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신라 초기의 왕성인 금성과 월성의 위치에 관심이 많았다.

이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이제 신라초기 신성한 지역인 신유림과 천경림의 위치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신유림이 낭산부근 사청왕사터 부근으로 알려지자, 다시 천경림으로 관심이 집중된다.

천경림(天鏡林)..하늘 비추는 거울 같은 숲..

이름처럼 계림 남서쪽 남천변이라고 알려졌다..

이 신성지역에 아도화상이 공주의 병을 고쳐준후 초옥을 짓고 수도한 적이 있단다..

그후 이곳에 법흥왕이 신라 왕실 최초의 공인 절 흥륜사를 지을려고 하다가 이차돈 순교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천경림 부근에 위치한다는 현재의 흥륜사를 찾아가보기로 하다가, 문득 법흥왕릉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보니, 의외로 경주 외각 건천쪽  선도산 서쪽 산자락에 있었다. 

생각난 김에 낭산 걷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법흥왕릉부터 가보기로 한다..

 

멀리 선도산이 보인다.

경주의 서악이라고도 하는데, 산 동쪽에 진흥왕릉 등 고분군이 즐비하다..

그런데, 왜 법흥왕릉은 선도산 서쪽 이런 외진 곳에 위치할까?

 

주차장에 차를 대니, 벽도산이 눈에 들어온다..

벽도, 선도.. 주변에 복숭아 밭이 많았나??

왕릉입구치곤 좀 허접하다...

 

법흥(法興)..법을 일으켰다는 시호..

그는 법과 불법을 모두 일으켰다..

최초로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한다..

 

길가에 시계와 죽장이 있다??

죽장 짚고 짚신 신고 삿갓 쓰고 왕릉을 유람할제..ㅎ

 

주인장 글에 내공이 있다..

백행지본 인지위상(百行之本 忍之爲上)

모든 행동의 기본은 인내를 으뜸으로 친다.

불교로 말하면, 인욕바라밀이 제일바라밀이라는 뜻이다..

백인(百忍) 선생의 덕담을 마음에 새기며 왕릉으로 올라간다.. 

 

신라의 법과 불법을 일으킨 왕으로 무덤치곤 어느 종중 종손 묘소처럼 소박하다..

법흥왕..

그는 아버지 지증왕과 어머니 연제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두사람이 결혼한 이야기가 19금처럼 등장한다..

지증왕의 덩치에 걸맞는 여성을 찾다가 여기서도 가까운 건천읍 모량리 동로수 아래에서 거대한 똥을 발견하고,

똥주인을 찾는다..신데렐라는 유리구두인데, 우리 전설은 왜 이리 촌스럽냐?? ㅎ

똥주인은 놀랍게도  모량부 대인의 딸인데, 키가 7자5치(약 2미터??)나 되는 여자였단다..

결국 지증왕의 부인이 되어 법흥왕을 낳았다.

법흥왕이 모친을 닮아 키크고 덩치도 장대했다 한다..

이 피를 이어받은 진평왕도 거구에 장신이어서 돌계단 섬돌 2개가 한번에 부서진 일이 있다고 한다. 

 

법흥왕이후로 바뀌는 것이

1) 무덤 위치가 왕궁 근처 평지가 아닌 산기슭으로 이동했다는 것

2) 묘제가 적석목관분에서 석실분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3) 봉분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 (아버지 지증왕의 묘인 천마총과 비교된다)

불교를 신봉하면서 겸손모드로 바뀐 것 아닐까?

법흥왕도 말년에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운(法雲), 자는 법공(法空)이라고 했다.

 

왕릉만 보고가기엔 아쉬워 주변 오솔길로 올라간다.

그런데, 기대이상의 솔숲길이 이어진다.

 

길지는 않지만 신라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길이다..

 

돌아와 왕릉을 한바퀴 돌고.. 

 

굵은 소나무도 안아보고..

 

바람없고 볕좋은 곳에 앉아 차한잔 마신다..

 

돌아가는 길, 백인거사의 글씨가 새삼 눈길을 끈다.

 

쓰레기는 길에다 버리고, 이왕이면 버리지 말고 가져가시오..

백인거사의 내공이다..

 

이제 흥륜사로 간다..

남천변에 천경림 흥륜사라 써있다..

 

절마당 가운데 자리잡은 이차돈 순교비..

그의 목을 베자 흰피가 솓았다고 한다. 그넋을 위로하는 자추사(현 백률사)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백률사  https://blog.daum.net/servan/6351730  참조 )

신라의 토속신앙의 성지 천경림에 최초의 왕실사찰 흥륜사를 건축하려던 공사는 중신의 반발이 심하였다.

527년 이차돈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고, 흥륜사는 다음왕인 진흥왕 5년(544년)에 완공된다.

불교는 향후 신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삼국통일의 초석이 되고, 호국불교의 원류가 되었다..

 

 

흉륜사는 삼국유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진평왕 때 비형랑 추종자 길달이 흥륜사 남문을 짓고 밤마다 잤다는 곳이고..

원성왕때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사랑을 나눈 탑돌이 행사가 벌어진 곳이고,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 수막새가 발견된 곳이다..

 

 

법기암(法起庵)..법이 일어난 절..

그 위상에 비해 절이 참 소박하다..

천주교 성지에 가면 엄청 정성껏 꾸며좋아 "순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던데..

불교는??

 

법흥왕과 이차돈의 마음이 붉게 피어난 것 같은 남천..

 

금당과 법당은 무슨 차이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금당이라고 하고, 법당은 법문을 설하는 장소를 뜻한다.

특히 선종계통에서는 법당을 중시한다. 

요즘은 별도로 금당을 두지않고,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과 법회를 같이 하면서 법당이라는 말로 통칭이 된단다..

