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유구읍에서 수국축제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수국을 보러간다..

 

입구에서 수국 모찌떡을 한 박스 사들고 간다..

 

푸른 수국, 핑크수국, 하얀 수국..화려한 색감이 오감을 자극한다..

 

거기서 만난 코끼리 마늘꽃..

안그래도 공주 미르섬으로 보러갈 참인데, 제발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ㅎ

 

요 앙증맞은 붉은 수국이 이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름이 핑크 아나벨이다..

 

웅진 곰나루의 곰도 축하하러 나섰다..

 

생명의 탄생 초기..

모든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을 잡아 먹는 먹이사슬로 존재를 이어갔다..

하지만,  식물은 꽃을 피워 상생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꽃이야 말로 생명의 찬가 중 제일이다..

인간의 탐욕도 꽃을 보며 순화시켜야 한다..

붓다도 꽃을 들어 진리를 가르쳤다..

 

유구천의 피라미도 꽃구경나왔다..

 

꽃다운 생명 꽃다이 살면 꽃다운 세상이 된다..

 

색동저고리 소재인 색동비단을 만드는 유구를 비단에 수놓은 꽃같은 수국으로 특화하고 싶어서  만든 축제란다..

 

수국 속에서 벌 나비처럼 잉잉거리며 돌아다녔다..

5월의 장미, 6월의 수국..7월은??

연꽃이다..

기다려라..연꽃아..

 

 

청와대 구경을 마치고 삼청동으로 점심 먹으로 간다..

길가에 천사도 있고, 진실을 심사하는 입도 있다..

요즘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거짓말하는 유튜버는 손목을 자르는 진실의 입이 잇었으면 좋겠다..

 

청와대 이전과 개방으로 관광객이 넘쳐나니 삼청동은 대목을 맞겠다..

오늘 가는 맛집도 마찬가지..

대기 줄이 섰다..다행히 청와대 본관보다는 엄청짧다..

하지만, 식사 마치고 나오는 사람 기다리다 보니 20분은 훌떡 지나간다.. 

 

이집은 홍합비빕밥 전문인데, 제법 정갈하니 먹을만 하다..

식사후 기대어 졸만한 카페를 찾아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차한잔 시켜 놓은뒤 한참을 존다..

아침부터 올라와 북악산 언저리를 돌고 의외로 넓은 청와대를 도느라 고단했다..

단잠을 자고난뒤 기차 시간이 남아 청계천으로 간다..

 

광통교에서 청계천을 바라보는데, 오잉!!

백로가 청계천에 유유자적이다..

 

청계천 양쪽에 사람들이 구경하고 걸어다녀 상당히 위축이 될터인데..

이 넘은 배짱이 좋다..

다년간 숙달되다보니 비둘기처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리라..

아니면, MB가 만든 로봇 백로든지..ㅎㅎ

 

MB가 서울시민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청계천이 아닐까??

박통1 시절 청계천을 복개하여 고가도로를 만들어 경제성장의 상징이었으나,

청계천을 복원함은 MB가 준비한 선진국 진입의 신호탄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발전한다는 느낌은

윤통이 국민에게 돌려준 청와대를 보고는 머리로, 이성적으로  느꼈는데..

청계천 물길을 걸으면서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백로를 보고는 가슴으로,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인가??

 

죽지 않고 감옥에 있는 그에게 감사하자..

그에게도 이런 자유가 주어지기를..

 

서울에 가서 잠깐 시간이 남으면, 

아니 외국 친구가 잠시 서울을 느끼고 싶다면 청계천으로 가라..

거기에 우리의 역사와 자유가 흐른다..

 

광교로 올라와 종각역에서 1호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간다..

자유, 자긍, 자적을 느낀 하루였다..

청와대 둘레길을 걷고, 청와대 경내 관람을 위해 영빈관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궁궐터였다..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이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 빈터로 남아 잇다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곳은 경무대로 불리며, 군사훈련, 과거시험장, 친경장(親耕場)으로 활용되었다.

일제가 남산 총독관사를  1939년에 이곳으로 이전한 이후, 총독부 관사, 미군정사령관 관사, 대통령관저로 이어져 왔다.

 

영빈관으로 입장했는데, 영빈관을 구경하려고 줄 선 인파를 보고, 그냥 패스하기로 한다..

