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능선 걷기를 마치고, 헌강왕릉 진달래꽃을 보러간다..

입구는 벚꽃이 장식하는데, 왕릉 뒤로는 진달래밭이다..

여기 사람은 참꽃밭이라고 하더만..ㅎ

 

헌강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유명한 경문왕의 장자..

진성여왕의 큰오빠..

신라의 절정기..

성안에 초가집이 없고 기와집 처마와 담이 이어지고, 숯으로 밥을 해먹던 시절..

처용가 불릴 정도로 국제교역도 왕성하고 흥청망청한 사회분위기..

송악에서는 왕건이 태어나고, 견훤은 신라 중앙군 병사로 복무중이던 시절..

당나라에서 최치원이 귀국하여 계원필경을 왕에게 받치던 시절..

총명하고 독서을 좋아했던 왕이 재위 5년만에 죽자, 나라는 혼란해지고 진성여왕이 등극하지만 역부족..

후삼국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로 비정하면,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연상시킨다.

총명하여 춤과 음악으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중흥을 꿈꾸던 젊은 왕자..

요절하여 모든 꿈이 사라진다는..

 

진달래는 짧으면서 화려한 화양연화의 호시절을 연상시킨다..

헌강왕의 5년,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4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고위봉 정상에서 열반재로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에 녹원식당에서 신선주를 한잔한다고 해서 입맛부터 다신다.

그래, 진달래꽃 띄워 한잔해야징..ㅎㅎ

 

내려가다 보니, 보문들판 남촌에 경지재가 보인다.

좋은 아지트가 있어 이리 좋은 곳을 즐겁게 다닐 수 있다는거..ㅎ

 

금오봉을 배경으로 이무기능선이 펼쳐지고..

이무기 등짝마다 백설기에 박힌 콩처럼 등산객이 봄날을 즐기고 있다..ㅎ

 

 

진달래는 고명처럼 곳곳에 피어난다..

 

열반재에서 천룡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무기 능선 하산시 반듯이 들려하는 밥집이란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이 꽃대궐을 이루는 녹원식당..

 

똘이도 해피하단다..

잘되는 식당 집 개는 짖지도 않는다..ㅎ

 

자목련, 백목련, 개나리가 만화방창..

천리포 수목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ㅎ

 

주말과 일욜일은 연중무휴이고, 주중 비오는 날에는 쉴 때있으니 전화확인바란단다..ㅎ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ㅎ

 

밥상이 떡하니 나오고, 신선주까정 곁들이니..

진달래 띄우고 신선주 건배!!

 

 

누구냣! 진달래 두잎 띄운 사람은?? ㅎ

남은 진달래 비빔밥 위에 고명으로 얹어서 꽃밥 만들어 먹는다..ㅎ

 

신선주 꽃술 2잔에 얼큰해져 나른 한 발길로 천룡사로 나간다,

 

탑위 장식은 인도불교의 흔적을 보여준다.

원래 인도 스투파는 사각 기단위에 둥근 사발모양 탑을 설치하고 그 위에 일산을 꼽는단다..

그런데,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탑 상륜부 장식이 조금 변형되었다..

 

천룡사는 황룡사 9층탑, 사천왕사 처럼 호국사찰로 창건되었단다.

그래서 당나라 예부시랑 악붕구가 사신으로 와서 보고, 이절이 허물어지면 신라가 망할 거라고 예언했단다.

그후 최승로(최치원의 손자)의 손자 최제안이 중수했다.

그런데 조선 순조 때 유생들이 불을 질러 1819년 완전 소실되었단다.

그 당시 조실스님은 불에 타서 순교하고, 시자는 화상을 입었다. 

 

이 천룡사 절터는 현재 문화재 발굴작업을 하고 있고, 법륜 스님이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법맥을 거슬러가면 도문 - 종헌 - 용성로 연결되는데, 

용성스님는 3.1 독립선언 33인 대표의 한사람이다.

그는 남원 덕밀암 혜월화상 문하로 출가했다.

