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궁남지 연꽃 축제가 지난주에 열린다 해도 참고 지나쳤다..

1주일 뒤 사람 뜸하기 기다려 연꽃보러 떠낫다..

아침 9시 반에도 1주차장은 벌써 만원이다..

 

넓은 궁남지를 한바퀴 돌 생각으로 중심부로 직진하지 않고 외곽으로 돌아 든다...

 

염화미소..

언어도단 불입문자의 세계에 들어가 위한 신의 언어..

그래서 태초에 꽃을 먼저 피웠다..

 

홍련을 볼 때마다 꽃등이 생각난다..

고향집에서 타오르는 꽃등불..

 

백련의 순결함을 보고 어찌 흙수저, 수렁밭 출신이라고 구박하겠는가??

 

7월에 연꽃을 보는 날은 선물같은 날이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세상을 장엄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장식품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절에서 붉은 연등을 많이 다나보다..

 

궁남지 포룡정의 여인들은 항상 최선의 패션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으로 나라를 좌우하는 기쁨은 투자할 가치가 있을테니..

 

어찌 여인뿐이랴..꽃도 그러하다..

 

토끼와 사슴, 부용꽃이 달을 보필한다..

달하!  높이곰 도다샤 어그야 힘든 데를 보살피시라..

 

그 정성이 통했나 하백이 두손을 받쳐 빛을 피워올리네..

 

 

새로 생긴 궁남지 이벤트, 연꽃카약..

양쪽 노를 쓰면 카약, 한쪽 노를 쓰면 카누란다..

오리도 오늘은 손님맞이로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오리무중..ㅎㅎ

 

오리 안내 받으며 열심이 저어보지만, 생전 첨에도 초짜들의 대행진..ㅎㅎ

 

아하!  그리로 들어가시면 못나옵니당..ㅎㅎ

오리도 걱정이다..

 

 

세상에 제일 달콤한 잠은??

...

꽃잠..

꽃 속에 꿀빨며 문대다 잠드는 넘이 세상 제일이다..

 

 

나도 7월의 꽃인데, 관심 좀 가져주라..

나를 위한 축제는 없냐??

 

잠자리는 안다..

진정한 고수는 자리를 가리 않는다고..

 

꽃이 화려하기만 할까?

언제나 끝이 있나니, 그러기에 더욱 찬란하니라..

 

드론도 연화세상에 동참한다..

미래에는 AI 연꽃으로 장식해줄께..

 

AI가 주도하는 가상의 연화세상이 오기전에 

즐겨라!! 

실상의 꽃길을..

 

꽃길을 즐겨라..

연잎 위를 딩구는 한 방울의 물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그리고 밝혀라..

연꽃처럼 밝은 마음의 빛을..

 

오늘 오리처럼 연화세상에 푹젖어 걸었다..

 

눈과 다리는 참새처럼 부산했지만..

연꽃정자에서 늘어지게 한숨 청하니

세상은 더욱 아름답더라..

 

사자강 배를 타고

고란사로 돌아드니

낙화암에 두견울고

반월성에 달이 돋는다

<민경희 작가, 백마강>

 

***

<수암이 댓귀를 붙여본다>

 

궁남지 연꽃 필 때

사랑 향기 풍겨나고

포룡정 달밤 맺은 언약

천년 만년 살고 지고...

 

 

백제대교까지 걷다보니 코스모스가 가슴에도 피어나는 것 같다.. 

 

백제대교를 지나면 구드래 지명의 유래가 된 자온대, 수북정이 보인다. 

 

백제대교를 지나서는 갈대와 억새의 길이 시작된다.

비교하기 좋게 우 갈대, 좌 억새..

그러나 아직은 억새의 계절이 아니다.

미련없이 돌아선다..

 

다시 돌아오는 길..

요즘 대세가 핫핑크다..

오징어게임에도 핫핑크 입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무섭더만..

 

순정의 코스모스..

그대 사랑에 빠지면 어떤 때는 코스모스이고, 어떤 때는 카오스일지 모른다.

