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조치원 복사꽃을 보려고 아침 일찍 나선 길이었다.

그동안 도시화로 제대로 된 도원 경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누가 도원 성당 뒷편이 지난주 멋지다 해서 

급한 마음에 달려갔는데..ㅜ.

복사꽃, 배꽃은 다 떨어지고 없었다..

조치원 복사꽃 보려면 4월 2주에 와야한다는 사실..

어쨋거나, 무심히 오봉산을 걷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차를 오봉산 주차장에 대면, 강화 최씨 숭모단과 마주친다..

강화 최씨의 시조를 모신 곳이다..

코메디언 최양락이 이 집안 후손이다..

 

입구엔 산철쭉이 만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어디선가 딱 딱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구멍 속에서 꼬랑지만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잠시후 고개를 내밀고 나오는 녀석..

크낙샌가? 딱다구린가??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나중에 고복저수지를 거쳐 이 곳으로 올라올 예정이다.

 

 

화려한 산철쭉과 달리 은은한 참철쭉을 만났다.

 

철쭉..

한자어 척촉(제자리 걸음)에서 유래한다..꽃에 독성이 잇어 양이 이 꽃앞에서 머뭇거린다하여 척촉이라 하다가 철쭉으로 발음이 변했단다..

선홍색 철쭉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가 참철쭉이다.

전에 가부장 시절에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요즘 처가중시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친할아버지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연달래..

진달래와 비교해서 부르는 토속말..이말을 더 자주 써야겠다.

 

개꽃..

먹을 수 있는 진달래는 참꽃, 못먹는 철쭉은 개꽃으로 불렀다..ㅎ

 

이 꽃은 근세 서양으로 반출되어 영국왕립원예학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꽃이다.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참 곱다, 참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제 음성 사곡2리에서 스쳤던 인연이 오늘 오봉산에서 찐하게 이어진다.

전에 오봉산에서 보긴 했어도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날 줄은 몰랐다..

 

득템..

생각지도 못한 철쭉, 참철쭉, 연달래의 천국을 보게 될줄이야..

앞으로 4월 3주는 오봉산 걷기로 픽스한다..ㅎ

 

이런 이쁜 곳에 설화가 없을 수 없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명주(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도중 수로부인이 절벽에 핀 철쭉을 보고 꺽어 달라고 했다.

이 때 한 사람이 용감하게 절벽을 올라 꽃을 꺽어 바치며 헌화가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자주빛 바윗가, 암소잡은 손 놓게 하셨으니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철쭉꽃의 전설..이런 노래를 누가 만들어 불렀으면 좋겠다.

송가인이 부르는 노래처럼..부드럽고 달콤하게..

https://youtu.be/Ioz5JyVN0bY

 

오늘 오봉산에도 백만송이 연달래가 피엇다.

 

오봉산 정상에 올랐다.

참철쭉에 빠져 시간이 순삭이다..

 

정상 전망대에 새먹이통이 잇다.

새들이 연신 들락거린다..저넘들 배터지겟다..

 

전망대 북녁에 운주산이 언제 한번 오시요하고 초청한다.

하긴, 가본지 오래되엇다..

 

고복저수지로 가는 길에도 참철쭉이 이어진다.

황홀함에 젖어 젖어 구름에 달가듯이 발걸음이 이어진다..

 

표지판 제작자에게..

용암저수지 = 고복저수지 라고 알려주기 바라오..ㅎ

 

 

이런 아름다이 호젓한 길에는 그녀의 3집 신곡 연가(戀歌)가 딱이여~

https://youtu.be/ajzHkntBJMI

 

그녀의 노래를 듣더니 연달래가 핫핑크로 바뀌었네..

기적인기라~~ ㅎㅎ

 

 

노래가 다할무렵 하산 길도 끝나간다..

 

카페 그대잇음에..옆으로 나온다..

한 여름에 오면 카페에서 눈꽃빙수라도 먹으면 좋겠다..

 

바로 고복저수지 데크길로 이어진다..

 

거기서 아침에 못본 복사꽃을 만났다..

 

이길은 벚나무가 많으니 벚꽃 필때와도 장관이겠다..

고복저수지..출세햇다.

왕년에 저수지 생기기전에 어머니와 걸어갔던 개천길..

이제 그길은 물속에 잠겼어라..

잠시서서 기도를 올린다..ㅎ

저수지를 지나면 차도를 따라 몇백미터 가야 불일선원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갈림길에서 1.5km가면 불일선원이다.. 

문제는 포장길에 땡볕이라는 거다..

아직은 4월 날씨라 견딜만 하다..

 

길가의 흰꽃..배꽃일까??

다음에게 물었더니 산사나무꽃 확률이 90%란다..

아가위라고도 하는데..

밤꽃향기가 남자의 거시기 냄새라면, 산사나무꽃 냄새는 여자의 거시기 냄새란다..ㅎㅎ

이 열매로 담근 술이 산사춘이라는 것 처음 알았다..ㅎ

 

불일선원에 가까워올 무렵  복사꽃이 마라톤의 승전을 알리러 온 병사처럼 지난주 화려하게 피어낫음을 증언하고 숨을 거두려 하고 있다..

그대 잘가라..

 

불일선원을 지나면 시원한 그늘 임도다..

정상이 아니라 하산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 까지는 1km도 안된다..

 

좋은 벤취를 만나 자리펴고 그녀의 연가를 들으며 점심을 먹는다..

https://youtu.be/Ioz5JyVN0bY

 

 

다 내려와서 솔숲 들마루에 누워 한숨 청해본다..

꽃과 노래 그리고 행복한 걷기..

 

<오늘 걷기> 오봉산 주차장 - 정상 - 고복저수지 - 조각공원-  불일선원 - 등산로 하산길 - 주차장  약 10km

10몇년을 걷다보니 계절에 딱 맞는 명품길 리스트가 딱 나온다.

복사꽃 보려면, 4월 3주에 이곳으로 와야 한다.

<내비>에 사곡2리문화회관 (음성군 감곡면)..을 친다.

