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능선 걷기를 마치고, 헌강왕릉 진달래꽃을 보러간다..

입구는 벚꽃이 장식하는데, 왕릉 뒤로는 진달래밭이다..

여기 사람은 참꽃밭이라고 하더만..ㅎ

 

헌강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유명한 경문왕의 장자..

진성여왕의 큰오빠..

신라의 절정기..

성안에 초가집이 없고 기와집 처마와 담이 이어지고, 숯으로 밥을 해먹던 시절..

처용가 불릴 정도로 국제교역도 왕성하고 흥청망청한 사회분위기..

송악에서는 왕건이 태어나고, 견훤은 신라 중앙군 병사로 복무중이던 시절..

당나라에서 최치원이 귀국하여 계원필경을 왕에게 받치던 시절..

총명하고 독서을 좋아했던 왕이 재위 5년만에 죽자, 나라는 혼란해지고 진성여왕이 등극하지만 역부족..

후삼국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로 비정하면,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연상시킨다.

총명하여 춤과 음악으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중흥을 꿈꾸던 젊은 왕자..

요절하여 모든 꿈이 사라진다는..

 

진달래는 짧으면서 화려한 화양연화의 호시절을 연상시킨다..

헌강왕의 5년,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4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경주 걷기 2일째 오전은 동남산 가는 길을 걷는다..

월정교 - 상서장 - 헌강왕릉 - 서출지로 이어지는 길..

 

 

 

 

 

저멀리 월성이 보인다..

남천을 해자 삼아 천연의 요새지에 궁궐을 세웠다..

삼국유사에 이르길, 월성은 석탈해가 숯을 묻고 호공과 송사를 벌여 차지한 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박혁거세 이래 수도였던 금성에서 이곳 월성으로 이전한 것은 탈해를 승계한 파사왕때 였다고 한다..

 

 

 

 

최치원..신라 최초의 조기 유학생..12세에 당나라에 유학간다..

당시 아버지는 10년안에 과거에 급제못하면 내 자식이 아니라고 엄포를 놓았다..

죽어라 공부하여 18세에 빈공과에 합격..아버지 특명을 조기 달성..

한 때는 황소의 난 토벌군 사령관 고변의 종사관이 되어 "토 황소 격문"을 지어 필명을 중원 천지에 날렸다..

그러나, 당나라도 서서히 몰락해가자, 884년(헌강왕10년) 나이 28세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한림학사 벼슬을 받았다가 태산(현 : 전북 태인) 및 부성(현 : 충남 서산)의 태수를 지낸다..

헌강왕이 죽고 동생 정강왕도 1년만에 죽고, 여동생 진성여왕이 등극하자 국내 정치는 혼란해져 간다..

894년(진성여왕 8년) 혼란한 정국을 개혁하기 위한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상서한다..

그것을 쓴 곳이 상서장이다..

 

 

이 건물은 터만 남았다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이다..

 

 

 

범해..배 띄우는 바다..

신선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심경을 쓴 시..

상서한 시무책은 묻혀 버리고, 진성여왕 11년 조카인 효공왕에게 양위를 하자, 그는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한글날 538돌이면 1984년이다..

 

 

꼬리가 뭉뚝한 이 개는 동경 개..

동경..경주의 존칭이니 경주의 특산 개...

5~6세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에서도 동경개으로로 추정되는 짧은 꼬리의 개 토우가 다수 발견되었으니, 동경개는 신라 고유의 종자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이다..별명이 할매부처..

젊은 동행이 자식 낫게 해달라고 넙죽 절한다...

자비로운 인상이라 소원을 들어 줄 것 같다..

 

 

 

 

한 양반이 이런 계곡에서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하니., 젊은 동행이 또 넙죽 절한다..

그 만큼 간절하니 소원 성취는 필연이라..

 

 

 

 

 

탑곡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 입구 창고건물에 벽화..

마애바위에 새겨진 탑과 불상을 그대로 그려놓앗다..

 

 

 

 

 

옥룡암..추사의 글씨 일로향각은 그대로다..

 

 

 

 

 

 

 

 

 

9층탑은 황룡사 9층탑의 모습을 알게 해주는 자료..

 

 

 

미륵곡 보리사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다..

그러나 올라간 보답이 잇다..

잘생긴 부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보리사에서 대나무 숲길을 걸어 헌강왕릉으로 향한다..

 

 

 

 

 

 

 

 

헌강왕..처용설화와 관련이 있다..

그가 개운포(울산)에 행차햇다가 용왕의 아들 처용을 데려오게 되었는데, 그가 어느 날 집에 오니 역신이 아내를 범하는 장면을 보고 향가를 지어 부르고 춤을 추었다..

 

동경(東京, 경주)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니다가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바라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래 내 것이다마는
빼앗음을 어찌하리잇고

 

처용의 대범함에 놀란 역신이 다시는 처용 앞에 나타나지 않겟다고 맹세하고 사라지므로 후일 퇴마의식으로 처용 형상의 부적을 붙이고, 그의 춤을 흉내내어 처용무를 추었다.

그뒤에 이춤은 고려 왕실은 물론 조선 왕실에 까지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https://youtu.be/0s_QGfNrEUw

 

처용의 정체 관하여..

1)설은 아랍 상인이라고 하는데, 오만 사람들은 오만에 신라라는 섬이 있다는 이유로 처용이 오만의 상인이라고 주장한단다..

2)설은 헌강왕의 서자인 효공왕으로 보는 견해..헌강왕이 처용을 얻은 곳이 울산 개운포인데, 그 설화에는 용왕이 안개를 피워 심술을 부리므로 망해사라는 절을 지어 주기로하니 안개가 걷혀 개운포라고 명명하였다...그런데 망해사의 별칭이 신방사를 점을 들어 헌강왕이 다시 울산이 토호 세력의 딸의 수청을 받아 아들(처용)을 낳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설에 의할 경우, 처용은 후에 진성여왕이 데려와 양위하고 효공왕으로 옹립하게 된다..

효공왕 때 견훤, 궁예 등의 후삼국 시대가 열린다..

 

 

 

 

 

 

 

 

 

헌강왕, 정강왕릉의 솔향기는 정말 좋았다..

동남산 가는 길은 신라의 명운이 시들어가는 헌강왕 - 정강왕 - 진성여왕 - 최치원 - 효공왕의 역사와 함께하는 길이자,

불곡, 탑곡, 미륵곡의 부처님들을 알현하는 길이다..

 

 

신라 초기 유지 서출지에서 걷기를 마친다..

2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며 걸었다...

 

 

<2일째 오전 걷기> 월정교 - 상서장 - 불곡 - 탑곡 옥룡암 - 미륵곡 보리사 - 헌강왕릉 - 정강왕릉 - 통일전 - 서출지  약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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