혜월화상은 동학교주 최제우와 친구 사이로, 최제우의 도피생활을 도왔던 인연이 있었다.

용성스님은 천룡사 방화사건시 화상을 입은 시자스님을 9년간 시봉한 인연이 있었다.

이런 인연의 연기로 용성스님은 동학 후계자 손병희를 만나 3.1 독립선언에 가담하게 된다.

용성스님이 천룡사 복원불사를 유훈으로 남겨 4세 제자인 법륜스님이 이를 이어받아 불사를 추진중이다.

그는 말한다.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이 들어서게 하려면 이제 이 절이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의 평화가 도래하고 통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믿음이 곧 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생각하고 말하고 믿으면 이루어진다..

 

노랑, 하양, 초록의 삼색기는 봄 혁명군의 깃발이다...

 

열반재를 넘어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꽃술에 발걸음이 흔들리고,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마음은 가볍다..

 

관음사의 해프닝..

동행들이 관음사 해우소에 들렀는데..

관음사 보살이 궁시렁거린다..

"여기 화장실은 등산객이 쓰는데가 아니요. 한번 청소차부르는데 30만원이나 들어요.."

급식공덕, 급수공덕이 크면 급똥공덕도 얼마나 클까마는.. 절 인심이 원.. 

 

아하?? 이래서 저 아래에 "천우사 화장실" 표시를 크게 써놨구나..ㅎㅎ

 

다시 돌아온 용장골 계곡에 자리깔고 누워 꽃술의 수면을 날려버리고 간다..

벚꽃의 합창이 우렁차다..

 

 

<오늘 걷기> 용장골주차장 - 이무기능선 - 고위봉 - 열반재 - 천룡사 - 열반재 - 용장골주차장 약 5km

경주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1박2일 경주 꽃길여행을 떠난다.

건천ic를 지나자 여근곡에 벚꽃을 가득 풍은 오봉산이 손짓한다.

 

큰일났다.

꽃이 만개할 참이다..

 

용장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내판을 들여다 본다.

오늘 코스는 남산에서 제일 상급인 이무기 능선을 탄다.

용장골 주차장 - 천우사 - 이무기 능선 - 고위봉 - 열반재 - 녹원식당- 천룡사 - 열반재 - 원점회귀 약 5km

 

경주 남산 코스를 분류하자면, 

1) 초급 코스 : 삼릉 - 금오봉 구간..

2) 중급코스 ;  통일전 - 금오봉 - 용장사지 - 칠불암 코스

3) 상급코스 : 오늘 가는 이무기능선 코스..

 

주차장에서 뒷길로 주택가를 지나 등산로로 접근한다.

장점은 사람이 적다.

 

저 아래 길이 정식 코스다..ㅎ

 

슬슬 진달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몇년전 진달래 피는 시절에 용장사지를 넘어 칠불암 코스를 갔었다.

https://blog.daum.net/servan/6350506  ,   https://blog.daum.net/servan/6350507

진달래 먹고 즐겁게 걷던 시간이었다.

 

고위봉 표시로 간다.

그런데, "천우사 화장실"에 유의하라.. 내려올 때 관음사에서 잔소리 듣는 수가 있다..ㅎㅎ

 

요 계곡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이무기 능선이 시작된다.

 

처음 이무기 능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반문했다.

"공룡능선보다는 쉽겠지요??"

 

그런데 대뜸 바위 길을 올라서기 시작한다..

 

바위길을 엉금엉금 기어 오르다가 잠시 쉰다.

가이드 맡은 경지재 선생이 웃으면서 말한다.

"여지껏 같이온 멤버 중에 가장 짧은 거리에서 쉬네요.." 

 

애고..내 능력이 그런걸..ㅎㅎ

그런데, 그 순간 119복장의 남자가 잠시 자리를 피해달란다..

부상자 호송해서 내려오는 중이란다

벌써 부상을??

정말 발에 기부스한 사람이 업혀서 내려온다..