사랑은 빛과 그림자, 천국과 지옥을 다 경험하게 해주니까..

 

부산 아래 백마강, 유유히 떠도는 배들..

 

 

강, 배, 하늘, 꽃, 벌, 사람 모두 즐거운 날이다..

 

다시 돌아온 구드래 나루터..꽃구경도 식후경이라 점심 먹기위해 차로 자온대(수북정)가 위치한 자온길로 간다..

방송에 소개된 지역이라 뭐 식당이 있겠지하고 갔는데, 어렵쇼, 일요일 휴무네..

 

 

 

동행은 빈 속에 아프다고 소리치는데..헉..식당이..안보인다..

근데, 제철소라는 간판을 단 식당이 보인다. 

물어보니, 놀러나간 주인을 급히 수배하여 식사준비를 한다..ㅎ 다행..ㅎ

 

 

왜 식당이름이 제철소요? 하고 물으니

"제철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는 의미죠" 헐

하긴, 서울 어느 국수집은 면사무소라고 하더만...

 

 

좌간 메뉴가 취나물 소스를 사용한 치즈 주먹밥, 밤을 얹은 함박스테이크..

먹을만 하다..양은 좀 작은듯하고..

하여간 배고파 죽는 사람 구제해주어 고마웠다..

 

 

배를 채우니 동네 구경할 마음이 생겼다.

이 동네 이름이 규암엿바위마을이다..

엿만드는 마을인가 했더니..그게 아니고..ㅎ

당나라 소정방이 부여를 침공할 때 바위 뒤에 숨어서 적정을 엿보던 병사가 사비성에 소식을 알렸다는 일화와 관련이 있다..

먹는 엿이 아니라 "엿본다"는 엿바위라는 거..ㅎㅎ

 

왕년에는 이 동네가 강경으로 물류가 이어지는 큰 장이 열리던 곳이었단다..

 

서점을 기웃거려보고..

 

 

 

서점 겸 카페에서 케잌도 먹어보고..

 

내마음을 묻는가?

좋다..꽃다운 날이었다..

현판글씨가 사비루인줄 았았더니 사자루란다.

원래 사자루라는 건물보다 사자수라는 말이 먼저 있었다.

사자수는 금강, 백마강의 옛이름으로서 사비강, 사비하, 백강, 백촌강 등으로도 불렸단다.

 

조선시대 임천관아 건물을 1919년에 옮겨짓고 사자루라고 명명햇단다.

글씨는 비운의 왕자,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이 썼다.

조선 개국을 알리는 숭례문 현판을  풍운의 세자, 세종의 아들 양녕대군이 썼다는 설이 있는데,

백제 땅 사자루 현판은 망국 왕자 이강이 썼다는 아이러니..

 

또다른 현판 백마장강..이 일품이다.

장짜가 긴 강이 흐르는 듯하다. ㅎ

글쓴이는 해강 김규진으로, 고종 때의 서예가...최초의 어전 사진사..였다

 

半千基業作荒丘   작천기업작황구
滿木山河摠是愁   만목산하총시수
孤巖春寂寂   화락고암춘적적
龍亡大洋水悠悠   용망대양수유유
管絃當日繁華地   당현당일번화지
漁逐斜陽慘憺秋   어축사양참담추 
白髮那堪今古淚   백발나감금고루
滄浪一曲更回舟   창랑일곡경회주 

 

5백 년 터전이 황량한 언덕이 되니
눈에 가득한 산하가 모두 근심이네.
꽃 지는 외로운 바위 적적한 봄날에 
용은 죽고 큰물만 유유히 흐르는구나.

한때는 풍류가 번화하던 땅이었으나
석양에 고기 잡는 쓸쓸한 가을이 되니
백발이 된 지금 눈물견디기 어려워
창랑가 한 곡조 부르며 배를 다시 돌리네.