 

천경림 흥륜사..

연못과 울창한 숲을 기대했지만, 도심의 평범한 절로 다가왔다.

 

 

베이스캠프 경지당으로 복귀해 굴피자를 보시받고 흐뭇하게 경주걷기를 마무리 한다..

창밖의 푸른 남산을 바라보다 문득 서브 당호가 생각났다.

블루마운틴 뷰 하우스..벽산재(碧山齋)..

 

경주걷기 2일째는 탈해왕릉에서 출발한다.

왕릉은 금강산 기슭에 있다.

금강산??

통일전 신라 오악은 동쪽 토함산, 서쪽 선도산, 남쪽 금오산(남산), 북쪽 금강산, 중앙  낭산을 쳤다.

크지는 않지만, 당당하고 족보가 있는 산이다. 

 

탈해왕..

그는 배를 타고온 이민자..

설화 속 그는 숫돌과 숯을 이용해 월성터에 살던 호공을 쫓아내고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유리 이사금이 사위를 삼고 대보로 임명하는 것을 보면, 요즘으로 치면 최신 기술을 보유한 실력자인 것 같다.

그는 일단 처남에게 왕위를 양보했다가 다음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기용한 재상이 호공이다..

이민족이지만 최신 제철기술을 보유한 그가 토착세력인 호공과 연합하여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후 신라 왕궁은 금성에서 탈해의 거처인 월성으로 이전한다.

그의 후손인 석씨는 8명이 왕위에 오른다..

 

탈해왕릉는 원래 성 북쪽 양정의 언덕에 장사지냈는데(삼국사기), 문무왕이 토함산으로 이장하였고,

이후 실전되다가 조선시대에 이 자리에 조성되었단다..

 

 

바로 인근에 표암과 재실건물이 있다.

 

표암..박바위..

표암 정상에 경주 이씨 시조 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 씻겼다는 광림대와 석혈이 있다.

옛날에는 왜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조가 많은가?

혁거세, 수로왕 등 등 

아마도,  구차하게 과거를 설명하기 싫은 경우(전쟁난민??) 하늘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냥 뮤지컬로 "과거를 묻지마세용" 

고양이는 알랑가?? ㅎ

 

표암을 올라간다.

먼저 표암 유허비가 있다..

후손이 조선 순조때 좌의정 벼슬하면서 조상을 빛내는 비석을 세웟다..

 

 

그 뒤로는 광림대가 있다.

 

하늘에서 강림한 알평을 목욕시킨 석혈이 있다..

알??

신라에는 알 짜가 많다..

등장 순서로 알평, 알영, 알지, 알천, 

알라(애기) 라는 뜻인가??

 

 

금강산 오르는 길은 순박하다..우리 집 뒷산 비슷하게 산책하는 시민도 많다..

 

힘들지 않게 오르는 정상

 

정상에 소금강산이라고 써있다.

원래 이름이 금강산인데, 북한의 금강산에 치어선지 소금강산이라고 스스로 비하하고 있다.

북한의 금강산은 삼국사기 시절엔 개골산이었단다..

비유컨대, 할아버지가 친할아버지로 바뀐 것과 비슷할라나??

177미터 높이가 무슨 상관인가?

당당히 족보대로 금강산이라 불러야 옳다.

 

사실 이번 이번 여행의 한축은 백률사를 와보는 것이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

효소왕 때 백률사 관음보살의 이적..

관련된 역사적 도량인데, 현재 모습은 너무 소탈하다..

***

(2021. 12. 16. 추가)

이차돈은 왜 순교했는가?

이부분이 항상 궁금했다.

최근 신라초기의 신성한 숲 신유림(神遊林), 천경림(天鏡林)이야기를 읽다가 의문이 문득 해소되었다,

천경림은 경주 계림 서편 남천의 북안에 동서방향으로 500미터 길이로 형성된 숲이었다.

이곳은 신라초기부터 소도처럼 신성한 토속신앙터였는데, 아도화상이 신라공주를 치료한 후 이 숲에 초막을 짓고 수행, 전도하였으나 곧 쫓겨난다.

법흥왕이 불교를 신봉할 생각으로 사인 이차돈을 시켜 이 천경림의 고목을 베어 기둥으로 삼고 그 터에 흥륜사 공사를 시작하자, 귀족들이 반발했다.

마치 경복궁을 헐고 그자리에 총독부를 짓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조치로 귀족들은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귀족들의 반발을 누르고 불교도 공인하는 2가지 효과를 노려 이차돈을 처형하는데, 그때 목에서 흰 피가 솟고 머리는 날아가 백률사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흥륜사는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서 법흥왕 때 착공하여 진흥왕 때 완공(544년)되었다.

 

 

이차돈의 피는 희색이었지만, 마음은 붉었고, 그 결실은 천년불교 왕국으로 이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조금 내려가니 위로해주는 불상이 잇다..

굴불사 석조사면불상..

 

 

기도하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모두 진지하게 만드는 엄숙함이 있다..

 

불교왕국 신라의 힘이 느껴진다.

법흥왕이 이차돈의 순교에 힘입어 불교를 공인하고, 왕부부는 출가를 한다.

선덕여왕은 80미터 높이의 황룡사 9층탑을 세워 국가의 중심으로 삼고..

국력을 모아 김춘추, 김유신의 헌신으로 삼국을 통일한다..

 

돌아오는 길에 황금 열매가 익게하는 금풍을 맞으며 간다..

 

좀 가면 표암재가 나오고, 탈해왕릉이다..

 

왕릉 앞 솔밭에 점심을 먹고 한숨자다가 소나무의 용트림에 놀라 깬다..

 

<이번 걷기> 탈해왕릉 - 표암 - 금강산 정상 - 백률사 - 굴불사지 - 탈해왕릉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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