청와대 본관으로 가는데, 거기는 줄이 더 길다..

방송에서 보던  풍경을 내손으로 찍어 보고..또 패스..

이 본관 건물은 1988년 노통 1이 신축지시하여 1991년 9월 4일 완공되었다..

 

본관 옆에 구 본관터가 잇다..

조선시대부터 경무대로 불리던 곳에 일제 조선총독이 1939년 관사을 짓고 이전하였다.

그뒤 역대 대통령 관저로 경무대, 청와대 이름으로 사용되었는데, 1993년 YS가 집권한후 광화문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청와대 구 본관도 같이 철거하였다..

 

총독부가 들어서기 전 경무대 모습..

아래는 구 본관을 헐때 건물 머리부분을 남겨 옛터에 세워놓았다..

참고로 광화문 총독부 건물 철거후 머리부분은 천안 독립기념관 부지에 있다..

 

 

구 본관터 뒷편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길을 따라가니 불상이 나온다..

경주에서 오신 여래좌상..

일본 총독이 경주에서 약탈해 남산 총독관사에 모셨다가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

201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처님 백호에 구슬은 수정인가??

원래 백호는 흰털을 의미하는데, 여가서 광명을 발산하여 무량세계를 비춘다고 한다..

 

조금 더가면 오운정이 나온다..

오색구름 정자 쯤된다..

 

오운정의 글씨는 이승만이 쓴 것이라고 한다..

여름날 문열어 놓고 차 한잔 마시며 단소 한자락 불면 딱 좋은 곳이다..ㅎ

 

오솔길을 내려가면 관저옆 연못이 나오는데, 트레비분수도 아니고 벌써 동전이 수북히 쌓였다..

 

관저 정문인 인수문으로 들어간다..

 

거실은 별로 화려한 느낌은 없다.

마당에 원추리가 이쁘게 피었다..

능소화도 부티난다..

거실을 문틈으로 보니 샹데리아가 고급지다..

말많은 드레스룸이 보인다..

그 안에 옷을 다 가져갔나??

대통령 부인의 옷값 뭐가 문제인가??

자기 돈으로 사입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가 돈으로 사입었다면 출처와 내역을 밝혀 투명하게 해야 한다..

문통부부가 정보를 공개하라는 1심법원에 항소하고, 임기가 종료되자 비공개 기록으로 지정한 것은

비난받기 딱 좋은 행동이다..

 

식당에는 TV가 있다..

혼밥에는 TV가 필수지..ㅎ

 

관저를 나오는데 향나무의 모습이 복잡한 심사를 대변한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절대반지를 낀 것처럼 변하는 사람의 심사를..

 

 

길은 계곡으로 안내한다..

이런 운치있는 길이 이어지다니..ㅎ

 

백악산 아래 백악정을 내려와 백악교를 건넌다..

오늘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계곡건너 멋진 한옥은 상춘재란다..

 

이런 계곡에 맛들이면 용산으로 이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윤통이 청와대 안들어가고 이전하겠다고 우긴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상춘재..항상 봄같은 집...

이런 곳에 있으면, 힘든 나날을 보내는 국민의 형편을 알수 없으리..

알아도 외면하고 싶겠지..

 

해태가 녹지원을 노려본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대통령은 당선의 댓가로 이런 곳에서 호사를 누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기 편만을 위한 정치를 해서도 안된다..ㅎ

그렇게 춘추관을 나온다..

춘추필법으로 전임대통령의 공과를 역사의 심판에 올려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들어간다..

 

윤통..

청와대 개방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청와대 관람 추첨에 떨어지고, 6. 12.부터 선착순 접수로 바뀐뒤 6.18. 12시 관람을 예약했다.

하지만, 미리 서울에 올라가 일단 청와대 둘레길 부터 걷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춘추관으로 가자했는데, 몇백미터전부터 차량통제하여 하차..

 

청와대 둘레길은 춘추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청색 등산로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청와대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북악산..감회가 새롭다..

북악산이 들어간 교가를 부르던 세대라 보니..ㅎ

 

이 문옆으로 청와대 담장을 따라 둘레길이 시작된다..

대략 오르막 1.5Km, 내리막 2km를 걸을 예정이다..

 

 

제법 가파르게 올라 가는 길..

북악산 정상이 보이는 곳에 심은 나무..