회관 앞 공터에 도착하자,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복사꽃이 환영해준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 시즌에는 복사꽃을 흉내내는 것이 유행인가??

 

고목 좌측으로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라일락 향기가 코를 찌른다..

워매, 복사꽃과 한번 해보자거여~

 

그뿐이 아니다. 

고고한 배꽃아가씨도 나와서 반길줄이야..

파워 블러거 온다고 소문낫나?

 

오늘은 동행의 다리 부상 땜시로 조금만 걸을 요량으로 거꾸로 관음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으잉?? 가는 날이 장날이고, 노쳐녀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고..ㅎ

길 공사중이다..애고..

이 사람들아!! 복사꽃 시즌이 끝나고 하던지, 그전에 끝내던지..ㅎ

 

어찌되었건, 꽃만 이쁘면 된다..

 

오매, 무릉도원은 쏴라있네..ㅎ

 

 

조팝도 소문듣고 나와부렀네..

뭐일이랴~ 일단 환영부터 해부러..ㅎ

 

사과꽃도 피었네..충주나 가야 볼 수있을 줄 알았는데..

참 반갑구마이..ㅎ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이 노래 가사가 거짓말이 아님을 알겠다..

 

1600년전에 도연명이 무릉도원 피셜 한마디 한 이후로

얼마나 많은 글쟁이들이 풍류를 핑계로 봄빛 속을 쏘다녔던가??

 

날씨와 눈이라도 무릉도원을 즐기면서 세상시름을 잊으면 그것도 공덕이다..

복사꽃 뒤에 신록이 배경으로 서있지만, 그린매직이 더 신령스럽다.

그린은 언제나 옳다는 카피처럼..

 

다리 핑계 대신에 불쑥 쑥캐고 싶다는 이유를 대는 동행을 두고 나만 관음사로 간다..

 

꽃들의 공양을 받으셔서 그런지, 동전 공양을 받으셔서 그런지, 표정이 매우 좋으시다..

 

산철쭉은 아직이지만, 참철쭉이 제철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고편인 줄 이때는 몰랐다..

 

예진아씨처럼 참 곱기도 하다..

너만은 마약하지 말그레이..ㅎ

 

탑등도 몰래 그녀를 연모하고 있다는..ㅎ

 

천년의 고생 끝에 등룡문에 올라 여의주를 입에 무신 이무기님 축하드립니다..ㅎ

용님들은 검수완박의 검사꼴나는 일은 없겠지요??

 

이번 꽃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절집에 모여 극락왕생을 빌고 잇다..

니 인생도 얼마 안남았다..알간?? 

 

둘레길로 올라간다..

 

양지꽃이 넙죽 절하며 반긴다..

아! 이 친구야, 나는 부처가 아니여~

나도 맞절하며 얼릉 사진을 찍는다..ㅎ

 

둘레길을 걷다가 혼자 두고온 동행이 걱정되서 돌아선다..

 

도원으로 돌아오니  모두 봄놀이에 바쁜데, 민들레 집안만 출가 준비로 바쁘다..

키우긴 엄청 잘키웠네..

도원이 8학군일쎄..

 

이 노친 강아쥐..복사꽃이라도 따가는 줄 알고 엄청 짖는다..

야야, 그러다 목쉰다..타이르니

멀쓱하게 돌아선다..

 

동행은 좌이화 우도화 배석 시킨 쑥보살이 되었네

법력이 원만하여 봉지에 쑥이 가득하다...

"도적이야" 소리가 절로 난다.

 

동행왈,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物各有主(물각유주) 제각기 주인이 있어,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

들판의 쑥이라 하는 것은 
取之無禁 (취지무금) 이것을 가져도 금할 이 없고,
用之不竭(용지불갈) 이를 쓴다고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것이야 말로 조물주가 주는 무진장이니
而吾與者之所共樂(이오여자지공락)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헉.. 언제 이리 말빨이 늘었지..

 

이제 쑥으로 신통력이 쑥쑥 늘은 쑥보살이 이제 좀 걷자고 나선다..

모시고 내려오다보니, 처음 보는 자작나무숲길이 생겼네...

둘레길 중간으로 올라가는 길인 것 같아서 고고한다..

 

정말 자작나무숲이 잇다..

 

임도4거리가 나오는데, 우회전하여 임도 출구로 간다..

 

다람쥐도 봄소풍나왔다, 먹다 남은 과자 부시래기 주니 부끄러워 얼굴도 안 내민다..

음, 너 참 촌놈이구나?? ㅎ

 

낚시 인구가 천만이라더니, 여기 낚시터엔 아파트까지 생겻나베..ㅎ

 

내려오는 길에 쑥보살의 법력이 동하사 2차 무진장 채집소동을 벌인다..

나는 옆에서 자리 깔고 누워 송가인 3집 신곡 무한 재생으로 맞불을 놓는다..

서로 윈윈이니 불만은 없다.

https://youtu.be/lOy-v-OAkps

 

드디어 원만구족한 쑥보자기를 들고 부처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는 쑥보살을 

모과꽃이 환송한다..

내년에도 와서 쑥 한보따리 들고 가세요..

 

돌아오니 도원은 화가들이 차지햇다..

오늘의 도원은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겠다..

 

 

<오늘 걷기> 마을 문화회관 - 관음사, 자작나무 숲길 -임도 - 문화회관 약 5km

산혜암을 지나 정상으로 계속간다.

진달래가 엔딩이 아니라 엔드리스로 이어진다.

 

울퉁불퉁 바위들이 모여선 장소..

용봉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전설이 있다.

백월산과 용봉산이 중간지점 마을에 사는 노래 잘하고 이쁜 송가인 닮은 소향아씨를 두고 돌싸움을 벌였다.

백월산은 힘이세서 돌을 엄청 던져 용봉산을 이기고 소향아씨를 차지했다.

그래서 백월산보다 용봉산에 돌과 바위가 많아졌다는 이야그 올씨다..

