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대전 주변 계곡으론 식장산 세천계곡과 대둔산 수락계곡이 선순위 든다..

상대적으로 난이도와 접근성으로 수락계곡이 좀 한가한 편이다..

오늘은 군지구름다리 주변을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이젠 익숙해졌다고 바로  선녀폭포 쪽 데크로 걸어간다..

 

장마비 그친지 1주가 지나니 벌써 계곡물이 줄었다..

 

수락폭포가는 길은 그늘 속 산책길이다..

 

고깔바위.. 이번엔 얼굴모양을 발견해보란다..

 

 

수락폭포도 웅장함이 사라졌다..

 

 사람이 붐비는 폭포 하단은 양보하고 계단위 폭포상단부에 앉아 잠시 더위를 날리고..

군지구름다리 방향 계단으로 올라간다..

 

200-300계단 힘차게 올라가야 한다..

 

멀리 계룡산 천왕봉이 보인다..

대둔산과 계룡산이 한밭벌을 두고 세력을 다툴 때, 대둔산 마천대가 갑천을 내려보내 계룡의 확산을 막는다..

갑천과 한밭을 두고 대둔산과 계룡산이 팽팽히 대치하여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측 아래로 군지구름다리가 보인다..

마천대 코스에서 잠시 이탈하여 내려가야 구름다리를 건널 수 있다.

 

이 구름다리를 지나면 올라가면 깔닥고개와 이어지는듯한데, 아직 가보지 않앗다..

 

구름다리 지나 직진해본다..

 

물이 마른 군지폭포(?) 부근 짧은 다리를 지나고 이어서 가파른 계단 길이 주욱 이어진다..

 

다시 돌아와 주등산 코스로 복귀한후 좀더 올라가니 돌탑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 석천암도 보인다..

 

조망 좋은 전망대에 앉아 한참을 쉰다..

 

마천대를 향하다가 좌측코스를 택하여 가다가 보니 석천암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 나온다..

 

석천암 표시로 하산한다..

 

지난번 낙조대 방향으로 가보려다 소나기 내려 하산한 지점에 도착..

 

오늘은 석천암에 들르지 않는다..

 

수락주차장으로 계곡따라 내려간다..

이 계곡길이 여름엔 최고다..

수량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다시온 수락폭포 상단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옥수수도 먹고..

그러다 옥수수 한 알갱이가 떨어지자, 우루루 모여드는 넘들이 있다??

살 통통한 피래미들..

 

그뿐이 아니다..

바위 틈에 가재도 산다..

 

수락계곡과 썸타는 밀당..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담엔 수락재- 깔닥고개- 군지구름다리 - 석천암 - 수락폭포로 걸어봐야겟다..ㅎ

 

 

 

<오늘 걷기> 수락계곡주차장 - 선녀폭포 - 수락폭포 - 군지구름다리(왕복) - 석천암갈림길 - 수락폭포 - 주차장  약 5Km 

논산 연산면 황산성 가는 길이 연산향교에서 시작된다는 정보를 듣고 연산향교에 차를 대고, 향교 좌측 담장을 끼고 끼고 올라갔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내려왔다.

향교 분에게 물어보니, 홍살문 아래 혜림선원 옆길로 올라가라 한다..

 

혜림선원을 지나자, 글씨들이 눈길을 잡는다.

간자치인 내가 참새처럼 그냥 지나칠리 없다.

 

늘 비우고 즐겁게 웃고 살자..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時不再來)

 

난초는 은자의 지조를 지녔으며, 대나무는 군자의 덕을 품고 있다..

그냥웃자 전시장??

그때 주인장이 나와 커피한잔 하고 가라신다.

길초입부터 지체하기가 뭣해 주춤거리다가 워낙 은근히 권유하는 바람에 폐를 끼치러 들어갔다.

 

 

도회지 아파트에 살면서 다양한 직종을 섭렵하다가 이제 은퇴하고, 고향땅에 들어와 놀면서 봉사도 하고 지낸단다.

 

1층엔 황토방도 있고, 2층엔 몽고식 게르로 꾸며, 여름에는 천장을 열고 고기를 구워먹는단다.

 

난타 동호인들과 난타를 즐기고, 섹스폰 연주하며, 서예도 즐기는 풍류가다..

물론 틈틈히 연주 봉사도 다닌단다..