음.. 이무기 능선, 사람 겁 지대루 주는구나..ㅎㅎ

 

우리도 조심 조심 올라간다..

 

틈틈히 계단이 있기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악산이었겠다..

남산이 아니라 남악산으로 불러야..ㅎㅎ

 

주차장에서 고위봉 정상까지 고작 1.7km인데, 가다가 쉬기를 반복한다..ㅎ

 

진달래가 자주 나와 위로해주길 망정이지, 아니면 유격훈련깜이라..

 

잠시 금오봉과 용장사지 능선을 바라본다..

저 아래 용장골 주차장은 엄청 작아졌다..

 

여기가 이무기 등뼈쯤될라나..ㅎ

 

고위봉이 아직 저만치 높다..

 

이무기 어깨쯤 되는 곳에 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었다..

 

진달래 시즌에 경주 남산이 정답이다..

 

이무기 턱쯤 되는 곳에 오늘의 난코스..

줄잡고 오르기..

선두 여성들이 줄잡고 씩씩하게 오른다..

이런거 보면, 이젠 여자도 군대가도 된다고 본다..ㅎㅎ

 

여자도 잘 올라가는데, 정작 내가 빌빌거리자, 각종 훈수가 난무한다..

이무기도 비웃는다..

어허 감히..ㅎㅎ

 

오늘의 최고 뷰포인트에 섰다.

이무기 고삐를 쥐었다고나할까??

 

남산위에 제일 이쁜 소나무..

 

마지막 고바위에 올라 진달래를 물에 띄워 마신다..

꽃과 하나되어 더 아름다운 봄날..

 

고위봉에 올랐다.

해발 494m 지만, 이무기능선을 끼고 베이글한 파워를 자랑한다.. 

 

행복한 걷기는 하산시 기다리는 진달래주 기대심으로 계속 이어진다..

한때는 신라 초기의 왕성인 금성과 월성의 위치에 관심이 많았다.

이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이제 신라초기 신성한 지역인 신유림과 천경림의 위치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신유림이 낭산부근 사청왕사터 부근으로 알려지자, 다시 천경림으로 관심이 집중된다.

천경림(天鏡林)..하늘 비추는 거울 같은 숲..

이름처럼 계림 남서쪽 남천변이라고 알려졌다..

이 신성지역에 아도화상이 공주의 병을 고쳐준후 초옥을 짓고 수도한 적이 있단다..

그후 이곳에 법흥왕이 신라 왕실 최초의 공인 절 흥륜사를 지을려고 하다가 이차돈 순교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천경림 부근에 위치한다는 현재의 흥륜사를 찾아가보기로 하다가, 문득 법흥왕릉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보니, 의외로 경주 외각 건천쪽  선도산 서쪽 산자락에 있었다. 

생각난 김에 낭산 걷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법흥왕릉부터 가보기로 한다..

 

멀리 선도산이 보인다.

경주의 서악이라고도 하는데, 산 동쪽에 진흥왕릉 등 고분군이 즐비하다..

그런데, 왜 법흥왕릉은 선도산 서쪽 이런 외진 곳에 위치할까?

 

주차장에 차를 대니, 벽도산이 눈에 들어온다..

벽도, 선도.. 주변에 복숭아 밭이 많았나??

왕릉입구치곤 좀 허접하다...

 

법흥(法興)..법을 일으켰다는 시호..

그는 법과 불법을 모두 일으켰다..

최초로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한다..

 

길가에 시계와 죽장이 있다??

죽장 짚고 짚신 신고 삿갓 쓰고 왕릉을 유람할제..ㅎ

 

주인장 글에 내공이 있다..

백행지본 인지위상(百行之本 忍之爲上)

모든 행동의 기본은 인내를 으뜸으로 친다.

불교로 말하면, 인욕바라밀이 제일바라밀이라는 뜻이다..

백인(百忍) 선생의 덕담을 마음에 새기며 왕릉으로 올라간다.. 