윤통이 청와대 개방을 공약으로 당선되자, 문통이 부랴 부랴 둘레길을 개방하면서 심은 나무..

문통부부의 이름이 적힌 표지석이 있다..

문통도 청와대에 나와 광화문에서 집무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일단 들어가보니 왕처럼 살고 싶었나 보다..

청와대에는 눈을 멀게하는 반지가 있는 모양이다..

땀을 딲으며 쉬는이 곳이 백악정 앞이다.. 

여기서 담장을 끼고 칠궁으로 하산해도 되지만, 우리는 만세동방까지 갔다 오기로 한다..

 

백악정에서 바라보니, 남산이 남산답게 보인다..

 

 

여기서 길은 갈라지는데, 만세동방을 보고 다시 이곳으로 와서 청와대전망대로 갈 예정이다..

 

남산이 긴 허리를 보여주고..발아래는 광화문이 전개된다.

 

그런데, 웬 고바위??

본격적인 등산코스다..

 

다행히 길이 만세동방이 가깝다..

 

이 약수는 이제는 못먹는다..

 

다시 돌아와 청와대전망대로 간다..

 

청와대 담장과 경복궁, 광화문, 남산, 멀리 관악산 까지 한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하가 바로 이 손안에 있소이다..ㅎㅎ

 

넌즈시 인왕산에게 안부를 전한다..

그대처럼 머리가 벗겨지는 나이에 이르니, 말년에 인왕제색도를 그린 정선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청와대전망대에서 보니, 신무문과 청와대 정문이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정말 청와대 터는  천하의 요지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왕조가 끝난지 100년도 넘은 지금..민주국가의 중심이 되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다시 백악정으로 돌아와 칠궁쪽으로 내려간다..

 

긴 돌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여기가 청와대 출구다..

 

이어서 청와대에 붙어잇는 칠궁으로 간다..

 

원래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는 묘 육상궁만 있었는데...

고종과 순종 때, 인조의 할머니 인빈 김씨,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 등 7명의 왕의 생모가 되는 후궁을 모시는 재실 모아 함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칠궁을 둘러보고 영빈관 앞으로 간다..

 

<이번 걷기> 청와대 춘추관 - 백악정 - 만세동방 - 청와대 전망대 - 칠궁 약 3.5km

  

아이슬란드 트레킹팀 총집합하는 날..

원자력연구소 앞 주차장에 집결하여 적오산을 오른다.

 

계단구간에서 어제 걷기로 덜 풀린 다리가 힘들어 한다..

 

적오산 능선에 오르니 도덕봉과 옥녀봉이 아파트를 한아름 안고 웃으며 반겨준다..

 

적오산을 내려가야 금병산 줄기인 용바위로 오른다..

 

금병산 2봉 일광봉에 용바위 전설이 적혀있다..

삼룡 중에 2용이 싸우느라 승천이 늦었다는 이야그..

 

용바위 삼거리에서 보덕봉 방향과 갈린다..

 

금병산 능선에 오르니 갑하산이 아파트를 한아름안고 웃으며 반긴다..

요즘 산들도 아파트 투자가 유행인가 보다..ㅎ

 

여기는 바람재(일출봉) 갈림길이다..

 

오늘 걷는 것 보니 아이슬란드에서 4박5일 트레킹할 때 나만 걱정하면 되겠다..ㅎㅎ

 

제6봉 연화봉이다.

수운교는 동학의 일파로, 1923년 서울에서 개교하였다가 1925년 이곳 금병산 아래 추목동 숯골로이전하여 후천 5만년을 다스릴 도량으로 천단 도솔천궁을 건립하였다는 이야기가 비석에 써있다.. 

 

금병산 정상석이 잇는 곳이 제7봉 운수봉이다..

 

수운교 천단을 보려면  8봉 직전에 내려가면 된다..

 

9봉 감찰봉을 지나면 12봉 노루봉이 지척이다..

 

11봉 대법봉도 확인하고..

노루봉에서 공군대학아파트로 하산하면 된다..

 

은혜를 복으로 갚는 노루봉에서 아이스란드 구호를 크게 외쳐본다..

아이!  슬란~~

금년에는 무사히 다녀와서, 삼년동안 코로나로 정체된 해외 트레킹의 한 페이지를 넘겨보자..

 

걷는 동안 쉴때 마다 아이슬란드 트레킹 준비물을 논의한다..

