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상담마을 주차장에 오전 10시에 도착..

원래 계획은 내포문화숲길 중 백제부흥군길 1코스 쉰질바위(복신굴) 왕복 10km를 걸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땡볕에 임도길만 걸으면 동행이 불만일 것 같아 일부 등산로와 혼합하여 걷기로 한다..

 

 

내포문화숲길 오서산 구간엔 벚나무가 많아 벚꽃 시즌에 걸으면 좋겠다..

내년엔 벚꽃필 때 오마..

 

일단 등산로를 따라간다..

상담마을을 지나가는데, 우선 처음보는 다래꽃이 눈길을 끈다..

 

요건 독일 붓꽃으로 흰색이다..

동행이 한포기 가져가고 싶어 안달이다..

 

금낭화..

누가 대아수목원으로 금낭화 길 걸으러 간댔는데, 나는 여기서 거저 얻어 걸렸다..ㅎ

 

바닷가에서만 피는 줄 알았던 해당화를 여기서 보네..ㅎ

 

정식 등산로 입구에는 전국 산악회 시그널이 다 붙어있다..

 

정암사 갈림길 임도 사거리까지 700미터 등산로는 찔레꽃 향기 퍼지는 호젓한 오솔길이라 좋다..

 

 우측에서 상담주차장에서 올라오는 2.4km 임도길과 만난다., 

 

이 사거리 부근에 주자창에 있어서 정상도전을 원하는 팀은 여기에 주차하기도 한다..

이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정암사거쳐 정상까지 최단코스(2.5km)로 올라간다.

우리는  좌측 임도를 따라 백제부흥군길 1코스 쉰질바위까지 3Km를 걸어간다..

 

백제부흥군길 1코스는  총 14km 거리다..

 

걷다가 한 표지판을 보니, 쉰질바위에서 임도따라 오서산전망대에 가는 길이 보인다..

정상을 노리는 동행과 임도길에 끌리는 내가 모처럼 의사일치를 보아 전망대를 거쳐 정암사로 하산하는 것으로 노선을 수정한다..

 

쉰질바위 갈림길에 도착..

 

쉰질바위 전망대에서 오서산 능선을 조망하니.. 7부능선 쯤 임도길이 기러기재로 향한다..

 

다시 좀더 내려가니 복신굴이 나온다..

복신과 도침이 백제부흥군을 이끌고, 임존성의 흑치상지 등이 기각지세를 이루던 시절에는 200개의 성을 탈환하고 기세를 올렸는데, 일본에서 풍왕자를 모셔다 옹립한 뒤에 내분이 일어나 자멸한다..

내분시절 복신이 은거하다 피살되었다는 굴이다..

<전북 부안 우금암 아래에도 복신굴이 있단다..언제 거기도 방문한뒤 어느 곳이 진짜 현장인지 밝혀보겠다..ㅎㅎ>

 

 

쉰질바위..

쉰길..50길..사람키의 50배가 된다는 바위..

 

 

쉰길바위를 돌아나가면 다시 임도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정상으로 가는 임도길로 올라간다..

 

정상까지는 2Km 지만, 오서산전망대(구 오서정)까지는 1KM 정도 거리다..

 

거기서 만난 오늘의 주인공..등나무꽃..

꽃말처럼 우리를 열렬히 "환영"한다..

 

저아래 쉰질바위도 여기서 보니 전모가 보인다..

고개 돌리면 눈밝은 사람은 광천 새우젓토굴도 볼수 있다..ㅎ

 

임도의 끝..좌로 정상, 우로 전망대..

가만생각해보니, 걷기에 관심없던 20년전 홍성 근무시절 지인의 도움으로 찝차타고 이 삼거리까지 와서, 전망대까지 몇백미터 걸어가 오서산 억새를 봤던 기억이 난다.. 

 

군침 흘리는 동행을 다독거려 우회전한다..ㅎㅎ

뒤로 오서산 정상이 보인다..

 

전망대 쪽에도 오서산 정상석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홍성 정상이라 부르고, 공식 정상(지리적 정상)을 보령 정상이라고 부른단다..

그러나 억새가 유명한 곳이 홍성 정상부니, 이곳이 정신적 정상이 아닌가 한다.. 

 

백제 시절에는 큰산 대접을 받았다.

