 것이다.
만취당(晩翠堂).. 물가에서 더디게 자란 소나무가 더 늦도록 푸르르다는 뜻이다...
조선 명필 한석봉의 글씨란다..
이 호를 쓰는 사람들 중에는 늦게 벼슬에 올라 출세한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권율장군을 들 수 있다.
그는 사위 이항복 보다 2년 늦은 46세에 과거에 급제햇다.
그리고 사위 이항복이 병조판서할 때 그 아래급인 도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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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김사원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 집의 만취당 당호는 그의 증조부 송은 김광수와 관련이 잇는 듯하다.
송은 김광수(1468~1563)는 입향조 김자첨의 증손으로 연산군 시절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산의 폭정을 보고 대과를 포기하고 귀향한다. 그리고 집에 노송(향나무)을 심고 만년송이라 명명한다..
그의 호 송은(松隱)도 여기서 유래하는듯하다.
송은의 외손자가 서애 유성룡인데, 그는 외가집인 사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송은의 증손자가 만취당 김사원인데, 증조부의 만년송처럼 늦도록 푸른 기상을 잃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살아 인망을 얻고, 임진왜란시에는 의성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왜적과 싸웠다.
물론 송은의 외손자 서애 유성룡은 도체찰사가 되어 전쟁시 국정을 총괄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만취당의 집안은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화왕산성 농성에 동참하였다.
이때 우리 조상님들도 함께 했다는 인연이..ㅎ
송은이 만년송을 주제로 지은 시 두수가 만취당에 걸려있다.
일별조래문기시 (一別俎來問幾時) 조래산을 떠나 온지 몇 해나 되었던고 재봉창취만년자 (裁封蒼翠萬年姿) 푸른 빛 만년 가도록 고이고이 심었노라. 청향세세래시필 (淸香細細來詩筆) 맑은 향기는 은은하게 시쓰는 붓에 풍겨오고 잔자분분낙연지 (殘子紛紛落硯池) 송화 가루 날아서 벼루 위에 떨어진다. 엽밀유금제자재 (葉密幽禽啼自在) 무성한 숲에서 새소리 자유로이 들려오고 태반인갑노우기 (苔班鱗甲老尤奇) 노목에 이끼끼니 기린 껍질처럼 아롱진다. 앙장독립촌원리 (昻莊獨立村園裏) 홀로 우뚝하여 시골 마을에 서있으니 불허심싱속사지 (不許尋常俗士知) 보잘 것없는 선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네
... 이끼 낀 오솔길이 홍진(紅塵)에 막혔으니 후미진 곳 차마(車馬) 어이 오랴마는 집이 가난하다고 꾀꼬리 울고 꽃피는 것 싫어하랴 산을 보고 앉았으니 어깨는 서늘하고 높은 베개 잠이 드니 푸른 빛이 낯을 덮네. 만년송(萬年松) 그늘 속에 한가로운 몸이라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 홀로 기뻐하노라.
어느날 만취당이 유성룡의 형 겸암 유운룡과 함께 퇴계선생를 방문햇다.
그때 퇴계가 만취당에게 주자의 관선재시를 써주었다.
負笈何方來(부급하방래) 책상을 짊어지고 어찌하여 찾아왔나 今朝此同席(금조차동석)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맞이하고 앉았으니 日用無餘事(일용무여사) 매일매일 글공부로 모자람이 없어야지 相看俱努力(상간구노력) 서로서로 지켜보며 함께 노력하시게나
만취당은 이시를 받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과거 공부가 아닌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고택 안에 미국 후손이 보내온 수석이 가득하다..
이 돌돼지는 복을 불러 올라나??
요 돌에게는 콜로라도 강과 그랜드 캐년이 잘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고택 앞에 병신병란백주년 비석이 서있다??
병신병란??
을미년(1895년) 민비가 일제에 의해 살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성에서는 다음해인 병신년(1896년) 의병이 일어났다.
유림들이 의성향교에서 논의하여 사촌마을 사람 김상종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궐기하였다.
그리고 62일간 관군과 싸웟다.
사촌마을에 의병기념관이 있다..
화승총, 죽창, 괭이로 무장한 유림 양반과 백성들..
의병궐기 8일만 남대천변 구봉산에서 첫 전투가 벌어졋다.
적 20여명을 사살하고 승리를 거뒀다.
궐기 40일째 관군이 역습을 했다.
의병 27명이 전사하면서 패했다.
다른 지역 의병과 연합하여 100여명의 병력을 보충하여 산운천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일진일퇴하다가 서울서 내려운 관군에게 밀려 물러났다.
중과부적을 실감한 의병장 김상종은 의병을 해산했다.
일제가 의병을 공격할 때 사촌마을 한옥 수백채가 불탔는데, 다행히 만취당은 살아남았다..