 

신라의 법과 불법을 일으킨 왕으로 무덤치곤 어느 종중 종손 묘소처럼 소박하다..

법흥왕..

그는 아버지 지증왕과 어머니 연제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두사람이 결혼한 이야기가 19금처럼 등장한다..

지증왕의 덩치에 걸맞는 여성을 찾다가 여기서도 가까운 건천읍 모량리 동로수 아래에서 거대한 똥을 발견하고,

똥주인을 찾는다..신데렐라는 유리구두인데, 우리 전설은 왜 이리 촌스럽냐?? ㅎ

똥주인은 놀랍게도  모량부 대인의 딸인데, 키가 7자5치(약 2미터??)나 되는 여자였단다..

결국 지증왕의 부인이 되어 법흥왕을 낳았다.

법흥왕이 모친을 닮아 키크고 덩치도 장대했다 한다..

이 피를 이어받은 진평왕도 거구에 장신이어서 돌계단 섬돌 2개가 한번에 부서진 일이 있다고 한다. 

 

법흥왕이후로 바뀌는 것이

1) 무덤 위치가 왕궁 근처 평지가 아닌 산기슭으로 이동했다는 것

2) 묘제가 적석목관분에서 석실분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3) 봉분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 (아버지 지증왕의 묘인 천마총과 비교된다)

불교를 신봉하면서 겸손모드로 바뀐 것 아닐까?

법흥왕도 말년에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운(法雲), 자는 법공(法空)이라고 했다.

 

왕릉만 보고가기엔 아쉬워 주변 오솔길로 올라간다.

그런데, 기대이상의 솔숲길이 이어진다.

 

길지는 않지만 신라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길이다..

 

돌아와 왕릉을 한바퀴 돌고.. 

 

굵은 소나무도 안아보고..

 

바람없고 볕좋은 곳에 앉아 차한잔 마신다..

 

돌아가는 길, 백인거사의 글씨가 새삼 눈길을 끈다.

 

쓰레기는 길에다 버리고, 이왕이면 버리지 말고 가져가시오..

백인거사의 내공이다..

 

이제 흥륜사로 간다..

남천변에 천경림 흥륜사라 써있다..

 

절마당 가운데 자리잡은 이차돈 순교비..

그의 목을 베자 흰피가 솓았다고 한다. 그넋을 위로하는 자추사(현 백률사)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백률사  https://blog.daum.net/servan/6351730  참조 )

신라의 토속신앙의 성지 천경림에 최초의 왕실사찰 흥륜사를 건축하려던 공사는 중신의 반발이 심하였다.

527년 이차돈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고, 흥륜사는 다음왕인 진흥왕 5년(544년)에 완공된다.

불교는 향후 신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삼국통일의 초석이 되고, 호국불교의 원류가 되었다..

 

 

흉륜사는 삼국유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진평왕 때 비형랑 추종자 길달이 흥륜사 남문을 짓고 밤마다 잤다는 곳이고..

원성왕때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사랑을 나눈 탑돌이 행사가 벌어진 곳이고,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 수막새가 발견된 곳이다..

 

 

법기암(法起庵)..법이 일어난 절..

그 위상에 비해 절이 참 소박하다..

천주교 성지에 가면 엄청 정성껏 꾸며좋아 "순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던데..

불교는??

 

법흥왕과 이차돈의 마음이 붉게 피어난 것 같은 남천..

 

금당과 법당은 무슨 차이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금당이라고 하고, 법당은 법문을 설하는 장소를 뜻한다.

특히 선종계통에서는 법당을 중시한다. 

요즘은 별도로 금당을 두지않고,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과 법회를 같이 하면서 법당이라는 말로 통칭이 된단다..

 

천경림 흥륜사..

연못과 울창한 숲을 기대했지만, 도심의 평범한 절로 다가왔다.

 

 

베이스캠프 경지당으로 복귀해 굴피자를 보시받고 흐뭇하게 경주걷기를 마무리 한다..

창밖의 푸른 남산을 바라보다 문득 서브 당호가 생각났다.