 

<송용재 (宋龍在)>  

 

송용재는 대전 이사동 사람으로 자는 이견(而見), 호는 용암(龍庵)으로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아편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다. 그의 아들 송진백이 말미에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부여회고>

 

백제도성총고구  百濟都城摠古
상전벽해사인수  桑田碧海使人愁
천정무형산역역  天政無形山歷曆
군창여몽수유유  軍倉如夢水悠悠
화락고암천재루  花落高巖千載淚                       
탄백마일조추  龍呑白馬一朝秋
삼충의백금래조  三忠義魄今來
홀억라강경도주  忽憶羅江競渡舟

 

백제도성은 옛언덕 되었으니
뽕밭이 바다로 바뀐듯 사람을 슬프게 하네
천정대는 형체도 없이 산만 뚜렷하고
군창터도 꿈속의 물처럼 유유히  흐르네
낙화암 높은바위는 천년동안 눈물짓고
백마 삼킨 용도 하루아침에 쓸쓸해졋네
삼충신의 의로운 혼백을 지금 조문하려니
문득 다투어 강 건너던 배가 생각나네

 

<전남 나주 반남면 금운 정순규>

정순규는 반남면장을 지낸 지역 학자란다.

 

고란사로 내려간다. 구비진 오솔길이 정겹다.

 

고란사 글씨도 해강 김규진이 썼다.

전국을 다녀보면 의외로 그의 글씨가 많다..

 

진공묘유(眞空妙有)..

비어있는 듯하나 묘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것..오온의 집적체 속을 들락날락하는 그것..

불교의 공사상과 중도사상을 대변하는 한 마디..

 

18세 동자 신동호가 썼단다..

18세면 동자라고 하기엔 다 컸는데.. 겸손의 표시겠지..ㅎㅎ

그는 1946년생으로 부여출신 서예가 인전(仁田), 동호(東浩) 신덕선(申德善)이다..

그는 YS 장례때 명정 글씨를 쓰기도 했단다..

 

518년에 일본 여인 3명이 백제로 불교 구법여행을 왔다.

그때는 무령왕 18년이다.

무령왕도 일본에서 귀국하여 즉위하였으니 왜와 백제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이다.

한편, 일본에 정식으로 불교를 전해 준 것은 무령왕의 아들 성왕 30년인 552년이다.

성왕은  왜왕 긴메이에게 달솔 노리사치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 불법도 전해지기 전에 일본 여인들이 구법여행을 온단 말은 모순이 아닐까??

 

일본 기록에 의하면, 588년(위덕왕 35년)에 선신, 선장, 혜선 등 일본 비구니 3명을 백제에 보내 유학을 시켰고 이들은 백제에서 계를 받아 정식 비구니가 되어 2년 후인 590년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들의 설화가 고란사 벽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란사 벽화의 518년은 588년의 오기가 아닐까??

 

백마강 위로 돛배만 유유하다.

참고로 부소산 구경을 다하고 고란사 선착장으로 내려와 돛배를 타고 구드래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고란사 앞마당 고양이만 관광객과 밀당을 즐기며 살만 두룩두룩쪘다.

 

낙화암으로 간다.

정상엔 백화정이 있다.

 

낙화암 전망대에 서서 금강을 바라보는데,

문득 백마강 노래 한귀절이 터져 나온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풍이 그리웁구나.

youtu.be/OZcM_5ibl5I

 

의자왕과 그 자손들은 어찌되었을까??

 

660년 음력 7월 9일 나당 연합군이 침입하였다.

1. 백강구 방어진이 무너지고, 5일만에 사비성 30리 밖에 당군이 밀려들고 백제군 1만명이 전사하는 상황에 이르자 의자왕은 왕자 부여효와 함께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한다.

2. 사비성은 태자 부여융, 부여효 등이 방어하지만, 3남 부여효가 왕을 참칭하면서 내분, 부여융은 탈출한다.

  전설에 의하면 부여융은 계룡산 고왕암(현 신원사 암자)으로 피신햇다가 체포되었다고 함..

3. 웅진성의 의자왕은 피신 5일만(침공 10일째)인 7. 18일 성주 예식진 일행에게 감금되어 항복하게되었다는 것이 최근 유력설..