침낭(춘추용), 베낭(40-50리터), 오로라 감상을 위한 방한복   등등

 

마음 속에 붉은 꽃씨가 심어졌다.

아이슬란드에서 만개하도록..

 

내려와서 보니 신세계백화점 뒤로 솟은 저 산은??

좌 식장산, 우 만인산인가??

 

<오늘 걷기> 원자력연구소 입구 주차장 - 적오산- 용바위 - 금병산 12봉- 노루봉 - 공군대학아파트 약 8km

드림빌더의 원래 계획은 차 1대를 신풍령(빼재)에 두고, 1대는 무주리조트로 가서 출발하는 것였다.

현장에 가보니, 빼재 올라가는 구간은 공사중이라, 계획을 수정하여 차 1대를 송계사 탐방지원센타에 두고, 무주리조트로 향한다..

결과적으로 잘 된거다..물론 송계사 코스로도 가지 않는 것이 더 좋은거지만..ㅎㅎ

 

일단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오른다..

비수기인 요즘은 주말예약없이 탈수 있다..

그러나, 다른 예약을 확인해야 한다는...ㅎ

 

설천봉 상제루는 겨울 아닌 계절에 보니 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요즘은 챙겨야 할 예약은 향적봉 예약제다..

다행히 하루 1500명 예약인데, 500명 정도 예약된 상황이라 대표 1인이 현장접수하고 들어갈 수있었다..

 

뒤돌아보니 설천봉이 내려다 보인다..

 

향적봉..내 등산 인생의 첫사랑이다..

내 발로 1600고지에 올라 손잔등길을 바라보던 순간..거의 이수지급이라고 할 수잇다..

 

중봉 뒤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대피소를 지나니 길가에 우박이 구슬처럼 가득하다.

어제쯤 이 길을 지난 사람은 이 우박을 맞았을까??

거의 부상급인데??

 

고산의 나무는 도사처럼 바위에 뿌리를 감고 산다..

 

드디어 중봉에서 손잔등길을 바라본다..

언제나 와서 봐도 좋다..

 

손잔등길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무한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제 손잔등을 올라타고 백암봉으로 향한다..

 

오늘 꽃길의 주인공은 꽃쥐손이다..

잎의 모양이 쥐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쥐 꼬리는 몰라도 쥐발을 본적이 별로 없어서..ㅎ

 

백암봉에서 좌회전하여 횡경재로 간다.

횡경재 거쳐 송계사 탐방센터까지 6.2km를 가야한다..

 

횡경재 가는 길은 백두대간인데, 거의 조망이 없는 오솔길이다..

 

잠시 조망이 되는 곳에서 뒤 돌아보니 백암봉이 저만치서 내려다보고 있다..

 

다시 터널같은 숲길을 가는데, 구녕난 잎들은 어제께 온 우박 탓일까??

 

 

2-3번 오르락 내락하며 지루하게 횡경재에 도착햇다..

그동안 섬산행에 너무 중독되었나, 조망없는 숲길에 답답증을 느낀다..

 

횡경재에서 송계사가는 길은 고도 700m를 3km에 걸쳐 내려가야 한다..

왕년에 피아골계곡 8.5km 내려간 이후 최대 난적을 만난격이다..

하지만, 이리 하산하지 않고 빼재(신춘령)으로 갔으면 봉우리 2개를 넘으며 5km를 더 가야하니, 덜 고생한 걸 위로로 삼아야 하리..ㅎㅎ 

 

급경삭간을 지나며 너덜길이 죽 이어지니 한시도 조고각하 화두를 놓치면 안된다..

 

식당예약시간도 잇고, 다리도 피곤하여 100미터 거리의 송계사는 들여다 볼 생각없이 냅다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주차장에 가보니, 육십령을 출발해서 이곳으로 하산(25KM)하는 백두대간팀을 기다리는 차량도 있더라..

참 징한 사람들도 많다..ㅎ

 

<오늘 걷기> 무주리조트 곤돌라 승강장 - 설천봉 - 향적봉 - 중봉 - 백암봉- 횡경재 - 송계사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약 11km  

봄 가뭄을 해갈 시켜주는 단비가 2일째 계속된다..

아침 일찍 경주를 떠나려고 마음 먹엇는데, 일기에보를 보니 오전에는 소강상태란다..