블루마운틴 뷰 하우스..벽산재(碧山齋)..

 

2일째 아침경지당 주변 산책길에 나섰다.

진평왕릉에서 황복사지까지 둘러보기로 한다..

 

연무낀 남산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신비하게 보인다.

진평왕릉 옆 보문들 길 끝에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보인다.

 

황복사(皇福寺)..이름만으로도 왕실의 만복을 기원하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의상대사가 이절에서 출가했다고 한다.

 

삼층석탑은 692년에 효소왕이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삼층석탑너머로 동녁하늘이 붉어진다..

 

까마귀 아침식사하러 출근한다.

오늘은 보문들이 아니고 어디로 가나??

오후에 지나가다 보니 단석산 아래 방내리에 모였더만..ㅎ 

 

황복사지 옆 신라갤러리 우측으로 낭산으로 걸어 선덕여왕릉까지 가는 길이 잇단다..

다음에 오면, 선덕여왕릉 - 낭산 - 사천왕사- 왕복..예약이다..

 

보문들 동편이 붉게 타오르면 석굴암 부처님 백호에 광명이 진동하시겠네..ㅎ

 

 

<아침산책길> 진평왕릉 - 황복사지 왕복 1.5Km

토함산 바람길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입실 표시 좁은 임도로 내려간다..

길은 초행자는 불안해서 못갈 정도로 좁지만, 군데 군데 차량 교행장소가 있다.

다행히 교행차량을 만나지 않고 내려오자, 까마귀들이 환영하여 나와있었다.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들이 어릴적 제비떼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떼는 강남 카바레로 갔다더니, 카바레가 없어져선지 행방이 묘연하다..

경주에서는 그 추억을 까마귀가 대신해준다..

까마귀는 우리 민족과 함께한 텃새다..

그래선지, 주민들 입장을 고려해서 "까옥"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있다..

신라 소지왕(비처왕) 10년(488년)에 까마귀이야기가 등장한다..

정월 보름날 왕의 행차시 쥐가 까마귀를 쫓아가라고 말한다.

말탄 기사가 까마귀를 쫓아가다가 싸우는 멧돼지 구경하다 놓친다.

그때 근처 연못에서 한 노인이 편지를 전한다.

"열어보면 2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고 겉봉에 써잇었다.

한 사람은 왕을 뜻하는 것을 직감하고 개봉하니, 그 안에 사금갑 (射琴匣)이라 써있었다.
"거문고 집을 쏘라"

그뒤의 사연은 생략하고..

그 사건이 벌어진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까마귀 제사날)이라 하여 찰밥을 까마귀에 공양하여 왓단다..

그러니, 경주, 울산 등지에 까마귀가 많은 이유는 오랜 인연 때문이 아닐까??

 

입실에서 올려다 보니 토함산 풍력기가 "잘가"하고 인사한다..

 

영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석가탑이 영지까지 내려와서 환영해준다.

석가탑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지 않는다 하여 무영탑(無影塔)이라고 했다는데..

영지까지 왕림하셨으니, 무영탑이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ㅎ

 

아사달과 아사녀의 키스가 빛난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신라버전인가??

아사달이 백제에서 온 것이 아니고, 혹시 아사국에서 온 것은 아닐까?

아사국 남자와 아사국 여자..

그런데..기념비 이름이 왜 아사달의 혼인가? 아사녀의 혼이 더 애절한 것 아닌가??

 

 

기념비 밑에 한반도 조각..그런데, 독도는 떨어져 나갔네??  

원, 이렇게 독도 수호의지가 없어서야..쯧

 

 

아사달이 불국사에서 석가탑을 제작하고 있었다.

아사녀가 멀리 고향에서 찾아와 만나려고 했으나, 공사감독자가 부정탄다며 불허햇다.

탑이 완공되면 영지에 비칠테니 그때 만나라고 한다.