 

그리고 어린이집 아이들 체험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버려지는 접시를 가져다가 아이들 글씨 만들기 놀이도 하면서..ㅎ

 

이 공간은 행복이 스스로 연주하는 공간이란다.

누구든 그 연주를 감상하면 된다..

 

커피를 서로 나누는 동안 그가 최근에 쓴 글씨를 보여준다.

"총명한 사람은 명이 짧고, 미련한 사람은 오래산다"

머리 많이 쓰고 바쁘게 살면 스트레스가 많을테지..ㅎㅎ

 

그에게 함자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정원에 명함이 있다..

청석 한대장...

 

언젠가 날좋은 날 돼지고기 두어근에 잎새주 한병들고 찾아가 난타나 두드리다 오면 좋겠다..

 

전시장에서 커피 잘 마시고 황산성으로 오른다...

돌아보면 황산벌이 보인다..

황산벌 초입에 자리잡은 이 동네 이름이 관동리다..

원래는 관창리였단다..

관창??

황산벌에서 죽은 관창??

 

 

임도길을 올라서면 관동리 - 표정리 구간 임도와 만난다.

길 건너 올라가면 황산성이다..

 

황산성- 깃대봉 - 함지봉 - 향적산(국사봉)으로 이어지는 9km 등산로가 있다..

청석 한대장이 나에게 말하길,

자신은 은퇴후 2년간 전국의 산 정상을 노리다가 양무릎이 나가서 요즘은 만보걷기로 만족하고 산단다.

그래서 나에게 권유하기를,  당시 연배에는 무리하게 정상을 노리지 말고 둘레길을 다니는게 좋겠단다..

그의 말씀을 계룡산신이 대신하는 것으로 알아듣기로 했다..ㅎ

 

황산성에 오르니 황산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번에 천호산 -함박산- 깃대봉 능선에서 황산벌을 조망하였다..

그러고 보니, 백제- 신라 전선은 계룡산줄기와 대둔산줄기(천호산방향)가 장성처럼 늘어서서 

직진 출입구는 금강을 통한 공주방향과 황산벌 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신라군을 막기위해서는 1차는 대전- 옥천 사이 탄현(현 식장산 마달령)에서 막고, 뚤리면 황산성과 천호산 사이 통로(황산벌 입구, 현 1번국도)에 진을 치고 막을 수 밖에 없다.

이곳이 뚤리면 평야지대로 부여까지는 무풍지대니까..

황산벌 입구를 조망하는 이 성에 백제군의 본진이 잇었다고 한다.

성아래 백제 5천결사대에 몇일간 진군이 막힌 신라군의 화랑 관창이 나선다..

김유신 이래 젊은 화랑의 돌격은 신라군의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죽는다.

그래서 성아래 지역 이름이 원래는 관창리였는데, 지금은 관동리도 바뀌엇다.

지금이라도 다시 관창리로 지명을 환원하기를 권한다..

(참고, 옥천 서화천 성왕이 전사한 부근 길 이름이 성왕로이고,  경북 경산시 원효 탄생지 부근에는 원효로가 있다..)

 

지금도 이 통로는 호남으로 가는 1번 국도과 호남선 철도가 다니는 요지이다..

과거의 요지가 현재도 요지다..

그러니,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도 이곳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엇다.

이곳에서 승리한 고려 왕건은 건너편 산을 하늘이 도왔다는 의미로 천호산(天護山)이라 명명하고, 그 아래 개태사(開泰寺)를 창건하여 태평성대의 개막을 알렸다.

아들 신검의 배신에 분노하여 왕건에게 귀부한 견훤..

왕건이 자신의 청을 거절하고 신검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자, 홧병이 나서 개태사에서 죽었다던가??

태조의 후원을 받은 개태사는 한때 1000명의 승려가 수행하는 큰 절이 되엇다. 

그 증거로 1000명의 밥을 짓었다는 쇠솥(철확)이 지금도 남아잇다.

 

 

황산성 정상에서 보니 황산벌 우측으로 탑정호 일대와 계백장군묘 지역이 보인다..

관창의 분전으로 분기탱천한 신라군의 맹공으로 황산벌 입구가 뚫리자, 그때부터 파죽지세라..

백제군도 어쩔 수 없이 밀리기 시작하고, 계백장군도 전사한다..

그가 전사한 부근에 계백장군묘가 생기고, 현재는 백제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등산로는 계룡산으로 이어지는데, 깃대봉- 함지봉이 눈앞이다.