4. 의자왕, 부여융, 귀족 등이 당나라로 끌려가자 왜국에 있던 왕자 부여풍이 귀국하여 부흥운동에 참여

   부여풍은 660년부터 663년 백촌강 전투때까지 백제부흥운동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백촌강전투 패배후 백제는 소멸되었다.

5. 부여융은 당나라 앞잡이가 되어 임존성에 항쟁하는 흑지상지 등의 투항을 권유하여 부흥운동을 와해시키고,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웅진도독이 되어 당나라군의 얼굴마담을하다가 신라의 대당항쟁이 심해지자 676년 당나라로 복귀..

6. 당나라는 부여융 등 백제유민을 요동의 건안성으로 이주시켰는데, 후손들은 웅진도독 대방군왕() 칭호로 발해에게 멸망할 때까지 150년간 존속햇다고 한다.

7. 부여융은 낙양에서 사망하여 의자왕과 함께 북망산에 묻혔다..

8. 부여융의 아들 부여덕장의 2녀(훗날 부여태비)는  711년 당나라 황족 이옹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고 5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아들 이옹이 719년 괵왕(함곡관 부근)으로 책봉되면서 부여태비도 괵왕비로 책봉되었다.

727년 아들 이거(李巨)가 괵왕이 되면서 731년 태비(왕의 어머니)에 책봉되었다. 
7년 뒤인 738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9. 당에 항복한 후손들은 당의 귀족이 되었고, 일본에 남아있던 왕자 부여용, 부여선광 등은 일본의 귀족이 되었다.

   나라는 거덜내놓고 백성은 고통받았는데, 그들은 잘살았다는 이야기..

 

 

낙화암을 나와 부소산을 한바퀴 돌아나가로 한다.

 

삼충사에 도착했다.

벡제 말기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사당이다.

 

성충..

656년 (의자왕 16년) 3월 왕의 정치에 대해 간언을 하다가 미운 털이 박혀 투옥된다.

28일 단식하면서 상소를 올린다.

국제정세를 보건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 예견됩니다.

그럴 경우 백강입구 기벌포을 막고, 탄현을 지켜십시오.

 

그가 죽고 4년뒤 나당연합군이 침입했다.

그 당시 고위관리들은 나당연합을 감지했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후의 상황을 보면, 의자왕은 대비 못한 것으로 보인다.

 

흥수..

전쟁발발당시 고마지지현(전남 장흥)에 유배중이었으나, 의자왕에게 성충과 같은 계책을 건의하였다.

전쟁 와중에 그의 생사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앗다.

 

계백장군..

워낙 유명해서 재론하지 않는다.

자세한 사연은 blog.daum.net/servan/6349927 참조

 

그런데, 세분이 형제같은 느낌이 든다. 한 화가가 그려서 그런가??

 

의자왕은 왜 충신들을 멀리했을까?

의자왕은 40세에 태자가 되고, 641년 50세에 즉위한다.

의자왕 즉위 초기 성충, 윤충 등 명장의 보좌를 받아 신라에게 뺏앗겼던 40여성을 공취하고, 특히 신라의 관문격인 대야성(합천)까지 함락시키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까지 죽인다.

(이때 차라리 인질로 잡아두지..아마 성왕의 복수심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위 15년이 지나자, 나이도 들고 총명함이 사라져 방탕과 독단에 빠져 충신을 멀리한다.

백제가 10일만에 항복한 것도 귀족들과 사이 나빠서 귀족들의 초기 협조가 없었기에 벌어진 것이고, 그뒤 의자왕 일족이 당으로 압송되자 그제서야 귀족들이 궐기하여 3년간 부흥운동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자골을 걸어가니 경주 삼릉처럼 멋진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영고성쇠, 성주괴공..

백제의 최후나 신라의 몰락이나 멸망의 순간은 비슷하다.

선후만 다를뿐..

 

 

 

다시 돌아온 백마강길..

경비행기가 날고 보트는 달린다.

백제문만 묵묵히 관조할뿐..

 

친구들 모시고 부소산둘레길 걷고 수륙양용버스 타고 ATV 달리고 맛있는 식사하면 멋진 여행이 될 곳이다..