 

중턱에 이르니 멀리 예산 봉수산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홍주경기장이 보인다.

경기장 뒷편에 왕년에 활쏘던 홍무정이 잇는데..ㅎ

 

막판 스퍼트..수직계단을 살곰 살곰 올라간다..

 

팔각정에 오르면 꽃과 나비가 너울 너울 춤추는 화접세상이다..

https://youtu.be/k1AiXrESNTA

 

 

얼굴바위..

정말 닮앗다..

 

코뿔소 바위..

코부분이 매력 포인트..ㅎ

 

이 코뿔소는 문신을 하고 꽃을 들고 사랑을 고백한다..

누규??

안면도(安面島)??

 

선녀가 우주선 타고 내려왔나?

우주선 불길로 땅이 정화되었나??

아니면, 선녀가 번질나게 내려와서 그런가???

 

그 뒷바위가 엄마에 기댄 아기 모습이라..

여기서 빌면 아이가 생길 것 같기는 하다..ㅎ

 

홍후만전묘..청난사라고도 한다.

홍주 목사 홍가신을 모신 사당이다..그의 호가 만전(晩全)이다

오늘 보니, 사당앞에서 무녀인듯한 사람이 불면증 환자를 치유하는 소박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홍주목사 홍가신은 백월산신이 되었을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 1596년 부여 홍산에서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잇다.

이몽학은 의병 모집 명분으로 세력을 모아  7월 6일 부여 홍산에서 거병하여 부여 임천, 청양, 정산, 대흥 등 3일만에 6고을을 점령한뒤 7월 9일 승세를 몰아 5천병력을 이끌고 내포의 맹주 홍주성을 공격한다.

홍주목사 홍가신은 인근 보령 오천성에 주둔하는 수군절도사 최호의 병력을 끌어들이고 남포, 보령의 군사도 집결시켜 방어에 들어간다.

또한 충청순찰사 종사관 신경행, 무사 박명현, 임득의 등 무사와 함께 평소 활터에서 수련하던 활꾼 수백명을 차출하여 만전의 준비를 갖춘다.

이윽고, 초반에 박명현이 출전하여 반란군 선봉을 급습하여 기세를 꺽고, 이어 대치 상황에 이르자, 밤중에 총통과 화전을 쏘아 반란군 막사와 민가를 불태우자 적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상황에 비까지 내리자 기세가 꺽인 이몽학이 7월 11일 새벽 퇴각한다.  이때를 노려 대반격에 나서니 반란군은 괴멸되고, 이몽학은 부하에게 피살되며 반란은 진압된다. 

 

***

반란 평정후 청난공신을 책봉하는데, 

홍주목사 홍가신이 1등 공신, 충청수사 최호, 선봉으로 활약한 박명현이 2등공신, 전 병사 신경행과 임득의가 3등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이들은 임진왜란시 호성공신, 선무공신 등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홍가신..

그는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고, 퇴계 이황에게도 배운 사람이다.

이순신과 사돈관계이다(홍가신의 아들과 이순신의 딸이 결혼햇다)

광해군 2년 형조판서를 끝으로 퇴임하여 아산에서 살았다.

 

최호

충청수사 재직시 청난공신이 된후 정유재란시 충청수사로 원균휘하에 참전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박명현

무과급제자로 이몽학의 난때 홍주성에 참전하여 반란군을 청양까지 추격하여 괴멸시킨 공로로 청난공신이 된다.

그는 광해군 때 임해군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죽고, 공신첩도 박탈된다.

 

임득의

청난공신이 된후 경상우도병사를 지낸다.

 

신경행

당시 충청순찰사 종사관이었는데, 홍주성에서 공을 세워 청난공신이 되고, 광해군 때 충청병사를 지낸다.

 

 

이몽학의 반란 여파로

전국 의병장들이 의심을 받게 되고, 이후 의병활동이 위축된다. 

특히 호남의 의병장 김덕령은 고문 받다가 죽게 되고, 곽재우도 몸조심하게 된다.

이는 정유재란 초반에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더구나, 선조은 인기있는 장군들도 의심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이순신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 회생했다..

그때 선조가 이순신을 죽였으면, 조선의 앞날도 예측하기 어려웟을 것이다..

 

**

어쨋거나, 홍가신은 그뒤 이 지역 백성들 마음 속에 은인으로 자리잡아 "백월산신"으로 모셔지고 잇다

사당안에 홍가신과 그 가족의 목각, 공신 위패들이 모셔져 있다.

현재도 무속행사가 행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이몽학의 난 때 억울하게 죽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타는구나.
저 산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내 몸에 연기 없는 불은 끌 물 없어 하노라.

 

팔각정에서 정상까지는 50미터 더가야 한다..

 

코끼리 바위라는데, 글쎄??

지나고 나서 보니 오히려 강아쥐 바위가 맞는데?? ㅎ

 

백월산 정상이다. 

394m에 불과하지만, 포부는 서해안 3대 월산을 자부한다.

황해도 구월산, 영암 월출산, 다음이 홍성 백월산이란다..

그리고 여기는 현역 산신도 계시는 곳이다..ㅎ 

 

정상에 앉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홍주성 동헌 자리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예산 봉수산이요..남쪽으로는 오서산이 우뚝하다..

 

북쪽으로는 용봉산이로다..

정상에 앉아 점심요기를 하면서 한참을 앉았다.

왕년에 활쏘고, 단소불던 시절을 떠올렸다.

***

2000년초반 이야기..

1) 홍성에 근무하러 갈 때 사람들이 당부하는 말이 "홍성에 가면 투서를 조심하라" 였다.

어떤 사람은 홍성에 가면 동네 슈퍼에서 법전을 판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결혼 혼수 중에 법전이 들어있다는 말을 들엇다는 농담도 했다.

겪어보니, 홍성 사람의 기질이 불의에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심하게 갑질을 하면 과감하게 투서하는 것이다. 반대로 공정하게 처리하면 사람들이 고마워 할 줄 안다.

 

2) 홍성 사람 기질을 이야기하려면, 홍성 출신 위인을 거론해야 한다.

