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의 이름은 운오..노모를 봉양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한 입이라도 줄이겠다고 어린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취산 북쪽의 들판에 가서 땅을 팠더니 석종이 나왔다..손순은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 아들을 데리고 돌아와 석종을 집에 걸고 쳤더니 그 종소리가 월성에 있던 흥덕왕의 귀에 들렸다..
왕명으로 그 연유가 알려지자..대효라 하여 밀성군에 봉하고 집과 전답을 하사였다는 이야기..
과연 그런 석종이 잇을까 의심하던 나를 깨우쳐 준 것은 저기 천단의 석종이었다..
옛 사람글이라고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
위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의 중시조..
원래 경주시 건천읍 부근이 신라 초기 6촌(부)형성기에 무산 대수촌이 위치한 지역이고, 대수촌 촌장 구례마란 분이 손씨 성을 하사받는다..
손순은 그 후손으로 대를 이어 건천읍 모량리에 살던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입에 풀칠 하기 힘들기는 매한가지..
7세기에는 사람의 입을 줄이는 방법으로 아이를 선택하였지만,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노인을 선택하였다(고려장)는 사실..
조선시대는 상대적으로 아이...현대는 다시 노인..시대는 돌고 돈다..
경주로 떠낫다..
건천 IC로 들어가 건천읍 신평리로 갔다..여근곡이 있다는 오봉산이 취산이라는 견해에 따라서..
여근곡은 여자 거시기 모습의 계곡으로 선덕여왕 때의 일화로 유명한 곳..
저기 보이는 산이 오봉산 여근곡....과거의 취산..이 부근 어느 들판에서 땅를 팠을테지..
문효공 손순의 집이 있었다는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신라 초기에 육촌중 하나인 무산 대수촌이 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