 

깃대봉까지 올랐으나, 조망은 별로다..

금년 최강추위라는 날, 무리하지 않고 돌아선다..

돌아오면서 보니, 황산성이 성답게 우뚝하다..

 

이 성 위치는 나제 전쟁시 부여방어에 필수적인 곳이다. 

 

성에서 내려와서 표정리 방향 임도로 걸어간다..

자료에 의하면, 이 임도는 상월면 대명2리 금강대학 입구까지 20km 정도 이어진다고 한다..

 

 

길가에 부여왕족 부여 서씨 묘소가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부여 서씨의 시조는 의자왕 아들 부여융이라고 한다.

부여융은 백제 최후의 날 계룡산 신원사 고왕암에 숨엇다가 당군에게 잡혔다는 전설이 잇다.

그는 당나라에 끌려갓다가 당나라 황제에게 서씨 성을 받고,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당나라의 백제통치에 협력하였다고 한다. 

 

안내지도도 없이 황산성둘레길이라 해놓으니, 좀 뜬금없어 보인다..

 

 

한참 임도를 걷다가 꽃피는 봄날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주차장소인 연산향교로 돌아오면서 다시 황산벌을 바라본다.

땅은 말이 없지만 역사를 증거한다..

 

 

 

<오늘 걷기> 연산향교 주차장 - 혜림정사 - 그냥웃자전시장 - 임도삼거리 - 황산성 - 깃대봉 - 임도 삼거리 - 표정리 - 원점회귀 약 7km

지난주에 늦게 가는 바람에 임도길을 도중에 돌아왔는데, 궁금증이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른 아침에 보니, 온빛의 뜻을 알것 같기도 하다..

 

주위는 무서리 하얗게 내렸다.

노래 가사 그대로..

 

국화 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사진명소에선 아침부터 의상까지 챙겨온 커플이 사진 삼매경에 빠지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메타세콰이어는 무슨 이유로 얼굴을 붉히나?

 

드디어 등산로라 표시된 임도로 오른다.

 

억새가 기웃거리는데, 한순간 햇살을 받으니 아카데미상 레드카펫에 선양 눈부시다..

 

임도는 유장하게 구비 구비 올라간다.

어울릴듯한 풍입송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다..

 

초 겨울에 매화처럼 하얀 이것은 무엇인고??

 

 

이길에서 고스톱을 치면 오동나무가 똥 쌍피로 삼점을 내고 피박 씌려고 고를 부를 것 같다는...ㅎ 

 

도중에 내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어디서 오는가 물었더니  임도 끝을 보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길 중간에 서있는 표지판..

깃대봉 - 함박봉 - 황령재 -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와 만난다.

이 능선은 1500년전 백제 계백 장군의 오천결사대가 지켜던 피의 능선이었다..

 

 

그래서 잠시 깃대봉 쪽으로 오르다가 황산벌을 쳐다본다..

다음에 이 능선길을 걸어보고, 또 황산성도 탐방해봐야겠다.

 

임도의 끝은 휴양림 출구와 만나는 것으로 추정은 되나, 제법 길 것으로 예상되어 

다음에 점심 준비까지하고 다시 오마 기약한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코스 특템한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 걷기> 온빛 자연휴양림 주차장 - 등산로 표시 (임도) - 함박산 표지판 , 원점회귀 약 6km

폐광산에 세운 절..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논산시 가야곡면 반야사..

 

법당의 발원이 주련으로 걸렸다.

소멸무량중제장(消滅無量衆諸障)

획득무량대지혜(獲得無量大智慧)

 

한량없는 중생의 모든 장애를 소멸시키고

한량없는 큰 지혜를 모두 얻으시라..

 

페광산의 터에 지은 절이 갑자기 뜬 이유는 젊은이들이 이 묘한 굴 안에서 찍어올린 사진 때문이다..

 

실크로드 막고굴을 연상시키는 풍광..

이른 아침에 방문하니 선잠깬 하늘에 조각달이 비추고 있다.

 

낯설고 아름다운 풍광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뒤로 용궁회상이라 쓴 동굴법당이 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이 잠겼나 싶엇는데, 지름쇠를 옆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엇다..

참고로 이 절은 오후 6시이후에는 방문을 불허한다.

 

석회석 종유굴을 들어가는 느낌의 입구..

다시 내부 출입문을 여는 순간..짠하고 나타난 신비한 모습..

