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본여행의 진짜 목적이 오사카성을 보는 거였다..

낭인 시절 대망을 읽고 난후 보고 싶었던 성..

 

그 오사카성에 도착하여 올라 가는 길..

보행도로에 참새를 조각하여 놨을까?

무슨 의미가 잇을법하지만..아는 사람이 없다.. 

 

 

 

중국 서안에 갔을 때 서안성의 해자도 대단하였지만, 이곳 해자가 더욱 대단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의 아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10만의 군대로 쳐들어 온다..

하지만..이런 해자와 5만명이 지키는 오사카 성을 함락시키지 못햇다..

결국 포위 끝에 해자를 메꾸는 조건으로 철수하였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해자가 없는 오사카성은 그이후 이에야스의 재침으로 함락되어 불탔단다..

물론 토요토미의 아들은 제거되었고..

그 일족이 망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업보 때문일게다..

 

(오사카성 천수각)

 

오사카성 천수각은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 같아서, 나는 예전 건물인줄 알앗다..

하지만, 원래 오사카 성은 불타고.. 지금 보는 것은 최근에 외관만 비슷하게 지엇고..

내부는 박물관 식으로 지었다..콘크리트에..엘리베이터도 설치해놓고..

우리나라 유홍준 같은 사람이 잇었으면 입에 거품을 품고 매도하였을 텐데..ㅎㅎ

 

 

천수각 안에 이성의 원 주인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이 앉아잇다..

일본인들은 제1의 영웅으로 친단다..

 

하층민 출신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시종이 되어 추운 날에는  아침에 주인의 신발을 가슴에 품어 따뜻하게

데웠다는 충성심의 사나이..

 

자신을 원숭이라고 놀렸지만 출신에 관계없이 실력대로 대접해주는 오다에게 충성을 다하여 그의 오른 팔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명문가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대접을 못받고 박대당한다고 생각했던 부하 미쓰히데가 오다를 기습하여 살해

하자, 급거 전선에서 대군을 이끌고 복귀하여  복수전을 감행하여 정권을 잡는다..

이어 전투와 협상으로 전국 통일을 마무리하고..

씰데없이 우리나라를 찝적거리는 통에..

 

풍신수길의 신사 앞에 우리나라 백성의 코를 베어가 만든 코무덤이 있단다..

그 코의 70%가 전라도 사람 코란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만명이 학살 당하고 코가 베어졌단다.. 

 

(오사카성 전도)

난공불락의 면모..

성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성은 함락되기 마련..

 

오사카 성에서 진주성을 생각한다..

김시민과 논개..

오사카성에서의 2번의 싸움과 진주성에서의 2번의 싸움..

연관은 없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은 인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오사카성 천수각 지붕을 장식하는 치미.

물고기 모양인데 화재 진압을 상징하는 것이다.

 

 천수각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다..

임진왜란때 풍신수길이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 오라고 족쳐서 왜군은 호랑이 사냥부대를 별도로 만들엇을

정도 였단다..

아마 저 호랑이의 모델은 조선의 호랑이였을 것이다..

비록 죽어 박제되어 바다 건너왔겠지만,  그 기상이 살아 있는 듯하다..  

 

 

나라의 도따이지를 관람한 후 길을 달려 오사카현 사카이시에 도착하엿다..
대망이란 소설이 생각 낫다..
사카이항구의 상인들이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등을 지원하면서 무역상권을 확보하는 이야기도 곁다리로 나온다..
그 사카이에 온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카이의 상인들을 통하여 조총을 구입하고 곧 그 효능을 알아 채고
조총병 3000명을 양성한다..
후일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이 양성한 기마병과 맞붙을 때..
조총병 3천명을 3열 횡대로 배치하고 1열 쏘고 앉아 장전하는 동안 2열, 3열이 번갈아 쏘는 소위 "연속사
격"의 개념을 세계최초로 구상하여 실전에 적용하여 대승을 거두고 전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는다..