영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석가탑은 비치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아사녀는 못에 빠져 죽고, 탑완공 뒤 이 사실을 알게된 아사달도 애통해다가 죽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스토리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야기도 생로병사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1) 첫 이야기는 조선 영조때 동은화상이 지은 불국사연대기에 첫 언급이 있었다.

당나라 석공 아사달과 그의 누이 아사녀라는 언급과 불국사 남서 10리 연못에 석가탑이 비치지 않아 무영탑이라고 한다는 내용뿐이다..부부라는 말도, 영지에 빠져 죽었다는 말도 없었다..

 

2) 일제시대 1921년 일본인이 지은 "경주의 전설"에서 현재와 같은 이야기로 진화했다.

3)1938년 현진건이 위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무영탑을 쓴다.

   아사녀는 백제 부부로 바뀌고, 삼각관계가 추가되었다.

(참고, http://m.gjnews.com/view.php?idx=67827 )

 

어디 이야기 뿐이랴..

우리의 추억도 따지고 보면 가공되고, 생로병사를 거친다..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 성장스토리, 멋진 이야기로 발전하면 좋겠다..

대표적인 이야기 왕국이 영국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반지의 제왕, 헤리포터 등 그들의 상상력은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영지 끝으로 가니 토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행이 말하기를, 산기슭 아파트가 없었다면 불국사가 보일거란다..

 

물닭만 한가로운 영지에 낮달이 가세한다..

 

이야기꾼들이 영지 철새들의 끈기를 보았다면, 

아사녀의 심약한 투신을 막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는데..ㅎ

 

스토리는 아쉬우나, 족저근막염 걷기꾼에게는 적당한 거리(3Km)의 둘레길이다..

이른시간 식당으로 가는 길..

전깃줄에 까마귀..

왕년의 참새시리즈가 경주 까마귀 시리즈로 진화할 때가 되었다..

 

모처럼 감포일출복어집에서 아구수육을 먹는다..

꽃게찜처럼 부드러운 맛..여전하다..

배터지게 먹고, 오늘의 마지막 여정 월지야경을 보러간다..

 

그런데, 깜깜하다??

요즘 공사 등 이유로 6시에 문닫는단다..

하여, 월정교 야경으로 대체한다..

 

월지 대신에 월정교가 효자노릇한다..

젊은이들이 바글거린다..

경주에 빵집이 많은 이유는 젊은 관광객이 많기 때문인가 보다..

 

월정교 위로 달이 떳다..

신라의 달밤이닷!!

불국사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고

영지에 탑도 비치지 않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만은 멈추게 한다..

 

달빛이 곱게 월정교에 스며들었다..

참 고운 경주의 밤이다..

경주 보문들로 가는 길, 토함산 바람길 풍력기들이 미리 알아보고 인사한다.

경지당에서 푸른 남산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카풀하여 토함산 바람길로 향한다.

가는 도중 장항리 5층석탑에 들렀다.

핑크빛이 도니 멀리서도 이쁘다..

 

경주는 곳곳이 석탑이고 불상이다..

 

금강역사도 선명하다..

 

석조여래입상은 박물관으로 모시고, 대좌만 남았다.

원래 원본을 보관하면, 현장에는 복사품을 남겨야하는데, 이게 뭐냐??

대좌 아래 조각이 귀엽다..

개구쟁이 해태인가??

 

1923년 사리도굴범들이 사리를 찾으려고 탑을 폭약으로 폭파하였단다..

동탑은 제모습을 잃엇다..

 

주변 계곡이 험하다..

토함산, 조양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감은사로 간다..

 

비료차두기 타고 미끄럼타면 좋겠다..ㅎ

 

이쁜 석탑 뒤로하고 토함산 바람길로 올라간다..

 

토함산 바람길 네비 주소 : 경주시 문문대왕면 장항리 산 600 을 치고 간다..

주차장에 서면 사방이 툭터져 시원하다..

당연 바람이 센 곳이니 무장을 단디한다..

 

주변에 경관숲을 조성하는 모양인데, 겨울이라 볼 것은 없지만, 걷기꾼에게는 상관없다.