 

오색 휘황한 빛으로 장엄한 분위기 속에 천수관음이 계시다..

 

 

 

옆굴에 오묘한 공간이 이어진다.

언뜻보면 산신같기도 하고, 용왕 같기도 하다.

 

동굴안에 물이 흐르고..

코끼리를 탄 아기부처가 보인다..

 

동굴끝은 막혀있는데, 들여다 보니 깊이을 알수 없는 터널이 보인다..

 

동굴안에 물이 흐르고, 용궁회상이라 하엿으니 산신이 아니고 용왕을 모신 곳이라고 봐야겠지??

추운 날씨에 동굴안에 들어가니 안경이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했다..

 

대웅전 외벽에 쓰여진 시들..

 

茫茫撥草去追尋(망망발초거추심) 
水闊山遙路更深(수활산요로갱심)
力盡神疲無處覓(역진신피무처멱) 
但聞楓樹晩蟬音(단문풍수만선음)

 

 

망망한 잡초를 헤치고 뒤쫓아 나섰는데
물도 산도 아득하고 길이 더욱 깊어지네
탈진하고 피로하여 찾을 길이 없는데
저문 날 매미 소리만 단풍 숲에서 들리네

 

무엇을 찾는다는 말인가?

소(牛)..

 

이시는 곽암화상 심우송 중 첫수 심우(尋牛, 소를 찾다)다..

 

이절 부처님이 좋아하는 귀절은 2수 견적(見跡, 소 발자국을 보다)이다..

 

水邊林下跡偏多(수변임하적편다) 
芳草離披見也?(방초리피견야마)
縱是深山更深處(종시심산갱심처) 
遼天鼻孔?藏他(요천비공즘장타)

물가의 숲 아래에 발자국이 유독 많은데
아름다운 풀 헤쳐본들 어찌 찾을 것인가?
하지만사 심산 속 더 깊은 곳소일지라도
하늘로 향한 콧구멍 무슨 수로 숨기랴?

 

소 찾는 일은 눈밝은 독수리에 맡기면 될터인데, 무슨 걱정이랴..ㅎ

하지만 요즘 소 찾는 사람도 없고, 소 키우는 사람도 없으니 , 독수리 할일도 없겠다..ㅎ

 

요사채에도 시한수 걸렸다..

 

蛾子搏燈火 (아자박등화)
忘生好自侵 (망생호자침)
莫言燈火惡 (막언등화악)
燈火本無心 (등화본무심) 
 
어린 나방이 등잔불에 부딪친다.   
살 길 잊어버리고 제 좋다고 스스로 침범하는구나. 
등잔불이 악하다고는 말하지 말라. 
등잔불은 본래 아무런 생각도 없었노라. 

 

모두 소걱정하는 절에서 돼지 혼자 웃고있다..

혼자 감잡았나??

 

때늦은 감만 중생 보시를 기다리고 잇다..

 

명색이 길꾼이라 주변 걸을 길없나? 둘러본다.

주변 길을 잘 다듬으면 멋진 둘레길 나올법 하다..

 

'방방곡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0) 2022.03.13
대전 상소동 산림욕장, 얼음왕국  (0) 2022.02.07
논산 온빛 자연휴양림  (0) 2021.11.24
옥천 서화천 습지공원, 가을  (0) 2021.10.25
산청 수선사  (0) 2021.05.04

주말에 어디 가나하는 생각을 유튜브가 눈치채고 알아서 가까운 장소를 추천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맛집이란다..

안개 미세먼지 걷히기를 기다려 오후 늦게 출발한다

도착한 곳은 논산군 벌곡면 온빛 자연휴양림..

초입에 주차하고 느긋이 걸어간다.

가족단위, 연인들이 많이 온다.

 

조금 가자 연못이 나오는데, 메타세콰이어와 양옥 등 배경이 이국적이어서 그런지

줄서서 사진 찍으려고 대기한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여행 못가 안달나서 여기서 대신 한풀이 하는 건가??

 

메타세콰이어도 단풍이 드니 운치가 있다..

이곳에도 등산로 표시가 있어 좀 걸었으나 긴것 같지 않은데, 늦은 시간이란 도중에 돌아왔다.

 

웬 공룡들이 길을 막는다..

애기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걷기 명소는 아니지만, 매타세콰이어 단풍 구경하는 셈치고 "3보이상 승용차" 족들이 방문하기 적당한 곳이다..