 

 

봄이 오건만 코로나는 기세등등하니 

불보살은 힘들다..중생이 힘드니..

 

 

<오늘 걷기> 부여 금강문화관 주차장 - 백마강길 - 부소산 - 고란사- 낙화암 - 백마강길 - 금강문화관 약 7KM

부여 백제보 금강문화관에 주차하였다.

여기서 출발하여 백마강길을 걸어 부소산을 돌아 다시 올 예정이다.

 

백제보 전망대는 진도개를 닮았다.

금강의 파수견 노릇 단디해라.

가뭄도 막고, 홍수도 막아라..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1960년대의 강 풍경이 이상향일까?

유럽이건 중국이건 강은 치산 치수 사업의 대상으로 시대에 따라 기후에 따라 변화해왔을 뿐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마치 어느 책 한귀절에 집착하여 전체의 흐름을 놓치고 마는 것과 같다.

원자력 발전도 그렇다.

탄소배출과 기후문제가 닥치자,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외국의 유명인 나서야 그제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얼마전 미국 텍사스에 폭설 한파가 닥치자, 소위 신재생에너지라는 풍력과 천연가스는 얼어 붙고, 원자력 발전소 4기중 3기가 가동하여 불랙아웃을 면했다는 기사가 났다.

그런데도, 어느 외눈박이는 원전 4기중 1기가 얼어 가동중단된 것만 부각하여 원전의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칼럼을 쓰고 있었다.

치산 치수, 탄소배출, 기후변화, 원자력 등은 이데올로기 측면이 아니라 더 큰 시야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아니면, 판도라 영화 한편에 놀란 아이들과 뭐가 다르냐??

 

불보살이 아니라도 관음문향(觀音聞香)의 자세로 생각해야한다.

소리를 귀로 듣되 소리의 근원을 생각하고,

향기를 코로 맡되 향기의 나눔을 고려하라.

 

금강문화관은 코로나로 휴업중이라 지나쳐 백마길로 접어든다.

 

이 길을 10월 억새 피고 코스모스 가득할 때 오려다 이제사 왔다.

금년 10월에 다시 오련다.

 

강건너 천정대가 보인다.

강변에 호암사와 정사암 바위가 잇었단다.

백제시절 정사암에서 재상을 선출했단다.

그러나, 한때의 승리에 취한 의자왕이 성충, 흥수 등 유능한 재상급들을 쫓아내고 독주하다가 백제는 망했다.

 

들판에는 ATV, 강에는 카약과 보트..

백마강은 레저의 왕국이 되어간다.

 

부소산을 바라보며 걷는 유장한 이 길..

마치 송가인이 부르는  "한많은 대동강아~" 한소절처럼 임패트가 있다.

 

경주처럼 부여도 한옥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서 좋다.

 

강건너 백제문은 사비시절의 전성기처럼 웅장하다.

 

추억의 백마강..

한때 나의 17번 쯤 되는 노래였는데..ㅎ

저음의 배호가 부르는 백마강은 송가인이 부르는 대동강과 쌍벽이다. 

youtu.be/CGB1StFVtmA

 

골프연습장 공사가 한창이다.

부디 백마강길과 잘 공존하기를..

 

이제는 친일파의 대명사가 되어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춘원 이광수도 부여를 방문하였나 보다.

 

부소산 올라서서

금강을 굽어보니

천정대 내린 물이

낙화암을 씻어 돈다.

 

 

 

오늘 이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옛노래..백제야화

 

목메어 우는 새야  말좀 하여라

대왕포 사자수에 궁녀 넋이 울드냐..

 

youtu.be/-WHnxcJwT7s

 

송가인의 간택을 받아 불려져야 새생명을 얻을터인데..ㅎ

 

저멀리 낙화암 아래로 돛배가 간다.

백마강 길은 차도변으로 가라고 아우성이다.  

싫다고 실랑이하다가 다다른 곳..다행히 물이 적은 때라 건너 차길로 올라선다.

 

 

이제 길은 부소산으로 안내한다.

