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어느 식당에 걸린 글씨..

일근천하무난사 (一勤天下無難事)

백인당중유태화 (百忍堂中有泰和)

 

부지런하면 세상살면서 어려운 일이 없고

백번 참으면 집안이 두루 평화롭다..

 

***

요즘 백인(百忍)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잇는 중이다..

 

동네한바퀴..시아버지 한약방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며느리..

의상실에 걸린 글씨..

 

孝弟行於家而後 仁愛及於物
효재행어가이후  인애급어물


집안에서 효와우애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어짐과 사랑이 외부에 까지 미친다

 

***

요즘은 제가도 못한 넘들이 치국을 하겠다고 출마하는 판이다..

봄 가뭄을 해갈 시켜주는 단비가 2일째 계속된다..

아침 일찍 경주를 떠나려고 마음 먹엇는데, 일기에보를 보니 오전에는 소강상태란다..

그래서 '비내리는 금강산"을 걸어보자는 말에 혹해 서둘러 길을 나선다..

헌강왕릉 옆 한정식 "미담" 표지판 옆길으로 올라간다..

 

작은 산이지만 길 초반에 가파르게 올라간다..

비는 그치고 길은 촉촉하고 녹음은 더 푸르니 걷기 좋은 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이제 여유있게 룰루랄라 간다..

가던 방향으로 계속가면 금강산 백율사가 나온단다..

그런데, 드림빌더가  약산을 지나쳤다고 해서 다시 돌아간다..

 

쏭알 쏭알 싸리잎에 은구슬..싸리꽃도 비에 젖었다..

 

좁은 산길 이리저리 돌다보니 약산 표지판이 보인다..

271m..

어찌보면 금강산 약산봉이라고 해야 맞다..

2천년전에 서벌(서울) 월성에 금강산이 있었다..

800년전 고려시대 강원도 금강산이 떡상하는 바람에 변두리 경주 금강산은 소금강산으로 격하된다..

1만2천봉를 거느린 현 금강산보다 작더라도  2봉정도 거느린들 누가 뭐라 하겠나??

 

영변의 약산만 알았는데..약산의 원조는 경주에 잇었구나..

조망이 없는 정상이라 바로 돌아선다..

 

올 첫 나리를 만났다..샤워를 마친 멋진 모습으로..ㅎ

 

이제 중간 갈림길에서 북군동 방향 하산루트로 들어선다..

 

드디어 오늘 조망처가 나타났다..

보문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 약산 건너편으로 보문단지가 전개된다..

 

대명 소노벨이 보이고..

 

보문호 우측으로 황룡사9층탑을 닮은 중도타워가 보인다..

9층탑 너머로 토함산엔 비구름이 가득하다..

 

하산길에 마주친 산딸기..수다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

 

쏭알 쏭알 싸리잎에 은구슬..

 

중도타워 9층탑이 자꾸 눈길을 잡는다..

1600년전 월성 한가운데 80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황룡사9층탑..

만백성의 구심점이 되엇을 것이다..

 

오동나무도 새 열매을 품었다..무슨 야자 열매처럼 귀엽다..

 

오솔길은 북군동 아미새농원 옆에서 끝난다..

 

차를 몰고 동천동 헌강왕릉으로 향한다..

 

헌강왕릉에서 오늘의 들머리 약산을 바라본다..

경주 소금강산지구에 속하기는 하는데, 지도상 표시로 보니 약산 둘레를 걸은 것이다..

 

 

헌덕왕은 동생과 함께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하느라 애쓴다..

재위 8년만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동생이 흥덕왕으로 즉위한다..

동생 흥덕왕이 집권한 후 신라는 잠시 안정을 찾는다..

흥덕왕 편 https://blog.daum.net/servan/6352235 참조

 

왕릉 주변에 석난간을 설치한 모습이 특이한다..

원래 모습이 아니고 복원하면서 설치한 것 아닌가 한다..

북천의 범람으로 왕릉이 훼손되어 복원시 12지신상은 몇개 남지 않은 것만 사용했다고 한다..

 

1400년전에는 볼수 없었던 개망초가 왕릉을 장식하고 있으니 제행무상이로다..