 

 

유튜브가 나에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이곳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ㅎ

'방방곡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 상소동 산림욕장, 얼음왕국  (0) 2022.02.07
논산 반야사 동굴법당  (0) 2021.11.28
옥천 서화천 습지공원, 가을  (0) 2021.10.25
산청 수선사  (0) 2021.05.04
대청호 드라이브 - 작은 용굴  (0) 2020.11.27

탑정호 출렁다리 구경차 갔다.

출렁다리 가까운 제4주차장은 넓었다.

캠핑차량이 몇대 보인다. 플랭카드에는 야영금지라고 붙어있던데..ㅎ

그런데, 정작 메인인 출렁다리는 개통식을 안했다고 출입을 막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라는데, 세상에 제일 흔한 출렁다리를 유료로 하면 과연 이용할 사람이 있을까? 

 

어찌되었건 나는 계획대로 대명산을 오르기로 한다.

 

예상보다 길이 좋다.

 

전망대가 나타났다.

멀리 대둔산이 통채로 드러난다..정상 마천대, 낙조대 등등

 

 

정상에는 양반 묘자리가 있다.

생전 벼슬은 상의원 첨정인데, 죽어서 추증된 벼슬은 좌찬성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이다.

사후 자손이 영달을 했나??

 

 

소설가 박범신이 탑정호 주변에 사는 모양이다..

 

 

하산하면 딸기향농촌테마공원이 나오는데, 요즘 임시휴업중인 모양이다.

길 건너면 수변생태공원이다.

 

마가렛,샤스타데이지가 가득하고..

 

길은 수변데크길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보러 왔다가 허탕친 사람들의 발걸음을 달래주는 중이다..

 

바지런한 참새 열매하나 주워가고..

 

큰 가물치는 산란장소를 찾는다.

 

솔섬에서 오늘 걷기를 마무리 한다.

 

<오늘 걷기> 탑정호 4주차장 - 출렁다리 - 대명산 정상 - 딸기향테마공원 - 수변생태공원 - 수변데크길 - 주차장 약 5km

노성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간다.

목표는 궐리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명재고택을 관람하고 애향공원 주차장으로 복귀한다.

 

다시온 문제의 삼거리..어??

표지판에 변화가 있다?? 

관청이 수정을 해주지 않자, 의병이 나서서 매직펜으로 궐리사를 추가해 주었네..ㅎ

아직도 의병과 죽창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려가는 길은 짧지만 제법 가파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코스인가본데 하산할 수록 길이 희미해지는 미스테리..ㅎ

 

엉겅퀴에 반한 나비..

모든 것에 짝이 있다는 음양 조화의 신비..ㅎ

 

다시 신작 임도와 만나는데..

 

그런데, 여기서도 성의 없는 표지판이 말썽이다..

표지판의 궐리사는 숲속의 오솔길을 가리키는데..동행은 옆 넓은 임도길이라고 말한다..

결국 오솔길은 고라니 다니는 길 같고, 임도길이 대문으로 가는 길임이 판명된다..

표지판 좀 정확히 설치하자..ㅎ

 

하여간 고라니 오솔길로 권리사 뒷담장에 도착..

 

궐리사 내력을 보니..

공자의 고향, 노나라 니구산 궐리촌에서 따온 것이다.

공자 사당이다.. 

 

顔色整齊 中心必式 夙興夜寐 衣帶必飭
안색정제 중심필식 숙흥야매 의대필칙

 

주련에 소학의 한 귀절이 걸렸다..

얼굴빛을 바르게 하면 속마음도 반드시 경건하게 되고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며, 옷과 띠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잘 웃지도 못하고 밤에 딴짓 못하겠다..ㅎ

조선시대에 양반 유머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알겠다.

지금도 정치인이 "웃으며 화내는 법"을 모르고, 직설로 공격하기를 좋아하는 문화적 DNA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논어 속의 공자를 보면 지혜와 언어의 달인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는 제자 수준에 따른 맞춤교육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늦은 앵두가 붉은 입술로 송별해준다..

 

금계국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가는 명재고택..

 

입구 건물 초연당.

안에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있길래, "여기 식사되나요?"하고 물으니

왈, "여기는 도서관인데요.." 헉!!

 

 

고택의 장독이 늘어 이제는 고택의 경관을 빛나게 한다..

전에 왔을 때는 이정도로 많지 않았다.

명재 집안의 장맛은 몇백년의 전통이 있다..