  최영장군, 사육신 성삼문,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등이다..

이 말을 듣고 "제명대로 산 분은 없는 것 같네"하고 농담을 했지만, 그만큼 이 동네 기질이 백월산처럼 굳세고, 용봉산처럼 강건한 것 같다.

비슷한 기질의 동네를 거론하자면, 호남의 목포, 영남의 마산 쯤 되지 않을까??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는 백월산 정상을 지나 병오의병비로 향한다..

병오의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에 의병이 봉기했다.

홍주(홍성)에서는 이듬해 1906년 병오년에 의병이 봉기했다.

민종식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전답을 팔아 의병을 모집했다. 

1906년 5.19. 백월산 아래 금마평(현 병오의병비)에 의병 600명이 집결했다. 

대포 2문을 앞세우고 홍주성 동문과 서문을 공격하자, 일본군민이 북문으로 도주했다.

홍주성을 점령하자 일본군 400명이 반격해왔다.  

5. 31. 새벽 홍주성을 빼았겼다. 체포된 의병장들은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의병의 유해는 홍주의사총에 안장되었다. 

 

활공장을 지나 하산하려다가 원래 계획대로 원점회귀한다..

 

<오늘 걷기> 이응노생가 - 산혜암 - 팔각정 - 청난사 - 정상 - 원점회귀 약 6km

홍성으로 간다.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구간을 걸으러..

얼마전, 동행이 무릎 부상을 입어 혼자 가는 길..

이제는 나이에 맞게 코스완주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걷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2코스 중 이응노생가 - 백월산 정상 사이를 왕복하는 6km를 걷기로 한다..

**

이응노생가에 도착하기 2km 전 용봉산이 보이는 동네에 연분홍과 진분홍 매화가 멋지게 피었다.

차를 돌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깊이 감상한다.. 

 

성장한 차림의 요염한 여인이 유혹처럼 치명적인 아름다움..

 

반면, 백월산은 하얀 벚꽃의 시중을 받고 있다..

낙화로다..꿈이로다.. 

노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듯하다..

 

벚꽃이 버들과 만나니, 시 한수가 생각난다..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는 검은 머리였는데 저녁에는 눈처럼 백발이 되었네

 

여기서는 우여청사좌성설(左如靑絲 右成雪)..

우측에는 푸른 실이 걸리고, 좌측에는 흰 눈이 내렸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개울건너 생가로 간다..

 

고암(죽사) 이응노..

구한말 왕실화가 해강 김규진으로 부터 한국화를 배우고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화를 그렸다.

한국화, 서예, 서양화를 아우르는 서예추상, 군상 등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그의 그림과 인생은 나중에 대전 이응노미술관 구경까지 한 후에 별도 글로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걷기에 집중한다..

 

그러한 잠시, 복사꽃이 눈에 들어와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평생 같이 살라면 질리겠지만 봄날 한철은 같이 살기 좋은 꽃..ㅎ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버드나무에게 다가간다.

버드나무 최고의 시는 하지장의 "영류(詠柳, 버드나무를 노래함)"다..

 

이월춘풍사전도(二月春風似剪刀)라는 명귀를 쓴 시인

"(음력) 이월 봄바람은 가위같구나"

버드나무에 신록의 나뭇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마치 봄바람이 가위질하여 오려 붙인 것처럼 묘사한 감각이 너무 현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碧玉妝成一樹高 
萬條垂下綠絲? 
不知細葉誰裁出 
二月春風似剪刀 

 

벽옥장성일수고
만조수하록사조
부지세엽수재출
이월춘풍사전도

 

푸른 옥빛으로 단장한 키 큰 버드나무
가지마다 푸른 끈을 아래로 드리웠네
저 가느다란 잎은 누가 오려 만들었을까
(음력) 이월의 봄바람은 가위와 같구나

 

***

어디 그뿐이랴, 김구선생이 인용하여 유명해진 시귀도 있다.

월도천휴여본질 (月到千虧餘本質) 

유경배별우신지 (柳經百別又新枝)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그대로이고

버드나무는 백번 부러져도 다시 새가지가 돋는다.

 

***

대중가요 실버들, 애교있는 투정도 멋지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실버들 천만사 늘어진 물빛에 비친 백월산의 풍광이 오늘 걷기의 즐거움을 예고한다..

 

용봉산은 벚꽃비를 맞으며 장도를 환송한다..

 

왜가리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아침부터 웬 신파여~"

 

왜가리가 뭐라카든 매화와도 눈인사하고, 수선화와도 딥인사를 한다..

 

이응노생가옆 전시관으로 들어가 전시품을 감상하고.. 

 

그는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하던 중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1969년 사면되어 파리로 떠났다.

1977년 부인 박인경이 백건우,윤정희부부 납치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1983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다.

그의 작품은 대전시에 기증되어 2007년 시립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하였고, 

2011년에는 홍성 이자리에 이응노생가가 복원되었다.

 

카페 벽이 쓰인 수상한 저 글씨 "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스탈린"

1937년 스탈린이 소련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우즈벡, 카자흐)로 강제이주 시킨 사건을 의미한다.

정추..라는 사람과 관련된다.

그는 광주 출신인데, 해방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56년 장학생으로 소련 모스크바 유학중 남로당계 숙청사건에 자극을 받아 쏘련에 망명한다. 그후 카자흐스탄에서 음악활동을 하였다. 

그가 작곡한 <극적 교향조곡>에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원동(연해주) 한인 강제 이주 희생 에 대한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는 1991년부터 고향 광주를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 음악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쏘련이 붕괴된후에는 카자흐스탄 시민권자가 되었고, 2013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망했다.

 

***

정추의 행적과 완전 대비되는 사람이 윤이상이다..

윤이상..

한국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1956년 파리로 건너간후 서베를린에 정착한다..

윤이상은 1963년 방북하는 등 친북활동을 하다가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69년 특사로 석방된다.