산이름도 오산(烏산)인데, 까마귀는 고구려, 백제에서는 삼족오라 하여 해모수의 전령으로 국조 취급을 받는 새다.

그런 새의 산이니 당연히 최고 등급에 속한다..

그냥 높이로 따져도 충남 서해안에서는 제일 높다..

 

줌으로 보니, 보령 정상에도 정상석과 전망대가 보인다..ㅎ

 

가을에 유명한 억새는 지금은 싹수가 어리다..

 

 

정상부를 살짝 내려와 전망좋은 곳에 앉아 요기도 하고, 강쥐노래도 들으며 서해안을 아우른다..

하지만, 연무가 가득하여 서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저 아래 흘러가는 물은 광천천으로 빙도를 거쳐 오천에서 서해와 만난다..

 

내려가다 아쉬워 돌아보니 저멀리 오서산 정산비 흑석이 손을 흔들며 아쉬워한다..

 

 

이제부터 고달픈 내리막길에 멋진 소나무를 발견하고 잠시 쉬며 단소를 꺼내분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검은 물결 춤추는 그곳~~ 

 

푸른 물결춤추고 갈매기떼 넘나드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내리받이 계단길..

잠시 벤취에 누워 한숨돌리고 일어나니 왼쪽 허벅지에 근육통이 발생..ㅎ

 

 

허벅지에 근육통 진통제를 바르고 잘 달래서 정암사에 도착..

 

드디어 처음 갈라섰던 임도 사거리까지 왔다..

 

주차장 도착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니 6시간 이상 걸멍 쉬멍했다..

잔치국수로 점저를 한다..

 

 

<오늘 걷기> 상담마을 주차장 - 등산로 - 임도 사거리 - 쉰질바위 - 정상쪽 임도 - 오서산 전망대 - 정암사 - 주차장

                  약 8km

황홀한 유채밭 끝에서 청룡산 숲길이 시작된다.

 

완만한 오르막의 오솔길..아무도 없는 완벽한 거리두기 코스..ㅎ

원래는 청룡산 정상에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생각도 잇었는데,

걸어오다보니 동네 개도 왕왕거리고, 소똥냄새도 다시 맡기 싫고 해서 한용운 생가까지 내처 걷기로 했다..

 

내포문화숲길이 국가보조를 많이 받나보다..

계단 조성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나처럼 홀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나 보다..

 

바지와 신발을 노랗게 물들이는 주범은??

바로~~~오

송화가루...

 

조망이 없는 숲길을 걷다가 드디어 전망대를 만났다..

시간은 이르지만, 더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점심요기를 하면서 풍광을 즐긴다..

 

좌측에 홍성방조제..우측 바다 가운데가 남당리 앞 죽도..그뒤로 안면도가 길게..

 

죽도가 궁금하시다고라??

https://blog.daum.net/servan/6351264

 

 

이 산속에 누가 이리 공든탑을 세웠나?

무슨 한이 그리 많아 돌마다 담아 쌓아놓았나?? 

 

정상석은 없고 정상지만..높이 236m

 

본격적으로 계단공사중..

 

그런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난다..

임도공사를 하면서 아직 연계통행로 공사가 미완성이다..

 

벼랑끝으로 조심 조심 지난다..

다행히 길은 계속 이어진다..

 

산속에서 만난 석관묘..

요즘 봉분이 멧돼지 등 습격에 허물어 지는데, 대안으로 이런 석관묘도 괜찮을 것 같다..

 

3.5Km의 숲길이 끝나고 이제 1.2KM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한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문선시에 익숙할 스님이 한글시를 멋들어지게 쓴다는 반전의 묘미..

 

그는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나 강원도 설악산 오세암, 백담사를 거쳐 건봉사에서 수행을 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자유로이 날았다..

 

그는 3.1독립선언시 33인으로 참여했고, 독립선언서 말미의 공약삼장을 집필했다..

그리고 옥에 갇혔다.

그의 제자 춘성이 절 논을 팔아 옥바라지하다가 만해에게 혼나고 내쫓겼다는 말이 있다.