그래서 '비내리는 금강산"을 걸어보자는 말에 혹해 서둘러 길을 나선다..

헌강왕릉 옆 한정식 "미담" 표지판 옆길으로 올라간다..

 

작은 산이지만 길 초반에 가파르게 올라간다..

비는 그치고 길은 촉촉하고 녹음은 더 푸르니 걷기 좋은 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이제 여유있게 룰루랄라 간다..

가던 방향으로 계속가면 금강산 백율사가 나온단다..

그런데, 드림빌더가  약산을 지나쳤다고 해서 다시 돌아간다..

 

쏭알 쏭알 싸리잎에 은구슬..싸리꽃도 비에 젖었다..

 

좁은 산길 이리저리 돌다보니 약산 표지판이 보인다..

271m..

어찌보면 금강산 약산봉이라고 해야 맞다..

2천년전에 서벌(서울) 월성에 금강산이 있었다..

800년전 고려시대 강원도 금강산이 떡상하는 바람에 변두리 경주 금강산은 소금강산으로 격하된다..

1만2천봉를 거느린 현 금강산보다 작더라도  2봉정도 거느린들 누가 뭐라 하겠나??

 

영변의 약산만 알았는데..약산의 원조는 경주에 잇었구나..

조망이 없는 정상이라 바로 돌아선다..

 

올 첫 나리를 만났다..샤워를 마친 멋진 모습으로..ㅎ

 

이제 중간 갈림길에서 북군동 방향 하산루트로 들어선다..

 

드디어 오늘 조망처가 나타났다..

보문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 약산 건너편으로 보문단지가 전개된다..

 

대명 소노벨이 보이고..

 

보문호 우측으로 황룡사9층탑을 닮은 중도타워가 보인다..

9층탑 너머로 토함산엔 비구름이 가득하다..

 

하산길에 마주친 산딸기..수다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

 

쏭알 쏭알 싸리잎에 은구슬..

 

중도타워 9층탑이 자꾸 눈길을 잡는다..

1600년전 월성 한가운데 80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황룡사9층탑..

만백성의 구심점이 되엇을 것이다..

 

오동나무도 새 열매을 품었다..무슨 야자 열매처럼 귀엽다..

 

오솔길은 북군동 아미새농원 옆에서 끝난다..

 

차를 몰고 동천동 헌강왕릉으로 향한다..

 

헌강왕릉에서 오늘의 들머리 약산을 바라본다..

경주 소금강산지구에 속하기는 하는데, 지도상 표시로 보니 약산 둘레를 걸은 것이다..

 

 

헌덕왕은 동생과 함께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하느라 애쓴다..

재위 8년만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동생이 흥덕왕으로 즉위한다..

동생 흥덕왕이 집권한 후 신라는 잠시 안정을 찾는다..

흥덕왕 편 https://blog.daum.net/servan/6352235 참조

 

왕릉 주변에 석난간을 설치한 모습이 특이한다..

원래 모습이 아니고 복원하면서 설치한 것 아닌가 한다..

북천의 범람으로 왕릉이 훼손되어 복원시 12지신상은 몇개 남지 않은 것만 사용했다고 한다..

 

1400년전에는 볼수 없었던 개망초가 왕릉을 장식하고 있으니 제행무상이로다..

 

<오늘 걷기> 동천동 입구 - 약산 - 북군동 아미산농원입구, 실제거리는 3Km 정도인데, 약산 찾으러 왔다갔다 하느라 5Km 

<참고도> 아래 사진처럼, 동천동입구에서 소금강산 백률사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음

경주 선덕여왕둘레길은 선덕여왕릉 - 황복사지3층석탑 - 진평왕릉 - 명활산성으로 이어지는 10km 구간이다..

이곳을 3-4번에 걸쳐 오늘에서 완결했다..ㅎㅎ

1) 선덕여왕릉 - 진평왕릉 : 오늘 구간 

2) 진평왕릉 - 명활산성 : https://blog.daum.net/servan/6352126

3) 진평왕릉 - 황복사지 : https://blog.daum.net/servan/6352148

 

오늘은 영남 알프스 가지산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해서, 숙소 경지재에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논란끝에  코스를 시부거리 등산으로 바꾼다.

 차 1대를 날머리인  석굴암주차장에 파킹하러가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 차량은 밀리고,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없어 보여 다시 차를 돌린다..