그는 1971년  서독국적을 취득하고 친북활동을 이어가고, 한국내 활동은 금지되어 생전에 고향 통영을 방문하지 못한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

해방전후, 좌우의 대립, 이념과잉의 시대에 지식인, 예술인의 삶은 마치 봄날의 꽃처럼 다양하게 피고 지었다..

누구를 탓하랴~, 시대를 탓하랴~

 

이제 백월산을 향해 출발한다.

명자꽃이 자주고름을 입에 물고 뜨겁게 환송한다..ㅎ

 

벚꽃 엔딩..오늘 지대루 만났다.

입김만 스쳐도 휘날리네~~

 

철쭉부대가 착검을 하고 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보무도 당당히 주택가로 걸어들어간다..

 

 

거기서 복사꽃을 또 만났다..

오빠..나 좀 봐!

참 곱다..ㅎ

 

주택가 끝에서 산길이 시작된다..

 

아니?? 진달래..너 마저??

여기는 시간이 거꾸로 도나??

엔딩을 맞을 꽃들이 이리 싱싱하게 지천이네...

 

야는 자두꽃인가??

 

진달래가 유혹하는 대로 으슥한 샛길로 들어섰더니..

헉... 별천지네..

 

진달래, 벚꽃..자목련까지 춘정을 못이겨 땡땡한 몸매를 가누지 못하고 베베꼬꼬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흰꽃과 백구가 하얌을 다투는 산사..

무쟁삼매는 어디 갔는고??

 

부처님은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산혜암 대웅전 벽에 달빛이 곱게 내려앉았는데..

이곳이 예전에 월산성(月山城)터였음을 증명하네..

 

 

백월산 올라가는 길에 만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백구의 세상이었다..

진달래 필 때 대전 구봉산에 간다고 다짐했었는데, 

금년에도 경주 남산, 당진 아미산을 기웃거리다가 한주 늦은 타임에 구봉산을 찾았다.

어느 코스로 갈까하다, 서대전 ic 가까이 있어 접근성도 좋고, 주차도 편리하고, 더구나 능선도 최단 거리로 쉽게 오를 수있는 곳을 골랐다.

한천약수터..

<내비주소> 서구 관저동 843-16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아홉 봉우리들이 사열식해준다..

 

주차장에 널널하게 차를 대니..

때를 맞추어 조팝이 철쭉을 데리고 환영인사를 나왔다..

 

여기서 구봉정까지 왕복하면 3km 미만이다.

하지만, 관풍정까지 추가 왕복하거나 노루벌에 내려갔다 오는 방식으로 거리를 늘릴 수 있다.

 

한천약수는 적합판정을 받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철쭉아씨가 곱게 한복입고 나왔다. 

역적의 후손도 아닌데, 산철쭉에게 이름도 빼앗기고, 연달래라는 이름으로 숨어지내는 처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벚꽃엔딩이다..

눈꽃이 되어 내리더니 눈처럼 쌓였다..

 

그때 경주 경지재에서 불국사 겹벚꽃이 이제사 만개햇다고 놀러오라고 카툭이 왔다.

에고..그넘도 서로 상의해서 같은 날 만개하지..ㅎ

이제 벚꽃은 잊기로 하고 복사꽃과 철쭉에게 기웃거린다고 답했다..

그리고 벚꽃에게 보내는 노래를 올린다.

https://youtu.be/XGMaVZ6Z1G0

 

 

정말 쉽사리 짧은 시간에 능선에 올랐다.

거기서 진달래를 만났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구나!! 영취산에서 만난 이후 가장 반가웠다..

 

화무십일홍이라..

다 졌으리라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왔는데..

성의껏 기다리고 있었다니..

 

오토캠핑장으로 변한 노루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쪽(노루벌 쪽)은 진달래가 다 지고,북불쪽 응달에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처럼 굿굿하게 버티고 있었다..ㅎ

 

우크라이나처럼 붉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멀리 구봉정이 보인다..

높이 고작 200 몇미터지만 위용은 당당하다..

 

이 갈림목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노루벌로 갈 수있다.

노루벌에는 무엇이 있나고요??

여기를 보세요..  https://blog.daum.net/servan/6351526

 

대둔산에서 발원한 갑천이 구봉산을 감돌면서 하회마을, 회룡포 못지않은 뷰를 보여준다..

 

 

구봉정까지는 거리는 짧아도  9봉을 오르락 내리락하랴, 진달래 보랴, 노루벌 관찰하랴 몹시 부산한 등산이다..

 

 

목 좋은 너러 바위에 앉아 점심 요기를 하면서 노루벌을 관망하는데, 

오찬에 동참하겠다고 직박구리가 왔다.

오랜만에 서로 담소하며 같이 점심을 즐겼다..

 

직박구리 왈..

검수완박 법안제출은 잘못된 것이여~

국민을 참새로 보는겨~~

 

잘못된 일은 새도 안다..

하물며 새대가리 보다 나쁜 머리를 가진 인간이 많다..

 

노루벌에 가서 노루에게 물어볼까??

삶은 소대가리에게 물어 볼까??

 

드디어..진달래 피는 계절에 구봉정에 왔다..

기다려준 진달래, 직박구리, 노루벌 모두에게 감사한다..

 

높이 264미터..

작은 키에 얼굴 이쁘고 글래머한 왕년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작은 키에 목청 좋고 노래 잘하는 송가인..을 닮은 산이다..

 

산길에서 만난 이 강아쥐..

출입이 금지된 국립공원을 빼고 대전 근교의 산은 다 오른 건각이란다..

 

다음주에는 없겠지..

여기서 진달래 엔딩을 부른다..

"진달래 피고 직박구리 보면 두고 두고 그리울 구봉산"

 

진달래 엔딩에서 철쭉 비기닝을 예고한다..

그래 다음주는 복사꽃, 다음 다음주는 철쭉꽃..

 

구봉산(九峰산)을 구봉귀소(九鳳歸巢)의 명당으로 승격시키고 싶은 날이다..