 

옥중감회

 

一念但覺淨無塵      
일념단각정무진
鐵窓明月自生新        
철창명월자생신
憂樂本空唯心在        
우락본공유심재
釋迦原來尋常人        
석가원래심상인


한생각으로 깨치면 티끌 없이 깨끗하나니
철창 사이로 비치는 명월도 스스로 새로워진다네
근심과 즐거움이 본래 공이요 오직 마음뿐이니
석가도 원래는 예사 사람이었다오

 

 

한용운 생가에서 김좌진 생가로 길은 이어진다..

 

아직 5km를 더가야 하는데, 주로 아스팔트를 걷는 코스라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다시 돌아와 만해기념관을 관람한다..

만해의 아버지는 홍주 관아의 아전이었는데, 어려서 어린 한용운에게 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 어린 용운의 기상을 키워주었다.

동학혁명당시에는 홍주성 소속으로 동학군을 진압하는 일을 하다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자 한용운은 오대산 오세암으로 출가한다. 백담사를 거쳐 건봉사에서 당시 고승 만화스님을 만나 만해라는 법호를 받는다.

그는 오세암에서 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도처시고향 

幾人長在客愁中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일성갈파삼천계 

雪裏桃花片片飛

설리도화편편비

 

장부 이르는 곳마다 고향이거늘

그 누가 오랫동안 객수에 젖었던가

한 소리 큰 할에 삼천세계를 타파하니

눈 속에 복사꽃이 편편히 날리는구나

 

만해는 독립운동가, 시인, 불교혁신가로만 알려져있지, 그의 구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오세암에서 당나라 동안 상찰 선사가 지은 십현담을  매월 김시습이 주해한 서적을 읽고,  숙고하여 

십현담주해집을 지었다..

 

내용이 궁금한 분은 여기를 보시요..

https://kydong77.tistory.com/17953

 

그는 만년에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살다가 광복 1년전에 사망했다.

https://blog.daum.net/servan/6350650 참조

 

****

한용운 생가 주차장에서 결성택시를 호출하니, 처음에는 30분 걸리다더니, 혼자냐고 묻더니 10분만에 왔다.

노인 2분을 태우고 합승시켜서 차량주차장소로 간다..

요금 7천원...

 

거기서 차를 몰고 4코스 종점 김좌진 생가로 갔다..

그는 서인 김상용(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김장생의 손자 김익겸 등과 함께 순사)의 후손으로,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여유있게 자랐다.

그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해 16세 나이로 가노를 해방하고 전답을 무상 분배해준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한다.

1906년 홍성의병이 거병하여 홍주성 일본군을 공격하여 성을 탈환한 소식을 그도 들엇을 것이다.

그 의병에 그의 집안 사람도 참여하였다..

 

생가가 부잣집답게 닐리리 기와집이다..

집안 마굿간에 백마 모형도 잇다.

10대때 부터 말을 타고 무예를 익혔을 것 같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고 군대가 해산 되자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선다.

1920년 10월 21일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거 섬멸한다..

그당시 민족의 우상같은 존재였다..

 

1930년 1월 24일 공산당원에게 암살 당한다..

이일은 훗날 아들 김두환이 우익의 기동대로 나서는 인연이 된다..

 

장군의 이웃사촌도 열심히 활동한다..ㅎㅎ

물론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지..

 

<오늘 걷기> 결성행정복지센터 - 결성관아 - 결성향교 - 청룡산 숲길 - 한용운 생가 약 8km

오늘은 홍성군 결성면에서 시작한다.

이번 테마는 내포문화숲길 중 내포역사인물길 4코스 <결성관아 - 김좌진 생가> 중 

결성관아- 청룡산숲길 - 만해 생가까지 걷는다.

<내비> 결성행정복지센타를 치고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사실은 여기보다 근처 사거리에 "클래식이 나오는 화장실" 옆 공용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편리하다.

클래식이 우아하게 나오는데, 헉..화장실에 휴지가 없다..ㅎㅎ

 

 

결성은 일제시대 이전에는 독립행정구역이었다.

마한 시대 고비리국, 백제 시대 결기군, 통일신라 시대이후 결성군이었는데, 일제시대 홍주와 합병되어

홍+성이 되었다..

내포역사인물길 4코스는 결성동헌에서 출발한다..

일단 청룡산 정상에서 원점회귀할지, 한용운 생가까지 갈지 결정하기로 한다..

 

결성아문..

 

원래 조선초에 현재 관아 뒷산 정상부에 있엇는데, 1665년 (현종 6년)에 이 자리에 건축되었다.