내 머리 속에 밀린 숙제 "선덕여왕둘레길"이 떠올랐다..

<그래서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긴거다..>

선덕여왕릉으로!!

그런데, 도중에 드림빌더가 신문왕릉에 들리자고 우긴다..

최씨 고집보다 더 센 남로당 고집을 당할 수 없다..ㅎㅎ

 

 

 

신라 전성기의 왕릉답게 대문까지 번듯한 홍례문이다..

문무왕의 아들로, 국학을 세우고, 9주 5소경을 설치하고..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주어 귀족, 관료를 통제하고..

조선의 성종 비슷한 위상이다..

 

 

신문왕은 즉위초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제압하면서 대당전쟁시절 비대해진 군부세력 기를 꺽는다..

그리고 김흠돌의 딸인 왕비를 폐출하고, 새로 김흠운의 딸 신목왕후를 세운다. 

그렇게 그는 왕권강화의 시동을 걸었다..

김흠운은 요석공주의 남편이었으나 영동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이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신목왕후가 된다..

요석공주는 원효와 사랑에 빠졌고..

신라 왕족의 족보는 복잡하다..ㅎㅎ

 

 

릉주변에 받침석이 특이하다..

그중 "문(門)가 서있는 곳이 관이 들어간 입구로 추정한단다..

 

신문왕릉에서 나와 낭산 아래 사천왕사로 간다..

 

왕릉 자부송에게 물었다..

왕릉 자부송(自負松)아 네 어이 누웠는가?

광풍(狂風)을 못이기어 부러져서 누웠노라.

가다가 양공(良工)을 만나거든 나 예있다고 하구려.

 

근데, 신문왕릉에서 사천왕사 가는 길은 대로를 따라 가는 길이라 걷기는 비추..

 

단비가 논에 심은 모를 춤추게 하고, 황소도 기운나게 만든다..

오늘 하루종일 와야 땅속까지 스며들겠지..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좋은 비가 시절을 알아 내리니

소리없이 만물에 스며드네

 

낭산 기슭에 세워진 사천왕사..

문무왕 14년(674년)..당의 웅진도독부를 수복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한 신라를 정벌하려고 당이 호시탐탐 침공을 시도하던 시기..

문무왕이  명랑대사와 상의하니, 호국사찰 사천왕사를 짓고 밀교 비법으로 기도하여 부처의 가피를 받아 적의 침략을 방어하자는 건의를 받는다..

그리하여 신령한 숲 낭산의 신유림 지역에 사천왕사를 짓기로 한다.

하지만, 건축에 시간이 걸리니, 임시로 절터에 비단 장막과 초막을 짓고 명승 12인과 함께 밀교의 문두루비법으로 기도를 한다.

그 무렵 침공을 준비하던 당의 군선이 풍랑으로 침몰하여 해로를 통한 당의 침략은 좌절되고..

그뒤에도 675년 매소성전투, 676년 기벌포 해전 승리까지 사천왕사는 나당전쟁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결국 사천왕사는 문무왕 19년 679년 완공되었다..

조선시대까지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무렵 소실되었다..

 

 

 

녹유신장(활을 든 신장)

사천왕사에 있던 녹유신장 걸작이 복원되어 다행이다..

승려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사는 경덕왕 시절 이 절에서 수행하였다..

 

사천왕사 동귀부..사천왕사 사적비가 잇었을 것으로 추정

 

사천왕사 서귀부..문무대왕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정조 20년(1796년)경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문무왕릉 비편이 처음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 일부 복원된 문무왕비에서, 문무왕은 자신의 조상이 흉노왕 김일제라고 밝히고 잇어 충격을 준다..ㅎ

 

사천왕사터

 

폐사후 절옆으로 일제가 동해남부선을 개설하면서 강당터가 휘손되었다..

이제 다시 철길이 폐선되자 절터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굴다리를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간다..

 

신라초기부터 낭산일대 숲을 신유림이라 하여 보전하였는데..

근처에 거문고 명인 백결선생의 집..최치원의 독서당이 잇었단다.

 

 

지금도 솔숲은 신비함을 준다..

 

우중에 바라보는 경주 남산도 아련하고 신비하다..

 

선덕여왕..

진흥왕의 영토확장 정책의 후유증으로 백제 무왕, 의자왕에게 계속 공격당하는 세월을 보냈던 여왕..