당시 조총의 유효거리라 해야 100미터 남짓..
기마대가 100미타를 질주하여 접근하는 시간 10초이내..
그사이에 접근막으려면 연속사격에 의한 집중포화 밖에 없다..
이 연속사격의 개념은 영국이 소총으로 줄루족과 싸웠던 19세기에나 생긴 개념이고..
기관총의 발명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오다는 그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전국을 통일하였다..
이를 뒷받침한 통일의 기수들은 사카이의 상인들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 조총의 총구가  그후엔 토요토미에 의하여 우리에게 겨누어졌다는 역사도 곁들여 생각한다.
전국통일을 앞두고 부하의 배신으로 오다가 사망한후 정권을 잡은 토요토미는 사카이 부근에 오사카성을
짓고 근거지로 삼는다..
그 이후 오사카는 일본의 핵심도시가 되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사카이 구항)

저녁식사는 호텔에서 부페로 하였다..
음식 맛으로 따지면..
중국은 불맛이고..
일본은 칼맛이고..
한국은 손맛이라는데..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제대로 회맛을 보지 못하였다..
일본은 회의 천국이라는데..
하지만, 일본에는 회떠주는 집은 없다..
기후도 습하고 위생관념이 철저하여 요리집에서만 회를 먹을 수 잇단다..
또한 음식낭비도 없다..
조금씩 주고..추가시에는 꼭 요금을 받는다..

일본에서 회, 스시가 유명해진 이유..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675년 천무천왕이 육식금지령을 내렸다..소, 돼지, 닭까지..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생선을 먹게 되었다는...
육식금지는 메이지 유신때 풀렸다..

 

다음날  창밖을 보니  항만과 동상이보여 산책길에 찾아 나섰다..
방황끝에 해변에 도착하였다.. 
무슨 상인지..알지 못하고...막연히 일본 천황이나 귀족의 동상인줄 알앗는데..

호텔에 돌아와 관광책자를 보다보니
그 동상이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용녀신상이란다..
그리고 그곳이 사카이 구항이라는 것도 알앗다..
처음 동상은 수족관 앞에 세웠다가 평성12년에 다시 이곳에 복원하였단다..
우리는 용왕을 섬기는데 여기는 용녀신을 섬기는구나..

 

일본의 호텔엔 불교,신도의 국가답게
성경 뿐아니라 불경도 같이 잇다..

 

 

 

나라에 있는 동대사(東大寺, 도따이지)에 갓다..

절 초입에 사슴공원이 있다..

사슴을 방목하는데, 아주 잘 적응된 사슴들이 관광객의 과자를 얻어 먹으러 접근한다..

 

 정말 열린 공간에서 사슴과 사람이 이렇게 공존할 수 잇을까?

상업적인 감각이 연출해낸 멋진 장면이 아닌가?

 

 

4월 말부터 5월8일까지 일본도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이 낀  일본 최대의 연휴기간이란다..

동대사에도 사람이 넘친다..

절 매표소도 우리와  달리 절 깊숙히 대불전 앞에 자리 잡고 잇어서,  매표소에 다가 갈수록

마치 메카 순레객처럼 혼잡하다..

하지만, 매표소를 지나 대불전을 대하는 순간..나에겐 잠시 정적이 흐른 것 같다..

동양 목조 건축물 치고는 참으로 웅장하다..

높이 45.7 미터..

집사람 하는 말이 "외관은 왜장의 투구를  닮았네요.."

과연 그렇다..

책자엔 동대사가 7-8세기에 세워졌다던데..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간 2차례의 화재를 겪었고, 대대적으로 손본 것이 17세기라니 외관은 분명 바뀐것 같다..

 

 

대불전의 상징인 청동대불..정말 크다..

본존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앉은 키 16m, 얼굴 길이가 5m이다..

손바닥 위에만 사람 16명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비교심이 들었다..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제우스 신상은  높이 약 12m의 목조로 되어 있었단다..우리나라 통일신라가 지었졌다가 몽고군에 의해 불탄 황룡사 목조 9층탑..그 전각에 안치 하였다는 장육존불의 크기는 16자 높이로 약 5m 정도 높이였다.

전북 김제 금산사의 미륵 3존불은 10미터의 높이다..

 

 

 대불 옆 협시불의 크기도 덩달아 크다..

 

귀퉁이 사천왕상도 크고..

왜인은 작다고 놀렸지만 만들어 놓은 것은  큰것이 많다..

 

 대불전 기둥에 뚤린 기둥사이를 통과하면 무병장수한다나..

부모들의 등쌀에 아이들이 줄서서  차례를 기다려 빠져나오는라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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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淸水寺) 가는 길이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이 가득하여 서울 탈출이후 처음으로

사람 멀미를 느꼈다..