 

<오늘 걷기> 동천동 입구 - 약산 - 북군동 아미산농원입구, 실제거리는 3Km 정도인데, 약산 찾으러 왔다갔다 하느라 5Km 

<참고도> 아래 사진처럼, 동천동입구에서 소금강산 백률사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음

경주 선덕여왕둘레길은 선덕여왕릉 - 황복사지3층석탑 - 진평왕릉 - 명활산성으로 이어지는 10km 구간이다..

이곳을 3-4번에 걸쳐 오늘에서 완결했다..ㅎㅎ

1) 선덕여왕릉 - 진평왕릉 : 오늘 구간 

2) 진평왕릉 - 명활산성 : https://blog.daum.net/servan/6352126

3) 진평왕릉 - 황복사지 : https://blog.daum.net/servan/6352148

 

오늘은 영남 알프스 가지산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해서, 숙소 경지재에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논란끝에  코스를 시부거리 등산으로 바꾼다.

 차 1대를 날머리인  석굴암주차장에 파킹하러가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 차량은 밀리고,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없어 보여 다시 차를 돌린다..

내 머리 속에 밀린 숙제 "선덕여왕둘레길"이 떠올랐다..

<그래서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긴거다..>

선덕여왕릉으로!!

그런데, 도중에 드림빌더가 신문왕릉에 들리자고 우긴다..

최씨 고집보다 더 센 남로당 고집을 당할 수 없다..ㅎㅎ

 

 

 

신라 전성기의 왕릉답게 대문까지 번듯한 홍례문이다..

문무왕의 아들로, 국학을 세우고, 9주 5소경을 설치하고..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주어 귀족, 관료를 통제하고..

조선의 성종 비슷한 위상이다..

 

 

신문왕은 즉위초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제압하면서 대당전쟁시절 비대해진 군부세력 기를 꺽는다..

그리고 김흠돌의 딸인 왕비를 폐출하고, 새로 김흠운의 딸 신목왕후를 세운다. 

그렇게 그는 왕권강화의 시동을 걸었다..

김흠운은 요석공주의 남편이었으나 영동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이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신목왕후가 된다..

요석공주는 원효와 사랑에 빠졌고..

신라 왕족의 족보는 복잡하다..ㅎㅎ

 

 

릉주변에 받침석이 특이하다..

그중 "문(門)가 서있는 곳이 관이 들어간 입구로 추정한단다..

 

신문왕릉에서 나와 낭산 아래 사천왕사로 간다..

 

왕릉 자부송에게 물었다..

왕릉 자부송(自負松)아 네 어이 누웠는가?

광풍(狂風)을 못이기어 부러져서 누웠노라.

가다가 양공(良工)을 만나거든 나 예있다고 하구려.

 

근데, 신문왕릉에서 사천왕사 가는 길은 대로를 따라 가는 길이라 걷기는 비추..

 

단비가 논에 심은 모를 춤추게 하고, 황소도 기운나게 만든다..

오늘 하루종일 와야 땅속까지 스며들겠지..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좋은 비가 시절을 알아 내리니

소리없이 만물에 스며드네

 

낭산 기슭에 세워진 사천왕사..

문무왕 14년(674년)..당의 웅진도독부를 수복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한 신라를 정벌하려고 당이 호시탐탐 침공을 시도하던 시기..

문무왕이  명랑대사와 상의하니, 호국사찰 사천왕사를 짓고 밀교 비법으로 기도하여 부처의 가피를 받아 적의 침략을 방어하자는 건의를 받는다..

그리하여 신령한 숲 낭산의 신유림 지역에 사천왕사를 짓기로 한다.

하지만, 건축에 시간이 걸리니, 임시로 절터에 비단 장막과 초막을 짓고 명승 12인과 함께 밀교의 문두루비법으로 기도를 한다.

그 무렵 침공을 준비하던 당의 군선이 풍랑으로 침몰하여 해로를 통한 당의 침략은 좌절되고..

그뒤에도 675년 매소성전투, 676년 기벌포 해전 승리까지 사천왕사는 나당전쟁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결국 사천왕사는 문무왕 19년 679년 완공되었다..

조선시대까지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무렵 소실되었다..