 

높이 106미터의 산 자락에 쌓은 왕성에서 10만의 나당연합군을 대적하려면  적어도 30미터 높이 석성을 쌓아야 하지 않았을까?

수당과 싸웠던 고구려의 요동성은 30미터 높이의 석성이었다는 설이 잇다.ㅎ

 

그때 백마강에 버스가 떠내려간다.

홍수가 났나??

세계테마여행 캐나다 오타와편에서 보았던 수륙양용 버스를 여기서 본다..신기!! ㅎ

 

사자루 직전 전망대서 한숨을 돌린다.

저 아래로 걸어온 백마강 길이 보인다.

 

부소산에서 만나 소나무 투병중이다.

소나무의 코로나격인 재선충 예방을 위한 백신을 맞는 중이다..ㅎ

나무나 사람이나 병충해 때문에 몸살이다 (계속)



부여로 간다..

데카메론의 피난행각이랄까?

그런데, 길가 약국에 마스크 구입하려는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신문에 난 장면이 이곳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이 난리 부르스는 언제 끝날것인지..




네비에 서동요테마파크 (충화면)을 치고 간다..

차가 서부여 ic를 지나 충화면에 들어서자, 산수유가 길가에 즐비하다..

금년 산수유는 여기서 상견레다..



덕용저수지 옆에 서동요촬영 세트장이 있고, 서동요둘레길이 시작된다..




멋진 길이 등장한다..

버드나무(??) 사이 테크길..

나무에 물 오르면 더 멋진 길이 되리라..





이 동네도 출렁다리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둘레길과 서동요세트장을 연결하여 관광객을 불러모으려는 시도는 가산점을 줄만하다.. 





봄이 오면 저절로 물이 오르고 푸르러진다..

빌고 기도하지 않아도..




저수지 둘레길 자체는 2km  남짓이라 짧은데, 안내도를 자세히 보니 저수지 제방 건너편 산에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길로 간다..





그러나 접근로가 애매하다..

제방끝에는 길이 없다..

돌아나와 제방아래로 내려간다..



목교를 건너면 등산로 계단이 이어진다..




그러나 별로 이용되지 않는 곳처럼 잡초가 무성하고, 나무는 쓰러져 길을 막고... 






헌데, 좀 더 가니 걷기 좋은 수변길이 이어진다..

득템..





길지 않은 길은 동네 길로 연결된다..

하여, 좌측 산길로 올라간다..





산길 중턱에 멋진 집 한채..

우측 산으로 더 올라가 돌아오던지, 좌측 아래 길로 내려가야한다..

좌측으로 가면  왔던 길과 만난다...




봄에는 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울고

가을에는 벌레가 울고

겨울에는 바람이 운다..


사람은 언제우나??

요즘 울상이다..

그넘의 바이러스 때문에..






내비 검색할때 마다 헷갈리는데,

이곳의 정식 명칭은 덕용저수지이고, 송정, 가화 저수지 모두 같은 곳을 지칭한다..



건너편이 울바우산이다..




이곳에 호랑이굴이 잇었다면, 이 동네 사람들은 호환은 달고 살아겠네..

예전이라 해도 편한 날이 없었겠다..





서동요 세트장에 사람이 많아 개방했나 했더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쇄중이다..

이 사람들은 뭔가 했더니, 촬영차 나온 모양이다..





그 많은 역사도 세월이 지나니 한순간 이야기 거리에 불과하구나..




이곳에서 천등산을 넘어 천당리 마을까지 걷기 코스가 잇나보다..약 5.7km



노란 산수유, 수선화가 봄이 왓다고 인증한다..

시골에 온 김에 마스크 살수 있나하고 네이버 지도에 마스크를 치니 홍산면 약국에는 재고 마스크가 100장씩 남아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구입하러 갔더니 주민등록증이 없다..

다행히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있어 보여주니 1인당 2매씩 판매한다..

놀러나온 보람이 있는 날..ㅎㅎ


10년뒤에 이글을 읽으면 정말 역사의 한단면을 느끼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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