다시 1852년 임자년 현감 권명규가 개축했단다..

권명규는 1843(헌종 9년) 식년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동헌의 주건물은 망일헌(望日軒)이다..

해를 바라보는 건물..

여기서 해란 임금을 가리키겠지??

 

그옆에 작은 건물이 책실이다..

서재라는 말이다..

결성현감할만하다..

책실에서 책이나 보다가 심심하면 남당리가서 회좀 먹고..ㅎㅎ

 

돌아나오려다가 문득 사또의 살림집은 어디에 있지??

나중에 고지도를 보니 동헌 뒤에 계단이 있고, 그 뒤로 내아가 설치되어있다..

지금은 담장으로 가려졌지만..

 

관아 앞에 비석이 서있는데, 크기가 각각이다..

 

 

현감 이도연  거사비(去思碑)..

떠남을 아쉬워 하는 선정비, 공덕비와 같은 말이다..

크기로 봐서 적당히 공무수행하고 간 것 같다..

 

현감 권대응 영세불망비..

제일 크다. 비석돌도 좋고.. 영세불망..영원히 못잊는다??

비석이 온전 한 것보면 진짜 선정을 베푼것 같다..

 

반토막난 비석..

현감 박효??

누가 원한이 맺혀 부셨나?

하긴, 탐관오리들이 더 큰 선정비를 세우게 했다던가??

 

관아에서 조금 내려오면 형장청이 있다..

일제 시대때는 경찰 주재소를 여기에 설치했단다..

 

건물 옆에 형틀과 곤장이 있다..

저 곤장에 맞으면 10대만 맞아도 죽겠다..

흥부전에 돈 받고 대신 매를 맞아주는 알바가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ㅎ

 

건물 뒷편에 1425년 정구령현감 전임때 심은 나무가 신목 대접을 받고 있다.

정구령은 1424년(세종 6) 9월에 덕행으로 천거되어 결성 현감에 제수되어 10개월 간 재임하고 이듬해 6월에 사직하였단다..

그는 사직후 안동시 풍양면 청곡리 포내 별실(浦內別室)에 괴목 3그루를 심고 삼수정(三樹亭)을 짓고 자신의 호로 삼고 자적(自適) 은거하였다..

그의 증손자 정광필이 영의정이 되었다..

 

이 나무는  일제시대 1935년  나무가지를 자른 주재소 주임 야마구치를 졸지에 벙어리가 되게 함으로써 신목의 지위에 올랐다..

항일 기개에 감복하여 신목께 절을 올리고 나온다..

 

고지도를 보면, 결성은 해미읍성과 함께 서해안 내포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다..

장차 읍성이 복원되면 제법 관광자원이 될만하겟다..

 

결성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본격적으로 내포역사인물길  4코스가 전개된다..

 

황매화도 곱게 피었다..

 

임득의 장군은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백월산 청난사에서 본적이 있다.

그는 임진왜란 중 이몽학의 난 때 홍주목사 홍가신을 도와 반란군을 격파한 공로로 공신이 된 사람이다..

 

멀리 결성향교가 보인다..

고려 때에는 금곡리에 있었고, 조선 태종 때 이 자리에 세워졌다..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면 데이지가 도포입고 도열하고 있는듯하다..

 

향교문을 들어서니 건물이 등을 돌리고 섰다??

명륜당...강의실이다..

원래 대성전과 마주보게 설계하나보다..

 

 

향교 마당에서 바라보니 오서산이 우뚝하다..

이제 여기로 와야지??

옙, 백제부흥군길 1코스로 찾아뵙겠습니당..ㅎ

함박꽃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향교가 있는 동네이름은 모두 교동이던가 교촌이다..

 

논도 모내기 준비하느라 물을 받고 있다..

 

홍성한우..유명하다..

이지역도 소똥냄새가 코를 찌른다..

 

 

드디어 청룡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입에서 만난 유채꽃..

눈이 황홀하다..

 

청룡산 숲길이 기대된다..<계속>

자작나무쉼터를 지나 임도길에 들어서자

역색(易色)혁명이 벌어졌다.

분홍색 깃발은 사라지고 황건적의 세상이다..