 

 

 

녹유신장(활을 든 신장)

사천왕사에 있던 녹유신장 걸작이 복원되어 다행이다..

승려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사는 경덕왕 시절 이 절에서 수행하였다..

 

사천왕사 동귀부..사천왕사 사적비가 잇었을 것으로 추정

 

사천왕사 서귀부..문무대왕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정조 20년(1796년)경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문무왕릉 비편이 처음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 일부 복원된 문무왕비에서, 문무왕은 자신의 조상이 흉노왕 김일제라고 밝히고 잇어 충격을 준다..ㅎ

 

사천왕사터

 

폐사후 절옆으로 일제가 동해남부선을 개설하면서 강당터가 휘손되었다..

이제 다시 철길이 폐선되자 절터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굴다리를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간다..

 

신라초기부터 낭산일대 숲을 신유림이라 하여 보전하였는데..

근처에 거문고 명인 백결선생의 집..최치원의 독서당이 잇었단다.

 

 

지금도 솔숲은 신비함을 준다..

 

우중에 바라보는 경주 남산도 아련하고 신비하다..

 

선덕여왕..

진흥왕의 영토확장 정책의 후유증으로 백제 무왕, 의자왕에게 계속 공격당하는 세월을 보냈던 여왕..

내부적으로는 여자 임금에 대한 반감세력을 다스려야 했다..

그래도 슬기롭게 황룡사 9층으로 백성의 구심점을 만들고, 김춘추, 김유신 등 후계그룹을 탄탄하게 키워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앗으니 훌륭한 군주다..

 

낭산의 2봉우리 중 남봉에 선덕여왕릉이 잇다..

 

잠시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멀리 월성이 보인다..

 

접시꽃과 잠시 눈맞춤을 하고 가다보면..

무덤이 있는 넓은 터가 나오는데, 그 무덤 뒷쪽으로 낭산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우측 오솔길로 진행하다보면..

 

의상사 입구로 나온다..

의상사??

근처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에 황복사가 건재하던 시절, 청년 의상대사가 수행을 한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을 살려 의상사를 지었나 보다..ㅎ

 

골목길에서 만난 앙코르와트식 불상..

 

신라갤러리 표지판을 지나면 비에 젖은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난다..

 

그런데 석탑이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에 젖은 삼층탑이 한맺혀 우는데

흐느껴 불러봐도 목놓아 불러봐도 대답이 없네...

https://youtu.be/b7hwuXfLDro

 

탑에 무슨 사연이 있는가??

 

***

1942.6.24. 이 탑을 발굴했는데, 탑밑에서 금동제 함이 발견되엇다.

판독결과, 함뚜껑에는 신문왕이 692년 죽자, 신목왕후와 효소왕이 선왕의 명복을 빌면서 이 탑을 세웠다고 내용이 써있었다..

그래서 이탑이 황복사 삼층석탑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탑과 황복사는 신문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임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 근처(낭산 동쪽)에 신문왕릉이 이었야 한다..

왜냐면 사서에 신문왕을  낭산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황복사와 가까이 있는 진평왕릉이 신문왕릉이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있다..

그러면, 낭산 남쪽의 신문왕릉은 누구 왕릉인가??

신문왕의 아들 효소왕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있다..

(사서에 효소왕을 망덕사 동쪽에 장사 지냈다고 나오는데, 망덕사의 위치가 사천왕사의 남쪽임은 사서에 나오고, 따라서 망덕사 동쪽은 현 신문왕릉과 일치한다는 말이다.)

 

참고: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607/113813195/1

 

**

결국, 황복사 삼층탑은 신문왕릉의 위치를 제대로 밝혀달라는 한많은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처음에 드림빌더가 신문왕릉부터 가자고 우긴 이유를 알 것같다..

그가 위 기사를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저만치 진평왕릉(아니 신문왕릉인가??)을 바라본다..

왜 이리 경주 왕릉은 위치가 뒤죽박죽이 되었는가??

조선 중기에 조상왕릉찾기 열풍이 불때 각 문중이 정한 위치가 지금껏 내려오기 때문이란다..

이제라도 발굴조사를 해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 볼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 보문들을 지나 진평왕릉(또는 신문왕릉)을 향해 간다..