중시조 김방경 장군의 여원연합군 이후 임진왜란, 구한말 병신병란 까지 사촌마을 대일투쟁은 늦게까지 푸르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대천은 봉양면에서 쌍계천과 합류하고, 쌍계천은 군위를 지나 상주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데크길은 동네 산책코스로 적격이다..
곰과 호랑이가 마늘을 놓고 고민중이다..
표정을 보니 호랑이는 냅다 튈 생각이다..
의성교까지 1km 정도..
보살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홀연히 강물 위에 비파 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돌아갈 것을 잊고 나그네는 떠나지 못하네..
<백낙천 비파행>
의성교 앞 숭의문이 늠름하다.
의성(義城)이라는 지명은 후삼국시기 견훤에 맞서 이곳 문소성을 지키다 전사한 홍술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생겼듯이숭의문(崇義門)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듯하다..
숭의문 옆으로 구봉산에 오르면 문소루가 나온다.
문소루..
조문국이 신라에 합병된후 문소군이 되었다.
소소구성봉황래의(簫韶九成鳳凰來儀)
순임금의 음악[韶]을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춘다
<서경,익직편>
안찰사 김지대(1190-1266)
고려 고종 때 3만의 거란병이 칩임했을 때 출전하였고, 원종 1년 정당문학을 지냈다.
그가 안찰사로 근무할 때 이곳에 묵었던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문소루가 이곳이 아닌 읍 중심부 서북쪽 후죽리 공관 뒤에 있었던 모양이다.
문소의 공관 깊숙한 후원에, 백 척의 높다란 누각이 있네. 향기로운 바람 십리 주렴을 흔들고, 밝은 달빛 속에 한 줄기 피리소리 들리네. 실같은 연기 버들 그림자와 가늘게 이어졌고, 비 갠 뒤 산 빛 짙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네 오랑캐 무찌르던 최고의 무사인데도 난간에 기대면서 더욱 조심하네.
聞韶公館後園深
中有危樓高百尺
香風十里捲珠簾
明月一聲飛玉笛
煙輕柳影細相連
雨霽山光濃欲滴
龍荒折臂甲枝郞
仍按憑欄尤可怕
고려말 포은 정몽주가 고향 영천에서 상경하는 길에 들러 지은 시
문소(聞韶)의 누정 아름다운 곳, 비를 피해 오르니 해가 기운다. 푸르른 풀빛은 역로(驛路)에 닿았고, 복숭아 꽃 따사로이 인가를 덮는다. 봄의 시름은 술같이 진하고, 세상의 맛은 점점 비단처럼 얇아진다. 애끊는 강남의 나그네, 변방의 당나귀는 또 서울로 간다.
聞韶郡樓佳處
避雨來登日斜
草色靑連驛路
桃花暖覆人家
春愁正濃似酒
世味漸薄如紗
腸斷江南行客
騫驢又向京華
학봉 김성일
의성 김씨이고 안동에서 태어난 퇴계 이황의 제자..
선조때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와서 침략이 없을거라 장담했다가 난리통에 개망신을 당하고 죄를 씻기위해 분전한 사람..
문소 고을 관소에서 이틀 묵으며 밤에 자다 한바탕의 꿈을 꾸었네 높은 수레 타고 고향 땅을 지나며 쇠뇌를 등에 지는 영광 입었네 역마 길에 봄이 장차 지려고 하고 산성에는 비 내리다 금방 개이네 어찌하여 이다지도 좋은 시절에 만리 먼 길 쉬지 않고 길을 가는가
信宿聞韶館
居然一夢成
高車過鄕國
負弩被恩榮
驛路春將盡
山城雨乍晴
如何好時節
萬里不停行
구봉산 능선을 따라 걷는다.
여기에 역대 수령들의 비석들이 잇다..
강을 따라 이어진 능선에서 마치 공주 공산성의 분위기를 느낀다..
강을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 걷는 능선 길은 봄날의 보약이다..
여기 좌측으로 내려가면 주차장소로 바로가지만, 길이 짧아 계속 직진한다..
표지판을 보니 계속 가면 봉의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오후 일정상 수도암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수도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진국이다..
수도암 아래 소원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효자 오천송이 집과 묘소의 중간 지점인 이곳에 여막을 짓고 2년간 시묘살이한 것을 기념하는 정자..
그때 왜가리 소리에 고개를 드니...
왜가리 집단 서식지는 처음 본다..
다시 데크길로 올라가 주차장소로 간다.
압록(鴨綠)..
물빛이 청둥오리 머리색과 같이 푸른 색깔아닌가??
잘 걷고 돌아와 차를 몰고 식당으로 간다..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수령 600년의 회나무란다...
한반도 전체에서 제일 굵은 회나무..
600년 회나무 앞에 있어서 이름이 수림(樹林)인 중식당에서 우삼겹 짬봉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