 

<오늘 걷기> 한천약수터 주차장 - 구봉정 - 왕복 약 2.5km

아미산에서 내려와 면천읍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면천..연조가 오랜 동네이다..

동래, 선산 처럼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는 옆동네에 치어 각 부산, 구미의 일부가 되었듯이

면천도 당진시 일부가 되었다..

골정지는 조선시대 면천군 시절 군수로 부임한 연암 박지원이 만든 다목적 저수지다..

 

 

연암 박지원

청소년 시절 우울증 비슷한 증세를 겪으면서 과거공부와는 담을 쌓고 홍대용, 이덕무 등 백탑파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44세 되던 해, 영조 부마 3종형 박명원이 사신단 정사로 북경에 갈 때 자제군관으로 수행하면서, 기행견문록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천하에 필명을 날린다..

50세(정조 10년)에 음서로 벼슬길에 올라, 61세(정조 21년)에 면천군수로 부임하여 1797년 - 1780년까지 3년간 근무한다.

이때 정조가 전국에 농서를 구하는 영을 내리자, 연암은 1799년 과농소초를 지어 올린다.

이 책으로 정조에게 인정을 받아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한다..

그 이전에 골정지를 만들고 건곤일초정을 지었다고 한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순왕후 세력이 집권하자, 사직하고 연암협으로 돌아가 은거하다 5년뒤 사망한다.

 

열하일기..

중국 요동-북경- 열하에 이르는 도정에서 견문한 내용을 쓴 기행문인데..

요즘으로 비유하면 일종의 여행 블러그다..

그의 글은 당시 유행하던 패관소설류식 백화문체(구어체)를 사용한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인터넷 신조어를 사용한 문학이라고 보면 되겟다.

정조가 이런 문체 유행에 철퇴를 가하는 문체반정을 시작한다. 

결국 연암도 반성문 겸해서 과농소초를 저술했다고 한다..

 

 

 

또 그가 벼슬을 하게된 사연도 재미있다.

50세까지 백수생활하다보니 집안이 가난해서 술도 제대로 마실 형편이 되지 못했다.

점잖은 손님이나 와야 겨우 술 두잔을 주안상으로 올리는 형편이다.

도연명처럼 술을 좋아하는 연암이 꾀를 내서 길에 나가 다까고짜 초면인 관리에게 인사를 하고 어거지로 자기집으로 데려간다.

그러자, 집안에서 손님이 왔다고 주안상에 술 두잔을 내오면, 상대에게 술을 권하지도 않고 본인이 두잔을 다 마셨다나??

이런 봉변아닌 봉변을 당한 입직 승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정조가 "그정도로 가난이 심한 줄 몰랐다"며 

연암에게 낮은 벼슬이나마 제수하기 시작햇단다..

하지만, 본래 능력이 있던 사람인지라 벼슬은 승진하였고 이곳 면천군수를 지낼 때에는 농서를 구하는 왕명에 부응하여 "과농소초" 14권을 저술,진상하여 양양부사로 승진하였던 것이다..

 

건곤일초정

원래 두보의 시귀에 등장하는 정자인데, 친한 선배인 홍대용이 이를 인용하여 정자를 짓고 스스로 건곤일초정 주인을 자처하고 지냈다고 한다.

아마, 연암이 이를 오마주해서 같은 이름의 정자를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보의 시, 暮春題瀼西新賃草屋 모춘제양서신임초옥 >

綵雲陰復白(채운음부백) 
錦樹曉來靑(금수효래청) 
身世雙蓬鬢(신세쌍봉빈) 
乾坤一草亭(건곤일초정) 
哀歌時自惜(애가시자석) 
醉舞爲誰醒(취무위수성) 
細雨荷鋤立(세우하서립) 
江猿吟翠屛(강원음취병) 

 

<늦봄 양서의 새로 빌린 초가에서 쓰다>  

 아름다운 구름 어둡다가 다시 밝아진다
비단 같은 나무 새벽되니 푸르기도 하여라.
쑥 같은 양 귀밑머리 늘어뜨린 이내 신세
천지간 기댈 곳이라곤 이 초정(草亭) 하나뿐
슬픈 노래 부르며 무시로 스스로 불쌍히 여기나니
취하여 춤을 춘들 누굴 위해 술을 깨랴
가랑비 맞으며 호미 메고 섰는데
푸르른 강가에 원숭이 울음소리 들린다.

 

***

이 시 귀절 중 "乾坤一草亭(건곤일초정)"을 좋아한 홍대용이 스스로 "건초일초정 주인"을 자처하면서 정자를 짓고 시도 지었다.

 

<건곤일초정주인 乾坤一草亭主人>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였고
재주많지 않으니 헛된 명예 있을소냐
수시로 좋은 친구 찾아 오면
산나물 안주에 술 한병
허름한 정자에서 거문고 타노니
곡조 속에 슬픈 감회 그 뉘가 알겠는가?

無競免積毁
不才絶虛譽
好友時叩門
壺酒有嘉蔬
淸琴嚮危欄
中曲且悲噓

 

이 추상화는 무슨 글씨인고??

충국효친(忠國孝親)..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

왕조시대에는 사람(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지만, 

민주시대에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팬덤정치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함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도 벚꽃이 피었다는데, 남쪽인 이곳은 아직 벚꽃이 덜피엇다. 바닷바람이 매서운가 보다.

 

언제 연꽃필 때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목련은 크고 탐스럽게 만개하였다..

 

군자정으로 가는 길..

동네주민들이 모델로 서있다..ㅎ

 

수선화가 반겨주는 성안 그 미술관..

 

 

우체국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을 만들었다.

강경이 배워야 할 점이다..

공공기관 이사못가게 인질처럼 붙잡고 잇지말고, 시류에 맞게 변신하라..

 

비우고 버리고 쉬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비우고 버리고 쉬면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자긍스러운가?

얼마나 자적한가?

 

그 미술관 너머 꽃속에 멋진 정자는??

군자정이다..