내부적으로는 여자 임금에 대한 반감세력을 다스려야 했다..

그래도 슬기롭게 황룡사 9층으로 백성의 구심점을 만들고, 김춘추, 김유신 등 후계그룹을 탄탄하게 키워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앗으니 훌륭한 군주다..

 

낭산의 2봉우리 중 남봉에 선덕여왕릉이 잇다..

 

잠시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멀리 월성이 보인다..

 

접시꽃과 잠시 눈맞춤을 하고 가다보면..

무덤이 있는 넓은 터가 나오는데, 그 무덤 뒷쪽으로 낭산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우측 오솔길로 진행하다보면..

 

의상사 입구로 나온다..

의상사??

근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에 황복사가 건재하던 시절, 청년 의상대사가 수행을 한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을 살려 의상사를 지었나 보다..ㅎ

 

골목길에서 만난 앙코르와트식 불상..

 

신라갤러리 표지판을 지나면 비에 젖은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난다..

 

그런데 석탑이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에 젖은 삼층탑이 한맺혀 우는데

흐느껴 불러봐도 목놓아 불러봐도 대답이 없네...

https://youtu.be/b7hwuXfLDro

 

탑에 무슨 사연이 있는가??

 

***

1942.6.24. 이 탑을 발굴했는데, 탑밑에서 금동제 함이 발견되엇다.

판독결과, 함뚜껑에는 신문왕이 692년 죽자, 신목왕후와 효소왕이 선왕의 명복을 빌면서 이 탑을 세웠다고 내용이 써있었다..

그래서 이탑이 황복사 삼층석탑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탑과 황복사는 신문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임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 근처(낭산 동쪽)에 신문왕릉이 이었야 한다..

왜냐면 사서에 신문왕을  낭산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황복사와 가까이 있는 진평왕릉이 신문왕릉이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있다..

그러면, 낭산 남쪽의 신문왕릉은 누구 왕릉인가??

신문왕의 아들 효소왕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있다..

(사서에 효소왕을 망덕사 동쪽에 장사 지냈다고 나오는데, 망덕사의 위치가 사천왕사의 남쪽임은 사서에 나오고, 따라서 망덕사 동쪽은 현 신문왕릉과 일치한다는 말이다.)

 

참고: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607/113813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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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황복사 삼층탑은 신문왕릉의 위치를 제대로 밝혀달라는 한많은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처음에 드림빌더가 신문왕릉부터 가자고 우긴 이유를 알 것같다..

그가 위 기사를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저만치 진평왕릉(아니 신문왕릉인가??)을 바라본다..

왜 이리 경주 왕릉은 위치가 뒤죽박죽이 되었는가??

조선 중기에 조상왕릉찾기 열풍이 불때 각 문중이 정한 위치가 지금껏 내려오기 때문이란다..

이제라도 발굴조사를 해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 볼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 보문들을 지나 진평왕릉(또는 신문왕릉)을 향해 간다..

 

진평왕릉(또는 신문왕릉)을 지나자, 빗속에 두꺼비가 나타났다..

 

선덕여왕 5년(636년) 5월 두꺼비와 개구리가  떼를 지어 궁성의 서쪽 옥문지(연못)로 모여들었다. 

여왕은 이 말을 듣고 신하에게, 
"두꺼비와 개구리는 눈의 생김이 성난 것 같으니, 이것은 군사들의 모습을 닮은 것이다. 내가 일찌기 서남쪽 변방에 옥문곡이라는 골짜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의 징조를 보니 반드시 백제군이 몰래 그곳에 침범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장군 알천과 필탄 등에게 명하여 이를 수색하여 무찌르게 하였다. 알천 등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보니, 과연 왕의 말과 같이 백제의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5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옥문곡에 숨어 있었다. 알천 등은 적을 습격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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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곡은 지금의 건천 여근곡이다..

참고 https://blog.daum.net/servan/6351728

 

경주..천년의 고도..삼국유사의 도시..

두꺼비를 봐도, 까마귀를 봐도, 석탑을 봐도, 기와조각을 봐도 역사가 튀어나오는 곳이다..

 

<오늘 걷기> 신문왕릉 - 사천왕사지 - 선덕여왕릉- 낭산 오솔길 - 황복사지 - 진평왕릉 약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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