 

진평왕릉(또는 신문왕릉)을 지나자, 빗속에 두꺼비가 나타났다..

 

선덕여왕 5년(636년) 5월 두꺼비와 개구리가  떼를 지어 궁성의 서쪽 옥문지(연못)로 모여들었다. 

여왕은 이 말을 듣고 신하에게, 
"두꺼비와 개구리는 눈의 생김이 성난 것 같으니, 이것은 군사들의 모습을 닮은 것이다. 내가 일찌기 서남쪽 변방에 옥문곡이라는 골짜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의 징조를 보니 반드시 백제군이 몰래 그곳에 침범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장군 알천과 필탄 등에게 명하여 이를 수색하여 무찌르게 하였다. 알천 등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보니, 과연 왕의 말과 같이 백제의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5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옥문곡에 숨어 있었다. 알천 등은 적을 습격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

옥문곡은 지금의 건천 여근곡이다..

참고 https://blog.daum.net/servan/6351728

 

경주..천년의 고도..삼국유사의 도시..

두꺼비를 봐도, 까마귀를 봐도, 석탑을 봐도, 기와조각을 봐도 역사가 튀어나오는 곳이다..

 

<오늘 걷기> 신문왕릉 - 사천왕사지 - 선덕여왕릉- 낭산 오솔길 - 황복사지 - 진평왕릉 약 4km

선바위(입암)을 지나 입암리 마을을 걸어 연오랑 세오녀 공원을 향해 간다..

 

입암리를 지나면 차도를 좀 걸어서 다시 해변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좀 성급하게 들어갔더니 길이 막혔네..그래서 넘어간다..

 

정자에 앉아 오이도 먹고..좀 쉬고..

내 스타일대로 하면 정자에서 한숨자고 가야 하는데..

 

연오랑 세오녀 공원이 보인다..

찔레꽃은 님그려 바다만 바라본다..

 

연오랑 세오녀 자세한 사연은 https://blog.daum.net/servan/6351870 를 참조하시라..

 

 

해당화도 피고 지고..

 

지난번에 왔었기에 오늘은 단호하게 일월대를 통과해 도구해수욕장으로 직행한다..

 

송가인의 장미꽃의 전설은 여기서도 아름답다..

 

도구해수욕장이 보인다..

 

하면된다..

박통1의 유명한 구호..를 만난다..

가정집 가훈인가하고 자세히 보니, 어촌계 사훈인가보다..ㅎㅎ

 

피곤하고 졸리니 그늘좋은 들마루만 눈에 들어온다..

 

 

오늘길은  접시꽃길로 명명되었다..

 

 

하면된다의 전설..포항제철이 보이는 테트라포트 위에 해태공들이 낚시삼매에 빠졌다..

 

 

임곡리를 지난다..

이 동네 소는 눈빛이 살아있네..ㅎ

 

 

옛날 옛적 신라 아달라왕 시절 알콩달콩 살아가던 연오랑과 세오녀..

 

어느 날 연오랑이 바위 타고 사라진다..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사라진다..

 

그들은 왜 땅에서 만나 행복하게 산다..

그러자 신라 땅에서는 해가 사라졌다..

 

그러자, 신라에서 왜로 사람을 보내 사정사정하니 세오녀가 짠 신비한 비단을 보내주어 도기야에서 제사를 지내니 해가 다시 나타났다.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연오랑을 불을 다루는 제철기술자, 세오녀는 섬유기술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의 왜국행은 집단 기술자 탈출사건이고, 그 바람에 신라는 곤경에 처하고, 다시 제철기술을 설명한 비단을 도면을 돌려보내 주자, 이를 연구해서 다시 제철 대장간의 불이 밝혀졌다..이런 야그 올시다..전설따라 삼천리~~ 오늘 구라는 여그까지 올시다..ㅎ

 

세오녀의 비단을 놓고 제사지내던 해변이 도기야인데, 도기야는 도구해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해를 맞이한다는 영일(迎日)의 지명이 생겨났다..

 

도구해수욕장이 나타나자 일행은 신을 벗고 맨발로 해변을 걸어간다..