 

남녁에서 호시절을 다 보내는 줄 알았는데, 아미산에 숨어 산적질 하고 있구나..ㅎ

그 기세에 눌려 벚꽃은 아직도 명함도 못내밀고 있다.

하긴, 오늘 바람도 거세고..먹구름이 오락 가락하니..벚꽃은 눈치를 보고 있다..

 

쇠학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점묘파 쉐라가 어제 저녁 다녀간 모양이다..

춘정에 못이기어 길 허리는 베베꼬이는데..파스텔톤으로 화사하게 치장한 봄처녀가 제 가시네..ㅎ

 

푸른 솔이 어린 산수유 손잡고 봄소풍나왔다..

 

돌아보니 아미산 눈썹이 참으로 곱구나..ㅎ

 

장승쉼터에서는 장승들이 꽃을 끼고 잔치를 벌리고 있다. 

아니, 꽃잔치에 장승들이 구경왔나??

 

장승쉼터에서 몽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몽산성 망루가 나타난다..ㅎ

 

백제부흥운동할 때는 몽산 정상부만 테뫼식 산성이었고, 

조선 세종때 5km 길이의 포곡식 토석혼축산성을 지었다는 것이다..

 

몽산 정상을 앞두고 일진 광풍과 음습한 구름이 몰려와 분위기가 숭숭해진다..

뉴스에는 인근 서산 운산면에 산불이 발생했단다.

하늘엔 헬기들이 물주머니를 달고 연락부절이다..

 

하늘 눈치보며 몽산 정산에 오르니, 꽃대궐이다.

산수유와 진달래가 한 부르스 하는 중이다..

 

정상에서 산길을 따라 자작나무쉼터로 간다..이것이 백제부흥길 8코스다..

아미산쉼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4.8km를 가는 길은 9코스다..

 

아미산 정상 아미정은 새손님 맞느라 바쁘다..

 

이 길은 서해랑길 타이틀도 달고 있다..

좀 정리 좀 해보자..

충청서부지역은 크게 "내포문화숲길"을 조성했는데, 그 아래 1) 내포역사인물길, 2) 백제부흥군길, 3) 원효깨달음의 길, 4) 매포천주교순례길, 5) 내포동학길 등이 있다.

서해랑길은 서해안을 도는 길인데, 슬쩍 이곳 코스도 끼워넣고 장사하는 중이다..

결국, 이길을 한번 걸으면, 백제부흥군길 8,9코스, 몽산성마루길, 내포동학길 1코스, 서해랑길 64-5코스 등 1타 5피를 할 수 있다..ㅎ

 

위 사진 좌측 임도가 9코스, 우측 산길이 8코스..뭐 이렇다..ㅎ

광풍 요운(狂風搖雲)이 난리를 치자 하늘도 안색을 바꾸고 긴장한다..

 

 

그래도 무탈하게 쇠학골쉼터 송학정에 도착한다..

점심도 먹고..숨도 돌리고..

 

1부에서 나를 유혹했던 몽산 입구로 올라간다.

자목련이 섹시한 란제리 패션으로 나오고..진달래는 더 붉게 치장하고 다가선다..

그러나, 나도 일편단심이다..

서로 붉은 마음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자작나무쉼터에서는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타" 방향이라고 안내하고서는 이곳 표지판에서는 입을 싹 딱고, 다불산 등 표시만 달아 잠시 헷갈린다..

당황하지말고 다불산 표시로 가면 된다..

표지판에 일관성과 친절성이 더 요구된다..

 

도중에 다불산 갈림길이 나온다..

 

자작나무 숲길이도 나오고...

 

벚꽃은 언제 피나??

서울도 핀다는데..당진 지역이 바닷가라 추운가??

 

드디어 주차장이 보인다..

 

<오늘 걷기> 당진센타 주차장 - 아미산쉼터- 아미산 정상 - 자작나무쉼터- 쇠학골삼거리 - 장승쉼터 - 몽산-쇠학골삼거리 - 자작나무쉼터 - 자작나무숲길 - 주차장 약 8KM

 

 

추석 전야에 서산 걷기에 나섰다..

내포문화숲길..그중에 원효깨달음의 길..

 

 

대곡2리에서 출발하여 일락사를 거쳐 개심사까지 간다..

 

 

 

백접초가 도열하여 환영해준다..

 

 

 

한서대학교 부근을 지난다..