날은 덥고 길은 좁고 멀미나는 사람들..

목마른 자 물을 구하러 청수사로 가는 지..

 

청수사 입구..

풍광이 규모에 비해 이 절에 사람이 이리 몰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에서 느끼는 점은 이 사람들은 가급적 예전 그대로 보존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잇다는 것..

길도 우리 같으면 대형 차가 들어가게 후왁 넓힐 텐데, 이네들은 그렇지 않다..

불편해도 가급적 그대로..

 

 

 

일본 절엔 법당안에서 기념품을 판다..너무 상업적이다..

그리고 점괘도 판다..

또한 불상 어디를 만지면 자기 몸의 어디가 좋아진다고 하는 행사를 하는 곳이 꼭잇다..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면

복이 바다처럼 한도 없이 모이리라..

 

 본당과 앞 무대를 떠받치는 139개의 15미터 높이의 나무기둥들...

이것 때문에 유명한 절이란다..

 

 청수사의 유래가 된 청수가 떨어지는 현장..

고베에서 금각사 가는 길..

길가에 아침부터 노,장,청,여 까지 줄을 서있길래 자세히 보니..

빠찡고 문열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간판이 재미있다..

Your smile is our happiness!

네가 웃으면 우리는 행복하다..

대박이 터질 때..

일본도 별수 없는 면모가 잇구나..

아침부터 줄서서 시간 죽이고 백일몽을 꿈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통칭 금각사라고 하지만 정식 이름은 녹원사..

 

무자경(無字經)

 

피어나는 꽃에 가득 맺힌 이슬,

지저귀는 새소리의 청아함,

구름이 한가로이 물의 푸름과 어울리는 것

이 모두 누군가 설하는 글자 없는 진언(無字眞言)

 

산을 맑게 해주는 수목,

골짜기 깊이 반짝이는 개울,

바람이 불어 맑게 개인 달,

이 모두 홀로 읽는 글자 없는 진언

 

 금각사의 금각(사리전)

 

무로마치 시대 (우리의 고려시대) 의 건축물..

2-3층에 금박을 입혔단다..최근에 1987년에 다시 입혀서 아직도 화려한 금빛이다..

건물안은 접근금지라 볼수 없었지만,  사리전이라고 표기된 것으로보아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곳같다..

 

금각 지붕의 봉황장식

 일본은 불교와 신도의 국가라 한다..

기독교는 인구의 1%,

일찍이 유교를 국가 지도이념으로 채택해 본적이 없는 나라..

그래서인지 경로 요금제니, 경로석의 개념은 거의 드물다고 한다..

 

금각의 후면

 교토를 여행하다보니 불교사원과 신사가 시내에 즐비하다..

우리 고려시대에도 불교국가였으니 이런 분위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원을 1000년이상 유지하려면 "생활불교인"이 많아야 할 것이다..

자연히, 일본불교가 대처승화되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

요즘 일본 사원의 주된 수입원은 납골묘의 관리에서 나온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아니러니하게도, 조선시대의 박해를 견디어낸 한국의 불교가 독신의 비구승제도 그리고 선불교의 전통을 고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안에 용문폭과 이어석..

용문과 잉어를 오마주했다고 할까?

(숙소 고베포토피아 호텔)

나는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라 외국여행 중에 아침에 1시간 나만의 보너스 자유여행을 즐긴다.

이번에도 고베에서 1박, 오사카에서 1박하면서 새벽에 산보나가 제법 즐거운 경험을 가졌다..

 

이번에도 느꼈지만, 선진 외국의 경우..

보행자의 도로가 넓다..

즉 길의 주인이 보행자라는 인식이 도시 설계에서 부터 잡혀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은 호텔 부근인데 차도와 보도가 대등하게 여겨진다..

자전거를 신나게 달 수 있도록  자전거가 다닐수 있는 경사로 육교가 지어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차중심..차도 중심의 나라다..

그 이유는 최초의 차량 구입자가 왕이기 때문이 아닐까?

유럽이나 일본만 해도 시내에는 소형차가  주종인데, 우리네는 큰차 그것도 검은색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그럴 법하다..

 

전철역 부근 자전거에 종이가 붙잇어 유심히  보니 경고장이다..

 

경고..