 

하지만, 정식 코스는 해변이 아니라 이 솔숲길이다..

 

뭐..많이 걸었으니 보상으로 바닷가를 걸어가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운 것같다..

 

해를 다시 맞이한 포항 영일만에 제철기술을 새로 도입하는 용광로의 불을 지핀 포항제철이 들어선 것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날이다..

 

그렇게 도구해수욕장에서 오늘 걷기를 종료한다..

 

<오늘 걷기> 발산항 - 흥환해수욕장 - 먹바위 - 선바위 - 연오랑 세오녀공원 - 임곡리 - 도구해수욕장 약 9km

 

걷기 종료후 드림빌더가 서둘러 스페이스워크로 가자고 재촉한다..

가는 길에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만났다..

 

환호공원으로 가는 길에 차가 엄청 막힌다..

많은 차가 스페이스워크로 몰려드는 모양이다..

멀리서 보니 롤러스케이트 코스를 걸어가는 모양새다..아찔하겟다..

독일의 어느 제철도시가 제철소가 폐업한뒤  이런 철구조물을 세워 관광객을 끌어 모으며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데,

포항제철은 미리 앞당겨 117억을 들여 건설해서 시에 기부하여 인심을 쓴다..ㅎ

이런 것도 연오랑 세오녀의 나비효과일까??

 

그러나, 날도 기울고 차도 밀리고..해서, 다행히(??) 차를 돌려 죽도시장으로 향했다..ㅎ

 

수퍼맨도 아니고.. 오만데 다 다닐 군번도 아니고..ㅎ

죽도시장에서 먹거리 사들고 간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걷는다.

1,2코스를 걸을 예정인데, 좀 변형해서 3코스 발산항에서 출발하여 2코스(흥환해수욕장 - 연오랑 세오녀공원)를 걷고 1코스  도구해수욕장에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발산항에 도착하니, 멸치 비스무리한 것들을 말리고 잇는데, 멸치 보다 더 좋은 거라니까, 동행들이 혹하고 달라붙어 1상자에 2만원씩 3상자를 사서 차에 실어 놓고 출발한다..

 

접시꽃 당신이 화사한 날이다..

누구는 시집을 쓰고 장관까지 지냈는데, 접시꽃은 여전히 불쌍하게 길거리를 서성인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목장터..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 이최응이 동생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 친정시기에  영의정 지낼때 이곳 사람들을 위해 적폐를 해소하는 편의를 봐준 모양이다..

공덕비가 딱허니 서있다..  

 

흥환리에서 구룡포로 이어지는 말목장성 탐방로 총 8.2km

언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3,4코스를 걸을 때 함께 걸어야겠다.

 

아구가 머리 잘린채 말라간다..

 

다리를 건너면 흥환해수욕장이다..

 

해변이 깔끔하다..

달밤에 대금을 불며 풍류를 즐길만 하다..

 

지도에는 흥환리라고 하는데, 표지판에는 흥한리로 되어있네..

누가 맞는건가??

 

댕댕이와 얼라..잘 어울린다..

 

간이 탈의실인지, 화장실인지..

아이슬란드 갈 때 가져간단다.

 

흥환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데크길로 간다..

하일라이트 절경이 기다리고 있다..

 

요거는 신랑각시 바위

 

이거는 군상바위..

 

이거슨 미인바위..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 같지 않은가??

 

정말 닮았다..

인터넷에서 거의 동의하니..이젠 공식 이름으로 붙여도 되겠다..

 

메꽃도 "좋다 좋아!" 합창한다..

 

비문바위

흰글씨 모양의 문양이 있는 모양인데, 역광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머리에 쌓이 돌맹이에 관심이 간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자기도 돌을 올리려고 던진다..

될때까지 시도.. 

우리 일행 5명 모두 성공..

하지만, 여기는 소원바위가 아니다.. 여기서 실력을 연마해야 소원바위에서 성공할 수 잇다..

 

매미채로 조개를 잡나??

 

마산리 해변에는 멸치를 말리는데, 여기는 1상자에 1만2천원..

일행이 또 2상자 산다..그걸 들고 길을 걷는다.. 정성이 뻗친다는..ㅎ

 

멸치흥정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마산리 쉼터..ㅎ

간식도 먹고..