주변을 걸으면 된다.

 

다만, 공식 산책로가 포장길이라, 동행이 불평을 한다.

하여 이리저리 비포장 길을 찾아 걷는다.. 

 

그러다가 꽤 그럴듯한 오솔길을 발견하고 따라간다..

거기서 만난 토함산 자연휴양림 전망대 가는 길..

왕복 1.6km 면 족저근막염 치료중인 나에게도 적당한 길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따라간다..

 

길 좋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룰루랄라 걷는다..

 

정자에서 잠시 숨돌리고 가면 표지판이 나오는데..

전망대는 400미터 남았는데, 폐쇄구간은 뭐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지판??

역대 신화에서 호기심을 눌러 이긴 신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전망대에 올라가면 감포 동해바다가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막막한 산 뿐이다..

 

돌아나오면서 금단의 호기심을 쫓아간다..ㅎㅎ

 

과연 길은 철조망으로 막혔다..

그러나 약간의 유도리는 있었다..

 

전에는 산악레저스포츠 길이었다는데, 왜 막았을까??

 

여기서 주차장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 되돌아 가지 않기로 했다..

 

예비 풍력기 날개가 엄청나게 크다..

길이 46미터..

 

토함산 바람길에서 둘레길을 득템한 날이다..

 

<오늘 걷기> 토함산 바람길 주차장 - 자연휴양림 전망대 - 주차장 약 3km

<네비 주소> 경주시 문문대왕면 장항리 산 600 

 

이번 경주걷기의 메인이 단석산인데, 단석산 설화의 주인공은 김유신이다..

우연히,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가는 둘레길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 걷기의 테마는 김유신이 되겠다.

김유신에게 명활산성은 김춘추와 함께 정권을 잡게된 터닝포인트가 되는 곳이니까..

***

일단 진평왕릉으로 간다..

숙소 경지당에서 가깝다. 경지당에서 읽은 신라왕릉 책에 의하면, 조선 18C경에 경주김씨 종중에서 조상묘 찾기 할때 진평왕릉으로 비정했단다.

그 이유는 진평왕을 한지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이 들판이 한지로 불리기 때문이란다..

한지란 북천의 범람이 잦아  홍수발생시 물을 가두는 유수지 역할을 하는 들판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근대의 조사에 의하면, 왕릉의 구조가 통일신라 시대 양식으로 드러나 신문왕이나 효소왕릉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진평왕릉은 북천의 홍수 때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왕릉에서 보면 딸인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보인다..

선덕여왕은 죽을 때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다.

도리천이 어디냐고 했더니 낭산 남쪽이라고 했다.

낭산일대는 신유림(神遊林)이라 해서 천경림 등과 함께 신라초부터 소도처럼 신성시하던 숲이 있는 곳이었다.

낭산에 여왕릉을 설치하고도 신하들은 그곳이 도리천이라는 의미를 몰랏다.

그런데, 문무왕 때 대당전쟁을 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한 사천왕사를  낭산 여왕릉 아래 신유림에 짓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교적 천문관을 깨닫고 여왕의 예지에 탄복했다고 한다.

 

용비늘 갑옷으로 무장한 소나무가 왕릉을 호위하고 잇다.

진평왕의 딸 중에 선화공주 설화..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이고, 익산 쌍릉과 미륵사지 설화의 주인공 여부로 논란이 많다.

그러나, 진평왕- 선덕여왕 시절 신라는 성왕의 복수를 다짐하던 백제와 피어린 전투를 벌인 것을 보면, 그 진실여부가 아리송하다.

 

각설하고,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으로 가는 길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헤메다가 큰길로 나가 북쪽으로 가다가 발견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길을 따라 수로를 쫓아 가는 코스가 둘레길이다..

 

이렇게 한참 떨어진 큰길가에 겨우 표지판 한개가 보인다..

 

 

길가가 모두 벚꽃이다..

벚꽃 만개한 날 다시와서 걸어야 겠다..