 

 

 

 

 

 

추석 전에 모두 벌초를 하여 놓아 정갈한 묘소들..

오늘 30년 전만 해도 "전을 붙여야" 할 여성들이 오늘 걷기에 8할을 차지한다..

특히 "시어머니 허락"을 득하고 온 사람도 있고...

백년전 도인들이 후천개벽 시대의 도래를 설파하였는데..

이제 가만 생각해보니

남성 가부장의 시대가 신석기의 시대와 함께 개막하였다가  서서히 저물고 있으니..

과연 남성으로 대표 되는 양(陽)의 시대에서 음(陰)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후천개벽이 아니고 무엇인가? ㅎㅎ

무덤 속의 선인들은 알까?

 

 

 

 

참취꽃..어린 순이 취나물이란다..

길 가는 내내 지천으로 깔렸다..

 

 

건너편 산이 연암산이고  그곳에 천장사가 있다..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 경허 선사가 득도후 보임하였다는 절..

이 길을 원효 깨달음의 길이라고 명명한 유래에 의문이 간다..

원효가 구법을 위해 당나라로 건너가려고 하던 당항성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부근이다..

원효가 당항성으로 가던 중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해골물의 기연으로 득도한 이야기는 알려져 잇다.,

그 득도한 장소가 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수도사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득도후 요석공주와 스캔들을 일으킨 사연은 무열왕 3년 658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원효가 당항성으로 가던 때는 백제가 멸망(660년)이전이고  내포 지방은 아직 백제 지역이라 원효가 당나라를 가기위해 이 지역을 통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효는 아마 서라벌을 출발해서 진천 - 안성 - 평택 구간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자. 그러면 원효가 어느 때에 예산 가야산 지역에서 수도하였을까?

아마, 백제 멸망후 백제 유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백제지역을 순회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전국에 원효와 관련된 절이 100개가 넘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막연히 원효 깨달음의 길이라고 명명하는 것보다

역사적으로 분명하고 근대 선불교의 부활에 기여한 경허를 모티브로 하여 경허 께달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 어땠을까?

그의 제자로 수월, 만공, 혜월, 한암 등 고승이 즐비하고, 만공은 가야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덕숭총림을 이루지 읺았던가?

그런데 어찌 막연한 원효의 길로 명명하였는지... 

 

 

 

길가에 보라빛 꽃들이 경쟁한다..

그중에 한 꽃과 통성명한다..싸리나무꽃이란다..

 

 

 

 

 

 

 

알토란 같이 소담한 밤송이를 볼 때 마다 김삿갓 시가 생각난다..

후원황률 불봉탁(後園黃栗不蜂坼) 

계변양유 불우장(溪邊楊柳不雨長)

 

 

 

 

 

카메라 렌즈에는 단풍세상이 열렸다..

 

 

 

 

 

상왕산 일락사..

날마다 즐거운 절..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이제 초록도 절정이고 보니 단풍세상이 멀지 않았다...

 

 

 

쑥톱 개민..

쑥부쟁이는 톱날 잎..벌개미취는 민짜 잎..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 거의가 벌개미취로세..

 

 

손을 벨정도로 억센 억새는 하늘을 찌를듯하다..

 

 

 

피사의 탑보다 더 삐딱한 개심사 법종각은 여전히 건재하다..

 

 

 

 

 

일락사에서 즐거워진 마음을 개심사에 와서 열어놓았더니 잠이 찾아와 차지하였더라..

 

 

 

두런 두런 걸어가는 길..

 

무인도에 혼자 표착했을 때..

여자는 거울을 찾아 얼굴을 고치고

남자는 어디 여자 없나 찾아본다..

시시덕 거리며 세월아 네월아 걸어간다..

시어머니 허락받고 전 붙이는 일에서 해방된 날..집에 일찍 가선 무엇하랴..

 

옛노래 흥얼거리며 타박 타박 걸어간다..

"세월아 네월아 가지 말아라

아까운 이 내 청춘만 늙어 가누나.."

 

 

돌아가는 길..코스모스 보고 차에서 내렸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붉은 꽃 앞에서 폼을 잡는다..

 

 

 

<오늘 걷기> 대곡2 리 - 한서대 입구 - 가야산 전망대 - 일락사 - 개심사  약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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