 

펜션이름이 하도 특이해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바다를 가리킨다..

저 바위 이름이 하잇돌이란다..

 

정말..바위 이름이 하선대..하잇돌이다..

용왕이 선녀를 꼬시던 현장??

 

연오랑, 세오녀를 싣고간 바위라는 먹바위...

그닥 신빙성이 없는 모양이다..

주변 풍광관리가 엉망인 것보면..ㅎ

 

 

이 신령한 바다를 주름잡는 해(海)태공..

 

힌디기의 멋진 풍광..외국 같다..

힌디기?? 흰독(흰바위), 흰덕(흰언덕)이 힌디기로 불린다는..

 

사람들이 또 먼가를 던진다..

 

소원바위란다..

이미 연습한 내공이 있어서 가볍게 성공??

소원은?? 

꼭 돌올리기 성공하게 해달라는 거..ㅎㅎ

 

아기발 바위도 있다..

 

누운 향나무라는 눈향나무..

내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바위가 터키에서 본듯한 모습이다..

 

누구는 둘리의 마이콜 닮았다고 하는데, 반대쪽에서 보는 공식명칭은 여왕바위란다..

내눈에는 별로..ㅎ

 

이것은 안중근의사 손바닥 바위란다..

 

돌 던지는데는 다 소원바위란다..

어쨌건 다 성공했으니 소원성취하는지 두고 봐야겠다..ㅎ

 

호미반도 건너편 사구인가 하고 줌을 당겨보았더니??

뭔지 모르지만 특이한 풍광이다..

 

남근바위는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고개숙인 남자가 되었다..ㅎ

 

2코스의 이름이자 상징인 선바위..

벼락을 맞아 작아졌다는 슬픈이야기..ㅎ

 

선바위를 지나면 연오랑 세오녀 공원으로 이어진다..<계속> 

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불무교부터는 신기록이다..

 

문평동 갑천과 금강의 합류지점에 도착..

 

문평동 17번지 드론공원에는 모형헬기가 묘기를 부리고 잇다..

 

 

개망초가 장미여왕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6월의 여왕자리에 등극했다..

 

우측 대청댐방향의 금강 본류가 흘러와

좌측에서 합류한 갑천을 이끌고 미호천을 만나러 세종시 합강지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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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디에 등장하는 글씨..

"I've got to go, Rock. 
It's all right. I'm not afraid.
Some time, Rock, when the team is up against it, 
when things are wrong and the breaks are beating the boys,
ask them to go in there with all they've got and win just one 
for the Gipper.
I don't know where I'll be then, Rock. 
But I'll know about it, and I'll be happy.


가야해요, Rock. 괜찮아요. 난 두렵지 않아요. 
Rock, 가끔 팀이 역경에 처할 때, 상황이 잘못되고 휴식시간에 선수
들이 자학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말하세요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아 경기에 들어가라,그리고 Gipper를 위해 단 한번의 승리를 거두자".
그때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Rock. 
하지만 제가 알게 되면 아주 행복할겁니다.

***

조지 깁 (George Gipp, 1895년 2월 18일 – 1920년 12월 14일)은 미국 노틀담 대학의 전설적이 미식축구 선수였으며, 

" The Gipper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Knute Rockne 감독 밑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20년 시즌에 맹활약을 하고 그해 12월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가 병상에서 감독에게 했다는 말이다.

 

***

영화 루디에서는 주인공 루디 루티거가 노틀담대학 옛 선수라커에 들어갈 때 벽에 붙어 잇는 위 글씨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루디는 가난한 아일랜드계 노동자의   12형제 중 3째인데, 공부도 못하고 키도 작다..

하지만, 포부는 아일랜드계에게는 서울대 격인 노틀담대학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모두 코웃음치는 상황에서 7전팔기로 꿈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의 노틀담 대학 입학후 자극을 받아 그의 동생 5명도 입학하게 된다..

그는 후에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하면서 어린이 꿈을 일깨워주는 루디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잇다.

 

***

위 글은 미 대선에서도 인용되어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슬러건으로 사용하여 승리를 거머쥐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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