 

수로를 따라가는 길은 공사구간에서 일부 우회하는데..

거기서 명활산 등산로 표지를 만났다.

 

등산로 몇백미터 숨차게 오르니 명활산성 탐방로와 만났다.

북문과 남문의 중간지점..

 

일단 남문지로 가서 성안길로 북문으로 갈까 생각하고, 남문지로 간다.

 

하지만, 시간이나 정확한 정보가 없어 회군하여 북문지로 향한다..

 

북문지로 가는 길에 성안 연못을 만난다..

성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도중 고지에서 보문호와 북천을 조망한다.

명활산성은 신라 왕경을 방어하는 4대산성 중 하나로 동쪽, 울산 등지에 칩입하는 적을 방어한다.

 북천 양안으로 명활산과 소금강산이 자리한 협곡같은 지역이라 군사적 요지이다.

실제 신라초기 왜구들의 침략을 막앗던 역사도 있다.

북천은 경주 동쪽 함월산 등 고지대에서 발원하여 왕경이 있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형산강에 합류한다.

그런데, 경주가 태풍경로상에 위치하기도 하여 북천 홍수 피해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북천(알천)의 범람으로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명주군왕으로 밀린 김주원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또한 북천 홍수로 북천변에 위치한 헌덕왕릉 등이 유실되기도 했단다.  

 

북천 상류에 덕동댐과 보문호가 건설되면서 이제는 수량이 부족한 하천이 되었다..

하천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ㅎ

 

명활산성 북문지..

이쪽은 남문지와 연결되는 길 같은데, 지금 개통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선덕여왕 말기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다.

상대등이면 귀족 화백회의 의장격이다. 

선덕여왕이 병이 나자(50대 중반 추정)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친왕파 김춘추, 김유신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을 생각이었다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집결했다.

왕성인 월성에는 여왕파인 김춘추, 김유신등이 포진했다.

보문들을 두고 쌍방이 대치하던 밤..

유성이 월성으로 떨어졌다. 이를 보고, 반군의 사기가 충천했다.

김유신은 밤중에 연에 불을 달아 하늘로 날려 올렸다.

"별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반전되어 김유신은 비담의 반란을 진압했다

여왕은 그 소동 속에 승하하고 최규하같은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

김유신..그는 심리전, 선전술의 귀재이고, 합리주의자, 과학자였다..

"길흉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사람이 부르는대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봉황이 날았들었어도 은나라 주왕은 망했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어도 쇠퇴하였으며,

당 고종은 꿩새가 울었어도 흥하였고, 정공은 용과 싸우고도 흥성했다고 합니다" 

 

 

단석산에 수련하여 화랑으로 입신한 김유신은 대 백제전투에서 승승장구..

신진무장세력으로 전통 귀족들의 대표인 상대등 세력과 이곳 명활산성 대결에서 승리하여 진골 무열왕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삼국통일의 길로 매진한다.

우리 역사에 신하로서 왕으로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다.

 

북문지에서는 진평왕릉 가는 길을 크게 써놓으니 좋다..

 

길가의 저 부처님은 왕년에 벚꽃 방창할 때 알현한 적이 있다.

모로코의 페스를 연상시키는 석물들..

 

진평왕릉가는 길에 벚나무가 즐비하다.

벚꽃 피는 날 오시라고 기약한다..

 

우측으로 북천 건너 소금강산 능선이 보인다.

다음에 저기를 걷자고 드림빌더가 속삭인다..

 

이길의 정식이름은 선덕여왕길이다..

진평왕릉를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이어지는가보다..

 

다시 등산로 입구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람불고 날이 추운데, 그동안 엄청 따뜻한 날씨였나 보다.

철모르는 개나리가 바람에 떨고 있다..

 

그때 단석산 상공으로 오색찬란한 상운이 나타났다.

삼국통일을 기원한 단석(斷石)의 에너지가 남북통일로 이어지는 조짐이 아닐까?

 

<오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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