이 자전거,원동기부착 바이크는 무단 장기 주차되어 지장을 주니 이동시키지 않으면 의법조치하겠다는 취지...

자전거에 대한 단속도 철저하니 다른 질서에는 오죽하겠는가?

 

여기는 교토 시내인데, 역시 자전거 운행자가 무척많다..

횡단보도도 자전거 횡단 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가이드 말..

일본의 웬간한 도시는 노선 버스가 없어 자전거를 탈수 밖에 없단다..

교토는 광광도시라 관광지를 순환하는 버스노선이 있을 뿐이라나..

그말이 사실인지 몰라도 방문 도시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우리처럼 운동용이 아니다..

생활의 일상이 자전거타고 왕래하는 것..

그러니 별도로 헬스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여기는 오사카현  사카이시의 보도..

걷기 좋게 넓고도 평탄하다.. 

 

 여기는 오사카 리가 로얄호텔 부근인데.. 산뜻한 보도..

저녁에 고오베에 도착하여 역사에 잇는 칸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야경을 구경하러 나섰다.

 

고오베하면 지진이 연상되는 곳..

이젠 지진의 피해를 모두 복구한듯..

특히 해변가에 지진 피해가 컸던 곳을  다시 복구하여 모자이크 가든이라는 상가로 만들었다..

상가내에는 사람이 무척 많은데, 1층 주차장은 한산하다..

가이드 말이 여기서는 주차장도 예약제란다..

 

 모자이크 가든의 상징- 시시각각 색깔이 바뀌며 돌아간다..

 

지진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이 많겟지만.

지진으로 순식간에 생사가 오가니  일상에서 죽음이 멀리 잇지 않는 것  같다..

동네마다 탑골묘가 보이고..절과 신사가 즐비하다..

종교적인 생각을 않할 수 없겠지..

 

또한  대도시 아니면 아파트에 살지 않는 것 같다..

2층 정도의 목조가옥이 지진에 제일 안전하기 때문인가 보다..

지진 피해가 없는 우리나라는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인데..

 

모자이크 가든에서 바라본 고오베 포토 타워

그옆으로 아래 사진의 호텔이 나란히 서잇는 야경이 상해의 야경 못지 않다..

이렇게 야경 관리를 하는 도시는 관광마인드가 발달 된 곳이다..

 

고오베 메링켄파크 오리엔탈 호텔

 

이왕 짓더라도 풍광에 기여하고 스스로 관광자원이 된다는 사고.. 

고오베는 관광으로 계속 발전 할 것 같다..

 

밤늦게 숙소인 고오베 포토피아 호텔에 짐을 풀고 

35층  스카이 라운지에 들렀다..

고오베 타워 쪽은 자리가 다 찼고 반대편 창가에 앉아 고오베를 조망하며..

아사히..삿포로..맥주를 홀짝이며 취기를 기다린다..

 

 

 

오카야마 성 앞에 잇는 고라꾸엔(後樂園)이라는 정원으로 갔다..

300년전에 14년의 세월동안 건설하엿다는 정원으로 일본 3대 명원중 하나란다.

멀리 오카야마 성이 보인다..

일본의 성은 서양의 중세성처럼 요새 형태의 성이라..지휘소 격인 천수각은 높고 웅장하다..

성앞에 해자격인 강이 있고 강 건너편에 이 정원이 있다.

 

정원에 들어서자 새장 속에 화투 1광에 나오는 새가 보인다..

이마에 빨간 색, 꼬리의 검의 깃.. 똑같다..

나는 그것을 평소 학이라고 생각햇는데..

그 원형을 일본서 본다..

일본의 원래 학은  전쟁통에 죽고, 중국의 종자를 얻어와 키우고 잇단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엔요테이(延養亭) 정자다..

영주가 방문할 때 머무는 곳이다..

일본식 정원이라고 하지만 어째 서양냄새가 난다..

넓고 잔디, 밭, 수목원으로 정돈 된 모양이 그렇다..

어째든 넓은 공간에 물, 숲과 꽃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편안한 느낌이다.. 

 

위에 보이는 것은 유이신잔(唯心山)이라는 인공산이다..

커다란 철쭉이 피어 장관이다..

이 정원 안에는 무예를 수련하는 궁술과 마술을 연습하는 훈련장도 마련되어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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