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송가인이 부르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이별가의 뿌리가 동편제 계열의 김세종제 춘향가를 배워 송계 정응민이 소화시킨 보성소리제라고 밝혔다..
그런데, 동편제, 서편제는 왜 생겨났는지 궁금해졌다..
프랑스와인도 보르도산, 브르고뉴산으로 대별되고, 커피도 아라비카 종과 로브스타 종으로 대별되듯이, 판소리의 유파를 알아보려고 한다..
판소리는 국가 무형문화재이고 유네스코 선정 무형문화걸작으로 선정된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판소리는 숙종 연간부터 형태를 갖추고 시작되어 12마당이 불러졌다.
판소리 역사에서 최초의 스타는 남원시 운봉면 출신의 송흥록(1801- 1863)이다.
그의 아버지가 명창 권삼득의 고수였기에 12살때부터 판소리를 공부했다..
송가인도 중학교 무렵부터 박금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니, 뭐든 조기교육이 영재를 만든다.
그는 철종 10년에 당시 안동 김씨 세도가 김병기의 초청을 받고 상경하여 히트를 치고,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그의 소리를 이어받은 집안사람 동생 송광록, 조카 송우룡 등에 의해 그의 창법이 크게 퍼져나간다..
한편, 동리 신재효(1812년 ~ 1884년)라는 귀재가 등장한다..
고창 사람인 그는 판소리 12마당 중 잘 전승되어 오던 판소리 6마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그가 선배격인 송흥록을 판소리계의 독보건곤으로 칭하였으니,
송흥록의 창법이 신재효가 판소리 체계를 정리할 때 많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대원군 집권 시절 1868년 경복궁 낙성 축하연에서 중요 순서를 맡고, 여제자인 진채선이 소리하도록 하였다..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도리화가이다..
그는 대원군의 애호를 받아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제자로는 진채선, 김세종,전춘풍 등이 있다,
그 중 김세종제의 춘향가가 지금까지 주류로 이어져 송가인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대원군 시절 또하나의 스타가 나오는데, 강산 박유전(1835년~1906년)이다..
그는 계면조의 맑고도 높으며, 아름답고도 슬픈 기운을 띤 소리를 잘했다..
그의 소리 스타일은 기존의 송흥록이 부르는 활달하고 우렁찬 스타일과도 달라 서편제가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소리는 섬진강 서쪽에서 보성,광주, 나주 등지에서 애호되어 서편제라고 불리게 되고,
기존의 송흥록 계열의 소리는 섬진강 동쪽 남원, 구례, 순창 등지에서 불린다 하여 동편제라고 불렸다..
그러니 동편제는 기존의 창법이고, 서편제는 신 창법인 셈이다.
서편제의 특징은 성색이 부드러우며 구성지고 애절한 느낌을 주는데
당시 점점 몰락해가는 나라의 분위기와 백성의 힘든 처지를 위로하는 창법이었기에 대중의 애호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충청, 경기에서 불리는 창법은 중고제라고 하였다
현 춘향가의 원조인 김세종은 송우룡 등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으며, 동편제로 분류되나,
송흥록 계통과는 달라서 별도의 계보로 치기도 한다.
그는 신재효에게 지침을 받으며 신재효의 사랑에서 소리 사범 노릇을 했다고 한다.
김세종은 춘향가를 특히 잘하였으며, 그의 춘향가는 김찬업을 거쳐 송계 정응민을 통하여 보성 소리로 이어져
현재 가장 활발하게 불려지는 소리가 되었다.
정응민(1894 - 1961)은 박유전의 제자였던 백부 정재근으로 부터 서편제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를,
명창 김찬업으로 부터 동편제 김세종제 춘향가를 배운뒤 중고제를 가미하여 자신만의 보성소리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그는 흥보가는 재담이라고 생각하여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성소리제는 홍보가를 제외한 판소리 4마당을 전수한다..
그는 판소리 교육가로서 아들 정권진을 명창으로 키웟고, 지금은 손자 정회석로 이어진다..
또한 명창 조상현, 성창순, 성우향 등 제자들을 키워 판소리계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성우향의 춘향가를 배운 박금희의 제자가 송가인, 서진실이고,
역시 성우향의 춘향가를 전수한 안애란의 제자가 조유아이다..
일제시대 판소리계에 또하나의 걸출한 스타가 나타난다..
임방울(1904-1961)이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서편제의 명창인데, 1928년 상경하여 타고난 목소리와 구슬픈 계면조 가락으로
쑥대머리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다..
그당시 레고드판 100만부를 판매하였다고 한다..
https://youtu.be/wGJSZhXYp1g
그러나 일제시대 말기와 해방후의 혼란 속에서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 갓다..
또 임방울과 동시대인으로 동초 김연수(1907-1974)가 있다..
그는 명창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를 배우고, 상경하여 송만갑에게서 흥보가와 심청가를, 정정열로부터 적벽가, 춘향가를 배웠다.
또 송계 정응민에게 심청가를 배우는 등 판소리 5마당을 모두 배웠다..
그는 한학과 신학문을 모두 익혔기에 소리공부를 끈기있게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창극 판소리 스타일의 동초제 판소리 5마당을 정리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초대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내고 인간문화재까지 되었다..
현재 판소리계는 동초제 계열과 보성소리계열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자료> https://www.yna.co.kr/view/AKR20071029194200005
http://ggdo.com/zxe/kimyeonsoo/460259
하지만, 이제는 서편제, 동편제의 분류는 무의미 한 것 같다..
명창들이 한 유파에 구애받지않고 각 판소리의 대가에게 사사받아 그 장점을 취하여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갔기 때문이다.
그 시초가 송만갑이다..
집안의 전통인 송흥록의 동편제 창법을 배웠음에도 명창 정창업에게 서편제 창법을 배워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가자
부친인 송우룡이 집안에서 쫓아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송계 정응민도 백부로부터 서편제(강산제)를 배웟지만, 춘향가는 동편제 계열인 김세종제를 배워 자신만의 보성소리제를 구축하였다.
결론적으로 송가인은 정통 판소리를 15년간 배우고, 그 공력으로 정통트롯을 소화하여 부르니
그녀가 발산하는 "한과 흥"은 뿌리 깊은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