 

고려 공민왕 때 지주사(군수)였던 곽충룡이 연못과 정자를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

그뒤 1719년(숙종 45년)에는 복지겸의 후손이 복지구가, 1803년(순조 3)에는 면천군수 유한재가 못을 준설하고 정자를 중건하였단다.

그리고 허물어진 것을 다시 1994년에 복원하였다..

 

낭관호(郞官湖)..

이태백이 장위 두공 왕광등과 뱃놀이를 즐겼던 호수(후뻬이성 우한시 한양구에 위치한 호수, 명나라 때 말라버림)인데, 이연못의 정취를 낭관호에 비유했나보다.

비석 글씨는 이태백 글씨라고 알려져잇는데, 아마 이태백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고려말 익재 이제현이 칭송하기를 “연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으며, 진흙에서 나왔어도 물들지 않는 모습이 군자와 같아서 주염계에게 사랑을 받았다"하여 못을 군자지, 정자 이름을 군자(君子亭)이라고 지었다.

 

군자정 옆은 영랑 효공원이다..

면천 출신 고려 삼한벽상공신 복지겸..

그는 궁예 말년 폭정시절 왕건을 추대한 신숭겸 등 4공신 중의 한명이다.

그가 말년에 고향에 은거할 때 병이 났는데,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 하던 중 신령이 현몽하여 

"진달래꽃(두견화)을 따서 내정(內井, 화정花井)의 물로 술을 담가 백일주를 만들어 드리고 뜰에 은행나무 두그루를 심으라"하여 그대로 해서 복지겸의 병이 나았다 한다.

면천 두견주의 탄생설화인데, 이 설화를 바탕으로 내정(화정)을 복원하고, 그 일대를 영랑효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 옆 높은 곳에 고목이 있어 찍었더니, 이것이 영랑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였다는...헐

암수 두그루이고 수령 1100년으로 천연기념물 551호로 지정되었다.

 

 

부근에 3.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서있다.

면천보통학교(초등학교) 4학년생 원용은이 고종장례를 참관하러 서울에 갔다가 3.1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뒤, 3.10 전교생 90명이 만세운동을 전개..주동자 원용은 등은 구금되었다가 퇴학.. 

지금은 초등학생이라면 애기로 볼텐데, 저때는 참 대단한 기개를 가졌다. 

요즘은 세월이 흐를수록 정신연령은 더 어려지는 느낌인데..ㅎ

 

일제가 면천 관아 객사를 헐고 그 자리에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지었다.

이제 다시 초등학교를 이전하고 객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면천읍성..

낙안읍성, 해미읍성처럼 번듯한 석성이다..거기다 옹성까지 갖추고 있다..

건너편 몽산토성과 함께 기각지세를 이룬다..

 

면천..

백제시절에는 혜군, 통일신라 때는 혜성군, 고려 때 운주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충렬왕 때 복지겸 후손 복규가 합단적 방어에 공을 세우자, 면주로 승격되고, 조선 태종 때 면천군이 된다.

세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읍성을 쌓고, 몽산성도 수축한다..

이 지역 출신으로 고려초 공신 복지겸, 박술희 장군 등이 있고, 조선 시대에도 정승, 판서가 많이 배출된 유서깊은 동네다.

 

 

남문 이름은 원기루..

일제의 강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개국, 개혁을 했다면, 이런 읍성들과 관아들은 그대로 보전되었을까??

 

준비와 기회가 만나면 기적이 된다.

대지를 적시는 단비가 내려도 뒤집어진 그릇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

 

이 고장 전설의 총화 두견주를 만나러 간다..

복지겸장군의 딸 영랑의 정성이 빚은 진달래술..두견주..

왜 두견주인가?

진달래을 두견화라고 하고, 진달래와 찹쌀로 만든 술이라 해서 두견주라고한다.

왜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는가??

전설에 옛 촉나라에 두우라는 왕이 있었다. 

홍수를 잘 다스리는 신하 벌령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서산에 은거한다.

그런데, 벌령이 두우의 아내를 차지하자, 두우는 홧병으로 울다가 죽게되었다.

죽기전에 두견새에게 유언했다.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알려다오"

명을 받은 두견새는 피를 토할정도로 구슬피 울었는데, 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진달래란다..

그래서 두견새 울 때 붉게 피는 꽃을 두견화라고 불렀다.

두견새는 자규, 귀촉도, 소쩍새, 접동새, 휘파람새로 불리는데, 우리나라 시 문학에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두견주 공장은 일요일 휴무인데, 진달래만 부산하게 바쁘다..

할 수없이 근처 하나로마트에 가서 두견주 한병을 2만원에 샀다.

 

집에 돌아와 두견주에 진달래 띄워 한잔 마신다.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꺽어 산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얼큰하니, 귀에 각종 두견새 소리가 들려온다.

 

귀촉도 울음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이뤄 하노라

 

 

자작나무쉼터를 지나 임도길에 들어서자

역색(易色)혁명이 벌어졌다.

분홍색 깃발은 사라지고 황건적의 세상이다..

 

남녁에서 호시절을 다 보내는 줄 알았는데, 아미산에 숨어 산적질 하고 있구나..ㅎ

그 기세에 눌려 벚꽃은 아직도 명함도 못내밀고 있다.

하긴, 오늘 바람도 거세고..먹구름이 오락 가락하니..벚꽃은 눈치를 보고 있다..

 

쇠학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점묘파 쉐라가 어제 저녁 다녀간 모양이다..

춘정에 못이기어 길 허리는 베베꼬이는데..파스텔톤으로 화사하게 치장한 봄처녀가 제 가시네..ㅎ

 

푸른 솔이 어린 산수유 손잡고 봄소풍나왔다..

 

돌아보니 아미산 눈썹이 참으로 곱구나..ㅎ

 

장승쉼터에서는 장승들이 꽃을 끼고 잔치를 벌리고 있다. 

아니, 꽃잔치에 장승들이 구경왔나??

 

장승쉼터에서 몽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몽산성 망루가 나타난다..ㅎ

 

백제부흥운동할 때는 몽산 정상부만 테뫼식 산성이었고, 

조선 세종때 5km 길이의 포곡식 토석혼축산성을 지었다는 것이다..