전에 350년전통의 보성선씨 종가의 간장이 1리터에 500만원씩 팔렸다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이 집의 간장도 백화점에 출시된단다..

이제는 찾는사람이 많아 사랑채 옆 빈터에 많은 장독을 두고 간장의 생산을 늘렸나보다.. 

 

산에서 내려와 노곤한 참에 400년 묵은 느티나무가 보내는 시원한 바람에 저절로 누워 눈을 감게된다.

 

잠결에 주인장에 손님에게 이 집 풍수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좌 청룡 (동쪽)가 허해서 비보하기 위하여 느티나무를 심었단다.

그렇다고 해도, 이 나무가 몇백년을 지탱해주는 것이 신기하다..

명재 윤증..

그는 숙종년간에 스승 송시열과 분당하여 소론의 영수 역할을 하면서 백의정승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다..

이 집은 명재 윤증이 눌러 살던 집은 아니란다..

본인은 원래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단촐한 집에서 살앗는데, 제자들이 주선하여 이 집을 지었으나, 

정작 본인은 분에 넘친다고 생각한 듯 이곳에서 살기를 싫어하여 아들이 살았고, 가끔와서 묵기는 하였단다.

 

명재 윤증은 개성과 소신이 뚜렷하다.

그는 무실과 실심을 강조한 실용주의자 같다고나 할까?

특히 허례허식을 싫어하여, "제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 것이며, 일꺼리가 많은 유밀과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라”고 한 유언할 정도였단다.

그의 집안 제사상에는 조기도 한마리가 아니라 토막으로 올린단다..

음식은 종이를 입에 물고 남자들이 장만한다..

추석 제사상의 경우 앞줄에 과일, 2번째 줄에 김치, 3째줄에  백설기..

이렇게만 딱 차린다..

송편 대신 백설기를 올리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던가?

설날에는 백설기 대신 떡국를 올린다..

그뒤 후손들은 이 정신을 계승하여 기제사도 한밤중이 아닌 저녁에 지내고, 구한말에는 이미 양력으로 제사날을 정했다고 한다..  

이런 실용, 간이의 정신은 정통파 내지는 교조주의적 성리학자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명재 윤증은 송시열의 제자이고, 그 아버지 윤선거는 송시열과는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다..

명재는 벼슬을 한 적이 없고, 임금이 벼슬을 내리고 불렀어도 나가지 않았단다..

10차례 벼슬이 내려지다가 우의정 벼슬까지 내리며 불러도 사양하였으니 백의정승이라 할 만하다.

 

왜 그는 그의 스승 송시열과 반목하고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을까?

 

우선 우암 송시열은  보수적 성리학자를 넘어서 교조주의적인데,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주자탈레반이라고 부른다.

주자전서의 1자 1획도 고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백호 윤휴가 "중용"에 집주를 달면서 독창적인 견해를 내자,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이단자)으로 몰아 부쳤다..

이때 윤선거가 윤휴를 긍정적으로 보아주자, 송시열은 윤선거의 과거사(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고, 동지인 김익겸이나 자신의 처 등이 순절하였는데, 본인은 탈출한 사건)을 들먹이며 힐난하면서 이른바, 회니논쟁이 벌어졌다.

그뒤, 윤선거가 죽자 아들인 윤증이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승인 송시열에게 비문 작성을 부탁하자 성의없게 작성해주었고, 재차 요청하는데도 거절하면서 스승과 제자는 갈라서게 된다.

 

이 두사람의 관계는 이황과 기대승의 관계와 비교된다.

이, 황 두 사람도 "사단칠정론"으로 논쟁이 붙었으나 서로 존중하였고, 안동사람인 이황이 죽으면서 자신의 비문작성을 호남의 기대승에게 부탁하였고, 기대승은 흔쾌히 성의껏 작성해주었다..

 

 

 

사랑채에 걸린 글씨..

위 글씨는 허한고와(虛閑高臥)..아래 쪽 글씨는 도원인가(桃源人家)

다 비우고 한가롭게 누웠으니 여기가 바로 무릉 도원이라..

 

이은시사(離隱時舍)

떠나고 은거할 때를 아는 사람이 사는 곳..

 

***

명재 윤증이 벼슬에 나가지 않은 이유는 세가지..

첫째, 서인들이 남인들의 쌓인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외척의 세도를 막지 못하면 안 된다.

셋째, 당론이 다른 자는 배척하고 순종하는 자만 등용하는 풍토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전제들이 해소되지 않는한 정계에 진출해보아야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 날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함께 하며 명재를 지지했던 박세채는 훗날 영조 때 탕평책을 뒷받침하였던 것을 보면 명재가 탕평책의 선구였음을 알겟다.. 

 

결국 조용히 은거하며 집안에서 세운 사립학교격인 종학당에서 후진을 양성한다..

그 결과 집안의 후손중 42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

***

요즘 뜨고 있는 윤석열은 이 집안 사람이다. 윤증은 그의 9대 종조부 쯤 된단다.

사람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한다는 신념..

여야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

검수완박이라는 압박에 저항하여 과감히 사표내고 나오는 기개는 조상의 DNA와 닮았다.

그러나, 그가 별의 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성장하여 정상을 밟을지는 국가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윤증과 송시열의 관계가 문통과 윤석열의 데자뷰처럼 여겨진다.

 

안주인인 사랑채를 설명하면서 댓돌위에 늘어놓은 돌이 금강산을 묘사한 것이란다..

윤씨 집안의 포부가 크긴 큰가보다..

 

 

 

조선시대 충청도 양반 중 논산의 3명문가를 비교한 "삼치례" 이야기가 잇다..

 

광산 김씨는 먹치레

파평 윤씨는 묘치레

은진 송씨는 집치레 

 

연산의 광산 김씨는 제사를 모시는데 성의를 다하고 제수를 푸짐하게 장만하고 제물을 1자씩 괴고 각종 음식도 많이 만들어 밤중에 제사가 끝나면 나누어 먹고 아침엔 각자 봉게도 싸주어 보낸단다..

노성 파평 윤씨는 조그만 제사상에 조촐하게 제사를 지내지만, 묘을 단장하고 석물을 잘 꾸미는 전통이 있단다..

은진 송씨는 좋은 집을 짓고 단장하는데 관심이 많단다..  

 

 

향교 정문을 지나 몇백미터 가면 애향공원 주차장이다.

그늘 시원한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다시 벤치에 누워 오수를 청한다.

한가하고 나무 그늘 좋은 넓은 공원이 부럽다..

 

 

 

<오늘걷기> 노성애향공원 - 옥리봉- 정상 - 옥리봉 - 궐리사 - 명재고택 - 애향공원  약 5km

 

논산 노성산을 오랜만에 다시 갔다.

지난번에 1코스를 올라갔다가 2코스로 하산했다.

그런데, 2코스로 하산하기 직전 궐리사 방면으로 내려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였는데, 이번에는 권리사 쪽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명재고택 인근에 노성애향공원으로 내비를 치고 간다.

양반의 상징 갓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기다리고 있다.

유행을 따르느라 작은 출렁다리도 새로 생겻다.

 

무심코 가까운 등산로 입구로 올랐는데, 그것이 지난번 하산 코스였다..

 

 

이제 원추리도 피기 시작한다.

그늘이 좋은 오르막 등산로라고 좋아하면서 걷는 동행에게 1코스로 가자고 우길 수 없었다.

 

오르다 보니 새로 개설한 임도와 만난다..

우측으로 가면 명재고택과 권리사와 이어진다.

 

 

오르막과 정상을 좋아하는 동행..무조건 GO..

능선에 오르니 노성천이 운에 들어온다.

 

 

여기다..지난번에 상월표시 쪽으로 갔어야 권리사와 명재고택으로 이어지는데..

표시의 부족성은 아직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다리심이 늘어선인지 오르막길도 즐기줄 아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잠시 업다운과 밀당하는 사이리 멀리 계룡산 천왕봉이 보인다.

 

산불로 그을린 소나무들이 도열한 길을 걷자니 마음이 짠하다..

 

드디어 노성산성이 보인다.

백제시절에는 사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고, 공주를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

 

 

노성산 정상에 서면 계룡산의 진면목이 다 보인다.

 

천왕봉과 저 아래 경천저수지까지..

 

우측으로 향적산 국사봉도 보이고..

정상에서 맛보는 금년 첫 수박..맛도 풍광처럼 눈부시다..

 

 

정상의 정자이름이 니성산정이다..

니성??

노성산의 옛이름 니구산에서 나온 이름이다.

니구산도 공자 고향의 산과 닮았다해서 붙은 이름이다..현재의 노성(魯城)도 공자의 나라 노나라 성이라는 의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