 

몽산 정상을 앞두고 일진 광풍과 음습한 구름이 몰려와 분위기가 숭숭해진다..

뉴스에는 인근 서산 운산면에 산불이 발생했단다.

하늘엔 헬기들이 물주머니를 달고 연락부절이다..

 

하늘 눈치보며 몽산 정산에 오르니, 꽃대궐이다.

산수유와 진달래가 한 부르스 하는 중이다..

 

정상에서 산길을 따라 자작나무쉼터로 간다..이것이 백제부흥길 8코스다..

아미산쉼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4.8km를 가는 길은 9코스다..

 

아미산 정상 아미정은 새손님 맞느라 바쁘다..

 

이 길은 서해랑길 타이틀도 달고 있다..

좀 정리 좀 해보자..

충청서부지역은 크게 "내포문화숲길"을 조성했는데, 그 아래 1) 내포역사인물길, 2) 백제부흥군길, 3) 원효깨달음의 길, 4) 매포천주교순례길, 5) 내포동학길 등이 있다.

서해랑길은 서해안을 도는 길인데, 슬쩍 이곳 코스도 끼워넣고 장사하는 중이다..

결국, 이길을 한번 걸으면, 백제부흥군길 8,9코스, 몽산성마루길, 내포동학길 1코스, 서해랑길 64-5코스 등 1타 5피를 할 수 있다..ㅎ

 

위 사진 좌측 임도가 9코스, 우측 산길이 8코스..뭐 이렇다..ㅎ

광풍 요운(狂風搖雲)이 난리를 치자 하늘도 안색을 바꾸고 긴장한다..

 

 

그래도 무탈하게 쇠학골쉼터 송학정에 도착한다..

점심도 먹고..숨도 돌리고..

 

1부에서 나를 유혹했던 몽산 입구로 올라간다.

자목련이 섹시한 란제리 패션으로 나오고..진달래는 더 붉게 치장하고 다가선다..

그러나, 나도 일편단심이다..

서로 붉은 마음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자작나무쉼터에서는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타" 방향이라고 안내하고서는 이곳 표지판에서는 입을 싹 딱고, 다불산 등 표시만 달아 잠시 헷갈린다..

당황하지말고 다불산 표시로 가면 된다..

표지판에 일관성과 친절성이 더 요구된다..

 

도중에 다불산 갈림길이 나온다..

 

자작나무 숲길이도 나오고...

 

벚꽃은 언제 피나??

서울도 핀다는데..당진 지역이 바닷가라 추운가??

 

드디어 주차장이 보인다..

 

<오늘 걷기> 당진센타 주차장 - 아미산쉼터- 아미산 정상 - 자작나무쉼터- 쇠학골삼거리 - 장승쉼터 - 몽산-쇠학골삼거리 - 자작나무쉼터 - 자작나무숲길 - 주차장 약 8KM

시작은 백제부흥군길 8코스를 걸을까하고 찝적댄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미산, 몽산 둘레를 도는 9코스를 알게 되고..

그래서 8코스,9코스를 믹스해서 걷기로 했다..

<내비> 내포문화숲길 당진방문자센터..

주차장에 도착하기 30분전 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일기 앱을 보니 헉..

오전 내내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바뀌엇다.

어제까지 해가 쨍쨍한 예보였는데.. 오또카나..망설이다..화장실에 가서 숙고를 한다.

면천 읍성 주변 구경부터 하고 올까??

그리고 다시 일기앱을 확인하니?? 개는 날씨로 바뀌었다???

날씨앱이 사기치는지, 날씨자체가 변덕스러운 건지??

 

오늘 코스는 주차장에서 아미산쉼터로 가서 백제부흥군 8코스대로 아미산 갔다가 9코스로 몽산을 올라가고

복귀시에는 8코스-9코스로 내려온다..<사진 표시 참조> 

 

초입 저수지에 개나리 처녀가 나와 꽃을 내민다..

토끼부부도 나와 환영한다..

 

국민학교는 졸업 인생 아프터 서비스하는 행복학교로 바뀌었나 보다..

 

이 표지판에서 잠시 햇갈렸는데, 구름다리에 현혹되지 말고..소신껏 가시라..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어허야 얼시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개나리가 길에 불을 밝힌듯하다..

 

 

백제부흥길 8코스는 당진시내 어름수변공원에서 출발하여 이곳 아미산 쉼터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산길을 타고 아미산 1봉 2봉 정상을 넘어간다..

 

드디어 진달래가 등장하는데..

초록잎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곳 진달래는 일부는 지고, 일부는 피는 상황이다..ㅎ

 

햇살이 비끼선 진달래 

긴 봄날 내내 연분홍치마를 휘달리겠다는 기세가 역력하다..ㅎ

 

문림의향(文林義鄕)..

아미산의 모토가 멋지다..

 

 

아미산 정상 계단에 오르기 전..벤취에 앉아 진달래의 힘을 빌린다

오늘도 꽃과 하나되는 남자..ㅎ

 

정상에 오르니 하얀 목련이 환영인사를 건네다.

참 환한 미소다..

 

아미산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 사천성 성도로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절차가 복잡한다..

국산 아미산으로 오니 가깝고 힘도 덜들고 참 좋다..ㅎㅎ

 

건너편 몽산은 아직도 꿈속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

어제 자전거 타다가 무릎 부상이 있어 정양중이다..ㅎ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좌우로 진달래가 나래비한다..

자세히 보니, 길가의 일진은 업무 마치고 퇴근하고 2진이 근무중이다..ㅎ

 

산에 들에 진달래 피면 마음도 같이 핀다는 시인..

그 마음은 붉겠지??

 

자작나무 쉼터에 도착했다.

이제 몽산구역으로 들어간다..

 

산길이 황홀하게 유혹하지만..

 

백제부흥군길 9코스 임도를 따라 몽산으로 간다..

거기서 반전 득템을 만난다는거..ㅎ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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